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91)
r 191 – 변이 – 2
금빛 황혼 기사단의 기사단장을 타락시킨, 혹은 변이시킨 주체가 무엇일지는 뻔했다.
악마.
사실 그놈들 말고는 달리 후보도 없었다. 어지간하면 황궁에서 나갈 일 없는 금빛 황혼 기사단장이 무슨 수로 다른 것들이랑 접촉하겠는가.
악마도 강한 숙주를 원하는 것은 같으니, 금빛 황혼 기사단장은 놈들에게 최적의 빙의체라고 할 수 있었다.
숙주가 강하면 강할수록 지상에 강림하여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총량도 높아지니 말이다. 숙주가 약하면 큰 힘을 쓰는 순간 육신이 못 버티고 녹아내려서 다시 지옥으로 사출된다.
본체로 내려오면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제약이 없어지므로 최고의 상황이긴 한데, 괜히 본체로 내려왔다가 ‘정화’ 당하면 영구적으로 사망하기에 그 선호도는 악마의 성격에 따라서 갈린다.
뒷감당이고 나발이고 당장의 쾌락이 중요한 놈들은 기회만 됐다 하면 냅다 나타나버리지만, 좀더 멀리 보는 놈들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식으로.
‘……가 게임 내 문서의 설명이었지.’
금빛 황혼 기사단의 기사단장을 변이시킨 악마는 제법 신중한 성격이었다.
악마 따위는 성검으로 손쉽게 찢어버릴 수 있는 카이킬리아가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런 장소에 본체로 강림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을 만큼.
그래서 저놈의 몸을 빌린 것이다. 상당한 강자라서 힘을 크게 발휘할 수 있고, 설령 죽더라도 악마의 본체는 멀쩡하도록.
이것도 게임 내 문서에 다 나와 있다.
“미네르바 님. 잠시만요.”
“무슨 일이니, 아이야?”
팔을 들어 미네르바를 막아세웠다. 지팡이 끝에 모여들던 푸른 빛이 다시 허공으로 흩어졌다. 의문을 담은 눈동자가 내게 꽂혔다.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저거, 몸에 악마가 빙의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악마, 라고 하였니?”
미네르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황궁 한복판에 악마가 강림했다는 터무니 없는 소리를 하고 있음에도 내 말을 아주 굳건히 신뢰하는 눈치였다. 이러면 이야기가 좀 빨라진다.
“네. 그리고 황제 폐하는 아마 침실에 갇혀 계실 겁니다. 마법 결계가 그 주위에 둘러져 있을 거예요.”
저건 머리가 제법 되는 놈이다. 아무런 보험도 없이 카이킬리아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황궁 한복판에서 빙의되어 깽판을 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인간들이 쓰는 마법을 이용해 카이킬리아의 침실에 결계를 잔뜩 쳐놓은 것이다. 전력을 내면 부술 순 있지만, 그러면 황궁과 수도까지 같이 날아가버리는 절묘한 수준으로.
아무리 카이킬리아가 교황들과 함께 인간 중에서는 독보적인 무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결계를 부수지 않고 해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뭐, 황궁에 나타난 악마를 왜 황제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조져야 하는지에 대한 변명이겠지만.’
참고로 황제가 결계를 해제하고 나오는 것은 플레이어가 저걸 처치한 이후다.
대부분의 악마들은 자존심이 지독히도 강해서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인간의 마법을 쓰지는 않는데, 저런 놈은 대륙의 역사에도 처음 있는 일이라나.
“그러면, 내가 가서 그 결계를 해제하여주면 된다는 의미니?”
“침실 주변은 악마 때문에 공기 자체가 오염되어 있을 겁니다. 신성 주문이 없다면 아무리 미네르바 님이라 하셔도 얼마 못 버팁니다.”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상성의 문제다. 설령 미네르바라고 한들 신성 주문 없이 악마로 인해 오염된 환경을 정화할 수는 없었다.
단순히 악마로 인해 오염된 것이 아니라, 침실로 다가가는 놈들을 죽이기 위해 작정하고 만들어진 함정이었으니 더더욱.
저 악마도 제법 머리를 썼다. 카이킬리아는 성검을 사용하기 힘들도록 일반적인 마법으로 가둬놓고, 결계 밖에 악마의 기운을 흩뿌려 놓아 미네르바의 개입마저 차단시켰으니 말이다.
“……그렇구나. 이해하였단다.”
미네르바는 자존심을 세운다거나 하지 않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괜히 그래봤자 자신에게 해만 될 뿐이라는 점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폐하께서는 분명 스스로 결계를 뚫고 나오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니, 미네르바 님은 성국으로 향하셔서 악마가 나타났다고만 전해주세요. 뒷일은 성국에 맡기시고요.”
게임에서야 플레이어 혼자서 다 해먹어야 하니 이단심판관이나 이단심문관의 도움을 구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얼마든지 성국의 손을 빌릴 수 있었다.
굳이 해야겠다면 혼자서 잡는 것도 가능은 한데, 편한 길을 놔두고 굳이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또 몰라.
“알았단다. 부디 조심하려무나, 아이야.”
미네르바는 그 말만을 남기고 마법진조차 없이 사라졌다. 대체 크리스탈 스크롤에서 뭘 발견했길래 순간이동이 저렇게 바뀐 건가 싶었다.
‘……그건 나중에 물어봐도 되니까, 집중하자.’
금색과 은색의 갑옷들이 대치하고 있는 장소로 고개를 돌렸다.
모퉁이를 돈 직후에 멈춰선 것도 있고, 단체로 저 황금빛 기사단장을 신경쓰느라 다른 곳을 살펴볼 겨를이 없는 것도 있어서, 아직 아무도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중이었다.
복부에 최대한 힘을 주며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리제!!!!!!”
복도에 리제의 이름이 울려퍼지자 투구를 쓴 갑옷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델타?! 여긴 어떻게 왔어?”
내가 여기서 나타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지, 눈에 띄게 당황한 목소리였다.
“그건 나중에 설명해줄 테니까, 여긴 나한테 맡기고 전부 물러나! 악마한테 씌인 거라서 너희들로는 안 돼!”
“악마?!”
그 말에 화들짝 놀란 기사들이 본능적으로 한 발짝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황궁에서 근무할 실력쯤 되면 악마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지식은 충분히 갖추고 있으니까.
자신들은 악마에게 피해를 못 준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로 알고 있을 테고. 게임에서도 은빛 여명 기사단장들은 저걸 막아보려다 부상을 입은 채 황궁 곳곳에 널브러진 신세가 된다.
내가 미네르바 덕분에 한참 일찍 도착해서 그렇지, 원래 저놈이랑 싸워야 할 장소는 황궁 정원이었다. 1차적으로 놈을 막아보려는 시도가 실패했다는 증거다.
“…….”
황금빛 갑옷의 투구가 내 쪽을 향하는 걸 보면서 날개 잃은 악몽을 빼들었다. 검신의 색이 바뀌기 시작했다.
절반은 태양을 상징하는 황금색으로, 나머지 절반은 달을 상징하는 은색으로. 유리창 너머에서 햇빛이 비쳐들어와 검신의 성스러움을 한층 더했다.
걸음을 내딛었다. 무기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력 때문에 그런 건지, 아니면 나를 향한 열등감 때문에 저런 꼴이 되어서 그런 건지, 놈의 시선은 오롯이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은빛 갑옷과 황금빛 갑옷들이 복도 좌우로 길을 텄다. 그 사이로 걸어들어가자 양쪽에서 시선이 콕콕 꽃혔다.
“델타 너…… 괜찮겠어?”
길의 끝은 에리카와 클라우디아였다.
“당연히 괜찮지. 너희도 애들 챙겨서 멀찍이 물러나 있어. 황궁 주변 통제하고, 사람들 대피시키고, 황제 폐하 침실 근처에는 아무도 못 가도록 막아. 일단 가보면 왜 막으라는지 알 수 있을 거야.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가지는 말고. 너희까지 휩쓸릴라.”
“하지만, 델타 씨…….”
“내가 왜 이러겠어? 너희들이라면 알잖아. 내 말대로 해 줘, 에리카.”
에리카가 입을 다물었다. 클라우디아도 마찬가지였다. 무기를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신성력이 없다면 악마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한 고기방패뿐.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 장소에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저런 반응인 거겠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클라우디아는, 내 어깨를 툭툭 치고선 부하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에리카도 “조심하세요.” 라는 짤막한 말을 속삭이고 클라우디아의 뒤를 따랐다.
에리카와 클라우디아가 고집을 꺾자 그걸 본 리제와 아이리스 역시 부하들을 수습해 복도 저 편으로 사라졌다. 주변이 순식간에 텅 비었다.
“델타! 조심해야 해!”
리제의 목소리가 잠시 메아리쳤지만, 그 메아리마저 사라지자 마침내 완전한 침묵이 감돌았다.
나는 복도의 폭을 잠시 가늠해보았다.
‘……좌우로 좀 좁긴 한데.’
황궁 복도가 아무리 넓다지만, 그래봤자 정원에 비하면 택도 없는 넓이다. 여기서 저놈이 광역기라도 쓴다면 피할 장소가 살짝 애매했다.
잘못하다간 이 구역 자체가 통째로 무너질 가능성도 있었다. 내가 혼자서 날고 기어봤자 건물 무너지는 건 못 피한다.
“…….”
놈은 내가 이곳에 온 것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한 시도 쉬지 않고 나만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그야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 계기가 나 때문이었을 테니 당연했다.
“분명 허튼 생각은 하지 말라고 말 안해줬던가?”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내 말 때문에 역으로 관심 가지게 될까 봐 두루뭉술하게 표현하긴 했다만, 어쨌든 경고까지 해줬는데 꼴이 그게 뭐야?”
“…….”
놈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대화라도 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려고 한 건데, 이래서야 대화고 나발이고 바로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구태여 죽일 목적으로 덤빌 필요는 없었다. 미네르바가 성국에 도움을 청하러 갔으니, 얼마 안 돼서 이단심판관이든 이단심문관이든 누구 하나는 여기에 올 것이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뭐, 말하기 싫으면 마음대로 해.”
날개 잃은 악몽을 양손으로 쥐었다.
베히모스를 상대로 내리꽂혔던 그 빛의 기둥이 일회성이었는지, 아니면 적을 상대로만 발동하는 건지, 아직 시험해볼 게 남았었는데 마침 잘 됐다.
다리를 어깨너비만큼 벌리고, 날개 잃은 악몽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머리 위에서 칼날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황금빛 갑옷은 아직까지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실컷 맞고 나면 생각이 좀 달라지겠지.”
팔을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