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82)
r 182 – 치하 – 4
“그, 어떻게 들어왔냐면요…… 헤헤.”
닉스는 평소보다 훨씬 더 이쪽의 눈치를 살펴대고 있었다. 가뜩이나 자존감 낮은 성격인데, 옆에서 리제가 살기에 가까운 눈빛을 내비치고 있으니 더더욱 쪼그라든 듯 했다.
“단장님들이 너무 안 오셔서…… 그, 누가 한 번 가서 살펴보자고…….”
“내가 안 온다면서 살펴보자고 했다고? 우리 애들은 안 그랬을텐데?”
“뭐?”
내가 고개를 돌리자, 리제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아차 싶었는지 슬쩍 단검을 집어넣으며 눈을 피했다. 자기 쪽 애들은 안 그랬을거라는 방금의 말 속에는 아주 커다란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 속에 확신이 담겨있다는 말인 즉, 미리 무언가 수를 써놓았다는 뜻이다. 아마 자기 계획을 미리 말해줬거나 했겠지. 정말 작정하고 왔구나 싶었다.
내가 창고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도 분명 어딘가 으슥한 곳에 가자면서 나를 꼬셨을 것이다. 방금 저 말로 확신했다.
“……리제 넌 일단 나중에 따로 얘기 좀 하자. 그래서, 계속 얘기해 봐.”
“칠흑 성야 기사단도, 몇 시간쯤 기다려주는 건 괜찮다는 분위기긴 했는데…… 제, 제가 호기심을 못 이겨서…… 헤헤.”
“너네 애들도 우리 애들이랑 똑같은데?”
“…….”
황궁에서 여기로 돌아올 때 마지막으로 리제랑 몸을 섞는답시고 복귀 시간을 하루씩이나 늦춰버렸던 임팩트가 너무 컸나.
내가 속으로 황당해하는 사이, 가슴 앞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음침한 미소를 짓던 닉스가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창고까지 왔는데,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길래, 위로 올라가서 훔쳐보다가…… 헤헤. 창고 천장이 생각보다 약해서 그만…….”
“뭐야, 우릴 훔쳐봤다고?”
그 사실이 불쾌하게 느껴진 듯, 리제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닉스는 그 모습을 보고 히익! 하는 소리를 내며 벌벌 떨었다.
평소에 말하는 거 보면 야외 노출도 거리낌 없이 할 것 같은데 의외였다. 아무리 리제라도 외부인한테 보여주면서 하는 취향은 없다 이건가.
하긴, 나도 야외 노출 플레이는 싫었다. 그나마 아우로라랑 할 때처럼 주변의 가까운 여자에게 보여주는 정도가 심리적인 한계다.
“어디부터?”
“어…… 마, 말해도 돼요?”
“안 때릴테니까 말해봐.”
“그, 입고 계신 기사단 정복 바지를 끌어내리시는 부분부터요.”
새삼 저 돌핀팬츠도 정복 취급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리제가 입고 있는, 과장 좀 보태서 삼각팬티와 다를 바 없는 길이의 푸른색 돌핀팬츠를 흘끗 쳐다보았다. 엉덩이와 음부를 가리려는 게 아니라 드러내려고 입은 것 같은 옷차림이었다.
기사단 하나는 흰 민소매에 돌핀팬츠가 정복이고, 다른 기사단 하나는 스포츠브라에 레깅스가 정복이고, 마지막 기사단 하나는 바니걸이랑 역바니가 정복이라니. 참 대단한 나라였다.
“그냥 처음부터 다 봤다는 소리잖아. 뭘 그렇게 돌려서 말해?”
나와 대화할 때의 목소리랑은 정반대로, 싸늘함이 뚝뚝 묻어나오는 말을 내뱉은 리제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러면서 약간 말려있는 돌핀팬츠의 고무줄 부분을 똑바로 폈다.
그래봤자 민소매 티가 워낙 짧은 탓에 복근과 옆구리의 맨살이 드러나는 걸 막을 수는 없었지만.
리제의 기분이 다시 조금씩 나빠지려는 것 같길래, 척추 라인을 따라 움푹 들어간 골짜기를 손가락으로 스윽 훑었다.
“히익?! 뭐야?”
리제는 예상대로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추궁이라도 하는 듯한 눈초리가 되돌아왔다. 나는 능글맞게 웃으며 그 시선을 태연히 받아넘겼다.
“미안. 손이 먼저 나갔네. 너무 탐스러워 보여서 그만.”
“……만질거면 말하고 만져. 말 안하고 그럴거면 가슴이나 엉덩이로 하든가. 변태야? 그런 곳이나 만져대게?”
가슴이나 엉덩이는 괜찮고 등은 안 되는건가. 어째 핀트가 살짝 엇나간 투덜거림과 함께, 리제는 더 이상 추궁하기도 애매했는지 흥, 하며 뺨을 부풀렸다.
“연무장에서 애들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빨리 나가자.”
리제는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푸른 눈동자가 닉스에게 향해 있는 것을 보아하니, 외부인이 보는 앞에서 하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창고 문이 다시 열렸다.
나가면서 닉스를 째릿 쳐다본 것은 덤이었다. 살벌함이 듬뿍 담긴 시선을 받은 닉스가 히끅, 하고 작게 딸꾹질을 했다.
닉스의 모습이 그 뒤를 따라 쭈뼛쭈뼛거리며 사라졌다. 그 뒤를 이어 마지막으로 나가려는 찰나,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발 끝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채였다.
소리가 들린 곳을 내려다보았다. 약간 떨어진 자리에 커다란 나무토막이 구르고 있었다.
“……낡아서 그랬나.”
겨우 한 명 올라갔다고 천장이 무너지다니 말이다. 닉스 몸무게가 그리 무거운 것도 아닐텐데. 증축하는 김에 여기도 싹 갈아엎어야 하려나.
방금 걷어찬 나무토막을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엄청 두꺼운데. 이게 어떻게 부서졌지?’
나무토막의 두께는 내 검지의 절반에 가까웠다. 작정하고 칼로 자르려고 해도 쉽게는 안 잘릴 것 같은 두께였다. 그런데 이게 내려앉았다고?
천장을 확인했다. 부서진 자리는 딱 닉스 한 명이 떨어질 수 있을만 한 크기로 뚫려 있었다. 근처로 보이는 천장의 두께 역시 무시무시했다.
‘……저 근처가 좀 약해져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쉽게 내려앉을 두께는 아니었다. 나중에 창고를 새로 짓든지 수리하든지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무토막을 내버려두고 창고를 나섰다.
먼저 나간 리제와 닉스는 둘 다 근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가슴밖에 눈에 안 들어오는 조합이었다.
이곳 여자들의 키가 전체적으로 크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리제는 평균보다 한참 작은 축에 속했으며, 닉스는 평균을 감안하시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객관적으로 봐도 엄청 작았다.
그런 주제에 가슴은 두명 다 양손을 전부 동원해도 한쪽이나마 전부 쥐지 못할만큼 커다란 수준이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쪽은 몸에 딱 달라붙는 흰 민소매에 다른 한쪽은 가슴을 거의 내놓다시피 하는 변형된 와이셔츠였으니, 가슴이 강조되는 효과까지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두 거유 미녀를 양쪽에 낀 채 연무장으로 돌아오자, 평범하게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은빛 여명 기사단과 칠흑 여명 기사단이 나더러 왜 벌써 왔냐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빨리 돌아왔는데 오히려 저런 눈빛이니 기분이 묘했다.
“서둘러서 치우고 끝내자. 움직여.”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리제도 앞으로 나서며 은빛 여명 기사단을 끌어모았다. 단장들의 명령을 받은 양쪽 기사단이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기네들의 단장과 마찬가지로 흰 민소매와 돌핀팬츠를 입은 단원들이 마차 위로 뛰어올라갔다. 옷의 사이즈가 커서 그런지 리제보다는 노출이 덜했다.
게다가 옆에 있는 복장이 스타킹, 망사 스타킹, 맨다리, 타이즈를 입은 바니걸이거나 아예 역바니라서 상대적으로 더 단정해보이는 것도 있었다.
닉스도 뽈뽈 움직이며 뭔가를 하긴 했는데, 솔직히 별 도움은 안 됐다. 가슴은 무진장 크면서 팔다리는 짜리몽땅한 탓에 들 수 있는 물건이 한정되어 있는 탓이었다.
작업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리제가 물품의 목록이 적힌 종이를 가져오기도 했고, 은빛 여명 기사단이 도와주기도 해서였다. 게다가 물건을 옮기는 동선도 제법 짧았고.
“……더럽게 많네.”
“황제 폐하께서 보내신 선물인데 그렇게 말해도 돼?”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양 자체는 어마어마했지만 말이다.
이 거대한 연무장의 한쪽 구석에 보물의 산이 쌓여 있었다. 그 근처로 칠흑 성야 기사단이 열심히 자재를 나르며 임시 창고를 짓는 중이었다.
“이런 말을 했다는 걸 안 들키면 괜찮지 않을까?”
“음…… 아니, 델타 너라면 들켜도 괜찮을 것 같은데?”
농담이랍시고 말했는지, 리제는 혼자서 키득거렸다. 하지만 나는 진짜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웃지 못했다.
“……일단 전부 받아두긴 했는데, 막상 생각하니 쓸 곳이 없네. 이대로 창고나 더 만들어서 그 안에 쌓아둬야 하나? 리제 넌 생각나는 거 있어?”
“나한테 물어봐서 뭐 해?”
리제도 딱히 쓸 곳은 없다는 투였다. 자세한 단가는 잘 몰라도, 이만한 양이면 성 증축이나 보수가 아니라 아예 새로 하나를 지을 수도 있지 않나 싶었다.
일단 칠흑 성야 기사단 전체에 조금씩 나눠주고, 아우로라한테도 적당히 나눠주고, 은빛 여명 기사단한테까지 준다 쳐도 이걸 다 쓰기에는 모자랄 듯 했다.
‘이거 다 팔면 게임에서는 얼마나 나왔으려나.’
1회차에 팔았어도 11회차까지 풍족하게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대부분의 소모품은 가격이 안 변하니까. 어쩌면 빛을 머금은 성수까지 수월하게 구매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뭐, 그 퀘스트가 악명 높은 이유는 가격이 비싸서가 아니었지만.
“너도 좀 가져갈래? 가져가서 은빛 여명 기사단에 나눠주면 되잖아.”
“주면 받기야 하겠는데, 받아도 딱히 쓸 곳은 없을걸? 황궁에서 근무했던 기사는 은퇴하더라도 충분히 풍족하게 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ㅡ”
리제가 씨익 웃으며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툭 쳤다.
“어차피 네가 나 먹여살려줄 거잖아? 나는 네 밑에서 얌전히 다리나 벌리고 있으면 될텐데 뭐하러?”
“진짜 단어 선택 좀 조심스럽게 안 할래?”
내가 주위를 흘끔거리며 한마디 하자, 리제가 깔깔대며 웃었다.
은빛 여명 기사단은 리제가 저러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닌지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었고, 칠흑 성야 기사단도 왜인지 모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이러니까 꼭 내가 비정상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걸 어디에…… 아.’
나는 이걸 어디에 쓸지 계속 고민하다가, 좋은 방법을 떠올리고 리제를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 돈으로 하기는 좀 그래서 내버려뒀었는데, 내 돈으로 한다면 아무 문제 없겠지.
“리제.”
“응? 왜?”
“사기꾼 한 명 잡으러 갈래?”
‘흐으으으음…….’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길다란 트윈테일을 한 분홍머리 소녀는,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핫핑크색인 눈동자를 열심히 굴려가며 앞의 사람들을 훑었다.
남자 쪽은 괜찮다. 미남이고, 키도 크고, 몸도 좋고. 무엇보다 돈도 많다. 성격 역시 제법 훌륭해 보였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최상급이다.
여자들 쪽도 나쁘지 않았다. 둘다 한 외모 하는 수준이고, 둘 다 키는 좀 작지만 몸매는 압도적으로 훌륭하고. 특히 가슴이ㅡ
‘…….’
핫핑크색의 눈동자가 슬쩍 자기 발 밑을 향했다. 똑바로 서서 내려다보면 발 끝이 아니라 발목까지 보일법한, 굴곡이라고는 아주 약간 있는 것이 전부인 빈약한 가슴.
‘더러운 가슴 괴물들 같으니.’
투덜거리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저런 지방 덩어리가 뭐가 좋다고. 달고 다니면 괜히 허리 아프기나 하지. 그리고 땀 차서 닦기도 불편하다.
정신 승리를 끝낸 분홍머리의 소녀가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흠잡을 곳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렇기에 더 수상했다.
저만한 재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최고의 신용을 가진 거대한 상단들과 도시 내부에서 거래를 할 수 있을텐데, 뭐하러 도시 외곽까지 찾아와선 나 같은 떠돌이 행상인과 거래를 하려 든다는 말인가?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을 등쳐먹으며 살아온 사기꾼으로서의 직감이, 저 사람들은 무언가 꿍꿍이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저한테 물건을 사고 싶으시다고요?”
“맞아.”
“뭐, 저야 장사꾼이니 그러시다면 고맙죠. 대신 실례지만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그쪽이 보여준 돈이면, 저 같은 떠돌이 행상인이 아니라 상단이랑 직접 거래해도 될 것 같거든요. 굳이 절 찾아오신 이유가 뭐에요?”
“너만 파는 물건이 필요해서. 이만하면 무슨 뜻인지 알텐데.”
“저만 파는 물건이라니,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네요. 이런 떠돌이 행상인이 파는 물건이라면 거대한 상단은 당연히 팔고 있을걸요? 그러니까 그쪽 가서 물어보세요.”
소녀는 몸을 홱 돌렸다. 여기까지 왔다면, 저 사내가 자신을 멈춰세우리라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말이야 저렇게 했지만, 소녀가 정말로 남들이 파는 물건만 팔았다면 이렇게 오래 사기꾼이자 떠돌이 행상인 짓을 해먹지는 못했을 것이다. 당연히 숨기고 있는 것이 한두 개 쯤은 있었다.
“다 알고 왔으니까 내숭은 그만 떨지? 굳이 서로 시간낭비할 필요는 없잖아?”
발을 멈췄다.
소문을 어디서 듣고 찾아왔든, 저만하면 확실히 이쪽의 물건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급한 건 저쪽이니 이쯤에서 한번 더 튕겨줘도 상관 없으리라.
“내숭이라니요. 저도 엄연히 장사치인걸요. 팔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는 놓치지 않고 팔아야ㅡ”
“아니면, ‘페치’라고 불러줘야 거래할 마음이 좀 생기려나?”
저 검은 머리 사내가, 소녀의 수십 개나 되는 가명들 중 하나가 아니라 진짜 이름을 부르지만 않았어도 분명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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