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98)
Chapter 198 – 지옥 – 1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네.’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해도, 그러기가 힘들었다. 뭘 하면 금빛 황혼 기사단장을 잡다가 지옥으로 끌려올 수 있단 말인가.
악마들의 성소 DLC는 미완성된 소환진이 오작동하면서 악마 숭배자들을 처리하고 있던 플레이어가 거기에 휘말려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부터 시작된다.
금빛 황혼 기사단장을 잡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뭐가 원인인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무엇인가가 영향을 줬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텐데, 그게 대체 뭔지가 오리무중이었다.
내가 아는 게임의 스토리와는 엇나가도 한참을 엇나가버렸으니 원인을 추측하기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지옥이라…….”
카이킬리아가 조소했다.
“여의 생각도 동일하다. 이 끔찍한 풍경이 지옥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느냐.”
끔찍한 풍경이라는 표현엔 나도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인간의 해골로 이루어진 언덕과, 인간의 피로 이루어진 강과, 인간이 꽂혀 장식된 나무 막대기까지 있는데 저게 끔찍한 풍경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칠흑 성야 기사단장…… 쯧, 일일이 그렇게 호칭하기엔 너무 길구나. 이제부터는 델타라고 부르겠다.”
“예. 말씀하십시오, 폐하.”
날 칠흑 성야 기사단장이라고 부르려다 작게 혀를 찬 카이킬리아가 호칭을 바꿨다. 이제 저 심해도시에서 드릴을 들고 다녀야 할 것 같은 이름에도 완전히 익숙해진 참이었다.
“빠져나갈 길, 혹은 그에 준하는 방법을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빠져나가기 전에 처리해야 할 것이 조금 많긴 합니다만. 제가 알기로는 이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여기까지 끌려와서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고, 카이킬리아도 내가 당연히 알 거라고 확신하는 분위기였기에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빠져나가는 길이야 당연히 알고 있다. 그게 이곳의 최종 보스를 때려잡고 탈출하는 방법이라 그렇지. 조각상으로 빠른 이동을 못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진행을 더 수월하게 하려면 카이킬리아를 전면에 내세워야 하기도 하고. 경험치를 좀 포기하더라도 카이킬리아가 처리하도록 맡겨두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그리하면 됐다. 설명을 더 할 필요는 없느니라.”
대답을 들은 카이킬리아가 성검을 다시 치켜들었다.
“방법으로 안내하면 되겠습니까?”
“방법으로 안내하다니, 신하 된 몸으로 섬기는 이의 마음을 그토록 모른단 말이냐. 참으로 불충한 신하이도다.”
그 얼굴에 어렴풋한 미소가 걸렸다. 기쁨으로 가득 찬 미소이면서, 소름끼치도록 살벌한 기운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여는 이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느니라. 내 손으로 저것들을 영구히 소멸시킬 기회일진데, 왜 벌써 빠져나갈 길을 모색하여야 하느냐?”
“…….”
갑자기 왜 저러는가 했더니만.
나는 살벌하리만치 기쁨으로 가득 찬 미소를 짓는 카이킬리아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목적지를 결정했다.
“폐하, 그렇다면 다른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다른 길?”
“예. 아무리 폐하라 하더라도, 악마를 척살하는 중간중간 휴식은 필요할 것입니다. 저희를 도와줄 사람이 있는 장소를 압니다.”
사실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좀 애매하긴 하다만, 여기서 유일하게 적대적이지 않은 NPC인지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게임에서야 조각상에서 쉴 수 있지만, 지금은 그게 안 되니까 말이다. 최소한의 휴식을 취할 공간은 있어야 한다.
“지금 인간이라고 하였느냐? 이 지옥에?”
그 목소리에 의문이 살짝 깃들었다. 그럴만 했다. 지옥에 멀쩡한 인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의문일 테니까.
“도착하신다면 납득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나 성검이 반응한다 해도, 내가 카이킬리아를 말리는 동안 대화를 몇 번 나누고 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황궁의 회의실에는 섬뜩하리만치 조용했다. 이런 숨막힐 듯한 분위기가 어느덧 달이 떠오른 밤하늘과 합쳐져, 가뜩이나 침울한 분위기를 바닥까지 끌어내리고 있었다.
침묵이 깔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작게 한숨을 내쉰 미네르바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태양의 교황은 좀 어떠하니?”
“……심신이 많이 안정되었다 합니다. 지금은 신께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루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답했다.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을 준비시킨 루나가 황궁에 도착했을 땐, 플로레타는 그야말로 미치기 일보 직전인 모습이었다.
동생이 저토록 마음을 흐트러뜨린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루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플로레타를 말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쩌적 얼어붙었다.
옆에서 플로레타를 뜯어말리던 미네르바가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주었고, 루나는 설명을 전해들은 그 즉시 태양과 달을 향해 기도를 올려 귀빈이 멀쩡히 살아있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그렇게 태양과 달께서 귀빈의 생존을 확답하셨다고 몇 번이나 외친 후에야 간신히 플로레타의 광증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광증이 가라앉자 이번에는 펑펑 울기 시작한 플로레타를 어르고 달래어 겨우겨우 진정시킨 뒤, 태양의 대성당으로 옮겨주고 다시 황궁으로 돌아온 루나는 한층 더 자세한 자초지종을 요구했다.
모든 설명을 전달받고 루나가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은, 그런 반응을 보일만 했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태였기에 도의적으로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테지만,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귀빈을 지키지 못했단 사실은 플로레타를 죄책감에 짓눌리도록 만들기 충분했을 테니까.
그리고, 만약 루나가 플로레타의 자리에 있었더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일단, 카이킬리아의 일은 당분간 내가 맡기로 했단다. 황제가 실종되었다는 말이 퍼져나가서 좋을 것은 없잖니. 다른 사람들의 기억도 모두 지워두었으니 걱정하지 말려무나.”
“알겠습니다. 현명하신 선택이십니다, 영원의 마법사시여.”
델타와 카이킬리아 둘 모두 멀쩡히 살아있다고 하니, 여기서 돌아올 때만을 기다리면 된다.
그 ‘돌아올 때’라는게 언제이느냐가 문제일 뿐.
짤막한 대화를 끝낸 미네르바와 루나는 입을 다물었다. 또다시 회의실에 침묵이 감돌기 직전, 누군가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교황 성하.”
리제였다.
“말씀하십시오, 은빛 여명 기사단의 기사단장이여.”
“델타랑 황제 폐하께서 아직 살아있다고 하셨는데, 혹시 어디에 계시는지도 알 수 있을까요?”
루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아주 간절했다. 그리고 그건 나머지 3명의 기사단장들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넷 모두 충격이 아주 컸다.
“그것은 알지 못합니다.”
루나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신께 전달받은 정보는 단지 델타와 카이킬리아가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것 뿐. 그 이외의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차라리 언제나처럼 모호한 말이라도 해주신다면 좋으련만, 델타의 생존 여부에 대해서는 묻자마자 ‘멀쩡히 살아있다’라고 확답을 내려준 반면 나머지 질문에 대해서는 그런 것조차 없었다.
이런 경우는 루나로서도 처음이었다.
당황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했다. 귀빈과 얽힐 때마다 처음 겪는 일이 마구 생겨나니, 가슴 깊은 곳에서 귀빈을 향한 확신이 점점 더 깊어진다는 걸 또렷이 느낄 수 있을만큼.
“……알겠습니다.”
리제가 힘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덩달아 같이 고개를 떨구던 아이리스를 향해, 미네르바가 질문을 던졌다.
“아이리스, 그 아이에게도 소식을 전해주었니?”
“예. 건네주신 순간이동 스크롤을 동봉하여 서신을 보냈습니다. 최우선순위 직인을 찍어놓았으니 지금쯤 영지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미네르바가 말한 그 아이란 아우로라였다. 미네르바 자신이 델타를 이곳으로 데려왔기에, 아우로라 역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반응은 아마 예상대로이리라.
“……귀빈이라면, 분명 돌아와주실 것입니다.”
루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중얼거림이 이곳의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인지, 자기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ㅡ끼에에엑…….
악마가 맥빠진 소리를 내며 고개를 떨궜다. 곧이어, 찬란한 태양빛을 머금은 칼날이 그 머리를 정확히 반으로 쪼개버렸다. 절단면에서 검붉은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정확히 명치 부근부터 시작해 정수리까지 세로로 반토막이 나버린 악마의 시체는, 잠시 허공을 허우적거리다 뒤로 넘어갔다. 쿵, 하며 바싹 마른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성검을 갈무리한 카이킬리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얼굴에는 활짝 웃다시피 하는 상쾌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런 미소를 짓는 카이킬리아는 처음 봤다.
“이놈이 마지막이더냐?”
이제는 더 이상 덤벼드는 놈이 없었다.
“……그런 듯합니다, 폐하.”
카이킬리아와 내가 지나온 길에는,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악마의 시체로 이루어진 작은 언덕이 쌓여 있었다. 아직 굳지 않은 절단면에서 검붉은 피가 작은 시냇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내가 처리한 것도 스무 마리쯤 있긴 한데, 절대다수는 카이킬리아에게 당한 놈들의 시체였다.
조심해야 할 패턴 몇 개만 알려주니 카이킬리아 혼자서 모조리 다 썰어버렸다. 악마를 죽이면 죽일수록 화사해지는 미소는 덤이었다. 그 황제가 저런 밝은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싶었다.
뭐, 밝은 표정이래봤자 함박웃음까진 아니다. 그저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가고 눈매가 살짝 부드러워진 정도지만, 평소의 고압적인 얼굴에 비하면 천지가 개벽할만한 변화였다.
‘악마가 불쌍하긴 처음이네.’
게임에서야 따로 사기가 구현되어 있지 않으니 동료가 얼마나 죽어나가든 꾸역꾸역 덤빈다. 하지만 여기서는 동료가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하자 도망을 택한 악마도 제법 됐었다.
물론 카이킬리아가 끝까지 쫓아가서 다 죽여버렸다.
몇몇 놈들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구경중이던 나한테 달려들기도 했으나, 대충 20마리쯤 썰고 나니 더 이상 아무도 덤벼들지 않았다.
“다 왔습니다. 저곳입니다.”
덕분에 남은 여정은 편했다. 남은 여정이래봐야 걸어서 1분 남짓한 거리였긴 해도.
나는 골짜기의 으슥한 곳 중에서도 제일 작은 틈을 가리켰다. 그 사이에는 최대한 주변에 녹아드는 형태로 지어진 집이 있었다.
“알았느니라.”
카이킬리아는 망설임 없이 내가 가리킨 집을 향해 걸어갔다. 저곳에 누가 살고 있냐든가 하는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나를 향한 신뢰가 굉장히 확고하게 다져진 듯했다.
게임에서 보던 것과 똑같지만 조금 더 큰, 말라 비틀어진 나무로 이루어진 1층집 앞에 섰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ㅡ벌컥!
몇 초 만에, 누군가 급하게 문을 열어젖히며 튀어나왔다.
“너 미쳤어? 악마가 들으면 어쩌…… 려고…….”
안에서 튀어나온 누군가는 날 향해 호통을 치려다가, 우리가 지나온 길에 있는 악마의 시체로 이루어진 언덕을 보고 할 말을 잃었는지 멍하니 굳어버렸다.
‘여자네.’
집주인은 당연히 여자였다.
포니테일로 한데 묶여서 발목까지 내려오는 갈색의 긴 머리카락에, 태닝이라도 한 것처럼 보기 좋게 그을린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가진 여자.
옷으로 면적이 상당히 작은 노란색 비키니를 입고 있는데다 가슴의 크기도 상당했지만, 이젠 비키니 따위로는 별 자극도 안 됐다.
저런 옷차림에 일일이 반응하기에는 역치가 너무 높아졌다.
“그 악마들, 전부 다 저 꼴 났습니다.”
“어…… 어어…… 그렇네.”
“안으로 들어가도 되죠?”
“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여자는, 내 요구에 반사적으로 길을 비켜주었다. 자기가 비켜주고도 자기가 놀랐는지, 가뜩이나 동그랬던 눈이 완벽한 구형으로 변했다.
나는 옆으로 살짝 물러나서 카이킬리아에게 들어가도 좋다는 눈짓을 보냈다. 카이킬리아가 당당히 집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내가 그 다음이었다.
바깥에 산처럼 쌓인 악마들의 시체와 당당히 집 안으로 들어온 우리 둘의 모습을 번갈아 쳐다보던 여자가,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