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8)
“클라우디아! 대체 이게 무슨……!”
밖에서 아이리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 정문에는 은빛 여명 기사단의 모든 인원들이 다 모여있었다.
뭐, 모든 인원이라고 해 봤자 나와 아이리스에 리제, 에리카, 그리고 이번에 복귀한 클라우디아까지 이렇게 다섯 명이 전부이긴 했지만.
“보는 대로지 뭐겠어. 토벌 실패야.”
내 눈앞에는 은빛 여명 기사단의 서열 1위이자 설정상으로 제일 강한 기사단장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중상을 입은 채로 쓴웃음을 짓는 여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온 몸에 칭칭 감긴 붕대는 피로 흠뻑 적셔지다 못해 흘러넘쳐선 그 상태로 검붉게 말라붙어 있었다. 붕대로 가려지지 않은 부분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지경이었다.
왼다리를 절뚝이며 걷는 모습에선 힘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거동조차 불편한 듯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선 모습이었다.
‘여자일거라고 확신하기는 했는데…….’
클라우디아의 외모는 내 생각과 전혀 달랐다.
머리카락은 연분홍색 혹은 벚꽃색이라는 단어가 제일 어울릴 듯 했고, 반쯤 동그란 모양으로 정리된 단발은 쇄골에 살짝 못 미치는 길이로 뻗어있었다.
일자로 반듯이 정리된 앞머리 밑에는 연분홍색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여러모로 중성적인 인상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골반이나 허리에서 분명 여성 특유의 곡선이 느껴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성적이라기 보단 중성적인 남자라는 느낌이 훨씬 강했다.
가뜩이나 인상이 그런데 키마저도 무지막지하게 커서 더 그랬다. 아마 내 키가 제법 큰 편에 속할텐데도, 그런 나보다 손가락 한두마디 정도만 더 작은 수준이었다.
옷차림을 남자처럼 차려입기만 한다면, 잘생긴 여자가 아니라 곱상한 남자라고 해도 아무런 의심없이 믿을 그런 외모에 가까웠다.
그나마 가슴 굴곡이 붕대 너머로도 드러난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옷만 제대로 챙겨 입었다면 남자로 착각할수도 있었겠어.’
일단 입은 옷차림이 다른 기사단장들처럼 돌핀팬츠였기에 성별을 착각할 일은 없을 듯 했다.
바닥에는 그런 클라우디아 본인의 키와 맞먹는 길이에, 엄청난 넓이를 지닌 대검이 놓여 있었다. 척 보기에도 무게가 20kg이 넘어갈 듯 했다.
솔직히 검이라기보다는 둔기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토벌에 실패했다고?”
“아하하. 그렇게 됐네. 폼 잔뜩 잡고 나갔는데 꼴사납지?”
클라우디아가 붕대로 칭칭 감긴 오른손을 머쓱한 듯 작게 흔들었다가, 전신의 붕대를 새로 감아주던 에리카에게 뭐하는 짓이냐고 한 소리를 듣고선 납작 움츠러들었다.
“살아돌아와줬으니 그걸로 됐다. 목숨을 잃지 않은걸로 충분해. 토벌에 실패했다는 것 보다는 살아돌아왔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하다.”
“클라우디아, 그 마물이 그렇게 강했어? 너도 토벌에 실패할만큼?”
리제의 질문에 클라우디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걔 근처에도 못갔는데. 차라리 그놈한테 당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았을걸?”
“그게 무슨 소리지, 클라우디아? 근처에도 못 갔다니?”
은빛 눈동자가 충격을 받은 듯 확 커졌다.
“그놈한테 가는 도중에 다른 마물이랑 마주쳤거든. 강철 갑옷 입은 말이랑 목 잘린 채로 창 쓰는 기사 비스무리한 마물…… 아니지, 마물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네. 아무튼, 걔한테 당했어. 아무리 두들겨도 공격이 전혀 안 먹히더라. 내 무기가 이런건데도 말이야.”
클라우디아가 발끝으로 자신의 발치에 놓인 대검을 툭툭 건드렸다.
너비는 사람 몸통만 하고, 길이는 사람 키만 하고, 두께는 손가락 두 마디 수준인 대검으로 팼는데도 공격이 전혀 안 먹혔더라는 대답에, 나를 제외한 나머지 셋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야 당연하지.’
애초에 그놈은 정면돌파로 때려잡으라고 있는 보스가 아니라 특정한 아이템을 사용해서 전신에 둘러진 철갑을 벗기고 잡아야되는 놈이었다.
갑옷이 안 벗겨진 상태에서는 올스탯 99짜리 캐릭에 풀강 무기를 들고 풀버프로 후드려패도 10 언저리에서 노는 대미지밖에 안 박힌다.
아주 가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답시고 갑옷을 안 벗긴채로 그걸 클리어하려는 인간들이 나오긴 했는데, 대부분은 자기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확인하는 결말로 끝나기 일쑤였다.
“……그렇군. 일단 알았다.”
아이리스가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클라우디아는 면목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이제 슬슬 가볼까.’
방금 대화로 이벤트는 끝났다. 그놈을 토벌하라는 퀘스트창이 뜬 건 아니었지만, 어차피 게임에서도 퀘스트창 같은 건 안 떴었으니.
브닼 4는 캐릭터가 무슨 미션을 진행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모든 퀘스트를 대화나 조사로만 유추하고 그걸 플레이어가 일일이 기억하고 다녀야만 하는 게임이었다.
그걸 까먹거나 잊어버린다면? 스토리 라인이 꼬여 원하는대로 진행을 못 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스토리로 진행하게 된다.
호불호가 굉장히 갈리는 스타일이었다. 다른 오픈월드 RPG처럼 쓸데없는 퀘스트창 알림을 안 봐서 좋다는 사람도 있었고, 너무 불편하고 불친절해서 싫다는 사람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현재 진행중인 메인 스토리와 서브 퀘스트들을 다른 RPG처럼 보기 쉽게 알림 형식으로 정리해 보여주는 모드가 나왔을까.
물론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사항이었다. 자잘한 서브 퀘스트들까지 전부 다 외우지는 못하더라도, 게임의 메인 스토리와 굵직한 서브 퀘스트쯤은 머릿속에 다 들어있다.
“잠깐. 어디 가는거지, 신입?”
내가 태연하게 성 밖으로 나가려 하자, 아이리스가 날 불러 멈춰세웠다. 게임에선 한 번도 겪어본적 없는 상황에 머리가 잠시 굳었다.
‘……생각해보니까, 이건 게임대로 흘러갈 게 아니잖아.’
게임에서야 이 루트를 탄다 하더라도 그냥 은빛 여명 기사단에 소속만 되어있다는 느낌이지 그걸로 딱히 뭐 이득이 되는 부분은 없었다.
주인공은 자기 혼자 놀고, 기사단의 스토리가 진행될 뿐.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엄연히 은빛 여명 기사단에 속한 신입 기사였다. 그것도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당연히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이 집중될 게 뻔했다.
아이리스의 입장에선 어디론가로 혼자 떠나려는 나를 멈춰세우는 게 맞는 것이다.
‘실수했네.’
속으로 혀를 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숨겨봤자 내게 이득 될 일이 없으니 대놓고 말해버리는 편이 더 나을 듯 했다. 나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말 탄 녀석 잡으러.”
내 한 마디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리제와 에리카는 쩌적 굳어버렸고, 클라우디아는 내가 방금 뭘 들은거지? 하는 표정이었으며, 아이리스는 드물게 눈살을 찌푸리더니 내 말을 어떻게 이해한건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굳이 신입인 널 토벌에 참가시킬 필요는 없다. 이건 우리들이 할 일이고, 어차피 실패를 보고한 뒤에 다시 나서야ㅡ”
“토벌에 데려가달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나 혼자 가겠다고 말한거야.”
그 말을 들은 아이리스가 기어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클라우디아는 나더러 미쳤냐는 눈빛을 보냈다. 에리카도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이었다.
리제는 옆으로 다가오더니 내 손가락을 살짝 움켜쥐며 자기 뒤로 보내려 했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팔에 힘을 주어 버텼다.
“신입. 네가 재능이 출중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이미 우리에게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증명해보였음도 알고 있고. 하지만, 이것은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다. 적은 대련 때의 리제처럼 봐주지도 않을거고, 손속을 두지도 않을거다. 까딱 잘못했다간 그대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단 말이다.”
“그런 걱정은 안해도 돼. 어차피 난 안 죽을테니까.”
“……내 말을 전혀 듣질 않는군.”
하아, 아이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단순 자신감만으로 벌이는 행동이라면 절대로 허가할 수 없다. 네 자신감이 어디서 기인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너는 이미 우리를 몇 번이고 놀라게 만들었지. 나 역시 네 실력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에 반대할 수 밖에 없는거다. 만약 네가 내 허락을 받고 떠났다가 죽어 돌아오거나, 혹은 아예 돌아오지 못하기라도 한다면…… 나는 스스로를 절대 용서할 수 없을테니까.”
타당한 걱정이고, 합당한 걱정이었다.
만약 내가 기사단장이었어도 어느 날 들어온 재능 넘치는 신입이 자기네 기사단의 제1 기사단장조차 토벌에 실패하고 돌아온 마물을 잡으러 가겠다고 한다면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나로서도 이번 토벌은 절대 미룰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놈을 잡아야 나중에 영주를 죽일 때 쓸 도구를 얻을 수 있으니까.
“실전은 이론과 다르다. 적들은 네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그건 우리가 처음 만나보는 적이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게 정답이다. 너를 그런 곳에 들이밀 순 없어. 다시 말하지만, 나는 너의 재능과 미래의 가능성을 굉장히 높게 사고 있다. 그런 인재가 허무하게 바스러지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을거고, 그런 인재가 무의미하게 죽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을거다. 두 번 말하지는 않겠다, 신입. 거절ㅡ”
“클라우디아 기사단장님.”
“어, 어? 나?”
뜬금없이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에리카에게 부축을 받으며 나와 이이리스를 번갈아 쳐다보던 클라우디아가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네. 하나만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