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70)
r 170 – 베히모스 – 7
카이킬리아는 자신의 방 침대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별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 얼굴에 약간의 희열이 깃든 채, 오싹오싹 몸을 떨어대고 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카이킬리아가 이런 모습인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쯤이면 아이리스 기사단장이 그 칙서를 들고 델타에게 당도하였을 것이기에.
칙서가 당도했다는 말은 곧 델타가 그것을 읽는다는 뜻이고, 그것을 읽는다는 말은 곧 카이킬리아가 상상하던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는 뜻이다.
편지를 손에 쥐고 읽어나가는 델타를 상상했다. 그 간단한 행동만으로도 아랫배에 이상야릇하고 오싹한 느낌이 차올랐다. 침대를 짚은 손에 꾸욱, 하고 힘이 들어갔다.
몸 전체로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아찔한 감각에, 카이킬리아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드는 기분이었다.
“…….”
희열과 오만함이 반씩 섞인, 여자가 아니라 암컷에 가까운 얼굴을 한 카이킬리아가 달뜬 숨결을 내뱉었다. 뜨뜻한 공기가 한숨과 섞여 입 안을 빠져나왔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음란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약간씩 몽롱해지기 시작한 머릿속을 그런 생각이 헤집고 다녔다.
카이킬리아는 절대로 성에 무지한 여인이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스스로가 느끼고 있는 감정의 정체가 쾌락이라는 사실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아이테르눔 제국의 황제가 단지 자신이 저질렀던 행동을 상기하는 것만으로 몸을 움찔거리며 정신적인 쾌락을 느껴대고 있다니.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었다.
이를테면 자신의 푹 젖은 속옷을 살살 어루만지며 손가락에 끈적한 꿀을 묻혀 펜을 잡았다던가. 편지가 풀어헤쳐지지 않도록 밀봉하는 과정을 굳이 허벅지 사이에서 진행했다던가.
하나같이, 누군가에게 들킨다면 좋은 소리는 절대 듣지 못할 그런 행동들 뿐이었다.
처음에는 델타가 자신과 헤어질 때 했던 말을 지켰단 소식을 전해듣고서 도무지 고양감을 주체하지 못해 저지른 행동이었건만, 어느샌가 주객이 완전히 전도되어 있었다.
“큭…….”
자신이 저질렀던 행동을 자각하자, 몸이 또 움찔 떨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촉촉했던 속옷에 끈적한 액체가 한층 더 깊이 스며들었다.
고작 그따위 행동만으로 여성만이 내보낼 수 있는 쾌락의 증거가 다시 한 번 토해진 것이다. 몸을 직접 건드린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터무니 없는 짓을 벌이고 있단 사실은 알았다. 하지만 도저히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절대 들켜서는 안 될 일탈을 벌이며 그 배덕감으로 얻는 쾌락을 알아버린 이상, 이제 와서 멈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카이킬리아 본인이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다.
황제라는 직책을 거머쥔 이후로, 자신의 혈육들을 제 손으로 모조리 죽여버린 이후로 오직 무미건조함만이 존재하던 카이킬리아의 세계에 다시금 빛과 색채가 나타났으니까.
사막을 건너던 여행자가 오아시스를 벗어날 수 없듯이, 카이킬리아 또한 그 무미건조한 세계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또, 이렇게 된 것이냐.”
카이킬리아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신의 오른손을 다리 사이로 가져갔다. 중지를 살짝 굽혀, 최고급 실크로 이루어진 검은색 속옷을 살짝 훑었다.
끈적하면서도 투명한 액체가 손가락 끝에 어렴풋이 묻어나왔다. 손가락을 살짝 가져다 댄 것 만으로 이 정도니, 안쪽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는 뻔한 일이었다.
질척거리는 손가락을 침대에 문질러 닦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향기가 그 사내의 비강으로 스며드는 장면을 상상했다.
ㅡ오싹!
카이킬리아의 몸이 다시금 움찔 떨렸다. 흡수 용량이 한계에 달한 최고급 검은색 실크가, 끈적하고 질척한 액체를 침대로 토해냈다.
ㅡ소식을 들었다. 베히모스라 불리는 악마를 처치했다지.
시작은 나름 정상적이었다. 일단 저번처럼 성국으로 가라는 한 줄만 달랑 적어놓은 편지는 아닌 듯 했다. 나는 내용을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ㅡ너의 공을 치하하겠노라. 곧 포상이 갈 것이다.
‘……?’
그리고 다 읽었다.
‘뭐야, 이거?’
내가 놓친 부분이 있나 싶어 처음부터 다시 찬찬히 훑어봤지만, 몇 번이고 검토해보아도 저 4문장이 내용의 전부였다. 편지지의 크기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역시 카이킬리아는 그대로 카이킬리아였다.
‘그래도 읽을 때 안 복잡해서 좋…… 응?’
순간, 코 끝에 어렴풋한 향기가 스쳐지나갔다. 동작을 멈췄다. 절대로 여기에 있어선 안 되는 향기일텐데, 내가 잘못 맡았나 싶어서였다.
하지만 정체를 확신하기에는 너무 옅었고, 무시하기에는 너무 선명했다. 나는 아이리스를 슬쩍 쳐다보며 조심스레 코 앞에서 바람을 일으켰다.
바람을 타고 옅은 복숭아 향기가 밀려왔다.
‘…….’
그냥 어디선가 날아온 과일향에 불과하다고 치부한 채로 넘기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처음으로 이 향기를 맡았던 당시의 기억이 너무나도 강렬했다.
카이킬리아의 매끈한 허벅지가 머리를 감싼 상태로 다리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선, 질척하게 젖은 검은색 란제리 속옷을 감상하며 맡았던 향기였으니까.
그런 충격적인 일이 있었으니 복숭아 향을 맡자마자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도 당연했다. 설마 카이킬리아가 나한테 그런 행동을 벌이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해봤겠나.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아이리스, 혹시 칙서 들고 오면서 과일 향기 못 맡았었어?”
“과일 향이라니, 어떤 과일 말인가?”
“어……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복숭아 같은 거.”
“복숭아? 잘 모르겠다만. 갑자기 왜 그러나?”
아이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로 모른다는 듯한 태도였다.
“……아무것도 아니야. 말이 헛나왔네.”
조용히 칙서를 돌돌 말았다. 그냥 내가 잘못 맡았다는 걸로 하기로 했다. 그래, 과일이 너무 먹고 싶었던 나머지 있지도 않은 복숭아향이 난다고 착각한 거다.
애초에 황제가 보낸 편지지에서 과일 냄새가 날 리 없지 않은가. 설마 편지지를 아랫도리에다 대고 문지른 것도 아닐텐데. 도저히 말이 안 되는 망상이었다.
“이번에도 별 내용 없더라. 아이리스 너도 아직 기억하지? 성국 가기 전에, 황제 폐하가 우리한테 편지 보내셨던 거.”
어물쩡 주제를 돌렸다. 괜히 저런 주제로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기억한다. 성국으로 가라는 한마디만 적혀 있었지.”
거기까지 말한 아이리스는, 상황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비슷한 내용인가 보군.”
“맞아. 나보고 악마 잡았으니 잘했대. 포상 준다더라.”
아이리스는 황제 폐하다우신 칙서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돌돌 말아서 다시 끈으로 잘 묶어둔 칙서를 살짝 찝찝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대충 안주머니에 넣었다.
코 끝을 살짝 스쳐지나가는 달콤한 향기는 무시했다.
“혹시 이후에 할 일이 있나, 델타?”
아이리스의 질문에, 고개를 살짝 저었다.
“있긴 한데, 미뤄도 되는 것들 뿐이야. 왜?”
“폐하께서 내리신 명령이 하나 더 있다. 혹시 도와줄 수 있는지를 묻고 싶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당연히 도와줘야지. 뭘 도와주면 될까?”
“황제 폐하께서 그 악마의 시체를 직접 확인해보라고 말씀하셨다.”
“……악마 시체를?”
“그렇다. 베히모스라는 악마가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를 더 정확히 알고 싶으시다더군. 물론 시체가 남아있고 안전할 경우에 한해서다. 시체를 이미 정화했다거나, 죽은 악마를 보는 일이라도 위험하다면 그냥 돌아오라고 하셨으니.”
“어…… 일단 시체가 아직 남아있긴 해. 그런데 보는 걸로도 위험한지는 잘 모르겠네. 내가 알기로는 아마 상관 없을걸?”
악마가 살아있는 것만으로 주변을 오염시키는 건 맞지만, 시체를 본 사람에게 뭔가 해를 끼친다는 설정은 못 들어봤다.
정 뭣하면 전투 수녀들한테 물어봐도 되고.
“그렇다면 부탁하지. 가능하겠나?”
“일단 가서 물어볼게. 나도 잘 모르겠어서.”
“알았다.”
아이리스는 얌전히 내 뒤를 따라왔다. 우리 둘은 서로에 대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베히모스의 시체가 보관된 건물로 향헀다.
주변을 아무리 꼼꼼하게 정화시켜 놓았다지만, 악마의 시체를 도시 가까이에 보관할 순 없으니 제법 멀리 떨어진 장소에 위치해 있는 건물이었다.
“저기야. 흰색 건물.”
나는 신성 장벽으로 둘러싸인 하얀색 건물을 가리켰다. 마치 성국에서 뚝 떼어다 옮겨놓은 것처럼 온통 하얬다. 그 주위는 10명이나 되는 전투 수녀들이 지키고 있었다.
구태여 저런 보관소 건물까지 지어가며 시체를 남겨둔 이유는 내가 사용한 힘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아직 조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 철거하지 않은 거고.
스텔라와 셀레네는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시체를 정화하겠다고 말했지만, 나로서도 그 힘의 정체가 궁금했기에 계속 연구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어서 오십시오, 귀빈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내가 건물 앞까지 다가가자, 전투 수녀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래도 여기 처음 도착했을 때처럼 땅에 무릎을 꿇고 그러는 일은 이제 없어서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그랬었는데, 내가 기겁을 하고 말렸다.
“혹시 베히모스의 시체를 직접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베히모스의 시체를…… 말입니까?”
“맞아.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악마 시체를 본다고 뭐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거나 그러지는 않지?”
“예,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만……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십니까?”
“황궁에서 나한테 소식 전하려고 온 기사야. 황제 폐하게서 악마의 시체를 직접 확인해보라고 하셨대. 어떻게 생긴 놈인지 궁금하시다면서.”
“제국의 황제라면 성검을 가진…… 예. 알겠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전투 수녀는 우리를 순순히 들여보내주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내가 들어갈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진 대화였다. 우리가 왜 들어가는지는 묻지도 않았다.
신성 장벽의 일부가 걷히고, 아이리스와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마치 신전처럼 조각된 내부의 모습이 보였다.
베히모스의 시체는 태양과 달을 상징하는 조각상 사이에 놓여져 있었다. 얼굴에 두꺼운 베일을 덮어놓은 상태였다. 퉁퉁 불어터진 돼지 같은 몸뚱아리는 여전했다.
그걸 본 내가 눈살을 찌푸리는 동안, 시체 바로 앞에 멈춰선 아이리스가 조심스레 베일을 걷었다. 흰 천이 걷히자 놈의 얼굴까지 마저 드러났다.
더럽게 못생긴 얼굴도 그대로였다. 마치 염소처럼 생긴 머리에, 반쯤 열린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삐죽삐죽하게 자랐고, 세로동공을 부릅뜬 채 정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이리스가 찬찬히 놈의 시체를 관찰했다. 나와는 달리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외형 하나하나를 상세히 전달하려는 듯 시선이 무척이나 꼼꼼했다.
“……읏?!”
그러다, 얼굴 쪽을 들여다본 순간 갑자기 옅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나는 깜짝 놀라 잽싸게 베일을 덮었다.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난 아이리스가 고개를 푹 숙이고 가쁜 숨을 내쉬어댔다.
“괜찮아, 아이리스? 무슨 일이야?”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이리스는 양 팔을 가슴 밑으로 둘러, 각각 반대쪽 팔의 윗팔뚝을 감싸쥔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는 중이었다. 척 보기에도 이상한 상태였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나는 부축이라도 해줄 요량으로 아이리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이리ㅡ”
“히얏?!”
도리어 손을 얹은 내가 훨씬 더 놀랐을 만큼 격렬한 반응이 되돌아왔다. 어리둥절한 눈으로 손을 뗐다. 침묵이 감돌았다.
방금 대체 뭔 소리가 난 거지? 내가 잘못 들었나?
“…….”
내 머리가 복잡해져 있는 사이, 자기 몸을 끌어안고 가쁜 숨을 내쉬던 아이리스가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이리스 너, 상태가…….”
아이리스는 몽롱한 눈을 한 채, 입을 반쯤 벌리고선 뺨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