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93)
r 193 – 변이 – 4
“하찮은 잔재주를…….”
카이킬리아는 침실 벽을 촘촘히 둘러싼 채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는 마법진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조금의 빈틈조차 찾아볼 수 없는 결계였다.
성검을 들어 칼 끝으로 마법진을 살짝 긁었다. 칼날의 끄트머리에 걸린 마법진이 늘어지면서 딸려나왔다가 탄력적으로 되돌아갔다. 꼭 고무로 이루어진 벽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악마 주제에, 제법 머리를 썼구나.”
단번에 마법진의 성질을 파악한 카이킬리아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만약 이것이 악마의 힘으로 만들어진 결계였더라면 성검으로 손쉽게 찢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놈들에게 신성한 힘이란 그런 의미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침실을 둘러싸고 있는 건 마나로 만들어진 마법 결계다. 그렇기에, 이 결계를 상대로 성검이란 그저 빛나는 검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 바깥은 실컷 오염되어 있을 터.”
아까부터 성검이 미친 듯이 반응해대는 중이었으니 확실했다. 악마의 힘이 근처를 아주 지독히도 오염시켜 놓았다고 말이다.
신성 방호를 두르거나, 혹은 신성력으로 주변을 정화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설령 미네르바라 할지라도.
“내가 그리도 증오스러웠느냐, 이 하찮은 것들아.”
카이킬리아는 조소했다.
악마들은 제 존재에 대한 자존심이 지독히도 강하여, 마나라는 개념을 단지 인간이 쓴다는 이유만으로 비웃고 깔보기 일쑤였다. 놈들에게 직접 들었던 사실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이 깔보던 그 힘을 사용하여 이런 짓을 벌였다는 건, 자존심 이상으로 그만큼 카이킬리아에 대한 증오가 깊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하긴, 놈들 입장에선 카이킬리아가 죽도록 밉긴 할 것이다. 한 발짝만 더 나아갔다면 황궁을 통째로 집어삼켰을 바로 그 순간에, 성검을 들고 나타나 일을 방해했었으니까.
그때 황궁에 있었던 악마 대부분이 영구히 소멸되었고, 극소수의 살아남은 것들은 자존심을 내팽개치고선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갔었으니 증오가 깊은 것도 당연했다.
“이것을 어찌 할까.”
조소를 끝낸 카이킬리아는 다시 한 번 성검으로 마법진을 긁었다. 성검과 맞닿은 자리가 은은한 푸른빛을 발했다.
푸른색의 빛은 곧 침실 전체로 퍼져나갔다. 마법진이 일렁였다. 꼭 파도가 치는 것 같았다.
이걸 부숴야 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카이킬리아가 지닌 무력은 고작 이따위 마법진에 막힐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전력을 다할 필요도 없다. 그저 힘을 평소보다 더 많이 사용해 휘두르기만 한다면, 이깟 마법진 따위는 물에 젖은 휴지처럼 녹아내리리라.
그 뒤의 일이 문제일 뿐.
“다른 장소에까지 여파가 미친다, 인가…….”
꼴에 악마라고 머리를 좀 쓴 것인지, 구성이 굉장히 절묘했다.
부수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힘을 가해야 하는데, 일정 규모 이상의 힘이 가해지는 즉시 강도가 급격히 낮아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카이킬리아가 성검을 휘둘러 마법진을 부수는 순간 황궁은 물론 제국 수도의 일부까지 같이 휩쓸려 날아갈 것이다. 자기 손으로 제국을 부숴버리게 되는 셈이었다.
“…….”
카이킬리아는 잠시 일을 저지른 이후의 여파를 계산해보았다.
황궁이 무너지는 것? 다시 지으면 된다. 제국의 부는 넘쳐흐를 정도로 많다. 황궁 따위는 얼마든지 다시 세울 수 있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 상관 없다. 은빛 여명 기사단과 금빛 황혼 기사단마저 관심 밖의 집단으로 내버려두었던 사람이 카이킬리아다. 하물며 평민들에게는 어떻겠는가.
“허나, 황제의 입장에서 그리한다는 것은 아니 될 일이겠지.”
부수 피해가 발생하는 것 따위는 얼마든지 감내해도 된다. 하지만, 그 부수 피해로 인해 제국 내부에 불안감이 퍼져나가는 것은 감내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이 장소는, 카이킬리아가 있는 황궁은 제국에서 가장 굳건하고 강대하며 견고한 요새여야만 했다.
만약, 황궁이 반파되고 사람들이 죽어나갔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불안과 동요가 들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가리라. 황제 된 입장에서 가장 눈살이 찌푸려지는 시나리오였다.
“쯧.”
계산을 마친 카이킬리아가 혀를 찼다. 이렇게 된 이상, 마법진을 하나하나 뜯어서 해체해야 할 듯 싶었다.
오랜만에 건드려보는 마법인지라 기억이 살짝 애매하긴 하지만, 카이킬리아는 예로부터 제국에서 미네르바 다음 가는 천재로 칭송받았던 여인이다.
여태껏 쌓아올린 지식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성검을 바닥에 꽂아 수직으로 세워두고 마법진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법진에 막 손을 가져갔을 무렵.
“……수고를 덜었나.”
마법진이 분쇄되기 시작했다.
침실을 뒤덮고 있던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마나 한 조각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흩어져 사라졌다.
카이킬리아는 이제 막 손을 가져다 댔을 뿐이었으니, 그렇다는 건.
“미네르바.”
카이킬리아가 그렇게 중얼거림과 동시에, 침실 문이 열리고 미네르바가 걸어들어왔다.
밖은 악마의 사특한 힘으로 가득할텐데 어떻게 들어왔냐는 진부한 질문 따윈 하지 않았다. 신성력으로 이루어진 보호막이 몸을 감싸고 있다는 게 훤히 보였으니까.
“교황이었느냐?”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앞부분을 뭉텅이로 잘라먹은 질문이었지만, 그걸 간단히 알아들은 미네르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다란 흰색 머리카락이 목 뒤에서 찰랑거리며 흔들렸다.
“그렇단다.”
“기이한 일이로다. 그것들이 너를 친히 도와주다니, 무슨 바람이 분 것이더냐.”
카이킬리아는 적어도 지난 수백 년 간 교황들이 외부의 일에 직접 나섰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 언제나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을 보내어 성전을 펼치기만 했지.
여태껏 잘만 그래놓고선, 이제와서 갑자기 왜 저런 보호막을 걸어주어 보낸단 말인가.
최근 들어 대성당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굉장히 잦아졌단 말을 듣긴 했는데, 어쩌면 그런 행동이랑 연관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에게는 살짝 미묘한 이유일 수도 있단다. 그래도 듣겠니?”
“시간 끌지 말고 말하여라. 언제는 그것들의 행동에 미묘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더냐.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 발을 들인 악마를 죽이러 가야 하느니라.”
옅은 웃음과 함께 되돌아온 미네르바의 말에, 카이킬리아는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걱정은 접어두려무나, 아이야. 이미 태양의 교황이 갔으니. 아, 그리고 이것이 대답이기도 하단다.”
“……지금 무엇이라 하였느냐.”
카이킬리아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태양의 교황이 직접 왔다고? 네게 단순히 신성 방호를 펼쳐주어 보낸 것이 아니라, 이곳에 직접 당도하였다 하였느냐?”
“그렇구나.”
“어찌하여?”
미네르바에게 직접 신성 방호를 걸어준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여기 직접 발을 들이기까지 했다니, 점점 더 상황이 알 수 없게 변해가고 있었다.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나도 알지 못한단다. 알려주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겠지. 하지만, 태양의 교황이 그 아이에게 굉장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만은 알겠더구나.”
“……하.”
카이킬리아가 코웃음을 쳤다.
미네르바가 말한, 태양의 교황이 굉장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그 아이’가 누구일지 너무나도 뻔했기에.
“그렇다면, 내 것에 눈독을 들여 찾아왔다는 말이 아니겠느냐.”
이걸로 확실해졌다. 예전엔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어 어영부영 넘어가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태양의 교황이 직접 찾아왔다는 게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였다.
이단심문관씩이나 이용해 전달했던 편지의 내용은, 자신은 결코 관심을 가지지 않을 거라던 말은,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카이킬리아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악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이곳에 있단다.”
미네르바는 카이킬리아가 그런 반응을 보일 줄 이미 예상했다는 듯, 가벼운 미소만을 지으며 손에 들린 지팡이로 바닥을 톡 쳤다.
그러자마자, 다음 순간에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는 황궁 어딘가의 복도로 이동해 있었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제법 놀랐다. 분명 마법진이 보이지 않았고, 하물며 푸른 마나조차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단시간에 어마어마한 성취를 이룬 듯 했다.
“저기 있구나.”
미네르바의 말에 카이킬리아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그런 위업에 집중할 때가 아니었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남았으니.
앞에서는 관심이 없다 말했던 주제에, 뒤에서는 누구보다도 더 커다란 욕심을 지닌. 감히 제국의 황제에게 거짓말을 했던 그 발랑까진 암여우를 만나야 하니까.
카이킬리아는 머지않아 목적을 이루었다. 교황의 모습은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
절대로 관심을 갖지 않을 테니 안심하라 말했던 사내를 품에 꼬옥 끌어안은 채, 가슴을 주물러지고 혀까지 섞어가며 격렬하게 입을 맞추고 있는 교황의 모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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