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79)
r 179 – 치하 – 1
“수고했어. 힘들었겠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아우로라가 다리를 꼬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의자는 예전보다 조금 더 푹신한 재질로 교체되어 있었다. 이전의 것이 실용성보다는 멋에 중점을 뒀다면, 지금은 멋이 아니라 실용성과 편안함에 훨씬 더 중점을 둔 느낌이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나랑 몸을 섞은 뒤에 꼬박 며칠동안이나 의자에 앉기조차 버거워해서 더 폭신한 재질로 바꿨다던가.
그때는 일부러 못 따라오게 하려고 더 격하게 박아댄 것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다음번에는 조금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쪽도 그럴 의향이 있다면 말이지.’
아우로라는 다리를 꼰 채로 나를 흘긋흘긋 쳐다보다가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을 때 짓는 미소였다.
내 입장에서 말고, 저 입장에서 좋은 생각.
“그런데, 성국에서 뭐 했는지는 안 알려주려고?”
“방금 전까지 뭐 들으셨습니까?”
나는 황당한 눈으로 아우로라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말해줬던 내용이 성국에서 뭘 했는지였다.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어놓고선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물론 숨겨놓은 게 좀 많긴 했다. 성국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전부 다 사실대로 털어놓을 순 없으니까.
교황들이랑 이틀 내내 몸을 섞었던 일도 그렇고, 내가 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일도 그렇고, 성유물을 선물해줬던 일도 그렇고.
하나같이 외부에 퍼져나갔다간 온갖 파장을 일으킬 내용들 뿐이었다. 특히 카이킬리아의 귀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한바탕 난리가 벌어질 것이 뻔했다.
아우로라를 믿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입이 충분히 무겁다는 것도 알지만, 아직은 외부에 털어놓고 싶지 않았다.
다른 게 아니라 내가 뒷감당을 못할 것 같아서 그렇다. 보스들 처치하기도 바쁜데, 다른 쪽에서 트러블이 생기는 건 죽어도 못 본다.
“교황 성하들 찾아갔었다며. 그분들이랑은 나랑 했던 거 안 했어?”
얼굴에 히죽거리는 미소를 띄운 아우로라가 왼손의 엄지와 검지를 맞붙여 동그란 원을 만들고, 그 안에 오른손의 검지를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그 장대한 신성 모독에 내 표정이 한층 더 황당하게 물들었다.
“이제는 신성 모독까지 저지르시는 겁니까? 천벌 내려져도 전 모릅니다.”
“델타 네가 막아줄테니까 괜찮아. 설마 그런 짓까지 해놓고서 나 버리려는 건 아니지?”
“영주님한테 저는 대체 누구길래 천벌까지 막아주는 건데요?”
“음…… 글쎄. 숨기는 게 아주 많은 남자?”
아우로라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허리가 아파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겠다며 골골대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걸 보아하니, 몸은 완전히 다 나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가 성국 가서 교황들이랑 몸을 섞었던 건 맞았기에 딱히 반박할 말도 없었다. 오히려 여기서 안 그랬다고 부정하다간 나한테 벼락이 떨어지지 않을까.
“저 불러서 그런 저질 농담이나 하시려고 아직까지 안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시계를 흘끗 쳐다보았다. 시간은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루나에게 줄 이스터에그를 활성화시키려면 당연히 달이 떠오르는 밤까지, 그 중에서도 만월이 달의 대성당 첨탑에 정확히 수직으로 걸치는 밤 12시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내가 여기에 돌아오는 것은 아주 늦은 밤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지금 시간이 늦은 밤을 넘어 새벽에 가까운 것은 그 뒤에 있었던 교황들과의 장대한 실랑이 탓이 컸다.
‘그걸 부담스러워서 어떻게 받으라고?’
나한테 성유물을 건네받은 플로레타와 루나가, 약소하게나마 보답을 해주고 싶다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더니 10분만에 쌍두마차 40대를 끌고 온 것이다.
걔들한테야 성유물이겠지만, 실상을 알고 있는 나한테는 그저 손전등에 불과한 물건이다. 쓰레기나 다름없는 성능의 무기를 건네주고 그만한 보상을 받기엔 양심이 좀 많이 찔렸다.
내가 얼굴에 철판 깔고 해준 것 이상의 물건을 받을 수 있는 성격이 못 되는 이상, 그만한 답례는 보답이 아니라 부담이었다.
그래서 마차 한 대 분량만 가져가려다가, 교황들이 제발 성의를 표현하게 해달라며 몸으로 붙들고 애원하길래 설득하느라 아주 진땀을 뺐다. 그게 장대한 실랑이의 원인이었다.
‘셀레네랑 같이 성으로 돌아오니까 불침번 서던 애들이 놀라서 다리에 힘 풀렸었지.’
뭐, 실랑이 끝에 고르고 골라서 챙긴 것만 해도 쌍두마차 10대 분량이긴 했지만.
잠시 들를 일이 있다면서 성국으로 갔던 기사단장이 성국의 문양이 박힌 마차 10대를 끌고 돌아왔으니 성이 아주 뒤집어진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불침번을 서던 부기사단장이랑 단원들은 물론이고, 자고 있던 애들까지 전부 다 깨워서 정리에 들어가야 했다.
역바니 5명과 바니걸 50명이 새벽에 보물들을 주워담고 있는 모습은 제법 볼만한 구경거리였다. 물론 반어법이다.
‘오늘 밤 안에는 끝나려나 모르겠네.’
나는 불침번 서던 애들한테 아우로라가 언제든 자길 찾아오랬다는 말을 듣고 적당한 보석 하나만 챙겨서 저택으로 떠났다.
일거리를 냅다 들이부어놓고 혼자 빠져나갔는데, 그게 또 기사단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던지라 날 보는 부기사단장들과 단원들의 시선이 굉장히 오묘했다.
“내가 설마 그랬겠어? 보고서에는 길어봐야 이틀이면 충분하댔는데 사흘째가 되어서도 안 돌아왔잖아. 뭘 하고 있었길래 하루씩이나 늦는건가 싶어서 불렀을 뿐이야.”
“뭐, 나름 사정이 있었습니다.”
“사정이야 당연히 있었겠지. 차라리 늦기만 했으면 또 몰라, 저런 것까지 잔뜩 받아서 돌아왔잖아.”
아우로라가 자신의 책상 위에 올려진 보석을 흘끗거렸다. 이걸 본 아우로라는 갑자기 웬 보석이냐며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대답을 듣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의 일이 떠올랐는지 입술 사이로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일단 내가 할 말은 끝났어. 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돌아가도 좋아.”
“알겠습니다.”
아우로라는 나를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눈으로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내리깔며 책상 위의 보석에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 몸을 돌려 아우로라의 방을 나섰다.
별다른 일 없이 끝나서 다행이었다. 교황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우로라가 유혹이라도 해오면 어떡하나 고민중이었는데.
“안에서 영주님과 같이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복도로 나간 다음 문을 닫자, 바로 옆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움찔 하며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 자리에는 언제나처럼 아랫배 앞에 손을 다소곳이 모은 흑발 흑안의 메이드장, 라나가 서 있었다.
“……그랬지.”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대답하자, 라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벌써 나오셨습니까?”
뭐지, 데자뷰인가.
성국에서 돌아온 그날 아침, 나는 라크시아를 비롯한 부기사단장들에게 보물들의 수량과 목록을 들은 후 닉스의 방에 들어와 있었다.
라크시아의 말에 의하면 창고 증축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정도라나. 양이 어마어마하다는 건 눈대중으로도 그럭저럭 알 수 있긴 했다만, 설마 그 정도일줄은 몰랐다.
원래 주려던 양에 비해서 무지하게 줄어든 10대만으로도 이정도인데, 그 4배인 40대를 고스란히 다 받았더라면 진짜로 성 전체에 보물이 넘쳐흐르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참에 성을 싹 개조하기로 결심하고, 수리나 개선, 증축이 필요한 시설들의 목록을 싹 정리해서 달라고 한 뒤 닉스에게 성국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닉스 본인의 금제가 신이 직접 걸어놓은 것이라고 말이다.
“……헤헤, 그런가요.”
내 설명을 들은 닉스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평소처럼 헤헤거리며 실없이 웃었다.
“그래서, 혹시 성국 쪽 사람이랑 엮인 적 없어? 아니면 네가 나처럼 신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거나.”
“그,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제 기억 속에는 없는 걸요.”
내 기억 속에는 없다, 라. 무척 애매한 발언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반말 닉스의 기억 속이라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처럼 들리지만, 닉스의 인격들은 기억을 공유하니까.
“너희들은 기억을 공유한다고 했지? 그러면 반말 쪽 닉스도 모르겠네?”
“네. 제가 아는 건 그쪽 닉스도 알고, 제가 모르는 건 그쪽 닉스도 모르니까요. 아, 그래도 아주 세세한 부분이라면 차이가 있긴 해요.”
“차이가 있다고? 어떤 점인데?”
“마법을 사용하는 거라던가, 그런건 제 쪽이 조금 더 나아요.”
그러고보니, 반말 닉스가 그런 건 자기 영역이 아니라며 존댓말 닉스와 인격을 바꿨던 일이 기억났다. 존댓말 닉스가 마법에 더 뛰어나서 그런거였나.
“왜 그런 차이가 생기는지는 알고?”
“헤헤, 그것까지는 저도 잘…….”
닉스는 가슴 앞에서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표정이 곧장 헤실헤실하게 풀어졌다.
“그래, 알았어. 나중에 반말 쪽 한테도 물어볼게.”
끄덕끄덕, 머리가 격하게 위아래로 흔들렸다.
나는 제대로 된 대답조차 해주지 않고 사라진, 어딘가의 녹색머리 고양이 수인과 닮은 외모일 게 분명한 성국의 신을 속으로 욕하면서 닉스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단장님, 계십니까? 그 흑마법사의 방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습니다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라크시아였다.
“있어. 무슨 일이야?”
“단장님 앞으로 편지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편지?”
그 말을 듣자마자 약간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여태껏 편지가 그냥 편지로 끝났던 적이 한 번도 없지 않았나. 죄다 일이 터지거나 어디론가로 가야 했거나 그랬던 거 같은데.
“예. 전해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들어와.”
허락을 맡은 라크시아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머리를 쓰다듬는 중인 나와 머리를 쓰다듬어지며 고롱대는 닉스를 보고 잠시 멈칫 했다가, 손에 들린 편지를 건네주고는 곧장 돌아갔다.
재빨리 발신인부터 살폈다. 카이킬리아가 직접 보낸 편지라거나, 타임어택형 필수 퀘스트 혹은 스토리가 아닌 이상에야 며칠 정도는 무시해줄 예정이었다.
‘……리제?’
하지만, 편지의 발신인은 리제였다. 리제가 보낸 편지를 무시할 순 없었으니, 조심스레 매듭을 풀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