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87)
r 187 – 페치 – 5
“어, 엉덩이뼈가 부서지도록 때리셔도 돼요! 비명도 참으라면 참고, 지르라면 지를게요! 그러니까 제발…….”
얇디 얇은 타이즈 한 장으로 감싸여 동그란 윤곽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엉덩이가 이쪽을 향한 채로 씰룩여대고 있었다. 나는 할 말을 잃고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잠시 엎드려 있던 페치는, 내가 엉덩이를 때려줄 기색이 전혀 없는 듯 하자 한층 더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호, 혹시 제가 아직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 건가요? 때리시기 좋게 벗을ㅡ”
“입어.”
“네, 넵!”
진짜로 타이즈를 벗어던지려 하길래, 엉덩이골이 반쯤 드러나기 시작한 즉시 입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페치는 호다닥 내 말을 따라 타이즈를 끌어올렸다.
사실 입으나 벗으나 면적의 차이는 거의 없는 옷이었다. 지금도 엉덩이 밑부분의 도톰한 살결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옷을 입었다는 것 자체가 핵심이다. 뭐라도 입기는 한 것과 아예 다 벗은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가끔은 뭐라도 입은 쪽이 더 어질어질한 상황도 펼쳐지긴 하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예외다.
‘어이가 없네.’
지금의 내 심정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압축한 문장이었다. 분명 리제한테 잘 맡기고 내려갔다고 생각했는데, 왜 사람이 마조히스트 암퇘지처럼 변해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대체 뭘 했길래? 하는 심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닿자, 닉스는 옆사람의 눈치를 살펴대며 가슴 앞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고, 아마도 그 옆사람에 해당될 리제는 내 눈을 슬쩍 피했다.
“리제. 여기서 뭐 했어. 차근차근 다 털어놔 봐.”
“내, 내가 뭘?”
뜨끔한 표정을 지은 리제가 애써 내 말을 부정해봤지만, 여기서 발뺌을 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단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있는 듯 머쓱한 얼굴로 다시 눈을 마주해왔다.
“뭐. 네 말이 맞아, 델타. 내 탓이긴 해.”
“대체 얘한테 뭘 하면 이런…… 부탁을 하는데?”
무심코 ‘이런 리제 너나 할 법한 부탁을 하는데?’ 라고 말하려다 급히 멈췄다. 리제랑은 진짜로 저런 짓을 벌였던 적이 있다보니 하마터면 말이 헛나올 뻔 했다.
덕분에 단어 사이에 공백이 생겼지만, 닉스는 애초에 신경을 안 쓰는 기색이었고 리제는 변명을 늘어놓느라 신경을 못 쓰는 기색이었다. 다행인 일이었다.
“아니, 아니. 나도 뭐 크게 저지른 건 없다? 네가 부탁까지 하고 갔는데 설마 그랬겠어?”
“작게 저지른 건 있다는 뜻이네.”
“그건 뭐…….”
리제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왔다. 양심상 부정은 못하는 듯 했다. 그 뒤에서 닉스가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었다.
“…….”
내가 엉덩이를 때려줄 기미도 없고, 이제는 자기를 방치해둔 채 대화를 시작할 기색이자 페치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핫핑크색의 동공이 슬금슬금 나를 훑었다.
“저, 저기. 델타님. 제 엉덩이는ㅡ”
“야, 조용히 안 해? 어딜 경우도 없이 스팽킹 플레이를 낼름하려 들어? 그건 나도 몇 번 못해봤거든?”
“히, 히익! 죄송합니다!”
페치는 다시 땅에 머리를 박았다. 하지만 날 향해 씰룩이는 엉덩이는 그대로였다.
처음 봤을 때는 너무 당황해서 눈에 안 들어왔는데, 지금보니 등이 제법 구부정했다. 꼭 무릎이 배를 누르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 같은 자세였다.
“스팽킹 플레이는 또 왜 튀어나온 건데?”
“저 말대로 한다고 쳐도, 진짜로 엉덩이뼈가 다 부서지도록 때리지는 않을 거 아냐? 그러면 스팽킹이지. 너한테 맞아본 내가 장담하는데, 그거 은근 기분 좋아. 살짝 가버릴 뻔 했다니까?”
“……됐다. 내가 말을 말자. 그냥 뭘 했는지나 설명해줘.”
어영부영 주제를 돌렸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페치를 때릴 생각도 없지만 엉덩이뼈가 부서지도록 때릴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리고 리제와 섹드립으로 말싸움을 해서 이길 자신도 없다.
여기서 대화를 이어가봐야 나만 손해였다.
“네가 말했던대로 여기서 못 나가게 막고, 막는 동안에 적당히 교육이나 좀 해주려고 했지. 아무리 전부 다 델타 네 의도라지만 결국 우리한테 사기를 친 건 맞으니까.”
“거기까진 이해했어. 그런데?”
“혹시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되잖아. 그래서 적당히 놀아주다가 포션 던져줘서 먹으라고 하고, 포션 다 먹으면 다시 적당히 놀다가 포션 던줘져서 먹으라고 하고 그랬지 뭐.”
“포션? 내가 얘한테 샀던 거?”
“응. 어차피 쓸 데도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며.”
피 묻은 검을 사용할 때야 체력 포션으로 HP를 보충해야 할 순간이 몇 번 있긴 했지만, 흡혈 충동까지 얻은 지금은 정말로 아무데도 쓸 곳이 없었다.
그래서 대충 써도 된다고 말했는데.
‘……잠깐만.’
왜인지 페치가 저런 모습인 이유를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줬는데?”
“어디보자. 중간부터는 안 세봐서 모르겠는데…… 한 스무병 쯤? 아니다, 스무병은 넘나?”
“정확히 열다섯 병이에요. 헤헤. 방금 세 봤거든요.”
닉스가 한쪽 구석을 굴러다니는 유리병들을 가리켰다.
포션을 쓴 것 자체는 상관 없었다. 내 돈 주고 산 것들이긴 하지만, 어차피 나한테는 있어봤자 필요도 없으니까. 그냥 이벤트 조건 충족시키려고 샀던 물건들이기도 하고..
“힘조절은 제대로 하고 때린 거 맞지?”
“내가 설마 그 정도도 못할까봐?”
“그러면, 상처도 없는데 포션을 저만큼이나 줬다고?”
상급 포션이라고 몇 방울만으로 모든 상처가 치유되고 그러지는 않았다. 포션은 의외로 규격이 아주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다. 제국과 성국 양쪽 모두가 그랬다.
내가 페치에게서 구매한 상급 포션의 용량은 150ml. 일반적으로는 2~3번에 나눠서 음용하는 양이다. 그런데 그걸 15병이나 줬다고?
단순 계산으로도 2L가 훨씬 넘는 액체를 들이킨 셈이 되니, 배가 안 터진 게 용할 지경이었다.
“혹시 상처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리제가 씨익 웃었다. 전부 다 알고 저지른 행동이라는 티가 확 나는 미소였다.
저만한 실력과 위치의 기사단장이 페치 따위에게 손속을 두지 못할 리가 없고, 상처가 없는 상황에서 들이키는 포션은 그저 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를 리도 없다.
전부 다 내가 의도한 사항이지만 어쨌든 사기를 치려 했다는 게 기분은 나쁘니 갚아줘야겠는데, 실질적으로 당한 건 없어서 무작정 때리기도 뭐하니 저런 방식으로 괴롭힌 거겠지.
무작정 먹인다 해도 어쨌든 포션은 포션. 뭔가 부작용이 터진다 해도 포션이 곧장 치료해줄테니까 말이다. 잘도 저런 생각을 떠올렸구나 싶었다.
‘왜 저러고 있는지 이제 알겠네.’
나는 아직도 엉덩이를 이쪽으로 내민 채, 허리를 앞으로 구부린 페치를 쳐다보았다.
왜 저런 애매하게 구부정한 자세인가 했더니, 배에 어마어마한 양의 포션이 찰랑이고 있어서 배가 눌리지 않게 하려고 저랬던 것이다.
배에 들어찬 액체를 없애는 가장 빠른 방법이 상처를 입는 것일테니, 자길 때려달라고 애원했던 이유가 그래서인 듯 했다. 이걸로 대부분의 의문은 해결됐다.
“왜 하필 엉덩이야?”
“글쎄? 그건 엎드린 쟤한테 물어봐야지.”
딱 하나만 빼고.
상처를 입어서 포션을 소모시킬 생각이라면 그냥 칼에 찔려도 될텐데, 왜 하필 엉덩이를 때려달라고 저러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내 질문에 리제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왜 자기한테 물어보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야, 들었지? 다른 부위 다 놔두고 왜 하필 엉덩이냐는데?”
푸른 눈동자가 바닥을 향했다. 주제가 자신 쪽으로 넘어가자, 페치가 쭈뼛거리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하반신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그대로였다.
손이 옆구리 근처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옆구리가 당기는 모양이었다. 날 보자마자 냅다 달려왔으니 그럴만도 했다.
“그, 칼에 찔리거나 베이는 건 너무 아파서…… 그래도 엉덩이라면 어떻게든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요…….”
생각보다 더 황당한 이유였다. 그냥 아픈 게 싫어서라니, 역시 사기꾼다운 졸렬함이었다.
“나한테는 엉덩이뼈가 부러질 때까지 때려도 괜찮다며. 칼에 찔리는 건 아파서 안 괜찮은데 엉덩이뼈 부러지는 건 괜찮고?”
“그, 건…… 엉덩이뼈는 부서져도 눈에 안보이니까, 요?”
“잘도 그러겠다.”
“칼 그거 맞아도 별로 안 아픈데. 많이 맞아봤거든.”
엉덩이뼈는 부서져도 눈에 안보이니까 괜찮다는 말에 황당해하는 내 옆에서, 리제가 농담 아닌 농담을 던졌다. 농담처럼 들리는 말이긴 하지만 리제라면 경험담일 확률이 더 높을 것 같았다.
나는 닉스에게 눈짓을 했다. 칼에 찔리는 게 무서워서 저러는 거라면, 훨씬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 눈짓의 의미를 알아차린 닉스가 손에 흑염을 일으켜 페치에게 쏟아부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들리고, 페치가 흑염 속에서 뒹굴며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몸에 옮겨붙은 흑염은 채 3초도 지나지 않아 꺼졌다. 비명도 같이 뚝 멎었다.
“됐어요, 헤헤. 정확히 포션 10병 분량 정도만 태웠으니 괜찮을거예요.”
잘했다는 뜻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닉스는 내 손목을 잡고 역으로 더 격렬하게 자기 머리를 문질러댔다.
그걸 본 리제의 눈이 샐쭉해졌다. 척 보기에도 왜 자기는 안 해주냐는 항의의 뜻이 담긴 시선이었기에, 반대쪽 손을 얹었다. 표정이 단숨에 흐물흐물하게 변했다.
“으으으…… 아파…….”
두 사람의 얼굴 전체를 열심히 어루만져주고 있으려니, 페치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포션 덕분에, 전신이 바짝 태워졌음에도 몸은 실오라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어……?”
그래. 실오라기 하나 없이 깨끗했다.
“꺄아아악! 내 옷! 내 옷이!”
무심코 자기 몸을 내려다 본 페치는, 타이즈가 흑염에 죄다 타버려서 알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새된 비명을 내지르며 허둥지둥 몸을 가렸다.
한 팔로는 가슴 끝의 첨단을 가리고, 다른 손을 다리 사이로 집어넣었다. 그래도 가슴이 한 팔로 가려지는 크기라 다행이지 않나 싶었다. 리제랑 닉스는 저러기가 절대로 불가능할텐데 말이다.
‘어차피 입으나 벗나 사실상 똑같은 거 아닌가?’
사실 면적만 따져보면 입든 벗든 거의 그대로인 옷차림이었지만, 저런 상식 개변을 한두번 본 것도 아니라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일단 입고 있으면 유두랑 음부는 가려주긴 하니까.
“히이잉…….”
내가 옷의 존재 이유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몸을 베베 꼬고 어기적대며 뒤로 한참을 걸어간 페치가 코트를 집어들어 재빨리 걸쳤다.
“기, 기분이 이상해…….”
어쩌다보니 알몸에 코트 하나만 덜렁 걸친 변태가 되자, 페치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노출도 자체만 따지자면 코트 앞섬을 풀어헤치고 다녔을 떄가 더 심하다는 걸 알고 있을까.
“다 입었으면 이쪽으로 와 봐.”
내 입장에서는 지금의 옷차림이 더 나았기에 페치를 재촉했다. 허둥지둥 근처까지 다가왔다.
“페치.”
“네, 네. 델타님.”
저 델타님이라는 호칭도 지적할까 했지만, 그냥 내버려두기로 마음먹었다. 저러는 쪽이 상하관계를 더 확실하게 자각할 수 있을테고.
“이쯤 되면, 내가 널 일부러 살려뒀다는 것 쯤은 알겠지?”
“네, 네. 알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페치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사기꾼답게 눈치 하나는 일류였다.
“그러면, 널 살려둔 이유가 뭔지도 알고?”
“……네. 시킬 게 있으셔서 그런 거죠?”
“맞아.”
분홍생 동공이 잠시 파르르 떨렸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알겠어요.”
“그래, 네가 구해올 게ㅡ”
“몸을 팔 생각은 죽어도 없고, 공짜로 줄 생각은 더 없었지만…… 첫 경험이 이런 미남이라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죠.”
“뭘 팔아?”
“저 같은 걸 살려두신 이유는 그거밖에ㅡ 히익?!”
자기 혼자 뭔가를 거하게 착각한 채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던 페치는, 도끼눈을 하고 단검을 만지작거리는 리제의 모습에 입을 다물고 벌벌 떨었다.
“그런 이상한 부탁 아니니까 혼자서 착각하지 말고.”
“……히끅, 죄송합니다. 그러면 뭘 원하시는데요……?”
“그냥 물건 하나만 구해다주면 돼.”
원래는 페치 사이드 퀘스트의 종막을 알리는 최종 보상이다. 그리고 그걸 얻으려면 통수를 4번 정도 당해야 하고.
게임에서도 페치의 사이드 퀘스트 완료 보상으로만 구할 수 있는 물건인지라, 이 루트를 제외하고 어떻게 얻는지는 나도 모른다.
“어떤 물건이요?”
핑크색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목숨을 살려주는 대가로 가져와야 할 물건이라니, 얼마나 커다란 걸 요구하려는 건가 싶어서 저러는 것이다.
“황금 열쇠.”
내 말을 들은 페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