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95)
r 195 – 변이 – 6
‘……생각을 그만둬야 하나?’
또 머릿속에 떠올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이 벌어졌다. 이쯤 되니 내가 생각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원인이 되는 게 아닌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사실 카이킬리아가 게임에서보다 훨씬 더 빨리 찾아오리라는 것쯤은 간단히 알 수 있었다.
플로레타가 여기 도착했다는 건 미네르바도 같이 도착했다는 의미일 테고, 미네르바라면 자신이 교황에게 가호를 받아 침실의 결계를 해제하겠단 생각을 당연히 떠올릴 것이다.
단지 플로레타에게 축복을 받느라 그걸 바로 못 떠올렸을 뿐.
눈을 돌렸다. 저번의 그 전투용 정장을 차려입은 카이킬리아와, 가슴을 상당 부분 드러내는 목욕 가운 차림의 미네르바가 보였다.
카이킬리아의 표정은 아주 딱딱히 굳었고, 미네르바의 표정은 살짝 미묘했다. 단순히 축복을 걸어주고 있었단 말로는 수습이 안 될 듯한 표정이었다.
일단 가슴을 움켜쥔 손이라도 떼려고 해 봤지만, 손목을 붙잡은 플로레타의 손아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힘을 받은 가슴은 옆으로 찌그러졌다. 겨드랑이 밑으로 짓눌려 삐져나온 옆가슴이 윗팔뚝과 맞닿았다.
“들리지 않는 것이더냐, 아니면 듣지 못한 척 하는 것이더냐?”
물론 카이킬리아가 이 모습을 못 봤을 리 없었다. 방금 전보다 명백히 차가워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냅뒀다간 뭔가 터지겠구나 싶어 팔을 꿈틀거렸다.
눈을 감은 채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나와 혀를 섞고 있던 플로레타는, 내가 이런 분위기를 흘리자 천천히 눈을 뜨며 얽었던 혀를 풀었다. 입술 사이로 은빛 실이 늘어졌다.
플로레타가 그걸 손가락으로 끊어 입 안에 넣고 빨아먹었다. 빙긋, 그 얼굴에 여태껏 수없이 보여주었던 자애로운 미소가 걸렸다. 단단히 붙들고 있던 다리가 풀려났다.
“제국의 황제시여,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리고, 플로레타는 아무렇지도 않게 카이킬리아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오랜만에 뵙는다, 고 하였느냐.”
카이킬리아는 당연히 코웃음을 쳤다.
성검은 바로 옆 복도에 꽂아넣어 수직으로 세워놓은 상태였지만, 성검과 마찬가지로 황금색의 빛을 발하는 눈동자엔 평소보다 훨씬 더 살벌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
“여의 황궁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나 떠올려 보아라. 아니, 떠올렸다면 그 입으로 직접 말하라. 여의 황궁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질문입니다. 성국의 귀빈께 축복을 내려주고 있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플로레타는 그 살기를 태연자약하게 받아넘겼다. 단순히 받아넘긴다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한다는 쪽에 가까울만큼 태연했다.
“축복? 지금 축복이라 하였느냐?”
어째 변명은 씨알도 안 먹힌 것 같았다. 나였어도 그럴 것이다. 혀를 섞는 딥키스에 가슴을 쥐어짜듯 주무르는 게 뭐가 축복ㅡ
“축복이라는 것이 언제부터 하사하는 와중에 외간 남자에게 가슴을 허락하는 행위였느냐? 감히 여를 능멸하려 드는 것이냐?”
‘아.’
가슴을 주무르는 것 하나만을 문제삼은 카이킬리아의 말로 미루어 짐작컨대, 키스 자체는 축복이라 인식하고 자연스레 넘어간 모양이었다.
하긴, 은빛 여명 기사단의 기사단장들도, 미네르바도 교황들이 눈앞에서 축복을 걸어준답시고 키스를 했는데 태연하게 넘겼었다.
카이킬리아 역시 그 하나만큼은 인식이 개변되어 있다 해도 이상할 건 전혀 없었다.
‘잠깐, 키스는 축복이라고 넘겼으면서 가슴 만진 걸 걸고 넘어진다는 의미는…….’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눈빛으로 플로레타를 돌아보았다. 설마, 아니겠지.
“무언가 크나큰 착각을 하고 계신 듯 합니다, 제국의 황제시여.”
여전히 나긋나긋하고 평온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첫째로, 귀빈께서는 외간 남자가 아니십니다. 아무리 낮게 쳐주더라도 저희 교황들의 바로 아래, 혹은 어쩌면 저희 교황만큼이나 중요한 남성분이시지요. 둘째로, 더 큰 축복을 하사하려면 축복의 주체들이 서로 더 많이 닿아있어야 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 조건을 충족시키기에, 여인의 젖가슴을 제외한 다른 것이 무엇이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 말한 플로레타가 가슴을 밑에서 살짝 받쳐올렸다.
묵직한 중량감의 지방 덩어리가 순간적으로 위를 향해 살짝 들어올려졌다가, 손이 떨어지자 세상의 법칙에 의해 아래로 묵직하게 쏠리며 탄력적으로 출렁였다.
“더 큰 축복을 내리기 위하여 가슴을 주무르도록 만들었다? 눈 하나 깜짝 않고 거짓을 고하는구나.”
“어찌 감히 신의 이름으로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정 저를 믿지 못하시겠다면, 달의 교황께 물어보셔도 될 것입니다.”
“너희 교황이라는 것들은 모두 한통속이 아니더냐. 지극히 무의미한 질문이로다. 또한, 더 큰 축복을 위해서라면 단지 끌어안는 것만으로도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 터. 다른 하고 많은 부위 중에서 구태여 가슴을 택한 것은, 너의 사심 때문일 것이다.”
“젖가슴과 동일한 기능을 하는 여자의 신체 부위라면 엉덩이가 있겠으나…… 저의 것은 둘 모두 비슷한 크기이니, 귀빈께 더 만지기 쉬운 쪽을 내미는 것이 배려가 아닐런지요?”
뭘 태연하게 자기 가슴이랑 엉덩이 크기를 비교하고 앉은 거지.
나는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첫 인상은 분명 저러지 않았었는데. 그냥 본성을 숨기고 있었을 뿐이었나. 설마 나 때문에 저렇게 된 건 아닐거라 믿고 싶었다.
“태양의 교황이라는 년이 남의 것을 탐내는 짓으로도 모자라 몸뚱아리까지 헤프게 굴려대는 것이냐. 참으로 역겹고 추하기 짝이 없도다. 어쩌면 다른 쪽에도 재능이 있었을지 모르겠구나. 지금이라도 그 재능을 살려보는 것이 어떠하느냐?”
카이킬리아가 빈정거렸다. 그 말을 들은 내가 깜짝 놀라서 귀를 의심할 정도의 수위였다.
플로레타에게 년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걸로도 모자라 성적인 모욕을 가한 데다 믿는 신을 들먹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명백히 아슬아슬하게 선에 걸치거나, 혹은 선을 넘은 발언이었다.
정치적인 관습에 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는 나조차도 이렇게 느꼈는데, 하물며 듣는 플로레타는 어땠겠는가.
“…….”
하지만 이런 내 생각과는 달리, 플로레타는 평온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걸고 넘어지기로 작정한다면 명분이 있는 쪽은 분명 자신일 텐데도.
“그 말이 맞습니다.”
앵둣빛 입술 사이로, 아무도 예상치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귀빈을 위하여 이 한 몸을 바쳤으니 말입니다. 일반적인 남녀 사이에서는 지극히 정상인 일이나, 교황이라는 직위에 앉은 여인이 벌인 행동이라면 다른 사람의 눈에는 헤프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무어라?”
그런 빈정거림을 던진 본인조차 설마 저런 반응이 돌아올 줄은 몰랐는지,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그 뒤에서 둘의 언쟁을 지켜보던 미네르바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말에 카이킬리아의 표정이 한껏 썩어들어갔다.
“제국의 황제시여, 당신이 부럽습니다. 당신은 아직도 그 순결한 여체를 그대로 간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남성을 알지 못하고, 새하얀 도화지처럼 깨끗한 육신을, 한평생 누구에게도 허락하지 않은 육신을 유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는 그 순결함이 부럽습니다.”
언제나처럼의 자애로운 미소와 함께 내뱉어진 마지막 말이, 쐐기를 박았다.
“달의 교황과 태양의 교황은, 이제 더 이상 순결하지 않은 몸이 되었으니까요.”
“…….”
순결하지 않은 몸이 되었다. 굳이 이런 장소에서 그런 말을 한 의미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카이킬리아의 황금색 눈동자와 미네르바의 은색 눈동자가 동시에 날 향했다. 대화의 맥락상, 교황들의 순결을 가져간 사람은 내가 틀림없었으니까. 나 역시 그걸 부정하지 못했고.
플로레타의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직까지 순결한 여인으로 남아계시다니, 이 얼마나 부러운 일이란 말입니까. 분명 태양과 달께서도 당신의 행동을 기꺼워하실 것입니다.”
그게 결정타였다. 카이킬리아가 눈을 부릅떴다. 미네르바는 이전과 똑같이 흥미로 가득 찬 표정이었으나, 카이킬리아는 달랐다.
겉으로는 칭찬의 말이더라도 내포된 속뜻은 전혀 달랐으니까. 조금 과격하게 말하면, ‘내가 얘랑 떡칠 동안 너는 뭐했냐?’다. 게다가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말이다.
설마 플로레타가 이런 말까지 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역시 교황은 교황이라 이건가.
“제국의 황제시여, 저는 당신으로부터 귀빈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반박할 말이 없는 듯 주먹을 꽉 쥔 채 파들파들 떨고 있는 카이킬리아를 향해, 플로레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저, 다 함께 귀빈의 것이 되자는 청을 드리고자 할 뿐인 것이지요.”
‘……뭘 해?’
이번에는 나도 놀랐다. 이런 감상은 카이킬리아도 같았는지, 이를 뿌득 갈면서 낮게 읊조렸다.
“지금, 무얼 한다 하였느냐.”
“알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귀빈께선 저희 교황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이런 청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국의 황제시여.”
저 감당하지 못한다는 말은 분명 단어 그대로의 뜻일 텐데, 어째 교황들이 말하니 조금 다른 의미로 느껴졌다.
설마 진짜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니겠지.
“귀빈께서는 성국에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업을 이루셨습니다. 태양과 달께서 친히 축복을 내리셨으며, 기도를 통해 그분들의 목소리를 들으셨지요. 이 성유물을 발견하신 것 또한 귀빈이십니다.”
3쌍의 시선이 플로레타 옆에 세워져 있는 지팡이로 잠깐 모였다.
손전등이라고 불리면서도 외형 하나만큼은 끝내준단 평을 들었던 무기였으니, 성능적인 한계가 극복된 지금은 어떻게 보더라도 성유물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저걸 내가 찾아줬다고 하는 데다, 교황이 아닌 존재가 태양과 달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걸로도 모자라 태양과 달이 친히 축복을 내려주기까지 했다.
하나씩 떼어놓고 봐도 당장 성국에서 받들어 모셔야 할 위업들인데, 그걸 나 혼자서 이뤄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카이킬리아조차 얼굴에 놀란 감정을 띄우고 있을 지경이었다.
오히려 미네르바가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했다. 크리스탈 스크롤을 찾아줬던 일이 굉장히 크게 작용한 모양이었다.
“그런 귀하신 분을, 저희가 어떻게 감히 독점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 말을 끝으로 복도에 침묵이 감돌았다.
플로레타는 말을 끝마치자마자 입을 다물었고, 미네르바는 흥미와 관심이 잔뜩 깃든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카이킬리아 역시 그랬다. 황금색 동공이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오싹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몇 번을 마주쳐도 적응이 안 되는 눈동자였다.
“이리 오라.”
이를 꽉 문 목소리가 들렸다.
“……예, 폐하?”
“이리 오라고 하였다.”
카이킬라아에게 다가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인지는 몰라도, 플로레타와 미네르바까지 있으니 상관 없을 것이다.
쫙 빼입은 정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안에 받쳐 입은 검은색 란제리가 얼핏 비치는 흰 와이셔츠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정장 코트, 몸에 딱 달라붙는 정장 바지도.
가뜩이나 키가 큰 편에 속하는 카이킬리아인데 저런 옷까지 차려입으니 비율이 어마어마했다.
“…….”
나를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던 카이킬리아는, 뜬금없이 내 멱살을 잡고선 자신의 얼굴 바로 앞까지 끌어당겼다. 자연스레 무게중심이 쏠리며 거리가 확 좁혀졌다.
“여는 너희 교황들과 다르다.”
황금빛 눈동자가 내 뒤를 향했다. 플로레타가 있는 자리였다.
“마땅히 혼자서 이 사내를 감당해 보일 것이니, 똑똑히 보고 있거라.”
그리고, 입술이 겹쳐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