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89)
r 189 – 최종 빌드
보스의 목에 찔러넣은 검을 옆으로 홱 꺾었다.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목이 홱 비틀리며 흡혈 충동이 발동해 HP를 채워주었다.
날개 잃은 악몽을 뽑았다. 보스의 시체가 쿵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얘도 팔레트 스왑인 개체라서 별 감흥은 없었다. 본체는 굳이 안 잡아도 되는 놈이라서 그냥 걸렀고.
내 말대로 저만치에서 보스전을 얌전히 구경중이던 닉스가 도도도 달려왔다.
“키히힛, 그걸로 끝이야?”
“그렇게 되겠지. 이것만 습득하면 돼. 그러면 내가 말했던 건 끝나니까.”
닉스가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건네주었다. 그걸 받아 오른손에 쥐었다.
흑마법은 마법 지팡이나 신성 촉매처럼 따로 매개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맨손으로 사용하는 것이니, 용도는 하나뿐이었다.
룬 해제 마법.
‘대접받는 내가 다 민망해질 정도였지.’
미네르바가 준 반지를 끼고 근처 도시의 마법사들을 찾아가니, 교황의 브로치를 착용하고 성기사들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 돌아왔다.
어떻게든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이었다. 게임에서 싸가지 없기로 유명하던 그 마법사 NPC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공방을 통째로 뽑아다가 바칠 기세였기에, 지팡이 하나와 룬 해제 마법만을 받은 뒤 냅다 도망쳐서 두 번째로 향한 장소가 여기였다.
닼라 모드 근접 캐릭터의 최종 빌드를 위한 룬 던전. 속칭 ‘생명력 전환’ 룬을 얻을 수 있는 곳.
전투 피로의 디버프를 무시할 수 있도록 해주는 룬은 첫 번째로 들러서 미리 얻어뒀다. 계획을 한참 전에 세워두고 지금까지 미뤄두었던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만큼 간단했다.
‘여기까지 오는 건 닉스가 다 했지만.’
순간이동이 없었다면 왔다갔다에만 최소 몇 달씩 잡아먹지 않았을까. 새삼 닉스나 미네르바, 교황 자매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키히힛, 왜?”
시선을 느꼈는지, 닉스가 음침하게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응? 아니. 수고했다고. 순간이동 쓰느라.”
“그러면 보상은?”
“보상? 어떤 거?”
“나는 딱 하나면 충분한데. 키히힛.”
음침한 웃음과 함께, 가녀린 손가락이 내 오른손을 톡톡 건드렸다.
지팡이를 바꿔잡고 오른손을 들어 머리에 얹었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자 닉스는 고롱거리며 나한테 달라붙어왔다.
반말 닉스든 존댓말 닉스든, 둘 다 쓰다듬는 내 쪽이 신기해 할 정도로 쓰다듬어지는 것을 좋아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성격이 된 건지는 불명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쓰다듬어주다 손을 떼고, 룬 비석 앞으로 다가가 지팡이를 들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지식대로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끄트머리가 푸른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손등에 새겨진 문신도 그에 공명하듯 빛났다. 이대로 마나 증진 룬을 제거하려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잠시 동작을 멈췄다.
‘……그러고보니, 룬을 해제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게임에서야 따로 룬을 보관하는 UI가 있다지만, 여기는 아니다.
애초에 이런 마법이나 특정한 장치가 요구되는 것도 룬을 해제할 때 뿐이고, 룬을 장착하는 것은 그냥 ESC를 누르면 나오는 인벤토리 창에서 간편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룬을 해제하면 어떻게 되나 싶었다. 내가 여기 빙의된 이후에 본 UI라고는 능력 확인 구슬로 올라오는 스탯창이 전부였으니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어차피 더 이상 필요하지도 않고, 설정상 룬은 사용자가 없어지면 세계 어딘가에서 곧장 다시 나타난다. 설령 룬이 사라진다고 해도 룬 던전이 새로 생겨날 것이다.
다시 손등에 집중했다. 문신은 여전히 빛을 발하는 중이었다. 문신으로 시선을 옮기자, 머릿속에 각 문신마다 어떤 종류의 룬인지가 떠올랐다.
망설임 없이 ‘마나 증진’ 룬을 해제했다. 지금부터는 딱히 필요가 없었다.
검은색 문신이 손등으로 흡수되듯 사라졌다. 마법이 끝났다는 걸 확인한 닉스가 손을 내밀었다. 지팡이를 다시 닉스에게 맡겼다.
길다란 나무막대가 가슴 사이에 끼워졌다.
“…….”
정확히는, 그냥 품에 끌어안았는데 가슴이 너무 큰 데다 옷차림이 옷차림인지라 저절로 그 사이에 들어가버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닉스는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전혀 모른다는 듯 평소처럼 음침한 웃음을 흘려대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일부러 저런 건 아니겠지.’
만약 리제나 교황 자매들이 저런 행동을 했다면 그건 100% 고의다. 하지만, 닉스라면 정말 모르고 저랬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닉스가 그 셋처럼 나를 작정하고 유혹하는 모습은 잘 상상이 안 갔으니까. 설령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한들, 음란하다거나 야하다는 생각보단 귀엽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 같았다.
아마도.
“왜? 히힛.”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턱을 몇 번 간질여주고 비석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서 정신을 집중해, 몸 전체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한 힘을 왼손 손등으로 집중시켰다.
손등에 저릿한 감각이 전해지고, 그 고통이 사라졌을 때 쯤 눈을 떴다. 룬이 사라지면서 뭉텅 비어버렸던 자리는 새로운 문신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걸로 진짜 끝이다.’
기어코 최종 빌드를 완성시켰다고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덜 걸렸다. 대륙 전체를 돌아다니려면 최소 몇 년은 잡아야 할 줄 알았는데. 닉스와 미네르바의 도움이, 특히 닉스의 도움이 컸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얻은 룬의 이름은 ‘생명력 전환’이었다. 효과는 흑마법의 소모 자원을 HP와 마나가 아니라 순수 HP로 바꿔주는 것.
흑마법은 원래 마나와 더불어 소량의 HP를 같이 소모한다. 하지만, 이 룬은 흑마법을 마나 소모 없이 HP로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룬이었다.
대신 소모되는 HP가 고정값이 아니라 체력 비례로 바뀐다. 그래서 체력 스탯이 조금만 높아져도 오히려 포션 값이 더 들게 되니 일반적으로는 쓰이지 않는 룬이었다.
‘어디까지나 체력 스탯이 올라갔을 때 한정이지.’
HP를 퍼센트로 소모한다는 말인 즉, 체력 스탯이 낮으면 낮을수록 효율이 높아진다는 뜻이 된다. 하물며 지금의 나처럼 체력 스탯이 1밖에 안 될 경우에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생명력 전환 룬으로 변경되는 HP 소모값은 최소 7%에서부터 최대 30%까지 굉장히 다양하지만, 체력 스탯 1짜리 캐릭터 기준으로는 별 거 아니었다.
최대 체력이 고작 100에 불과하니까.
거기서 30%가 날아가봐야 30이니, 설령 소모값이 제일 높은 흑마법을 쓴다 하더라도 흡혈 충동의 HP 50 회복으로 충분히 메꾸고도 남는다.
이것이 닼라 모드 근접 캐릭터의 최종 빌드였다. 이제 여기서 흡혈 충동을 사용할 수 없는 보스전의 상대법을 마련해놓으면 된다.
“이제 진짜로 끝?”
할 일을 끝낸 룬 비석이 와르르 바스라졌다. 가슴 사이에 지팡이를 끼운 채 나를 쳐다보고 있던 닉스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끝. 이제 돌아가야지.”
“키히힛. 알았어.”
여기서 룬의 성능을 시험해보고픈 마음은 없었다. 어차피 앞으로 지겹도록 하게 될 텐데 뭐하러.
닉스는 늘 하던 대로 순간이동을 사용했고, 곧장 성 꼭대기에 있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여기로 순간이동을 하도 많이 사용한지라 이런 정밀한 좌표까지 지정할 수 있게 됐다나.
“어?”
“아.”
우리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과 마주쳤다.
라나였다.
그것도 내 침대에서 혼자 허리를 흔들고 있는.
침대에 누워 혼자서 허리를 앞뒤로 흔들고 있던 라나는, 칠흑색 빛무리와 함께 우리 둘이 나타나자 얼굴이 새파래졌다. 손가락이 이불을 찢어져라 움켜쥐고, 입술이 앙 다물렸다.
처음에는 저런 이상한 광경을 들켜서인 줄 알았는데, 표정이 점점 심각해지는 걸 보고 닉스가 그 원인이라는 사실을 한 발 늦게 깨달았다.
라나를 본 닉스는 냅다 순간이동으로 사라졌다. 그러자마자 파리해졌던 라나의 안색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여기 오자마자 다시 도망치게 만들어서 살짝 미안했다.
나중에 더 격렬하게 쓰다듬어줘야 할 듯 했다.
“좋은 저녁입니다. 델타 님.”
그 짧은 순간에 감정을 가라앉혔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상반신을 일으킨 라나가 예의 그 무뚝뚝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좋은 저녁이고 자시고, 내 침대에는 왜 누워 있는데? 방금 전에 그건 또 뭐고?”
“제 주인님을 위해 메이드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네 주인님이면, 아우로라?”
“그렇습니다.”
끄덕, 라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렇게 말하니까 더 이상했다. 방금의 행동이 아우로라랑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런 내 표정을 읽은 듯, 라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하고선 덤덤히 말을 이었다.
“언젠가 제 주인님께서 이곳에 누우실 가능성이 있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때 허리를 삐끗하시면 안 되니, 미리 침대의 매트리스 상태를 시험해보고 있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누워계셔야 할 텐데, 딱딱한 곳에서 그러신다면 또 허리가 나가실 테니까요.”
“…….”
대체 어디부터 지적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여기서 아우로라랑 몸을 섞을 걸 대비해 매트리스 상태를 미리 시험해봤다 이 소리다.
‘저게 맞나?’
“어떻게 시험했는지 궁금하시다면,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시 침대에 누운 라나가 무릎을 굽히면서 허벅지를 옆구리까지 끌어당겼다. 그 상태로 허벅지를 활짝 벌려서는, 허리를ㅡ
“거기까지.”
“예.”
라나는 내가 그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툭툭, 흰 장갑을 낀 손이 구겨진 메이드복을 바로잡았다. 표정은 여전히 무뚝뚝했다.
“……그것도 영주님한테 배웠어?”
“독학했습니다. 주인님께서는 제게 이런 농담을 가르쳐 줄 처지가 아니신지라. 모두 델타 님 때문입니다.”
“나? 내가 뭐?”
어째 교황들한테서 들어본 듯한 말인데.
“주인님께서 그때의 쾌락을 아직도 잊지 못하셨는지, 매일 밤마다 손가락을 놀리시느라 바쁘ㅡ”
“거기까지 하고, 여기 온 이유나 말해.”
“알겠습니다.”
제 주인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모조리 털어놓을 뻔한 입을 가까스로 틀어막았다. 분명 예전에는 저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어째 날이 갈수록 점점 사람이 바뀌고 있었다.
“황궁에서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델타 님을 모시러 온 것입니다.”
“손님? 누구?”
당장 얼마 전에 리제가 왔다 갔었는데. 또 누가 올 일이 있던가.
“정체는 비밀이라고 하셨습니다만, 델타 님께서 황궁으로 뭘 보내셨는지를 생각해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왔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으실 거라고요.”
‘……미네르바구나.’
아마 스크롤 때문인 듯했다. 벌써 크리스탈 스크롤 연구가 끝났나?
“알았어. 지금 출발하면 돼?”
“예. 마차를 끌고 왔으니, 모시겠습니다.”
그러고 문 밖으로 걸어가려던 라나가, 잠시 발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어차피 주인님과 몸을 섞으시는 것도 본 사이에 이 정도 농담은 가벼운ㅡ”
“마지막까지 그러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