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90)
r 190 – 변이 – 1
“뭐 하다 이제 왔어?”
마차를 타고 저택으로 향하니, 정원에서 전전긍긍하며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아우로라가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라나가 마부석에서 훌쩍 뛰어내려 아우로라의 옆에 섰다.
기사 한 명이 마차에 올라타 말고삐를 쥐었다. 이내 그 모습이 천천히 저택 뒤편으로 사라졌다.
“개인적으로 찾을 게 좀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 나와 계세요? 손님은 어쩌고요?”
“네가 말하는 그 손님이 날 하도 괴롭혀대서 잠깐 도망쳤어. 이게 다 델타 네가 제때제때 성에 안 있고 자꾸 돌아다녀서 그런 거잖아.”
아우로라가 투덜거렸다.
“뭐 어떠셨길래요?”
“누가 찾아온 건지는 너도 라나한테 들어서 알지?”
“네. 미네르바 님 아니십니까?”
“맞아, 미네르바님이야. 그런데 내가 말재주가 좀 있다곤 해도 그분을 이길 정도는 아니잖아. 살아온 세월도 그렇고, 연륜도 그렇고, 머리 자체도 그분이 나보다 훨씬 더 좋고.”
겉으로는 전혀 그렇게 안 보이지만, 미네르바는 무려 400년을 살아온 대마법사다. 잘 쳐줘야 스물 언저리인 아우로라가 말재간으로 미네르바를 당해낼 순 없을 것이다.
“처음엔 그냥 평범한 대화였는데, 네가 안 오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니까 어느 순간부터 내 첫경험에 관한 대화로 주제가 바뀌어 있더라고.”
“그거 참…… 대단하네요.”
“뭐,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었지. 그걸로 하도 놀려먹으시길래 너 돌아오는 거 기다리겠다 하고 밖으로 도망친 거야.”
아우로라는 넌더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설마 저희가 뭐 했는지 다 털어놨습니까?”
내 질문을 들은 아우로라의 표정이 넌더리를 치다 말고 단번에 새빨개졌다.
“그…… 렇진 않아. 너랑 내가 그, 섹스 했다는 거랑. 뭐, 기분 좋았나 그런 거? 솔직히, 남들한테 우리가 뭘 했는지까지 털어놓긴 좀 그렇잖아?”
더듬더듬, 그 입에서 두서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하긴, 첫 경험부터 라나한테 박히는 걸 보여주면서 얼굴이 완전히 풀어져버릴만큼 느끼고, 마지막에는 조수까지 줄줄 흘려댔다는 건 딱히 주변에 공유할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라나야 당연히 예외고.
“일단 네가 빨리 와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또 응접실로 돌아가서…… 아.”
순간, 아우로라의 눈앞에 파란 구체가 떠오르더니 깜빡깜빡 점멸하면서 우리 주위를 시계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순수한 마나로 이루어진 구체였다.
“미네르바님이 만드신 거겠죠?”
“당연하지. 아무래도 얘기는 그만하고 빨리 데려오라는 뜻인 것 같네. 응접실에 계시니까 그곳으로 가면 돼.”
“저 혼자만요?”
“어차피 난 들어가봤자 다시 나와야 될걸? 너랑 둘이서만 나눠야 되는 이야기랬거든.”
“알겠습니다.”
스크롤에 대한 이야기라서 일반인이 들으면 안 된다는 건가. 나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저택으로 걸어가려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영주님.”
“응? 왜?”
“라나가 그러던데, 요즘 밤마다 잠을 못 이루신다면서요? 적당히 하셔야죠. 그러다 몸 상합니다.”
“뭔 소리야? 내가 잠을 왜 못…… 이루…….”
까지 말한 아우로라는, 내 말의 진의를 눈치챘는지 순식간에 귀부터 시작해 얼굴 전체를 새빨갛게 물들였다. 반쯤 열린 입술 사이로 어, 어? 하는 뻐끔거림이 새어나왔다.
당황스러워 하기는 옆에 있던 라나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이렇게 냅다 일러바치리라곤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지,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배신자’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우로라가 라나를 홱 쳐다보는 것을 확인하고 몸을 돌렸다. 등 뒤에서 “어디까지 말했어?!” 라며 제 치부를 드러낸 여인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라나가 쩔쩔매는 소리도 같이 울려퍼졌다.
라나에게 소소한 복수를 끝낸 나는 저택의 응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간에 아우로라까지 휩쓸리는 사고가 있긴 했지만, 라나한테 그런 농담을 가르친 게 아우로라였으니 자업자득이었다.
“어서오려무나, 아이야.”
응접실에는 미네르바가 앉아있었다. 예전과 똑같이, 길다란 흰색의 머리카락을 등 뒤로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금방이라도 풀어헤쳐질 듯한 목욕 가운을 걸친 모습이었다.
미네르바는 나를 향해 특유의 고풍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가슴에 위태롭게 걸쳐져 있던 목욕 가운이 살짝 흘러내렸다. 그 틈으로 핑크빛의 무언가가 얼핏 스쳐지나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미네르바님.”
나도 같이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미네르바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자신이 앉은 자리의 왼쪽 옆을 팡팡 쳤다. 이쪽에 앉으라는 뜻이었다.
내가 진심이냐고 눈으로 묻자, 당연하지 않냐는 투로 단호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팡팡, 하고 소파를 두들기는 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잠시 고민하다가 그 옆에 앉았다. 어차피 선택권은 없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작은 접시와 찻잔이 나타나더니 찻주전자가 혼자서 둥실 떠올라 차를 따랐다.
“그렇지. 참으로 오랜만이로구나.”
미네르바가 그 말과 함께 내 오른손을 붙잡았다.
뭘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붙잡은 내 손을 자기 허벅지에 대뜸 얹었다. 손바닥에 말캉거리면서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손목이 더 안쪽으로 잡아끌렸다. 이제는 허벅지를 넘어 목욕가운 밑으로까지 들어가고 있었다. 손바닥 전체가 한층 더 따뜻한 온기로 휘감겼다. 말캉거리는 감촉도 더 진해졌다.
미네르바는 내 손을 자신의 치골 근처까지 잡아당기고 나서야 동작을 멈췄다.
“잘 지내었니?”
“……만나자마자 왜 이러십니까?”
손을 빼보려고 해도, 마치 마법으로 고정시켜두기라도 한 것처럼 도저히 빠지질 않았다. 오히려 허벅지 안쪽의 말랑말랑한 감촉만 실컷 느낄 뿐이었다.
“약소하지만, 아이의 선물에 대한 답례란다.”
“이게요?”
“400년간 그 누구도 허락하지 아니하였던 자리에 들어왔으니, 아주 훌륭한 답례이지 않니?”
“…….”
내가 황당하게 바라보고 있는데도, 미네르바는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으로 다리를 오므렸다. 허벅지가 내 손바닥을 위아래로 부드럽게 조여들었다.
“그 스크롤은 어디서 찾은 것이니, 아이야?”
이미 예상한 질문이었기에, 나는 손에서 느껴지는 허벅지의 감촉을 애써 무시하며 고대 유적에서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주었다.
물론 페치와 연관된 것들은 적당히 각색했다. 미네르바의 성격상, 페치를 잡아다가 그런 고대 유적의 위치를 더 알고 있냐면서 ‘회유’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니까.
미네르바는 설명을 듣고선 고개를 살짝 주억거렸다.
“고대 유적이라…… 그런 장소에도 스크롤이 있었나 보구나.”
“예전에 마법으로 대륙 전체를 찾아다녔다지 않으셨습니까?”
“내 조사는 스크롤이 발산하는 마나 파장에 한정되어 있었단다. 나 정도 되는 위치의 마법사가 일일이 발품을 팔며 돌아다닐 수는 없는 일이지 않니. 그리고, 고대의 스크롤이 아닌 것은 찾는다 한들 관심을 주지 않기도 했었지.”
분명 미네르바가 대륙 전체를 샅샅이 뒤졌음에도 스크롤이 계속해서 발견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것들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였다.
고대의 스크롤은 진짜로 못 찾은 거고, 나머지 스크롤들은 찾았음에도 그냥 내버려 둔 것이다.
영원의 마법사가 대륙 전체를 뒤졌다는데 왜 온갖 장소에서 스크롤을 발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배경 설정이었다.
“그런데, 설마 저한테 답례를 해주시려고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내 손은 여전히 미네르바의 허벅지 사이에, 그것도 손이 조금만 더 뻗어지면 다리 사이의 균열을 건드릴 듯한 위치에 놓여져 있었다. 빼고 싶어도 도무지 빠지질 않았다.
“그럴 리가 있니. 아이에게 연구의 성과를 알려주려고 왔단다.”
“연구의 성과라면…… 크리스탈 스크롤 말입니까?”
“아이가 그것을 찾아주었으니, 아이가 제일 먼저 알아야지. 카이킬리아에게도 아직 말하지 않은 내용이니 기뻐해도 좋단다. 이 대륙에서 나 다음으로 그 마법을 보는 사람이 아이거든.”
크리스탈 스크롤을 줬을 때 만들어지는 마법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네르바의 표정이 굉장히 뿌듯해보였기에 괜히 분위기를 깨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어쩌면 게임에서 보던 것과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고 말이다. 당장 미네르바가 여기 찾아온 것부터 그랬으니까.
미네르바는 빙긋 웃으며 허벅지 사이에서 내 손을 뺐다.
“자, 가자꾸나. 아이야……?”
그러다가, 문득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보는 나한테도 덩달아 의문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길래 갑자기 저런 표정을 짓는 건가 싶었다.
한동안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미네르바는, 살짝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황궁에 무언가 일이 생긴 듯하단다. 말을 바꾸어서 미안한 일이지만, 마탑에 향하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어주지 않겠니, 아이야?”
“그러죠. 전 상관없습니다.”
황궁에 일이 생겼다면 당장 그걸 처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게다가 미네르바가 저런 표정을 지을 정도니,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고맙구나.”
그 말과 함께, 우리 둘은 어느샌가 황궁의 복도로 이동해 있었다. 마법진이 그려지기는커녕 푸른 마나조차 안 보였었는데. 시전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졌다.
‘……이것도 연구의 성과인가?’
내가 당황하는 사이, 미네르바가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바로 앞에 로브를 뒤집어 쓴 마법사 몇 명이 서 있었다. 저 마법사들이 미네르바에게 연락을 한 듯했다.
발소리를 들었는지, 마법사들이 고개를 돌렸다. 미네르바를 보자마자 창백했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무슨 일이니?”
“기사단장님들이 갑자기……!”
마법사가 제대로 된 답을 내놓기도 전에, 복도 저 편에서 쾅!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살벌한 고함소리도 같이 들려왔다. 미네르바의 얼굴이 한층 더 딱딱하게 굳었다.
순간이동으로 마법사들을 대피시킨 미네르바가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나아갔다. 나도 왼손으로 날개 잃은 악몽의 검집을 움켜쥔 채 미네르바의 뒤를 따랐다.
고함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이제 바로 앞의 모퉁이만 돌면 금방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퉁이를 돌자, 눈앞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복도 중앙에 황금빛 갑옷을 입은 거한이 서 있었고, 은빛 갑옷과 황금빛 갑옷이 앞뒤로 복도를 틀어막으면서 어지러이 뒤섞여 있었다. 전원이 무기를 빼든 채였다.
제일 선두에 선 것이 아이리스였다. 그 옆이 리제였고, 클라우디아와 에리카는 둘의 반대편이었다. 아이리스의 목소리가 투구를 뚫고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기사단장! 다른 기사단의 일이니 네가 부하를 어떻게 다루든 최대한 간섭하지 않으려 했다만, 부하를 멋대로 죽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죽여?’
절대 웃어넘길 수 없는 단어 선택이었다. 미네르바도 나와 비슷한 생각인지, 가뜩이나 좋지 않았던 표정이 팍 구겨졌다.
“이런 나약한 실력으로는 황제 폐하를 지킬 수 없다. 황제 폐하를 지키지 못하면, 우리의 명예가 더럽혀진다. 명예를 더럽힐 바에는 내 손에 죽는 것이 낫다. 무엇이 잘못됐지?”
그와는 대조적으로, 황금빛 갑옷을 입은 기사의 목소리는 굉장히 차분했다. 음의 높낮이가 기이할 정도로 없는지라 역으로 이상하게 느껴질만큼.
“나약한 실력? 하, 니가 우리 감시하겠다고 성으로 찾아왔을 때 우리 신입한테 뭘 당했는지는 까먹으셨나봐?”
“그랬었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황금빛 갑옷의 기사는 리제의 비아냥조차 덤덤히 받아넘겼다. 목소리에는 이번에도 높낮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게임에서 보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떻게 되먹은 상황인지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결국 저렇게 됐나.’
금빛 황혼 기사단장의 변이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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