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돌로 된 천장이었다. 바닥에서 등으로 습기와 냉기가 동시에 스며들어왔다. 팔에 오소소 돋은 소름을 가라앉히며 몸을 일으켰다.
나는 사방이 돌로 이루어진 어느 감옥 안에 있었다.
그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에, 머리가 빠르게 상황 파악을 끝냈다. 도저히 모를 수가 없는 공간이었고, 몰라서도 안 되는 공간이었다.
‘어이가 없네.’
머릿속에 브닼 5편의 베타테스터 신청 링크를 클릭했다가 환한 빛무리와 함께 모니터 속으로 빨려들어가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게 현실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제일 첫 번째로 든 감정은 어이없음이었다. 이 미친것들이 이제는 하다못해 게임 신작의 베타 테스터에 당첨됐다는 낚시까지 해가면서 사람들을 빙의시키고 있었다.
굳이 내가 아니었더라도, 브닼 4를 좀 했다 싶은 놈이라면 누구든지 성대하게 낚였을 트랩이 분명했다. 이 정도 창의력은 돼야 사람들을 빙의시키고 다니는건가 싶었다.
다음으로 떠오른 감정은 후회였다.
‘내가 미쳤지. 왜 적 강화모드 세계 1등 클리어 같은 걸 해가지고.’
그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이던가.
혼자서만 끝까지 따라갔던 소설에 빙의되거나, 자기 작품을 유일하게 끝까지 따라와준 독자가 작가를 빙의시키는거라면 차라리 근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세상은 안 본 소설에도 빙의되고, 찍먹만 해본 소설에도 빙의되고, 댓글을 안 달아도 빙의되고, 표지만 봐도 빙의되고, 작품을 걸러도 빙의되고, 소설을 까다가 빙의되고, 작가를 까다가 빙의되고, 한 번 끌려갔다 돌아왔는데 또 빙의되는, 아주 흉흉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플레이타임 3만 시간을 찍은 고인물이다? 인간으로 실적 올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어느 무시무시한 존재들에게 눈독들리기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미 저질러버렸고, 실제로 눈도장이 찍혀서 여기로 끌려들어왔는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이 너무 차가워서 맨몸으로는 더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이곳 튜토리얼 지역의 첫 이벤트가 시작되기도 할거고.
머릿속에 자동적으로 계획이 착착 떠올랐다. 이미 수천 번도 더 지나쳐본 구간이었다. 여기서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해야 할지는 훤히 다 꿰고 있었다.
ㅡ살려줘! 아아아악!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저만치에서 사람들이 도망치는 발소리와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시작됐다.’
심호흡을 하고, 감옥의 쇠창살에서 제일 떨어진 벽에 자리를 잡았다. 쇠창살 바깥에서는 사람들이 자기네들끼리 밀고 밀리며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죄수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쇠창살에 다가와선 바깥 동향을 기웃거렸다. 사람들이 단체로 죽어라 도망치고 있으니, 밖에서 대체 무슨 일이 생긴건가 싶을 것이다.
ㅡ쿵…… 쿵……
저만치에서 땅이 조금씩 울렸다. 땅울림이 점점 더 가까워지자, 죄수들은 도통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을 하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마침내 쿵쿵거리는 땅울림이 바로 옆에서 느껴지고, 쇠창살에 얼굴을 붙여 밖을 살피던 죄수 하나가 무언가를 확인한 듯 혼비백산하며 주저앉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ㅡ쿠오오오오오!
왼쪽 복도 너머에서,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은 좌우로 엄청나게 뚱뚱해 복도를 거의 가득 채울 지경이었고, 흉측하게 일그러진 비늘이 전신의 피부를 뒤덮었다.
다리와 허벅지가 어지간한 사람의 몸통보다도 훨씬 더 두꺼웠지만, 몸통이 그 이상으로 뚱뚱했기에 역으로 균형이 맞는 것처럼 보였다.
팔은 다리의 절반도 안 될 만큼 짧았다. 그런 주제에 한 손에는 거의 자기 키만한 크기의 나무 곤봉을 들고 있었다. 곤봉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얼굴은 일그러질대로 일그러졌고, 거의 귀밑까지 찢어진 입에는 정돈되지 못한 이빨이 밖으로 삐죽삐죽하게 튀어나왔다.
튜토리얼 지역의 보스, 인간 도살자였다.
놈의 모습을 본 맞은편 감옥의 죄수들이 감옥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러댔다. 그 소리에 어그로가 끌렸는지, 인간 도살자는 내 쪽으로 오려다 말고 맞은편 감옥을 향했다.
육중하기 짝이 없는 몸이 쇠창살을 무슨 엿가락처럼 휘며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처절한 비명과 함께 인간의 몸이 으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감옥 벽에 온통 피가 튀었다. 여기까지도 전부 다 게임대로였다. 그렇게까지 뛰어난 편이 아니었던 브닼 4의 그래픽에 비해, 으깨진 살점이 너무 선명해서 속이 좀 메슥거리기는 했지만.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죄수들을 말 그대로 도살해버린 인간 도살자가 감옥 밖으로 걸어나왔다. 말라붙은 피 위로 덧씌워진 신선한 피가 곤봉에서 뚝뚝 흘러내렸다.
이제 다음 목표는 나였다. 그 육중한 몸뚱아리가 쿵쿵거리며 다시 움직였다. 감옥 문의 쇠창살은 단 1초도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휘어졌다.
감옥 안에 몸을 반쯤 들이민 인간 도살자가 다음 발자국을 내딛으며 나를 향해 둔기를 든 팔을 치켜올렸다.
ㅡ쩌저저적!
팔이 내리쳐지기 직전, 발을 내딛은 자리에서부터 커다란 균열이 생기며 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놈은 깜짝 놀라선 곤봉을 내리치려다 말고 뒤로 다시 물러났다.
하지만 균열은 멈추지 않고 이어져서는, 곧이어 감옥 바닥 전체가 쩍쩍 갈라졌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듯이 위태로운 광경이었다.
‘이제 시작이다.’
인간 도살자는 내가 떨어져 죽으리라 여겼는지 콧김을 한번 킁 내뿜더니 몸을 돌렸다. 이 뒤에 무너지는 바닥이랑 같이 추락하리라는 건 사실이었다.
대신 죽지는 않겠지만.
나는 눈을 감으며 충격에 대비했다. 바닥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에 달했고, 제 무게를 못이겨 와르르 무너졌다. 동시에 내 몸도 무너지는 돌더미와 함께 지하 깊은 곳으로 추락했다.
“쿨럭, 쿨럭.”
흙먼지를 제대로 들이마신 탓에 기침이 터져나왔다.
팔을 들어 바로 앞에 놓인 돌 하나를 밀어버리고, 몸 위에 한가득 쌓인 돌무더기를 이리저리 치웠다. 그 짓을 한참동안 반복하고 나서야 간신히 밖으로 기어나올 수 있었다.
내가 떨어진 곳은 감옥의 최하층이었다.
여기서부터가 브닼 4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기로 추락하기 전에, 위쪽 감옥에서 있었던 일은 게임으로 치면 인트로 수준밖에 안 됐다.
몸을 대충 추스르고 휘어진 쇠창살을 통해 감옥을 빠져나왔다. 사방이 고요했다. 정말로 내가 게임에서 보던 풍경 그대로였다.
이걸 내가 직접 겪게 될 줄은 정말로 상상도 못했는데. 복잡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과거 행적은 뭐로 골라졌으려나.’
몸을 내려다보았다. 당랑 치부 가리개 하나만 걸친, 상당한 근육질의 몸. 애석하게도 과거 행적과 체형은 별개였기에 이걸로 추측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여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어차피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 생각하고 있어봐야 의미 없겠지.’
근처의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이 계단만 올라서면 튜토리얼 지역의 잡몹들과 처음으로 전투가 벌어지는 동시에, 플레이어가 과거 행적을 무엇으로 선택했는지 확인이 가능했다.
층계참 앞에 놓인 조잡한 나무 곤봉을 집어들고, 최대한 발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스레 계단을 오르며 위층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졌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계단에서 발소리를 내지 않고 걸어서 이동할 경우, 중간쯤에 이르러 적들의 대화를 듣게 된다. 전리품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지 다투는 대화였다.
갑옷과 롱소드, 방패를 언급하면 과거 행적이 기사고, 단검과 마법 스크롤을 언급하면 과거 행적이 도적이고, 지팡이와 로브를 언급하면 과거 행적이 마법사. 뭐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면, 그건 플레이어 캐릭터의 과거 행적이 ‘버려진 자’라는 의미였다. 그걸 깨닫자 속에서 울컥 하는 감정이 잠시 치밀었다.
‘고를 수 있는 과거 행적이 10개나 되는데 하필이면 그거냐.’
버려진 자는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는 과거 행적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약한 캐릭터였다. 레벨은 1로 시작하는데다, 모든 스탯도 1이고, 아이템이나 무기, 방어구 중 그 어떤 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스탯이 1인 탓에 PvP 적정 레벨대에서는 스탯 효율이 제일 좋은 캐릭터이긴 했지만, 그게 장점의 전부였다.
게다가 거기까지 도달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체력도 낮고, 스태미너도 쓰레기고, 공격력도 개판이고, 가진 아이템도, 입은 방어구도 없으니까.
흔히 말하는, 고인물이 자체 하드모드를 원할 때 선택하는 과거 행적이 바로 버려진 자라고 할 수 있었다.
게임에서야 과거 행적으로 버려진 자를 골라도 무한 리트로 깨면 그만이지만, 지금의 나는 게임 속으로 빨려들어온 상황이었다. 죽고나서 다시 부활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고 곤봉을 집어들었다. 뭐가 됐든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 나무 곤봉을 힘주어 움켜쥐면서 계단을 천천히 걸어올라갔다. 윗층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과거 행적을 보여주는 물품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 조잡한 옷을 차려입은 죄수들이 각목을 들고 그 옆에서 아무렇게나 어슬렁거렸다.
게임에서 지겹도록 보던 풍경과 똑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 역시도 게임에서 지겹도록 하던 일과 똑같을 것이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윗층으로 올라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