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71)
r 171 – 매혹
“……아이리스?”
다시 조심스레 이름을 불렀다.
아이리스는 몽롱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다가, 정신이 살짝 돌아왔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방금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자각한 모양이었다.
“괘, 괜찮…… 괜찮, 다.”
“하나도 안 괜찮은 것 같은데.”
입으로는 괜찮다지만, 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숨은 가쁘고, 눈은 몽롱하고, 뺨도 불그스름하고.
헬가가 매혹에 걸렸을 때와 거의 비슷한 증상들이었다. 그러니 지금 아이리스의 상태가 어떨지는 뻔했다.
내가 머리를 굴려 해결책을 생각하는 동안, 스스로를 끌어안고서 부들부들 떨던 아이리스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방이라도 주저앉거나 넘어질 것처럼 위태위태했다.
옆에서 몸을 지탱해주려다가, 방금 전에 흘러나왔던 신음 소리를 떠올려버린 나머지 잠시 멈칫 했다. 그런 신음이 또 들려온다면 우리 둘 다 머쓱해질테니까 말이다.
아이리스도 이런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애써 옅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정말로…… 괜찮다. 잠깐, 놀랐을 뿐이다.”
“확실해?”
끄덕, 아이리스는 머리를 가볍게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 짧은 시간에 땀을 제법 많이 흘렸는지, 민소매가 몸 곳곳에 찰싹 달라붙어서는 안쪽의 피부를 비추고 있었다. 가슴 부분의 첨단이 묘하게 핑크빛이었다.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악마의 외형은 확인했다. 호의에 감사하지, 델타. 이제 여길 나가도 된다.”
아이리스는 연신 비틀거리면서도 어떻게 중심을 잡고선 나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순간적으로 힘이 빠졌는지 상체까지 같이 확 숙여졌다.
제 무게에 이끌려 아래로 쏠린 가슴이 잠시 출렁거렸고, 쇄골에 맺혀 있던 땀이 유려한 곡선을 따라 흘러내리며 가슴골 사이로 빨려들어갔다.
“나가기 전에 다시 물을게. 정말 괜찮겠어?”
나는 아이리스를 빤히 응시하며 질문했다. 스스로도 찔리는지, 아이리스는 내 시선을 슬쩍 피했다. 자기 몸이 비정상이라는 것 쯤은 스스로가 제일 잘 알테니 말이다.
게다가, 척 보기에도 상태가 별로였다. 반쯤 풀려버린 은색 눈동자는 내게 고정되어 떨어질 생각을 하질 않았고, 한쪽 팔을 붙잡은 손은 부들부들 떨려댔다.
몸 곳곳에서 배어나오는 땀 때문에 가뜩이나 몸에 꽉 끼는 사이즈의 민소매가 한층 더 찰싹 달라붙어 피부의 윤곽을 드러냈다. 돌핀팬츠 역시 땀으로 살짝 젖어 있었다.
저대로 혼자 걸어가게 놔뒀다간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픽 쓰러져버릴 것이 분명했다.
“…….”
잠시 입을 다물고 우물쭈물 하던 아이리스는, 결정을 내렸는지 조용히 한쪽 손을 뻗었다.
“다시 생각하니…… 괜찮지 않은 듯 하군.”
“진작 그러지.”
그 손을 잡아주었다. 손을 맞잡자마자 저쪽의 몸이 움찔 떨렸다. 아이리스가 반사적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무시하고 팔을 끌어당겼다. 잔뜩 달아오른 몸은 얌전히 내게 끌려왔다.
맞잡은 손바닥을 통해 열기가 전해졌다. 상당히 따끈따끈한 손바닥이었다.
“어떡할래. 옆에서 부축만 해줄테니 혼자서 걸어볼래? 아니면 그냥 업어줘?”
“……나도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는 말 나오는 걸 보니까 혼자선 못 걷겠네. 빨리 나가자. 아마 전투 수녀들이 정화든 뭐든 해줄 수 있을거야.”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리스에게 등이 보이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업혀.”
“……알았다. 실례하지.”
아이리스는 비틀거리며 내 등에 자신의 무게를 실었다. 열이라도 있는 건가 싶을만큼 따뜻한 몸이었다.
체중이 완전히 실리자 날개뼈 근처에서 물컹한 지방의 감촉이 느껴졌다. 애써 그 감촉을 무시했다. 지금은 이상한 곳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손으로 아이리스의 허벅지를 받쳤다. 땀으로 약간 축축해져 있는 허벅지 살이 손바닥에 착 감겨왔다. 무척이나 부드러운 촉감이었지만, 이번에도 애써 무시했다.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읏…….”
귀 바로 옆에서 달짝지근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아이리스의 머리가 내 어깨에 올려져 있는 탓이었다.
아이리스는 한쪽 팔로 내 목을 감고, 다른 한쪽 팔은 내 팔뚝을 꼬옥 쥐었다. 말이 좋아 꽉 쥐었다지, 사실상 힘이 거의 안 들어가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델타 네 몸…… 차갑군. 그래서 좋다. 무척이나.”
아이리스가 몸을 더 바싹 붙이며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차가운 게 아니라, 아이리스 네 몸이 뜨거워서 그런 것 같은데.”
“나는 정상이다, 델타.”
“그래, 그래. 그런 걸로 하자. 너 멀쩡해, 아이리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안 멀쩡하다고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선.
아픈 사람이랑 논쟁해봐야 좋을 건 하나도 없었기에, 나는 대충 맞장구를 쳐주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내 반응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입술이 다시 귓가로 다가왔다.
“정말이다, 델타.”
“알아. 너 지금 멀쩡해.”
거기서 끝났으면 다행이었을텐데, 아이리스는 불행하게도 그러지 않았다.
아이리스가 갑자기 자신의 다리 사이를 내 등에다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그 다리 사이가 어디를 의미하고 있는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
차마 내 등에 보지를 비비는 짓은 하지 말아줄래? 라고 말로 부탁할 수는 없어서, 그만하라는 뜻을 담아 허벅지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걸 대체 무슨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허리놀림이 한층 더 격해질 뿐이었다. 옷을 뚫고 전해져오는 말랑말랑한 느낌을 필사적으로 무시하며 문을 열어젖혔다.
“무슨 일이십니까?!”
문이 열리자, 신성 장벽 앞에서 우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전투 수녀들이 깜짝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나는 고갯짓으로 열심히 상하운동 중인 아이리스를 가리켰다.
“나도 모르겠어. 아마 악마한테 당한 것 같은데. 한 번 봐줄 수 있을까?”
“당연히 그래야 마땅한 일입니다. 어서 이곳에 눕히십시오.”
악마한테 당한 것 같다는 내 말에, 신전 근처의 전투 수녀들이 죄다 몰려와선 우리를 둘러쌌다. 개중에 한 명이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자기 허벅지를 팡팡 두드렸다.
저기에 눕히라는 뜻이었다. 아이리스를 그 앞에 조심스레 내려놓자, 전투 수녀들이 팔 한 쪽씩을 붙잡아주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수녀가 자신의 가슴으로 아이리스의 머리를 받쳤다. 가슴골 사이에 파묻힌 머리가 따스한 살덩어리를 옆으로 밀어냈다. 옆가슴이 겨드랑이 사이로 삐져나왔다.
아이리스의 눈동자는 여전히 내게 고정된 채였다. 그 짧은 사이에 매혹의 효과가 더 강해졌는지, 날 보는 눈이 한층 더 애타게 변해 있는 것은 덤이었다.
전투 수녀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곧 제일 멀리 있던 한 명이 우다다 달려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스텔라를 불러오려는 듯 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귀빈님.”
내게 제일 처음으로 다가왔던 전투 수녀가 아이리스의 앞에 버티고 섰다.
“……뭘 하려고?”
“이런 말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만, 귀빈님의 말씀대로 악마에게 당하신 것이라면 그 순수성을 검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순수성을 검증하겠다는 것은 곧 이단을 판별하겠다는 의미와 마찬가지였다.
나는 순순히 한 발 물러났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성국의 이단 판별을 막을 수는 없을뿐더러, 아이리스라면 괜찮으리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단순히 매혹에 걸린 정도라면 아직 영혼이 오염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장 헬가라는 선례가 있기도 하고. 아니지, 이 도시 전체가 선례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아이리스도 분명 멀쩡할 거다.
“저를 똑바로 바라봐 주십시오.”
그 말에, 아이리스의 시선이 천천히 자신의 앞에 버티고 선 전투 수녀에게로 향했다. 은색 동공이 자신에게 향한 것을 확인한 수녀가 제 수녀복의 가슴가리개로 손을 뻗었다.
오른손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삼각형의 천을 움켜쥐었다.
‘아, 잠시만.’
그걸 본 내가 당황으로 인해 잠시 까먹었던 사실을 기억해내고 미처 시선을 돌리기도 전에.
ㅡ사락.
가슴 가리개가 위로 젖혀졌다.
옷으로 가려져 있던 그 내부의 모습이 눈에 폭력적으로 때려박혔다.
스텔라를 닮아서 그런지 한 손으로는 그 절반조차 제대로 움켜쥐지 못할 크기의 풍만한 가슴과, 그 거대한 언덕의 정상에 위치한 핑크색 돌기까지 그 모든 것이.
아이리스가 쳐다보고 있음에도 옷이 들춰진다는 것을 확인한 전투 수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되찾았지만, 상황은 이미 끝나버린 뒤였다.
내가 멍하니 굳어있는 동안 옷매무새의 정리를 끝낸 수녀가 덤덤히 입을 열었다.
“되었습니다, 귀빈님. 이 분의 영혼은 아직 순수하십니다.”
“어…… 다행이네.”
나는 더듬더듬 답했다. 설마 저런 광경을 또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러니까…… 그래, 해주는 가능하겠어?”
“아마 가능할 듯 합니다. 귀빈님께서 그 더러운 악마를 처단하시기 전에 이곳 사람들이 보이던 증세와 비슷한데, 그 악마로 인해 촉발된 것이 맞습니까?”
“일단은 그렇다고 생각 중이야. 베히모스의 시체를 확인한 직후부터 시작됐으니까.”
“그렇다면, 정화 주문을 써보겠습니다.”
수녀가 허리춤에서 신성 촉매를 꺼내들었다. 조용히 무릎을 꿇고,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수녀를 중심으로 옅은 태양광이 퍼져나갔다.
몸이 태양빛에 감싸이자, 아이리스의 숨소리가 조금 편안해졌다. 효과가 있는 듯 했다.
“귀빈님!”
스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에 도착했다. 무지막지한 속도였다.
“악마에게 접촉당한 분이 계시다고ㅡ”
“방금 이단 판별을 해봤고, 영혼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악마와 직접 접촉한 건 아니에요. 단순히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내가 차분히 상황을 요약하자, 스텔라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설명을 듣긴 했는데, 간략하게밖에 못 들어서요.”
나는 방금 벌어졌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황제의 부탁으로 아이리스와 내가 베히모스의 시체를 확인하러 들어갔는데, 베일을 걷어 얼굴을 확인하던 순간에 갑자기 저렇게 됐다고 말이다.
스텔라는 내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하다가, 이제는 아까보다 확실히 편한 얼굴로 수녀의 가슴 사이에 머리를 맡긴 채 누워 있는 아이리스를 쳐다보았다.
“비켜봐요.”
“예, 이단심판관님.”
아이리스의 앞에서 기도하던 전투 수녀를 옆으로 툭 밀친 스텔라가 그 앞에서 양 손을 맞잡았다. 방금 전보다 훨씬 더 강렬한 태양빛이 터져나왔다.
터져나온 태양빛이 아이리스의 몸을 휘감자, 호흡이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았다. 눈동자를 뒤덮었던 몽롱함이 사라지고, 불그스름했던 뺨이 원래의 색깔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정상적인 상태로 변한 아이리스가 상반신을 일으키며 어리둥절한 눈으로 자기 몸을 살폈다. 그러다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은색 동공이 빙글빙글 회전했다.
“그…….”
“됐어. 굳이 변명 안 해도 돼. 그냥 푹 쉬어둬.”
나는 허둥지둥 변명을 해보려는 아이리스를 막아세웠다. 사실 변명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악마 때문에 저렇게 된 건데 그럴 이유가 어딨겠는가.
대신 스텔라에게 건물 안으로 잠시 들어와줄 수 있겠냐고 눈짓을 건넸다. 스텔라는 내 눈짓을 알아듣고 나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베히모스의 시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시체가 저주를 퍼뜨리는 건 불가능한 줄로 알았습니다만.”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전례가 없던 사태라서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효과도 명백히 이놈이 살아있을 때보다 강했습니다.”
“악마가 살아있을 때보다 효과가 강했다고요?”
“네. 틀림없습니다.”
아이리스가 저런 행동을 하기 전에, 헬가가 내게 똑같은 행동을 했었기에 알아차린 사실이었다. 아이리스에게 걸린 매혹의 효과는 명백히 헬가에게 걸렸을 때보다 강했다.
물론 대체 왜 매혹의 효과가 발정으로 바뀐 건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이었지만.
“으음…… 확실하진 않지만, 예상가는 게 있긴 해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스텔라가, 이번에는 짐작가는 것이 있는지 제법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그게 뭐죠?”
스텔라의 입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