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9)
갑자기 자신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이 들어오자, 클라우디아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하더니 살벌한 기세를 내뿜는 아이리스의 눈치를 흘긋흘긋 살폈다.
“……일단 들어보고. 설마 네 편을 들어달라고 부탁한다거나 그러려는 건 아니지? 그런거면 나 절대로 못해준다?”
“그런건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을 듣고, 그게 맞는지 아닌지만 판별해주시면 됩니다.”
“뭘 물어볼건데?”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건가 싶은 표정이었다.
“그 말 탄 녀석이 어떤 방식으로 공격했는지 기억하고 계십니까?”
“어느정도는. 하지만 너무 세세하게는 기억 못 해. 그냥 큰 동작들만 대충 담아둔 수준이야.”
“그거면 충분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니, 아이리스도 내가 뭘 하려는지 일단 들어보기는 하겠다는 듯 가슴 밑에서 팔짱을 꼈다. 아예 내 말을 들어보려고도 안했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었다.
“기사단장님이 만났던 그 마물, 처음 마주치자마자 앞발을 위로 솟구치면서 크게 울었다가 곧바로 기사단장님께 달려오지 않았습니까?”
연분홍빛의 머리카락이 내 말을 긍정하며 위아래로 작게 흔들렸다.
“달려온 직후에 창을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한 번씩 휘둘렀다가 기사단장님을 향해 내리찍었고요. 처음엔 창은 왼손에 들고있었고, 내리찍고 나서 땅에 꽂힌 창을 오른손으로 바꿔 들었죠.”
“어…… 잠시만. 생각해보니 그렇네?”
“그리고 나서는 창을 뽑아서 머리 위에서 몇 바퀴 돌린 다음 전방으로 크게 휘둘렀다가 다시 말을 타고 멀어졌겠죠. 이것도 맞습니까?
내가 말한 동작들은 전부 클라우디아가 만났던 ‘목 없는 철갑 기병’이 보스전을 시작할 때 100% 확률로 시전하는 개막 패턴이었다.
그걸 영상이 아니라 말로 설명하려니 한계는 있었어도 의미 전달은 그럭저럭 된 듯 했다.
클라우디아는 잠시 기억을 되짚으며 고민하는 기색이었다가, 깜짝 놀라더니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맞아. 어떻게 알았어?”
“그 다음부터는 생각나는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부 다 맞아.”
무척이나 떨리는 목소리였다.
설명을 끝낸 나는 클라우디아에게 속으로 감사를 건넸다. 무기가 통하지 않는 마물을 처음 만나서 상대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텐데, 패턴을 제법 많이 기억해주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리제와 에리카는 물론이고 아이리스마저도 벙찐 얼굴로 굳어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방금 자기가 대체 뭘 들었나 싶을 것이다.
직접 마주쳤다가 살아돌아온 당사자조차도 처음 본다는 마물에 대한 정보를, 이제 기사단에 갓 들어온 신입이 줄줄이 꿰고 있으니 저렇게 경악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침묵이 감돌았다.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 결사반대를 외치던 아이리스도 생각이 굉장히 많아보이는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런 것들을…… 어떻게 알고 있지?”
가장 핵심적인 궁금증이라고 봐도 무방한, 내가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알고 있냐는 질문.
지금 당장 진실을 밝힐 수는 없겠지만, 다행스럽게도 나한테는 여기서 내세울 수 있는 만능의 방패가 있었다.
“기억이 조금 돌아왔거든.”
“뭣……!”
아이리스가 헛숨을 들이켰고, 리제와 에리카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직 내가 누군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단순히 기사단의 신입이라고만 알고 있는 클라우디아만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울 뿐이었다.
“그게 정말인가?!”
“완벽하지는 않아. 말 그대로 극히 일부만 풀렸다는 느낌이지.”
얼굴에 잠시나마 깃든 망설임을, 나는 놓치지 않고 이어갔다.
“난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전부 말해줬어. 아이리스 네가 그랬었지? 내 실력은 믿을 수 있지만, 처음 보는 적한테 들이밀 순 없다고. 그런데 봐. 난 이미 그 녀석을 아주 잘 알고 있어. 그러면 이번 한번은 더 믿어볼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번 고민은 훨씬 더 길었다. 스스로가 했던 말이 스스로에게 반박당한 것이다.
내 실력은 믿을 수 있지만, 처음 보는 적에게 들이밀 수는 없다. 그런데 나한테 그놈이 처음 보는 마물이 아니라면?
당연히 후자의 조건은 사라지고 내 실력을 믿을 수 있다는 전제 조건만이 남는다.
“…….”
아이리스는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그 입이 다시 열린 것은 5분이 넘게 지나간 뒤였다.
“……알았다. 대신, 리제를 데리고 가라. 그렇다면 허락하지.”
“아이리스 말이 맞아, 신입. 내가 같이 가줄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너 혼자 보내는 건 너무 위험해.”
“아니, 나 혼자 가야 돼.”
나는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보스를 잡고 바로 근처 던전에 들러 영주를 꾀어낼 미끼도 찾으러 가야되는데 그 모습을 들킬 수는 없었다. 기억이 돌아왔다는 변명도 중요할때나 한 번씩 사용해야지, 너무 자주 써먹으면 오히려 의심만 산다.
목 없는 철갑 기병을 리제의 도움 없이 나 혼자 잡는다는 조건 하에서라면 보스 토벌에는 얼마든지 동행해도 상관없었지만, 그 뒤의 일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렇다고 보스전 이후에 리제에게 나는 혼자 할 일이 남아있으니 먼저 돌아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당연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옆에 달라붙어 있으려고 하겠지.
아예 처음부터 데려가지 않는 편이 맞았다.
“왜 혼자 가겠다는거지? 무언가 이유라도 있나?”
“이유는 있는데, 말해주지는 못할 것 같네. 미안.”
“…….”
아이리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대체 왜 이러나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로서도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은빛 눈동자에 마지막 결의가 깃들었다.
“네 단독 행동에 찬성하는 기사단장이 있다면 허락하겠다. 많을 필요는 없다. 우리 중에 한 명이라도 있으면 돼. 일단, 나는 무조건 반대다.”
“……저도 반대입니다. 죄송해요, 신입 씨. 신입 씨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신입 씨를 걱정하는 마음이 크기에 반대한다는 사실만 알아주세요.”
“어…… 나는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찬성하지도 않아. 일단, 난 너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 오늘 처음 봤기도 하고. 그래서 뭐라고 함부로 말하기가 좀 그렇네.”
아이리스와 에리카는 반대, 클라우디아는 사실상 반대였다. 그러면 이제 남은 기사단장은 리제 하나인데. 아직도 내 손가락을 꼬옥 붙잡고 있는 리제를 돌아보았다.
푸른 벽안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무슨 대답을 내놓을지는 뻔했다. 나는 리제가 대답을 내놓기 전에 선수를 쳤다.
“그, 신입. 미안하지만 나도ㅡ”
“리제.”
“으, 응?”
“저번 대련에서 네가 서리 폭풍 난격 사용하기 직전에 했던 말, 기억하지?”
“그 기술 쓰기 전에 했던 말? 어…… 야, 잠깐만. 너 설마?”
리제는 잠시 기억을 되짚어보다가, 내가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눈치챈 듯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 설마야.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겠다고 했던 그 말, 지금 써야겠어. 나한테 찬성해줘.”
“……진심이야?”
“그럼 거짓말이라고 생각해?”
내가 살짝 웃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된 리제가 발을 동동 굴렀으나, 결과는 뻔한 일이었다. 아이리스는 미래를 직감한 듯 아까보다 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찬성할게. 다녀와, 신입.”
한참을 망설이던 리제는 결국 내 편을 들어주었다.
상황 종료였다.
클라우디아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잘하고 와.” 라는 격려 한 마디와 함께 치료를 위해 성 안으로 들어갔고, 에리카도 “무운을 빌겠습니다.” 라고 짤막하게 인사를 건넨 뒤 클라우디아의 뒤를 따라갔다.
아이리스는 온갖 복잡한 감정이 섞인 눈을 한 채 “절대로 죽지 마라. 명령이다.” 라는 부탁 비스무리한 명령을 남기고 떠나갔다.
리제는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선 온갖 물품들을 챙겨주고 있었다. 음식을 바리바리 싸주는 건 물론이고 체력 회복 포션에 예비 무기와 방어구까지 챙겨주려 들었다.
물론 방어구는 내가 필요 없다며 거절했다. 내구 스탯이 1밖에 안 돼서 장비 무게치 상한이 더럽게 낮았기 때문이었다.
피 묻은 검 하나만 들고 있어도 1단계 구르기가 아슬아슬한 실정인데, 아마 경갑이든 뭐든 갑옷을 착용하는 순간 구르기가 불가능해질거다.
어차피 그거 입어봤자 보스한테는 무조건 한 방이기도 하고.
갑옷을 안 챙기겠다고 하니 리제가 그게 말이 되냐면서 펄쩍 뛰었지만, 내가 완고하게 고집을 피우자 볼을 잔뜩 부풀린 채 나를 바라보는 선에서 설득을 포기했다.
내 속사정을 모른다면 당연히 할 법한 걱정이었기에 이런 시시콜콜한 잔소리가 귀찮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구나 싶어서 고마웠으면 고마웠지.
“잘 다녀와, 신입.”
떠나는 날 배웅하는 건 리제밖에 없었다.
“…….”
……고 생각했었는데, 저 멀리에서 아이리스가 고개만 빼꼼 내민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벽 뒤에 숨어들어가더니, 숨은 지 1초도 채 되지 않아 한쪽 눈만 빼꼼 내밀곤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뭐 하는거지.
아이리스와 내가 이러거나 말거나, 리제는 평소답지 않게 무척이나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죽지 마. 절대로. 목숨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다 내팽개치고 도망쳐. 땅을 기어가며 도망치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살아서 돌아와. 괜히 명예를 지키니 어쩌니 하는 헛소리는 지껄이지 말고. 알았지?”
“절대로 안 그래. 애초에 나도 목숨 귀한 줄 아는 사람이라고.”
“목숨 귀한 줄 아는 사람이 이런 무모한 짓을 벌여?!”
리제가 내 뺨을 주욱 잡아당겼다.
입에서 으어어어, 하는 괴성이 새어나오자, 쿡 웃고선 곧바로 손을 놓아주었다. 전혀 아프지 않았다. 리제 나름의 가벼운 장난이었던 모양이었다.
인사를 끝낸 내가 말 위에 올라타려는데, 리제가 나를 멈춰세웠다.
“그리고 하나만 더. 잠시 귀 좀 줘봐.”
“응?”
아직도 할 말이 남았나 싶어 귀를 기울였다. 앵둣빛 입술이 내 귓가로 다가와선 조곤조곤하게 속삭였다.
“살아돌아오면 원하는 거 하나 들어줄게. 알았지? 이번에도 뭐든 가능하니까 잘 생각해봐.”
그러고선 방긋 미소지은 다음 내 뺨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더니 몸을 돌려 떠나갔다. 나는 방금 리제가 뭐라 말했는지 잠시 곱씹어보다가 피식 웃으며 말에 올라탔다.
“당연히 그래야지.”
아무리 닼라 모드가 적용되어 있다지만, 명색이 플탐 3만 시간짜리 망자인데 고작 첫 보스 따위에 죽을 순 없으니까 말이다.
‘아, 잠깐만. 이거 사망 플래그인데.’
순간적으로 등골을 타고 흐르는 오한을 애써 가라앉히며, 말고삐를 잡고 출발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