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94)
r 194 – 변이 – 5
놈의 공격을 피하자, 애꿎은 복도 벽이 나 대신 박살났다. 황궁 정원으로 부서진 건물 파편과 유리조각이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저건 기사단장들이 알아서 처리해주겠지.
“뭐야, 황궁 다 부수려고?”
내 비아냥거림에도 여전히 표졍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옆을 흘끗 쳐다보았다. 복도의 벽은 이미 군데군데 부서져선 바깥 풍경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뚫린 풍경으로 정원을 살폈다.
떨어지는 파편을 모두 조각낸 기사단장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아직 멀쩡하다는 뜻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걸 본 기사단장들이 기겁을 했다.
리제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야! 지금 손이나 흔들 때야?! 전투에 집중해!”
이제는 황금빛 갑옷이라 부르기에도 애매한, 아무튼 한때 금빛 황혼 기사단장이었던 빙의체를 흘끗 쳐다보았다. 아직 자세 정비가 덜 끝났으니 괜찮다.
나도 생각 없이 저지른 행동은 아니었다. 내가 미쳤다고 대검이 날아드는 와중에 여유 부리면서 손인사를 하겠는가. 적당히 빈틈이 생겼기에 쟤들 긴장도 풀어줄 겸 해서 한 거지.
‘……다음부터는 자제하자.’
그런데 오히려 역효과였다.
휘둘러지는 대검을 튕겨내고, 놈이 발광을 하며 돌진을 준비하는 동안 뒤로 물러나 전투 피로를 줄였다가 재빨리 세 번 굴러 반대편으로 피했다. 놈의 몸뚱아리는 텅 빈 공간을 갈랐다.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복도를 두리번거렸다. 체감상 아직 몇분 안 지났지만, 슬슬 이단심판관이든 이단심문관이든 도착할 때가 된 것 같아서였다.
미네르바라면 성국까지 가는 데 1초도 안 걸릴 테고, 악마가 나타났다는데 성국 역시 지체할 이유가 없다. 그걸 감안하면, 오히려 이것도 늦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ㅡ화아아악!
‘아, 왔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금빛 황혼 기사단장이었던 것의 뒤에서 환한 신성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황금색이었다. 그 말인 즉, 이단심판관이 먼저 도착했다는 뜻이다.
뒤에서 느껴지는 신성력이 훨씬 더 컸는지, 놈은 본능적으로 몸을 다시 돌렸다. 나도 겨누었던 칼 끝을 내렸다. 이단심판관이 도착했으니 싸움은 저쪽에 다 맡기면 된다.
이내, 신성력 안에서 사람의 인영이 그려졌다.
“스텔라, 잘 왔……?”
나는 스텔라를 향해 인사를 건네려다, 인영의 등 뒤에서 찰랑이는 길다란 머리카락을 확인하고 잠시 멈칫 했다. 스텔라의 머리카락은 저렇게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지 않았다.
곧이어 빛무리가 완전한 사람의 형상을 갖췄다.
바닥에 끌리기 직전인, 잔뜩 웨이브 진 황금색 머리카락. 마치 보석과도 같은 초록색 눈동자. 귀여운 웃음이 떠올라 있는 얼굴.
머리보다도 훨씬 더 큰 거유와, 중요부위만을 간신히 가리는 Y모양의 불투명한 천. 몸의 굴곡과 맨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반투명한 검은색 시스루.
빛무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스텔라가 아니라 플로레타였다.
“플로…… 태양의 교황 성하?”
무심코 평소 부르던 것처럼 부르려다가, 아직 정원에서 보는 눈이 있다는 걸 생각하고 급히 존칭으로 바꿨다. 기사단장들이라면 이 거리에서도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있었다.
내가 예의를 차리자 플로레타의 눈이 살짝 샐쭉해졌다. 하지만 샐쭉한 감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박살난 복도 벽 너머로, 정원에서 보는 눈이 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 얼굴에 다시 생긋한 웃음이 깃들었다.
“예, 귀빈이시여.”
“교황 성하께서 여긴 어떻게……?”
어안이 벙벙했다. 설마 플로레타가 직접 찾아오리라고는 조금도 예상 못 했다.
“귀빈을 도우러 온 것인데, 더 말하여 무엇하겠습니까.”
“……저를,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평온하게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중간에 낀 황금빛 갑옷은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태양의 교황이 내비치는 아우라에 완전히 압도당해버린 모양이었다.
녹안이 옆으로 살짝 옮겨갔다. 나를 향해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소름끼치도록 무감정한 감정을 담은 눈동자였다. 시선에서 한 발짝 비껴간 나조차 잠시 오싹해질 정도였다.
“허나, 해후를 나누기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할 것이 있는 줄로 압니다.”
플로레타가 오른손을 들었다. 그제서야 손에 들린 지팡이에 눈길이 갔다. 내가 교황들한테 주고 왔던 이스터에그 무기였다.
아니, 분명 쓰지 말고 보관만 해두라지 않았었나.
“교황 성하, 그것은ㅡ”
내가 플로레타를 말리기도 전에, 끄트머리의 작은 태양에서 어마어마한 빛이 터져나왔다. 마치 태양이 하나 더 떠올랐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막대한 빛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눈은 전혀 부시지 않았다.
작은 태양이나 다름없는 빛이 주변의 풍경을 죄다 뒤덮어버릴만큼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음에도, 그리고 그걸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것은 정원의 기사단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다 같이 어리둥절한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악!”
빛을 멀쩡히 받아넘기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금빛 황혼 기사단장은 끔찍한 쇳소리를 내뱉으며 심각하게 괴로워했다. 몸 전체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뭐야?’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작은 태양이 내뿜는 빛과 그 빛을 정통으로 쬐며 괴로워하는 빙의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저 지팡이가 왜 손전등이라고 불렸겠는가. 정말로 빛을 내뿜는 것 이외에는 다른 능력이 아무것도 없어서다. 만약 저런 능력이 있었다면 어떻게든 써먹으려는 시도를 해봤을 거다.
괜히 횃불 대용으로 들고다니라는 말이 최고의 공략이었던 게 아니었다.
‘……설마 교황 전용 무기라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문득 그런 가능성에 생각이 미쳤다. 플레이어는 못 다루지만, 교황들은 다룰 수 있는 무기라면 지금 저 모습도 설명이 된다. 혹은 NPC만 다룰 수 있는 무기라든가.
‘잠시만.’
저런 게 있으면 교황한테 건네주는 선택지라도 만들어놔야 하는 게 아니냐고 투덜대다가,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 저 이스터에그 무기가 정말로 교황의 전용 무기라면, 내 행동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 몰라서였다.
“…….”
내가 속으로 가능성을 생각하며 전율하는 사이, 금빛 황혼 기사단장이었던 것이 바닥에 픽 쓰러졌다. 약간씩 꿈틀거리는 팔다리만이 저게 아직 죽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태양빛을 내뿜어 놈을 바싹 구워버린 플로레타가 얼굴에 다시 미소를 띄우며 내게로 다가왔다. 재빨리 아직 부서지지 않고 남아있는 벽으로 이동해 우리 모습을 가렸다.
기사단장들만 있다면 모르겠는데, 방금 빛 때문에 은빛 여명 기사단과 금빛 황혼 기사단까지 사이좋게 같이 여길 올려다 보기 시작해서였다.
교황들과 내가 친밀하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일반 단원들한테까지 보여줘서 좋을 건 없었다.
“귀빈이시여, 그간 평안히 지내시었는지요?”
바로 앞까지 다가온 플로레타가 지팡이를 옆에 수직으로 세워두고선 내 양손을 꼬옥 감쌌다.
“잘 지내긴 했는데…… 그건 뭐야?”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지팡이를 가리켰다. 내가 줘놓고 그건 뭐냐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어지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플로레타는 흐뭇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귀빈께서 저희에게 주신 성유물이지요. 이걸로 악을 멸하라는 그 의지, 확실히 받아 섬겼습니다.”
‘……뭘 하라고?’
악을 멸하라는 의지? 내가?
‘그냥 장식품으로 쓰라고 준 거였는데.’
설마 저 이스터에그 무기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으리라고는 나조차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플로레타가, 더 나아가 루나마저도 장대한 착각에 빠져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지금 와서 진실을 밝힌다 한들 믿을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한동안 내 손을 감싼 채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던 플로레타는 무언가를 알아차렸다는 듯이 아, 하고 짤막한 탄성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축복이 많이 옅어지셨습니다, 귀빈이시여.”
“다시 걸어주려고?”
“예. 신께서 귀빈을 보살피고 계시니, 필시 저희들의 축복 또한 훨씬 더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괜찮다고 하려다, 가능성 하나를 떠올리고 말을 아꼈다.
플로레타와 루나의 축복이 신의 힘을 빌리는 일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 말이다. 어쩌면 축복이 옅어져서 힘을 빌려주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플로레타의 미소가 한층 환해졌다. 가뜩이나 좁았던 거리가 한 발짝 더 줄어들었다.
그대로 입을 맞추려던 플로레타는, 뭘 떠올렸는지 머리를 뒤로 살짝 뺐다.
“귀빈이시여. 이번에는 한층 더 강력한 축복을 걸어드리려 하는데, 괜찮으실런지요?”
“더 강력한 축복?”
“예. 신께서 귀빈을 무척이나 총애하고 계시니, 귀빈이라면 가능하실 것입니다.”
“알았어.”
교황 본인이 그렇다는데 내가 거부할 일은 없었다. 애초에 축복이라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처음 듣는 개념이었으니까. 교황이 나보다는 더 잘 알겠지.
플로레타의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걸렸다. 가녀린 손가락이 내 손목을 붙들었다. 그러더니, 내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갔다.
“주무르시지요, 귀빈이시여.”
“……응?”
뭘 주물러?
내 되물음에, 플로레타는 손을 더 힘껏 잡아끌었다.
“저와 몸을 섞으실 때처럼, 봐주지 않고 원하시는 만큼 만져달라 하였습니다. 성복 위로 만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벗기셔도 됩니다.”
플로레타는 그러면서 정말로 성복을 풀어헤치려 했다.
얇디 얇은 시스루 너머로 보이던 쇄골이 직접 드러나고, 불투명한 끈이 핑크색 돌기를 드러내기 직전에, 내가 기겁을 하며 멈춰세웠다.
“아니, 잠시만. 안 그래도 되니까 멈춰. 갑자기 왜 이래? 이게 네가 말한 더 강한 축복이야?”
“그렇습니다, 귀빈이시여. 더 강한 축복을 받으려면 저와 더 많이 맞닿아야 하니, 자, 어서 주무르시지요.”
“…….”
플로레타가 단호히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내 손이 머리보다도 더 큰 크기의, 한 손으로 담기엔 택도 없는 거유에 얹어졌다. 그것만으로도 손가락이 가슴 속에 푹 파묻히며 살덩이로 반쯤 가려졌다.
‘이게 진짜 축복을 더 강하게 받는 방법이라고?’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지만, 설마 플로레타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듯 했기에 얌전히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키스로 축복을 거는 세상이니 뭐가 나오든 이상할 게 없기도 하고.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하자, 플로레타는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몸을 더 가까이 붙였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입을 맞춰왔다.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입술 사이로 혀가 파고들었다. 내 혀 위에 물컹하면서도 따뜻한 고깃덩이가 얹어졌다. 그걸 안쪽으로 강하게 당겼다. 익숙한 냄새와 맛이 퍼져나갔다.
“더…… 흔끗…… 즈므르스지요…….”
입술 사이로 웅얼웅얼거리는 속삭임이 들렸다. 가슴을 더 힘껏 주무르라는 의미 같았다.
그 말대로 해주었다. 내 혀 위에 얹어진 고깃덩이가 파르르 떨렸다. 입술 사이로 떨어진 침이 플로레타의 가슴골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가슴을 주무르는 손이 점차 대담해졌다. 나 스스로도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주물러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아래에서부터 유두 쪽으로 쥐어짜듯 쓸어내리기까지 했으니까.
플로레타 역시 점점 대담해지긴 마찬가지였는지, 내 왼손을 가슴 중앙으로 옮겼다. 한껏 딱딱하게 솟아오른 돌기가 손바닥에 느껴졌다.
그걸 위아래로 문지르자, 플로레타의 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점차 짙어지기 시작하는 신음 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게 정말 축복이 맞나 싶었다.
슬쩍 눈을 떴다. 플로레타는 입술 사이로 무척이나 야한 신음을 토해내며 열심히 혀를 얽어오고 있었다. 무심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와중에 여기가 황궁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잠깐만.’
그러고보니, 플로레타가 여기 왔다는 건ㅡ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순간, 저 멀리서 싸늘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