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88)
r 188 – 전조
[능력치] [레벨] 71(+6) [체력] 1 [마나] 10 [신앙] 4 [지구력] 5 [숙련] 1 [힘] 25 [마력] 10 [신성력] 10 [내구] 7‘어째 생각보다 좀 많이 올랐다?’
한동안 레벨에는 신경을 끄고 살았는데, 지금 스탯창을 확인해보니 레벨이 무려 6이나 올라가 있었다.
60이 이후부터는 아무리 후반부 필드몹이나 보스라고 해도 그거 한 마리 잡는다고 레벨이 오르진 않는 구간이라는 걸 감안해보면, 상당히 높은 증가폭이었다.
‘……이 정도로 올라가는 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
어째 잡은 필드몹이나 보스 숫자에 비해서 레벨이 너무 높이 올라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설령 나라고 한들 모든 몬스터의 처치 경험치까지 외우고 다니진 않는다. 그건 게임에 도움이 되는 정보가 아니라 외워봤자 쓸데없는 정보에 불과하니까.
스피드런을 할 때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스피드런을 위해 돌파해야 하는 구간 내 한정이다. 그걸로 경험치를 역산해보기엔 이미 멀리 와도 너무 멀리 왔다.
메인 스토리는 의미를 상실해버린 지 오래고, 지역을 차근차근 밀면서 진행하는 게 아니라 순간이동으로 필요한 장소만 콕콕 집어서 장비와 룬을 습득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뭐,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레벨이 덜 올라간 것도 아니고 더 올라갔다면 그건 나한테 좋은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끙끙대며 이유를 고민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그런 고민을 할 바에는 스탯 뭐 찍을지 고민하는 게 훨씬 더 건설적이니까.’
스탯을 찍을 때마다 했던 고민이긴 하지만, 지금은 한층 더 신중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성국에서 벌어졌던 일 때문이었다.
정말로 성국의 신이 나한테 힘을 빌려주었다는 것.
질문에 대답을 해준 목소리가 태양인지 달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핵심은 성국의 신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단 사실이고, 힘이든 뭐든 내려주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성직자 빌드로 갈아타야 하나 싶긴 한데.’
만약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 보스전이나 베히모스 보스전에서 사용했던 힘을 다른 상황에서도 비슷하게 끌어낼 수 있다면, 앞으로의 여정이 굉장히 편해질 것이다.
신성 계열의 공격은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제값을 하니까.
나는 마지막으로 고민을 하다가, 결심을 굳히고 능력치 투자를 끝냈다.
[능력치] [레벨] 71 [체력] 1 [마나] 10 [신앙] 10(+6) [지구력] 5 [숙련] 1‘……신앙 더 찍어서 신앙심이 올라가면 더 많이 도와주지 않을까?’
이런 불순한 생각과 함께 말이다.
스탯을 확정지은 뒤, 능력 확인 구슬에서 손을 떼고 성 밖으로 나왔다. 칠흑 성야 기사단이 분주하게 자재를 들어 창고가 지어질 장소로 나르고 있었다.
굵기가 내 허벅지보다 훨씬 굵고, 길이도 내 키의 서너 배는 되어보이는 통나무를 두 개씩 들고 움직이는 바니걸과 역바니들을 보고 있자니 살짝 기분이 묘했다.
‘왜 굳이 저런 차림으로 일하는 거지.’
더 편한 옷 입어도 되지 않나. 이 세상에 츄리닝 계열의 옷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 단장님.”
토끼귀를 쫑긋거리고 토끼꼬리와 엉덩이를 씰룩이며 자재를 나르던 단원들이 날 보며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목례에 맞춰 토끼귀도 같이 90도로 숙여졌다.
저 토끼귀는 분명 머리띠인데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물어봐도 바니걸이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어야 하니까요, 라는 대답밖에는 안 돌아왔다.
“공사는 잘돼 가?”
“네. 라크시아 부단장님이 열심히 지휘하고 계십니다. 아마 이번주 내로 증축은 완료될 듯싶은데요.”
여기서 말하는 라크시아도 역바니 차림이다. 내가 페치를 찾으러 갔을 때부터 증축을 지휘하고 있었다나.
‘페치 걔는 지금쯤 뭐 하려나 모르겠네. 알아서 잘 찾아다니고 있겠지?’
황금 열쇠를 찾아오라는 명령에 페치는 처음엔 뭔지도 모르는 걸 어떻게 찾아오냐고 항변했다. 그랬었지만, 내가 지그시 쳐다보자 얼마 못 가서 꼬리를 내렸다.
거기서 내 말을 거절해봐야 끝이 별로 좋지 않을 거란 사실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내가 말했던 황금 열쇠란, 딱 1회에 한해서 자물쇠의 종류에 상관 없이 그걸 해제할 수 있는 열쇠였다. 인간이 만든 것이든, 고대 유적이든, 마물이 만든 것이든 전부 다.
게임에서도 실제로 그런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어떤 퍼즐이나 잠금 장치도, 황금 열쇠를 가지고 있다면 그걸 소모해서 스킵하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일회용이라는 설명답게 해제한 다음에는 부서지고.
‘없으면 지장이 생기는 물건은 아니지만, 반대로 있으면 무조건 좋지.’
기한은 넉넉하게 줬다. 날개 잃은 악몽처럼 진행에 반드시 필요한 물건은 아닌만큼 빽빽하게 쪼아댈 필요는 없었으니까.
“아, 그리고 라크시아 부단장님이 단장님께 전달해달라고 말씀하신 사항인데, 편지가 제대로 발송됐답니다.”
“그래? 조만간 반응이 오겠네.”
여기서 말하는 ‘편지’란 총 2가지였다.
하나는 한참 전에 아라크나이네라 보스전에서 얻어놓고선 여태껏 방치해뒀던 반지를 프라트로이드 가문으로 보낸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고대 유적에서 얻었던 스크롤을 미네르바에게 보낸 것이다.
‘그냥 적당히 좀 보다가 말겠지? 지금 당장은 크리스탈 스크롤 연구하기도 바쁠테니까.’
미네르바의 반응이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적어도 크리스탈 스크롤을 받았을 때처럼 광기어린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을 거다.
크리스탈 스크롤같은 고대의 스크롤에 비하면 명백히 한 급수 떨어지는 물건이기도 하고.
“그러면, 저희는 계속 가보겠습니다.”
바니걸들이 엉덩이를 씰룩이며 떠나갔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나는 이제 뭘 할지를 고민하다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룬이나 완성시켜야겠다.’
최종 빌드까지는 아직 룬 하나가 더 남았다. 그리고, 예전부터 얻어야지 얻어야지만 하고 있다가 아직까지도 방치해뒀던 전투 피로 디버프 무시 룬도 얻어둬야 하고.
‘일단은…….’
룬 해제 마법부터 얻어야겠지.
나는 서랍에 넣어둔 미네르바의 반지를 떠올리며 다시 성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처음으로 그걸 써보게 될 듯했다.
황궁 복도.
리제는 카이킬리아를 알현해 짤막한 보고를 끝마친 후, 다시 은빛 여명 기사단의 숙소로 복귀하고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은빛 갑옷이 철걱철걱 소리를 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위엄넘치는 걸음걸이였으나, 그 속내는 전혀 달랐다.
‘다음에는 아이리스랑 같이 찾아가야지. 아니다, 에리카랑 가는 게 더 나으려나?’
이 다음에 델타를 찾아갈 때, 아이리스와 에리카 중에서 누굴 먼저 데려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그 목적이 무엇일지는 뻔했다.
아이리스가 델타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면서 고백해 온 직후에는 제법 당황했지만, 얼마 안 가서 납득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아이리스를 역으로 위로해줬을 정도였다.
리제는 자기 남자의 여자 관계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한 성격이었으므로.
사실 다른 여자로 갈아타려 한다거나 그랬다면 리제도 결사반대를 외쳤을 테지만, 적어도 리제가 아는 델타는 그럴 남자가 아니었다.
어차피 명분만 있다면 일부다처가 얼마든지 가능한 세상이기도 하고 말이다. 비록 그 명분 만들기가 더럽게 어렵긴 해도, 델타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리제는 원래부터 델타를 독점할 생각 따윈 없었다.
‘……델타는 다 같이 하는 것도 좋아하려나 모르겠네. 혼자서는 살짝 감당하기 버겁긴 하던데.’
문득, 리제의 머릿속에 자신을 비롯한 은빛 여명 기사단의 기사단장 4명이 델타와 한꺼번에 몸을 섞는 망상이 떠올랐다.
다른 기사단장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리제한테만은 별로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다들 이제는 친구를 넘어 가족이나 다름없는 관계다. 그러니 같은 남자를 공유하는 것은 관계를 한층 더 돈독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아이리스한테는 한번 권유해보고, 에리카는 알아서 넘어올 거고, 클라우디아는…… 음…….’
에리카와 클라우디아가 들었다면 기겁을 하거나 헛웃음을 내뱉을만한 망상을 아무렇지 않게 끝낸 리제는, 제법 괜찮을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솔직히 혼자서 델타를 감당하긴 좀 버거웠는데, 넷이서 동시에 하면 그럭저럭 버틸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일단 에리카부터 건드려볼까.’
본인은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사실이지만, 누가 자매 아니랄까봐 리제와 에리카는 꽤 많은 측면에서 닮아 있었다.
실질적으로 다른 것은 외모와 성격 뿐일 정도였다. 그 2가지가 너무 큰 차이를 보여서 그렇지.
그리고 자매의 닮은꼴이란 남자 취향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즉, 언니인 리제가 델타에게 푹 빠졌다면 동생인 에리카 역시 아주 조금의 계기만 있더라도 같은 남자에게 빠질 확률이 아주아주 높다는 것이다.
보통은 파국으로 치달을 관계가 될 거다. 하지만 기꺼이 같은 남자를 공유할 생각이 있는 리제로서는 오히려 더 좋은 일이었다. 델타 역시 절대로 거부하진 않을 테고.
‘자매랑 동시에 하다니, 얼마나 좋겠어?’
리제는 자기 동생을 어떻게 구워삶을지를 생각하며 열심히 발걸음을 옮겼다.
“……뭐야, 너?”
그러다가, 복도 저 편에서 마주 걸어오는 황금색 인영을 마주쳤다.
“니가 이 시간에 왜 여기 있어?”
금빛 황혼 기사단의 기사단장이었다.
그 황금빛 갑옷을 보자마자 들떴던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저 인간, 요즘 들어서 들려오는 소문들의 질이 점점 더 나빠지는 중이었다.
어디까지나 소문이긴 하지만, 이제는 조금만 거슬려도 자기 부하들을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면서 화풀이를 해댄다고까지 했다.
예전엔 저런 짓까지 해대지는 않았던 걸 돌이켜보면, 은빛 여명 기사단은 제자리를 찾았는데 자기네 기사단은 절반이나 뜯겨나갔다는 사실이 성격을 더 개차반으로 만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원래부터 없던 것보다, 가졌다가 뺏겼을 때 느끼는 공허감과 상실감이 더 크기 마련이니까.
“너, 그 놈을 만나고 왔다 했나.”
리제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황금빛 갑옷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투구 안에서 울리며 틈새 사이로 음산하게 새어나왔다.
“그 놈? 야, 말 조심해. 니가 뭔데 델타를 그따위로 불러? 그때 대련에서 덜 맞았어?”
리제가 왈칵 짜증을 냈지만, 황금빛 갑옷은 그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투구 너머의 좁은 틈으로 리제를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의 단검을 만지작거렸다. 저런 행동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무례다. 정식으로 항의를 하기에도 충분한 명분이 되어줄 만큼.
물론 어디까지나 손을 가져가기만 했다. 여기는 황궁이고, 감정에 휘둘려서 제멋대로 행동해도 되는 장소가 아니다. 그러니, 단검에 손을 얹은 건 그저 경고 차원이었다.
“…….”
이런 반응에도 황금빛 갑옷은 아랑곳 않은 채 묵묵히 리제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어깨를 퍽 치고 지나갔다. 갑옷과 갑옷이 부딪히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리제가 황당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황금빛 갑옷은 아무렇지도 않게 절걱절걱 하는 쇳소리를 내며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저게 기어코 미쳤나?”
황금색이 복도 모퉁이를 돌아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본 리제는 투덜거리다가 몸을 돌렸다. 정상인이 미친놈을 상대하면 정상인 쪽만 손해라더니 딱 그 꼴이었다.
숙소로 돌아가서 금빛 황혼 기사단에 정식으로 항의하든가 해야지.
ㅡ팍!
“또 뭐야?”
갑자기 자기 갑옷에서 들린 파열음에 리제가 짜증스레 고개를 내렸다. 방금 황금색 갑옷과 부딪혔던 왼쪽 어깨 부분이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망가진 자리를 조심스레 쓰다듬는 리제의 얼굴이 점차 굳어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