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199)
r 199 – 지옥 – 2
ㅡ스릉!
“히, 히익?!”
그리고, 카이킬리아는 구릿빛 피부의 여자가 뒤를 돌자마자 그 목젖에 성검을 겨누었다. 자신의 목에 겨누어진, 찬란한 황금색 빛을 내뿜는 검을 본 여자가 기겁하며 양손을 들었다.
“설명하여라, 델타.”
카이킬리아가 여자의 목젖에 칼을 겨눈 자세 그대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이 여자에게 성검이 반응하는 것이냐?”
그 말대로였다.
성검은 아주 조금이지만 평소보다 더 진하게 빛나고 있었다.
“……성검?”
“여는 네년에게 묻지 않았다. 입을 열라고도 허락하지 않았다. 한 번만 더 여의 허락없이 혀를 놀리거나 몸을 움직인다면, 그 뒷감당은 오롯이 네년이 져야 할 것이다.”
구릿빛 피부의 여자는 성검이라는 말에 잠시 반응했다가, 카이킬리아의 살벌한 읊조림에 얌전히 입을 다물고선 눈동자만을 데굴데굴 굴렸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끌어봐야 좋을 게 없었다. 혹시나 이럴까 싶어 미리 설명을 생각해두길 잘했다. 서둘러 여자와 카이킬리아의 사이로 들어가 성검의 칼날 옆면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그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이킬리아는, 순순히 내 손짓대로 성검을 치웠다. 정확히 목젖을 가리키고 있던 칼 끝이 허공으로 비껴나갔다.
물론 의심을 완전히 떨쳐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칼 끝을 밑으로 내린 정도였다. 의심을 완전히 풀었다면 성검을 역소환했을 것이다.
“저 여자를 감싸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필시 그러는 연유가 있을 터. 말하여라. 성검이 반응하는 여자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어야 할 이유를.”
가슴 밑에서 팔짱을 낀 카이킬리아가 근처 식탁에 엉덩이를 살짝 붙이고 다리를 꼬았다.
여전히 무척 고압적인 태도였지만, 그래도 자기 내키는대로 일을 저지르지 않고 말을 들어준다는 것부터 장족의 발전이었다. 예전이었으면 상상도 못했을 행동이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성검이 반응하는 종류와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르다?”
“예, 폐하. 폐하께서도 알고 계신 사실일 테지만, 성검이 반응하는 것들은 어떤 부류입니까?”
카이킬리아는 뭐 그런 당연한 걸 묻고 있냐는 눈빛을 하면서도, 순순히 대답을 내놓았다.
“악마. 그리고 그따위 것을 믿는 머저리들이 아니겠느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뒤에 계신 이 사람은…… 그러니까, 이름이 뭐죠?”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아직도 당황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얼굴로 나와 카이킬리아를 번갈아 두리번거리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마르가리타. 마르가리타라고 부르면 돼.”
“알겠습니다. 마르가리타 씨는 악마라든가 악마 숭배자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마르가리타 씨에게 성검이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히 악마의 시체를 먹으며 버텨왔기 때문이니까요.”
악마의 시체를 먹었다. 남들에게는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는지, 내가 그 사실을 언급하자마자 마르가리타가 몸을 흠칫거렸다. 눈동자가 쉴 새 없이 떨렸다.
비밀을 내 멋대로 까발려서 미안하긴 하지만, 카이킬리아한테 어설프게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나는 것보단 훨씬 낫다. 그랬다가 들키면 어떻게 될지는 뻔하니까.
“지금 무엇이라 하였느냐. 여가 정녕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느냐, 델타?”
그 충격적인 고백에, 카이킬리아조차도 상당히 크게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 어찌 감히 폐하께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입니다.”
“……그 상상만 해도 역겨운 것을 잘도 입 안에 넣었구나.”
눈살을 있는 대로 찌푸린 카이킬리아는, 역겨운 것과 별개로 성검이 반응하는 이유를 납득하긴 했는지 성검을 역소환했다. 손에 들려 있던 황금색 빛무리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등 뒤에서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자, 잠깐만. 그런데 넌 그런 걸 어떻게 다 알고 있는 거야? 우리 오늘 처음 본 사이잖아?”
충격과 안도가 사그라들자 그제서야 당황이 시작된 듯, 마르가리타의 손이 다급히 내 어깨를 붙잡았다.
나는 웃음으로 답했고, 카이킬리아가 작게 혀를 차며 나를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포기하거라. 여의 신하이나, 여조차 그 속마음을 모두 알지 못하는 사내다. 허나 저럴지라도 이제껏 틀린 선택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니, 그저 믿고 따르는 것으로 족하느니라.”
방금 카이킬리아의 말을 듣고 속으로 살짝 감탄했다.
속마음을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그저 믿고 따르면 된다니, 그 자존심 높고 오만하며 고압적이기 짝이 없는 카이킬리아가 한 말이라곤 도무지 믿기 힘들 만큼 강한 신뢰가 담긴 말이었다.
나를 정말 어지간히 신뢰하지 않고서야 저런 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여태껏 해온 일이 효과가 있었구나 싶어 제법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뭐,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면 뭐가 중요한데…….”
카이킬리아의 지원사격을 등에 업은 내가 구렁이 담 넘듯 질문을 넘겨버리자, 마르가리타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선 궁시렁거렸다.
“중요한 것은 마르가리타 씨 당신이 지옥에 갇혀버렸고, 그것 때문에 반쯤 자포자기한 채로 악마의 시체에 손을 댔었다는 사실이죠.”
“…….”
“제 말이 틀렸습니까?”
한동안 끙끙대며 고민하던 마르가리타는, 내가 이렇게까지 알고 있는 이상 더 숨겨봤자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네가 말한 그대로야. 내가 여기 갇혔다는 것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놈들의 시체에 손을 댔다는 것도.”
결국 마르가리타의 입에서 긍정의 의미를 담은 말이 튀어나왔다.
“숨기는 게 무의미한 것 같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어디까지 알고 있어?”
“알아야 하는 정보라면 모두요.”
마르가리타는 아주 먼 옛날에 여기 갇혀버린 전 성기사였다. 아마 설정상의 나이가 영원의 마법사랑 비슷하다던가.
평범한 성기사 주제에 그토록 오래 살아있을 수 있는 건 지옥의 특성 때문에 그렇다. 지옥으로 끌려온 인간을 최대한 오래 써먹어야 하니, 인간은 지옥에서 나이를 먹지 않는 저주가 걸린다.
그리고 마르가리타 역시 플레이어와 비슷하게 악마 숭배자들의 소환에 휩쓸린 케이스였다. 악마 숭배자들을 토벌하러 갔다가 함정에 걸려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다.
동료들은 모두 악마의 생체 배터리 신세가 되었지만, 마르가리타는 혼자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도망은 쳤지만 아무리 성기사라도 지옥에 있는 악마들을 모두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렇기에 서열 경쟁에서 밀려 처치당한 악마들의 시체에 손을 대며 연명해왔다.
악마도 자기네끼리 더럽게 많이 싸운다. 공식 설정이 그랬다. 물론 1순위는 인간이긴 한데, 인간 사냥이 없을때는 상호 포식을 하며 지옥을 지옥처럼 만든다고 말이다.
왕이 있다고 해서 안 싸우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오히려 악마들의 왕은 그런 혼란과 혼돈을 장려하는 편이라고 했던가.
“…….”
나는 이 내용을 짤막하게 요악해서 들려주었다. 카이킬리아와 마르가리타는 얌전히 내 말을 듣고만 있었다. 이런 걸 어떻게 알고 있냐? 라는 의문이 물씬 떠오른 얼굴이었다.
별 상관은 안 썼다. 어차피 카이킬리아는 내가 뭘 하든 그럴 수 있다면서 그러려니 넘기는 분위기였고, 마르가리타는 방금 내 정체를 물어봤다가 한번 까였으니 당분간은 궁금해도 꾹 참을 거다.
무엇보다, 성검의 소유자가 내 정체를 긍정해주고 있다. 인간은 거짓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성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건 성기사인 마르가리타가 더 잘 알겠지.
“비위도 좋구나. 저딴 것을 뜯어먹으려고 생각했다니.”
눈살을 잔뜩 찌푸린 카이킬리아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솔직히 나도 상상이 잘 안 가긴 했다. 원작에서는 이런 암울한 설정답게 수염과 머리카락이 얼굴을 죄다 가려버릴 만큼 덥수룩히 자랐고, 옷도 죄다 헤져버려서 꼬질거리는 노인이었는데.
여기서는 시원시원한 라틴계 미녀처럼 생겼으니까.
‘……그런데 여기선 안 먹어도 굶어죽는 일은 없다지 않았나?’
일단 하나같이 기계적으로 식사를 챙겨먹긴 하던데,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하는 제안입니다, 마르가리타 씨.”
지금부터 본론으로 안 들어가면 나는 대뜸 남의 집에 쳐들어와선 치부나 들춰대는 미친놈으로 보일 테니, 나는 서둘러 다음 말로 넘어갔다.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 말에, 마르가리타의 얼굴이 퍼뜩 들렸다.
“당연히 빠져나가고 싶지. 나라고 여기서 꾸역꾸역 악마 시체나 처먹으면서 살고 싶은 줄 알아? 그런 역겨운 거나 뜯어먹으면서, 살아도 사는게 아닌 것처럼 있고 싶은 줄 아냐고.”
하지만, 들렸던 고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힘없이 떨궈졌다.
“그런데, 방법이 없잖아. 방법이…….”
“방법이 왜 없어요? 그쪽이 직접 고안해놓고선.”
“…….”
잠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하니 서 있던 마르가리타는, 몇 초가 흐르고 나서야 경악으로 가득 찬 눈을 했다.
“어, 어떻게 그것까지…….”
“이론 검증도 모두 마쳤고 이것저것 재료 모아서 어떻게든 만들어두긴 했는데, 작동에 필요한 핵심 재료를 못 구해서 그대로 방치해뒀죠. 그렇지 않습니까?”
“아, 아니…….”
마르가리타가 어버버거렸다.
방금 내가 언급한 것이 마르가리타의 서브 퀘스트였다. 탈출에 필요한 재료들을 전부 모아서 갖다주기. 그러면 마르가리타를 지옥에서 탈출시킬 수 있었다.
이 서브 퀘스트랑 연계되는 성국 쪽 서브 퀘스트도 있긴 한데, 그건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고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구해드리겠습니다.”
“……뭐?”
“그 재료들, 저희가 전부 다 구해드리겠다고요. 대신, 일회용 아닌 것도 다 아니까 나중에 같이 쓰게만 해주시면 됩니다. 저희도 여길 빨리 나가야 하는 건 똑같아서 말이죠.”
게임에서도 마르가리타는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탈출 이후에 원한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플레이어에게 건네주기까지 하니, 카이킬리아와 내가 사용한다고 해서 딱히 문제는 없을 것이다.
원래는 최종 보스를 때려잡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이쪽이 더 빠르게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저걸 받는다고 해서 플레이어가 쓸 수 있는게 아니라 이것과 연계되는 성국의 서브 퀘스트에 쓰이니, 여기서도 못 쓸거라고 잠시 착각했다.
“그, 잠시, 잠시만…….”
마르가리타는 굉장히 당황한 듯 말까지 더듬으며 허둥거리고 있었다.
뭐, 내가 들었어도 충분히 저런 반응을 보일법한 소리였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굳이 여기서 말로만 떠들고 있을 필요는 없죠. 직접 증명해드리겠습니다. 황제 폐하?”
“듣고 있느니라.”
“아까 죽였던 걸로는 아직 모자라지 않으십니까?”
이런 내 말에, 카이킬리아가 나와 눈을 마주하며 고압적인 미소를 지었다.
“말해 무엇하겠느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