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76)
r 176 – 태양과 달 – 5
‘……여긴?’
깜빡, 눈꺼풀을 몇 번 깜빡이다 조심스레 들어올렸다. 천장에 달려 있는 형광등이 열린 눈꺼풀 사이로 환한 빛을 쏟아부었다.
나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자, 옆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빈이시여! 정신이 좀 드십니까!”
“눈을 뜨셨는지요, 귀빈이시여?”
너무 익숙한 모습이라 순간 현실로 돌아왔나 했는데, 양 옆에서 쩌렁쩌렁하게 스테레오로 울리는 플로레타와 루나의 목소리가 그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속으로 자조하며 몸을 일으키려다, 깨질듯이 아파오는 머리 탓에 도로 드러누웠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유리 너머로 내부가 훤히 보이는 샤워실.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풍기는 벽지. 곳곳에 켜진 촛불. 다른 가구는 거의 없이, 커다란 침대 하나만 놓여있는 공간.
오늘 아침까지 교황들이랑 같이 뒹굴고 있었던 바로 그 장소였다.
내가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바로 옆까지 다가온 교황들이 침대맡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손에서 푹신한 감각이 느껴졌다. 시선을 내리깔았다.
또 가슴인가 했는데, 다행히도 아니었다. 플로레타와 루나는 양옆에서 내 손을 하나씩 붙잡은 채 깍지를 끼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아직 혼자서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귀빈이시여.”
“저희가 일으켜드릴 터이니 부디 참아주시지요.”
내가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하자 교황들이 조심스레 등을 받쳐주었다. 가녀린 팔이 등 뒤에서 교차해 각각 내 반대편 옆구리를 붙잡았다.
깍지를 낀 채 나머지 한 손으로는 등을 받친 자세가 되다 보니 자연스레 팔과 가슴이 맞닿았다. 물컹 하고, 푹신한 물풍선같은 감촉이 느껴졌다.
교황들의 힘이라면 성인 남자 한 명을 받치는 일 쯤은 혼자서도 간단할거다. 나는 힘을 빼고 편하게 몸을 기댔다. 플로레타와 루나도 침대에 걸터앉으며 내게 가슴을 밀착시켰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일단 신성 치료를 행하였기는 했습니다만…….”
“괜찮아. 머리가 좀 욱신거리는 것만 빼면.”
“그러하시다니 다행입니다. 귀빈이시여, 의식을 잃으시기 전의 일을 어디까지 기억하고 계신지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기억을 되짚었다.
루나와 플로레타가 둘 다 신과 대화하는 걸 실패한 이후에, 차선책으로 내가 대화를 시도했는데 그게 성공했었지. 이때다 싶어서 온갖 질문들을 다 퍼부었고.
ㅡ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
그런 직후에,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목소리와 함께 몸에 힘이 풀리면서 의식이 끊겼었다. 기억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빠진 부분은 없는 듯 했다.
‘너무 오래 살면 다 저렇게 되나?’
기억을 떠올리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불평이었다.
세계를 먹는 자도 그렇고, 성국의 신이라는 태양이랑 달도 그렇고. 왜 그리도 녹색머리 고양이 수인처럼 말해대는지 모르겠다. 오래 살면 다 저렇게 되는건가 싶었다.
그 때라는게 뭔지는 알려줘야 조건을 맞추려는 시도라도 해볼 것 아닌가. 뭐 엔딩이라도 보고 오거나 신앙 신성력 99라도 찍고 와야 하나.
“전부 다 기억하는 것 같은데. 중간에 끊어진 부분이 없거든.”
“……그러십니까.”
루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툭, 왼쪽 어깨에 무언가 다가왔다. 고개를 돌렸다. 플로레타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오고 있었다.
“……깨어나셨으니 다행입니다. 혹시라도, 이대로 귀빈께서 영원히 깨어나시지 않으면 어쩌나 했습니다.”
오른쪽 어깨에도 비슷한 감각이 전해졌다. 루나 역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오고 있었다. 둘다 나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게 나한테까지 전해질 지경이었다.
머리라도 쓰다듬어주려다가, 아직 교황들이 손깍지를 단단히 끼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잠시 멈칫 했다.
게다가, 깍지가 풀린다 한들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으니 팔이 머리까지 올라가지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틀림없이 둘 다 울음을 터뜨릴 기세였다. 점점 몸의 떨림이 심해지고 있었다. 훌쩍, 하고 작게 울음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렸다.
‘……어쩔 수 없나.’
나는 그대로 깍지가 껴진 손을 들었다.
“하윽?!”
“귀, 귀빈이시여?!”
그리고, 그대로 플로레타와 루나의 가슴 밑에 손을 넣었다. 눈물을 흘리기 직전이던 플로레타와 루나가, 가슴이 출렁 들어올려지는 감각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손깍지가 느슨해진 틈을 타 재빨리 손을 풀고, 둘의 가슴을 한 쪽씩 움켜쥐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주물러주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밀가루 반죽같은 감촉이었다. 이미 수없이 많이 만져봤지만, 절대로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손가락 사이사이가 압도적인 크기의 살덩이 사이로 푹 파묻혔다.
“읏…… 으응…….”
“앙, 귀빈, 이시여…… 잠, 시…….”
가슴을 주물거리며 유두를 손바닥으로 몇 번 비벼주자, 플로레타와 루나의 얼굴에서 슬픔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흥분과 쾌락이 떠올랐다.
살짝 열린 입술 사이로 교성을 담은 숨결이 새어나왔다. 내가 이렇게 만든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음란한 소질이 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마 후자이지 않을까.
나는 쾌락으로 흠뻑 젖은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교황들이 허벅지를 비비적대기 시작할 때 쯤 손을 뗐다. 그러자 누가 흘렸는지 모를 엣?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당연히 본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만둬야 했다. 플로레타와 루나를 달래주는 것이 내 목적이었으니까. 여기서 불필요하게 자극을 더 줄 필요는 없었다.
‘여자 가슴을 주물러서 울지 말라고 진정시키다니, 내가 봐도 미친놈 같네.’
그렇다고 가슴을 주물러지면서 울먹임을 가라앉히는 쪽이 정상이냐면 그건 또 애매한 질문이다만.
뭐, 내가 죽을까봐 걱정했다면서 눈물을 흘리는 플로레타와 루나를 지켜볼 바에는 차라리 이러는 게 훨씬 더 마음이 편하다.
“나 멀쩡해. 안 죽었고, 멀쩡히 살아있잖아. 그러니까 안 울어도 돼.”
“……예, 귀빈이시여.”
“알겠…… 습니다.”
‘왜 아쉬운 표정인데?’
울음이 들어간 대신 스위치를 건드려버린 것 같아서 이후의 일이 좀 걱정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욕망으로 가득 차서 번들거리는 녹안과 자안을 애써 무시했다. 조금 진정시켜주려고 한 건데, 너무 많이 진정된 나머지 살짝 다른 쪽으로 엇나가 버렸다.
“혹시나 해서 묻는건데, 신이랑 대화 나누다가 기절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지?”
“명확한 비교 대상이 없긴 합니다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교황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저희들의 신께 대화를 시도하였고, 신께서 받아주신 것부터가 성국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인지라…….”
플로레타가 말 끝을 살짝 흐렸다.
“저 역시, 달께서 직접 말을 걸으시었으면서 이토록 격렬한 반응을 내비쳤던 역사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루나의 덧붙임과 함께, 교황들의 표정이 살짝 암울해졌다.
자신들의 신이 내게 왜 저러는지를 모르니 자칫 잘못했다간 신앙과 나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저러는거겠지.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는데, 그건 걱정 안해도 될 거야.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빛의 기둥 있잖아? 그게 직접 내려준 게 맞다고 대답을 받았거든. 그런 힘까지 내려주셨는데 나를 싫어할 리는 없지 않겠어?”
“아…… 그렇다면 정말로 다행입니다.”
“역시 귀빈께서는, 그분들의 보살핌을 받는 존재시로군요.”
플로레타와 루나의 표정이 단박에 펴지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내 추측이 정답이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점차 다리 사이로 모이기 시작하는 손에서 애써 신경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하나 더 있어. 내가 기절하기 전에 이상한 말을 하나 들었는데, 혹시 해석이 가능할까?”
“신께서 내려주신 계시입니까?”
“아마 그런 것 같아. 일단 너희들 목소리는 확실히 아니었고, 스텔라나 셀레네 목소리도 아니었으니까.”
“부디 말씀하여 주시지요.”
플로레타와 루나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신께서 내게 계시를 내리셨다니, 교황들의 입장에서는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라는데.”
“…….”
“…….”
교황들은 내 허벅지 안쪽을 주무르면서 생각에 잠겼다. 왜 굳이 그쪽을 주물러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내버려두기로 했다.
‘닉스한테 걸린 금제가…… 정말로 성국의 신들 때문이었다고?’
나 역시 따로 생각할 것이 있었으니까.
교황들에게 지난 일을 털어놓을 때, 일부러 닉스와 관련될 질문에도 대답을 받았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닉스에게 일종의 금제가 걸려 있고, 그것을 태양이나 달이 직접 걸었다는 사실은 오직 당사자인 닉스와 나만이 알고 있어야 하는 사실이었다.
‘왜지?’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봤지만, 떠오르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브닼 4에서 성국과 흑마법사는 딱히 연관점을 지닌 관계가 아니었다. 둘 모두 굳이 상대를 건드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닉스의 원본이 되는 마녀 NPC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문서나 설정을 뒤져봐도, 신이 흑마법사를 주시했다거나 흑마법사가 신과 연관되었다는 정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달랐다. 분명 성국에서 모시는 신이 직접 자기가 닉스에게 금제를 걸었다고 답했다. 그것이 태양이든 달이든 말이다.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내게 숨겨야 할 정보가 대체 무엇이길래.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귀빈이시여.”
루나의 시무룩한 목소리에 생각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왔다. 교황들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물론 허벅지 안쪽을 주무르는 손은 떼지 않은 채였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해가기까지 했다. 나는 하반신으로 몰리려는 혈류를 필사적으로 제어했다.
“괜찮아. 모를 수도 있지. 원래 계시라는 게 두루뭉실하잖아.”
“하지만, 귀빈께서는 이미 계시를 이해하신 적이 있지 않으십니까?”
“…….”
입을 다물었다. 저렇게 물어오면 내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건 게임에서 나왔어서 그런거고 이건 처음 듣는 거라 어쩔 수 없어, 라고 대답할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이제와서 묻는 것도 좀 웃긴데, 나 얼마나 기절해 있었어?”
그래서 말을 돌렸다.
어차피 언젠가는 했어야 할 질문이었다. 먼저 물어볼 것들이 많았어서 우선 순위가 뒤로 좀 밀렸을 뿐.
‘막 일주일씩 기절해 있고 그랬으면 지금 당장 영지로 돌아가야ㅡ’
“30분입니다.”
“……응?”
“정확히는, 30분 17초동안 기절해 있으셨습니다. 귀빈이시여.”
고작 그 정도?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두명 다 울 듯이 달려오길래 한 일주일은 기절해 있었는 줄 알았는데.
이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플로레타와 루나가 내 허벅지를 쓰다듬는 손에 힘을 주며 덧붙였다.
“저희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일이었습니다, 귀빈이시여.”
“그렇습니다. 기절해 있던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귀빈께서 쓰러지셨다는 상황 자체가 중요한 것이니까요.”
나를 그만큼이나 신경써주고 있었다는 뜻이니, 무척 감동적인 말이었다.
손이 슬금슬금 내 고간에 닿기 직전까지 다가왔다는 점만 빼면.
“알았어. 둘 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나는 재빨리 둘의 품을 빠져나왔다. 그러자 플로레타와 루나가 살짝 다급한 표정으로 나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저, 귀빈이시여? 아직 깨어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으니, 이대로 더 쉬시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아니. 거기 그대로 있으면 절대로 못 쉴거 같은데.
“그렇습니다. 너무 빨리 침대를 벗어나시면 안됩니다. 최소 이틀…… 아니, 나흘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이틀 다음에 사흘이 아니라 나흘이 나오는 걸 보고 확신했다. 저번에 그렇게 오래 하고도 나흘씩이나 더 할 생각이었나.
“아니, 걱정은 고맙지만, 이제 진짜로 괜찮아. 머리도 안 아프고.”
나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표정을 짓는 플로레타와 루나를 뒤로 하고 재빨리 방을 나섰다.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여기서 붙잡혔다간 방금 전의 분위기상 다시 침대에 눕는 건 확정인데, 루나의 말로 미루어보아 그러면 이번에는 최소 나흘이었다.
하지만 아우로라에게 전해졌을 보고서에는 길어봐야 이틀이면 마무리 짓고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써놨으니 문제다.
오늘로 이틀은 이미 훌쩍 넘겼을텐데, 아우로라를 나흘씩이나 더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물론 내가 진심으로 거절한다면 플로레타와 루나도 더 붙잡지는 않을 것이다. 둘 모두 내가 싫다는데 억지로 시도할 성격은 아니니까.
‘그렇기야 하겠지만…….’
솔직히, 불쌍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 플로레타와 루나를 단호하게 끊어낼 자신이 없었다.
교황들 몸이 그만큼 기분 좋기도 했고.
‘나까지 그 둘한테 물들었나?’
그런 이상한 고민을 하며 복도로 나오자, 우리가 있던 방문의 양쪽 옆을 지키고 서 있던 스텔라가 활짝 웃으며 나를 맞이해주었다.
“엄청 일찍 깨어나셨네요? 몸은 좀 괜찮으세요?”
“멀쩡해. 잠깐 기절한 게 전부였거든.”
“귀빈께서 쓰러지는 것을 보고 심장이 멎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무탈하시다니 다행입니다.”
셀레네 역시 안도감이 가득 담긴 표정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신님과 대화하시던 거 아니었어요?”
스텔라의 물음에, 나는 교황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짤막히 요약해서 들려주었다.
물론 울먹이는 둘을 가슴 주물러서 진정시켜 준 것과, 마지막에 다시 침대로 갈 뻔 했던 일은 뺐다. 그건 교황들이랑 나만 알고 있으면 되는 일이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계시라니, 저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텔라와 셀레네는 모른다고 대답하면서도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성국에서 ‘계시’란 오직 교황들만이 해석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한 일에 죄책감을 느낄 이유는 없다.
“그런데…… 귀빈이시여, 교황 성하들과 같이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같이 있긴 했지. 왜?”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 셀레네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벌써 밖으로 나오신 이유를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