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86)
r 186 – 페치 – 4
ㅡ콰콰쾅!
유적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중간쯤 내려갔을까, 뒤에서 들린 우레와도 같은 파열음에 고개를 돌렸다. 웬 바위로 이루어진 눈알 하나가 계단 시작지점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인간의 눈동자를 바위로 조각해서 거기에 다리 네 개를 달아놓은 듯한 모양새. 설정상 이 고대 유적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골렘들 중 하나였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을 도와줄 기특한 녀석이기도 하고.
‘일단은 도망쳐야겠지.’
나머지 구간을 통째로 건너뛰려면 일단 유적 안쪽으로 조금 진입해야 했기에, 재빨리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등 뒤에서 드드드득, 하고 돌과 돌끼리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골렘이 자신의 다리를 몸 안쪽으로 집어넣는 소리였다.
곧이어 계단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구형으로 변한 눈동자 골렘이 계단을 굴러서 내려오고 있다는 의미다.
등 뒤편에서 들리는 소리가 점차 커졌지만, 나는 몸을 숨길 수 있도록 배치된 틈새 몇 개를 지나치며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오고 나서야 몸을 숨겼다.
내가 틈새로 몸을 밀어넣음과 동시에 눈동자 골렘이 통로를 굴러갔다. 딱 1초만 늦었어도 다리가 깔렸거나 아니면 하반신이 짓이겨졌을 타이밍이었다.
통로 저편에서 콰앙! 하는 충돌음이 울려퍼지고, 거센 충격파가 통로를 휩쓸고 지나갔다. 틈새 밖으로 빠져나왔다. 놈은 다리를 바동거리며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중이었다.
역시 무식한 건 게임이랑 똑같았다.
그 뒤로도 별다를 것은 없었다. 데굴데굴 굴러서 쫓아오는 눈동자 골렘을 피해 달리다가 틈새에 숨고, 벽과 부딪힌 골렘이 뱅뱅 돌아대는 틈을 타서 달려가는 일의 반복이었다.
이 짓을 정확히 4번 반복하자, 드넓은 광장에 도착했다. 고대 유적의 중간 과정을 통째로 건너뛰고 바로 보스전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장소였다.
광장에는 무려 8개나 되는 길이 있었지만, 헤맬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됐다. 진짜 길 옆에는 횃불이 켜져 있어서 주의 깊게 관찰만 한다면 구분하기는 쉬우니까.
ㅡ콰아아앙!
등 뒤에서 눈동자 골렘이 굴러오는 마당에 주의 깊은 관찰을 할 수 있다면 말이다.
눈동자 골렘은 여태껏 그래왔듯이 광장 벽에 부딪힌 다음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는, 회전이 멈춘 틈을 노려 다리를 빼냈다.
커다란 홍채가 날 향했다. 끔뻑, 바위로 이루어진 눈꺼풀이 한 번 깜빡였다. 드디어 4발로 위풍당당하게 버티고 선 골렘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잡으려면 얼마든 잡을 수 있는 놈이긴 했다. 골렘답게 물리 공격에는 강하지만 마법이랑 신성 주문에는 쥐약이라서, 속성만 바꿔준다면 그냥 대충 패도 때려잡힌다.
유적을 건너뛰는 일에 써먹어야 하니 냅두는 것이다.
‘여기다.’
나는 막다른 길 하나를 골라잡고 들어가, 중간이 뚝 끊어져 있는 절벽 근처의 다리까지 다가갔다.
절벽과 절벽을 이어줬어야 할 다리는 무너진 지 오래였다. 그 사이로 까마득한 깊이의 고대 유적이 보였다. 꼼수를 쓰지 않는다면 저걸 하나하나 다 내려가야 한다.
꼼수를 쓰지 않는다면 그렇다.
통로 저편에서, 나를 따라온 눈동자 골렘이 다시 구를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절벽에 바짝 붙어서 날개 잃은 악몽을 양손으로 쥐었다.
ㅡ쿠르르릉…….
바위끼리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눈동자 골렘의 모습이 나타났다. 통로를 사실상 꽉 채우는 크기였다. 그래서 저걸 피하라고 옆에 틈새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굉장히 재미있는 사실 하나.
저 구르기도 튕겨내기가 된다.
다른 부위는 불가능하고 정확히 사람의 홍채에 해당하는 부위와 맞닿았을 때만 가능한 거라서 타이밍이 진짜 미친 듯이 지랄맞긴 하지만, 어쨌든 가능하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자리를 조금씩 옮기며 놈이 굴러오는 속도를 조절했다. 절벽 끄트머리에 다 왔을 때 홍채가 나를 바라보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안 깔리고 저걸 튕겨낼 수 있다.
눈동자 골렘의 속도를 몇 번 가속시켜주고, 다시 절벽 끄트머리에 섰다. 그 상태로 놈이 굴러오기를 기다렸다. 쾅쾅대는 소리가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지금.’
내가 의도한 대로 놈은 나한테 닿기 직전에 홍채를 드러냈다. 그 순간에 맞춰 검을 휘둘렀다. 날개 잃은 악몽의 칼날이 돌로 이루어진 커다란 홍채와 부딪혔다.
ㅡ콰드드드득!
눈동자 골렘의 몸이 급격히 옆으로 꺾였다. 90도로 직각 드리프트를 꺾은 골렘은, 곧장 통로 벽을 들이받았다. 콰아앙! 하며, 충격파가 터져나왔다.
그 충격파에 정통으로 휩쓸린 내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그리고는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온갖 구조물과 길, 다리들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쳤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낙하 공격을 사용하는 기술이다.
벽뚫기나 글리치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스킵에는 무조건 낙하 공격이 사용된다고 봐도 좋았다. 제작사 측에서 이렇게 하라며 의도해둔 루트는 빼고.
‘됐다.’
바로 앞을 횃볼이 스쳐지나갔다. 횃불이 스치듯 지나가면 각도를 제대로 맞춘거다. 이것보다 멀거나, 혹은 횃불에 닿는다면? 그냥 낙사하고 새로 도전해야지. 별 수 있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희생양이 될 잡몹의 모습이 보였다. 사실 잡몹이라기에도 좀 애매했다. 활을 든 채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는 중인, 내 키의 두배나 되는 거구의 골렘이니까 말이다.
어차피 보스전을 편하게 치르려면 잡아야 한다. 안 잡고 들어가면 얘가 활 쏘거든. 그거 좀 많이 거슬린다.
‘겸사겸사 처리하면 좋은 거지, 뭐.’
날개 잃은 악몽을 거꾸로 쥐고, 놈의 머리 위에 안착했다. 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은 반응조차 하지 못한 채 하늘에서 내려온 천벌에 의해 머리가 으깨졌다.
원래 점프로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거리였다. 그 자리에서 어설프게 점프로 뛰어내리려 했다간 아마 보스룸 어딘가에 처량하게 떨어져 죽겠지.
하지만, 절벽에 바싹 붙어서 눈동자 골렘의 구르기를 튕겨내고, 놈이 벽에 대가리를 박을 때 생기는 충격파로 튕겨나서 떨어지면 거리가 닿는다.
이게 고대 유적을 통째로 스킵하는 꼼수였다.
골렘의 어깨를 부수며 바닥으로 내려갔다. 칼을 지지대 삼아 몸을 반 바퀴 돌렸다. 날개 잃은 악몽이 머리부터 시작해 상반신 전체를 수직으로 쪼개버리며 추락 속도를 줄였다.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고작 몇 초만에 머리가 터져나가고 상반신이 수직으로 반토막나버린 골렘이 뒤로 쿵 소리를 내면서 넘어갔다. 곧 전신이 조각조각 무너져내렸다.
칼날에 묻은 돌조각을 털며 보스룸을 내려다보았다. 이 고대 유적의 보스인 ‘여섯 팔 골렘’이 거대한 광장을 어슬렁 어슬렁 돌아다니고 있었다.
인간의 상반신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지만, 하반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팔 두개가 대신 달렸고 날개뼈의 위치에 커다란 팔이 두 개 달린 모습. 그것 때문에 총 여섯 팔이다.
‘여기서 바로 뛰어내리…… 진 못하고.’
체력 스탯이 딱 5만 됐어도 낙댐 좀 입고 말 텐데, 1로는 안 된다. 나는 얌전히 난간 뒤의 길을 따라갔다. 어차피 여기서부터 보스룸까지는 금방이었다.
“이거만 챙기면 되겠네.”
여섯 팔 골렘의 시체 조각 사이에서 스크롤 하나를 집어들었다.
얘도 마법 스크롤이긴 한데, 고대의 스크롤처럼 미네르바가 환장해서 달려드는 물건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재밌어 보이는 걸 찾았구나, 하고 마는 정도.
‘고대 유적’에서 발견된 스크롤인데 왜 고대의 스크롤 판정이 아닌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주면 흥미를 보이긴 할 거다. 나는 집어든 스크롤을 안주머니에 주섬주섬 챙겨넣었다.
골렘의 시체가 돌이 풍화되듯 사라지고, 보스룸 중앙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그러자 발판 자체가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페치는 지금쯤 어떻게 됐으려나.’
리제한테 적당히 다루라고 말은 해놓았으니 일단 죽진 않았을 것이다.
단어 그대로 죽지만 않은 상태일 순 있겠다만, 내가 아는 리제는 그런 짓을 할 만큼 살벌한 성격은 아니었다. 물론 은빛 여명 기사단의 나머지 기사단장들도 포함이다.
마치 엘리베이터처럼 천장을 향해 수직으로 한참을 떠오르던 발판은, 어느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멈췄다. 발판에서 내려 바로 앞에 놓인 레버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벽처럼 보이던 출입구가 위로 들어올려졌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듯 움직임에 맞춰서 먼지가 이리저리 흩날렸다.
문이 완전히 들리기를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왔다. 익숙한 모습이 눈에 보였다. 리제와 닉스였다. 그 둘도 나를 발견했는지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아, 왔어? 델타?”
“헤헤, 오셨어요?”
리제가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고, 닉스가 소심한 미소를 지으며 마찬가지로 소심하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마주 흔들어주었다.
두 명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어딘가에서 굉장히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데, 델타 님!”
‘델타 님?’
무척이나 낯선 호칭에,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핑크빛 머리카락으로 트윈테일을 한 여자가, 툭 까놓고 말해서 페치가 나를 향해 황금히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알몸으로.
‘뭐야, 미친?’
나는 화들짝 놀라서 눈을 돌리려다가, 얼핏 희끄무리한 무언가가 보인 것 같았기에 페치를 다시 쳐다보았다.
자세히 확인하니 알몸은 아니었다. 그냥 평소대로 언더붑에 삼각팬티나 다름없는 길이의 타이즈인데, 뛰어오는 각도가 너무 절묘해서 아무것도 안 입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순간 리제가 옷을 홀딱 벗겨놓고 괴롭히던 중인가 싶었다. 몸의 절반쯤을 덮고 있던 길다란 코트가 사라지니, 새삼스레 저 의상의 노출도를 다시 보게 됐다.
‘놀래라.’
내가 놀란 가슴을 살짝 쓸어내리는 와중에, 바로 앞까지 뛰어온 페치가 머리를 조아리며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런데, 엉덩이가 날 향해 있었다.
“제발 절 마음껏 때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