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92)
r 192 – 변이 – 3
놈에게 빛의 기둥이 직격했다. 기둥에 짓눌린 황금빛 갑옷은 그대로 복도 바닥에 처박혔다. 콰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층 전체가 흔들렸다.
조심스레 천장을 살펴보았다. 멀쩡했다. 저번처럼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거나, 그 사이로 태양이 비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하늘이 아니라 검에서 시작된 모양이었다.
‘……역시 일회성이었나?’
베히모스를 상대할 때처럼 되지 않았다는 말인 즉, 태양이나 달이 빌려주었던 힘은 일회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래서야 원하는 타이밍에 써먹을 순 없을 듯 했다.
“약하기 짝이 없다.”
복도 바닥에 처박혔던 황금빛 갑옷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충격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는지, 무릎이 몸을 지탱함과 동시에 빠직, 하고 투구가 갈라졌다.
황금색 건틀릿을 낀 손이 투구를 벗어던졌다. 놈의 맨얼굴이 드러났다. 무표정했다. 시선은 내게 고정되어 있었지만, 표정은 일말의 변화조차 없었다. 무슨 시체 같았다.
“너 같은 놈은 황제 폐하의 옆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분의 명예를 더럽힐 뿐이니.”
그 입에서 높낮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문장이 흘러나왔다.
“그래, 그러시겠지.”
대충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어차피 악마에 홀려서 제정신도 아닌 놈이다. 일일이 신경써봤자 나만 손해였다.
‘효과가 없다는 건 확인했고.’
역시 버티는 쪽으로 가야할 성 싶었다. 기한은 미네르바가 성국에서 지원을 데리고 올 때까지.
놈의 패턴을 되짚었다. 광역기 몇 개만 조심하면 여기서도 그럭저럭 시간을 끌 수는 있을 거다. 그러니 벽으로 몰리는 것만 조심하면 된다.
“폐하의 옆에는 가장 강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놈은 자기 할 말만 줄창 내뱉어대며 무기를 빼들었다.
누가 금빛 황혼 기사단의 기사단장 아니랄까봐, 손잡이 끝부터 크로스가드까지 모두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는 황금색 검이었다.
전체적인 외형은 아이리스의 롱소드와 비슷했지만, 별다른 장식 없이 투박한 외형인 아이리스의 검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훨씬 더 화려했다. 게다가 크기도 훨씬 더 컸다.
아이리스의 롱소드와 클라우디아의 특대검 사이, 그 중간 어디쯤 되는 느낌이었다. 얘를 처치하면 플레이어가 직접 써볼 수도 있었다.
‘성능은 별로지만.’
대검으로 분류되는 주제에 한손검인 날개 잃은 악몽보다 리치도 짧고 말이다.
황금빛 갑옷이 무릎을 살짝 굽혔다. 검을 쥔 쪽 어깨를 뒤로 살짝 빼며 팔꿈치를 접고, 다른 한 팔은 가슴 앞에 수평으로 가져가며 칼을 든 쪽 어깨를 붙잡았다.
1페이즈의 시작을 알리는 돌진 패턴이었다.
쾅! 소리가 들리고, 놈이 바닥을 박차며 내게 달려들었다. 여기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냐에 따라서 이 다음 패턴도 같이 달라진다. 닼라 모드에서 추가된 특징이다.
잠시동안 뒷일을 생각해본 뒤, 복도 중앙으로 굴러 빠져나갔다. 황금빛 갑옷 기준으로는 왼편이 되는 자리다.
내가 왼쪽으로 구르자마자 놈은 머리 위로 들어올리려던 공격을 취소하고 바로 이쪽 방향을 쳐다보며 바닥에 수평하게 검을 비틀었다.
여기서 어설프게 한번 더 굴렀다간 구르기 캐치를 당한다. 곧장 휘두르는 게 아니라 한 박자를 쉬었다가 휘두르니까.
잠시 쉬었다가, 놈이 휘두르는 타이밍에 맞춰 같이 검을 휘둘렀다. 황금색 대검과 날개 잃은 악몽이 허공에서 부딫히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만들어냈다.
연이어 다음 공격이 들어왔다. 처음 튕겨낸 방향과는 반대되게 대각선으로 내리찍고, 가벼운 찌르기가 이어진 다음 X자를 그리는 2연타가 마무리를 지었다.
마지막 2연타까지 튕겨냈다. 몸이 뒤로 주욱 밀려나며 발뒤꿈치가 복도 벽에 닿았다. 황금빛 갑옷을 쳐다보면서 복도 중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룬이 있으니까 훨씬 편하네. 진작 얻어놓을걸 그랬나.’
어깨를 가볍게 풀었다. 분명 방금의 연격으로 전투 피로가 끝까지 찼을 텐데, 몸이 무거워진다거나 하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룬이 있으니까 확실히 편했다.
“너 같은 것은 폐하를 지킬 수 없다.”
황금빛 갑옷이 그렇게 말하며 재차 달려들었다. 1페이즈에서 나오던 랜덤한 대사 중 하나였다.
악마에게 빙의돼서까지 생각하는 게 카이킬리아 보좌라니, 성격이랑 인성만 좀 제대로 됐었어도 이런 꼴은 안 됐을텐데 말이다.
정작 카이킬리아는 아랫것들이 어떻게 되든 별로 신경을 안 쓴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은빛 여명 기사단이 고작 방계 친족 따위에 갈가리 찢겨나갔지.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오른팔이 뒤로 당겨지고, 놈의 손에 들린 대검이 끄트머리로 바닥을 갈아버리며 휘둘러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연격 패턴이 언제나 그렇듯이, 리듬 게임을 하는 것처럼 속으로 박자를 세면서 튕겨내면 된다.
놈이 팔을 반 바퀴 돌려 대검을 머리 위까지 치켜올렸다가 그대로 내리찍었다. 칼과 칼이 맞부딪혔다. 어깨가 휘청 꺾이고, 팔에 저릿한 충격이 밀어닥쳤다.
내려찍기는 정확히 3번 더 이어졌다. 금빛 황혼 기사단장은 대검을 무슨 회초리 다루듯이 한 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휘둘러대고 있었다.
놈의 오른팔이 이번에는 수평으로 빠졌다. 그걸 막자, 팔에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 밀어닥쳤다. 복도 바닥에 검을 박아넣었다. 그러고도 뒤로 한참을 밀려나서야 겨우 멈췄다.
날개 잃은 악몽을 뽑아들었다. 바닥에 길게 새겨진 한 줄기 상흔이 보였다. 복도 바닥에 깔렸던 레드카펫은 엉망으로 뒤집혀 있었다. 그 위를 뒤덮은 돌조각과 온갖 부스러기는 덤이었다.
“…….”
나를 무표정하게 응시하던 황금빛 갑옷이 고개를 내려 자신의 검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검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고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벌써 2페이즈로 들어간다고?’
아직 5분 안 지난 거 같은데. 설마 공격 몇번 한 걸로 체력이 75% 이하로 내려간 것도 아닐 테고. 애초에 그랬었다면 빛의 기둥도 훨씬 더 커다랗게 내려왔어야 했다.
“크아아아아악!”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흉측하기 짝이 없는 비명이 터져나왔다. 꼭 쇠를 갈아서 주조한 성대로 내는 것 같았다.
2페이즈의 개막을 알리는 모습. 뭐가 됐든 일단 페이즈가 넘어갔다는 건 확실했다.
“크으으으으…….”
놈은 오른어깨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른쪽 눈이 완전한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변이가 더 많이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저게 금빛 황혼 기사단장 보스전의 2페이즈였다.
“끄으으…… 으으…… 끄아아아아아악!”
황금빛 갑옷이 몸을 꿈틀거렸다. 찢어지는 듯한 괴성이 울려퍼지고, 그와 동시에 오른팔이 내부에서부터 터져나가며 괴상망측한 팔이 튀어나왔다.
튀어나온 팔의 굵기는 거의 사람 몸통만 했다. 피부는 검붉었고, 근육이 울퉁불퉁하게 솟아올랐을 뿐 아니라 손가락 끝에는 날카로운 손톱까지 달려 있었다.
고통이 상당했는지, 표정 변화는 여전히 없음에도 숨소리가 제법 거칠었다. 뭐, 저기 들어간 악마 입장에서는 어차피 자기 몸뚱아리도 아니니 막 굴리는 거겠지.
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던 대검이 악마처럼 변한 손에 다시 쥐어졌다.
팔의 크기가 터무니없이 거대해진지라, 분명 어지간한 검보다는 훨씬 큰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한손검 수준으로 줄어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2페이즈 빨리 들어가면 귀찮아지는데.’
속으로 투덜거렸다.
1페이즈에서는 평범한 기사처럼 검술로만 싸우지만, 2페이즈에서는 변이가 반쯤 완료되었으니만큼 악마의 힘을 섞어서 사용하고, 3페이즈에서는 악마의 힘이 주가 된다.
당연히 악마의 힘이 섞이면 섞일수록 귀찮아진다. 그건 튕겨내기로는 파훼가 안 되니까. 그래서 어지간하면 버티기만 하려고 한 건데.
‘설마 3페이즈까지 냅다 넘어가버리지는 않겠지.’
비대해진 팔 때문에 무게중심이 어색해진 듯, 놈이 확연히 뒤뚱대는 걸음걸이로 달려들었다.
악마의 힘을 섞어서 사용한다는 말은, 반대로 주 공격은 여전히 대검이라는 의미도 된다. 튕겨내기가 먹히는 이상 해야 할 일은 똑같았다.
대검을 휘두르는 속도가 방금 전보다 훨씬 더 빨라져 있었다. 그 궤적에 날개 잃은 악몽을 가져가자, 째애앵! 하며 무게중심이 튕겨낸 방향으로 홱 쏠렸다.
다음 공격을 구르기로 피하며 벽에서 빠져나왔다. 게임에서야 벽으로 밀어붙여져도 캐릭터는 알아서 잘 움직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ㅡ우두둑!
황금빛 갑옷의 허리가 180도로 홱 꺾여 날 향했다. 플레이어가 뒤에 있으면 제법 자주 등장하는 패턴이었다. 허리가 뒤로 꺾이면서 같이 찔러들어오는 대검을 다시 튕겨냈다.
몸이 알아서 뒤로 밀려나며 거리를 벌려주었다. 거리가 살짝 벌어지자, 놈은 기괴하게 뒤틀린 오른팔로 땅을 박차더니 허공으로 붕 떠올라 팔을 내리찍었다.
그걸 받아쳤다. 대검의 궤적이 급격하게 비틀렸다.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커다란 소리와 함께, 놈의 대검이 복도 바닥에 처박혔다.
분명 중간에 궤적이 비틀리며 속도가 살짝 줄어들었을 텐데도 바닥을 박살나며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아래층으로 파편이 우수수 떨어졌다.
대검을 아무렇지도 않게 뽑아든 황금빛 갑옷은, 칼 끝을 다시 내게 겨누었다.
“교황 있니?”
눈 깜짝할 사이에 성국으로 순간이동한 미네르바는, 곧장 태양의 대성당으로 들어가 교황을 찾았다. 지팡이 끄트머리와 하이힐이 레드카펫 위를 짓밟으며 꽉 막힌 소리를 냈다.
태양의 교황은 햇빛이 내리쬐는 스테인드글라스 바로 아래에서 치렁치렁 웨이브 진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채, 하늘을 쳐다보며 자세를 낮추고 있었다.
머리카락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짐작컨대 무릎을 꿇고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영원의 마법사시여. 이 먼 곳까지 어인 일로 행차하셨는지요.”
플로레타가 평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미네르바라 해도 불쑥 태양의 대성당 안까지 찾아온 것은 결례가 분명했기에, 최대한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답했다.
“무작정 고개부터 들이밀어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그럴만한 일이 생겨서 어쩔 수 없었단다.”
“그럴만한 일이라…… 무엇이십니까?”
“황궁에 악마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이유로 충분하겠니?”
“……악마라 하셨습니까.”
그 목소리가 약간 싸늘하게 바뀌었다.
플로레타의 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렁치렁 웨이브 진 금발이 움직임에 맞춰 틀썩였다. 푸르른 녹안이 미네르바를 향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악을 멸하는 것이 저희의 의무이니까요. 이단심판관이여?”
“부르셨어요?”
허공을 향한 속삭임이 울려퍼지자, 스텔라가 기다렸다는 듯 대성당 내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제국 황궁에 악마가 나타났다 합니다. 달의 교황께 일러 곧바로 이단심문관과 전투 수녀들을 보낼 터이니, 먼저 가셔서 그것을 막아주시겠습니까?”
“네, 교황 성하.”
고개를 꾸벅 숙여보인 스텔라가 대성당을 나갔다. 짤막한 대화를 마친 플로레타는 미네르바를 보며 방긋 웃어보였다.
“이제 되었습니다, 영원의 마법사시여.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이라면 능히 악마를 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최대한 빨리 도와주면 좋겠구나. 이단심판관이 가세한다면 아이도 한시름 덜 수 있을 테지.”
순간, 플로레타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다.
“누군가 황궁에 나타난 악마를 상대하고 계신 것입니까?”
“그렇단다. 교황들이라면 정체를 알 터이니 설명은 생략해도 괜찮겠지? 그 아이에게 브로치까지 주었잖니.”
브로치라는 말을 듣자마자 플로레타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입꼬리가 서서히 끌어올려지고, 눈에 총명함이 깃들었다.
“그러하셨군요.”
플로레타와는 반대로 미네르바의 표정은 살짝 미묘해졌다. 하지만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플로레타는 살짝 들떠보이기까지 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귀빈께서, 악마를 상대하시고 계시었군요.”
그 얼굴에 또다시 방긋거리는 웃음이 떠올랐다.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계획이 바뀌었다니, 그게 무슨 의미일까?”
“제가 직접 나서도록 하지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