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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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찾아온 거 맞지?’
드디어 게임에서 지겹도록 보던 익숙한 풍경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속으로 안도했다. 중간에 혹시나 방향을 잘못 든게 아닌가 싶었는데, 제대로 찾아와서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단어 그대로 이틀 밤을 꼬박 새서 달리고 나서야 간신히 목 없는 철갑 기병의 보스필드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게임에서는 말 타고 10분 안팎이면 충분했었건만.
이틀을 내리 달리고도 어째 그 위에 타고 있던 나보다도 쌩쌩해보이는 말을 근처 나무에 묶어둔 뒤, 안장에서 보스전 공략에 필요한 물품들을 꺼내들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좋아. 다 있네.’
그 숫자를 확인하고 허리춤의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게 목 없는 철갑 기병 공략의 핵심 물품이었다. 빗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비슷한 무게와 크기를 가진 돌로 투척 연습까지 했다.
이게 빗나가서 기믹 파훼에 실패하는 순간, 목 없는 철갑 기병 클리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도 좋았다.
당연히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고, 그 어떤 실수도 없다는 전제조건 하에 20시간 좀 넘게 집중하면 그럭저럭 깰 수는 있었다.
말 그대로 가능만 하다는거다. 그런건 사람이 할 짓이 못 됐다.
ㅡ쿠에에엑!
근처에서 돼지 멱을 따는듯한 괴성이 들리는 걸 확인하고 피 묻은 검을 빼들었다. 보스 필드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잡몹들이 내는 소리였다.
길을 따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저 멀리에서 말라 비틀어진 멧돼지를 중형견 정도의 사이즈로 축소시켜 놓은듯한 마물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철갑 기병 보스전을 치르러 가는 길에 처치해야 하는 잡몹은 총 8마리. 모두 같은 종류였고, 잡몹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패턴이래봤자 달려와서 몸통 박치기와 물어뜯기 2개가 끝인 놈들이다.
정신만 제대로 챙기고 있다면 공격을 맞아주기가 더 힘들었다.
거리를 조절하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여섯 발자국을 더 내딛은 시점에서 다리를 멈췄다. 제일 가까이에 있던 녀석이 나를 보고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그 뒤에 줄줄이 늘어선 다른 놈들은 자기 할 일을 하기 바빴다. 분명 내가 눈으로 확인될 거리일텐데도 저러는 걸 보면 게임의 인식 시스템이 그대로 적용된 모양이었다.
‘나한테는 잘된 일이지.’
어느정도로 다가가야 한 명씩만 꾀어낼 수 있는지는 머릿속에 다 들어있으니까 말이다.
브닼 4의 전투 시스템 상, 어지간한 보스와의 1대1보다 길거리 잡몹들 다수와의 전투가 훨씬 더 힘들었다. 닼라 모드는 말할 것도 없이 둘 다 개빡셌고.
그러니, 최대한 1대1 전투를 노리는 것이 핵심이었다. 한 번에 하나씩. 모든 브닼 시리즈에서 통하는 불변의 진리다.
나를 인식한 멧돼지 마물은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나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풀쩍 점프해선 입을 쩍 벌리고 이빨을 드러냈다. 물어뜯기 패턴이었다.
이빨을 향해 피 묻은 검을 휘둘렀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뒤로 살짝 튕겨나갔다. 그 틈을 타 재빨리 아래턱에 검을 찔러넣었다.
칼날이 말라비틀어진 살덩이를 파고드는 감각과 함께, 아래턱으로 꽂혀들어간 칼 끝이 정수리에서 튀어나왔다. 발버둥은 순식간에 멎었다.
검을 뽑아들었지만 아무런 액체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게임이었으면 경험치가 얼마나 들어왔는지를 HUD에 표시해줬을텐데. 그게 없으니 제대로 해낸 게 맞나 싶었다.
뭐, 머리가 꿰뚫렸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걸 보면 죽었을 것이다. 게임에서도 튕겨내기 후 평타 한 번에 죽었으니까.
“다음.”
앞으로 몇 발자국 더 나아갔다. 저만치에 있던 말라비틀어진 멧돼지 하나가 또다시 내 모습에 반응해 쿵쿵거리며 달려왔다.
브닼 시리즈의 핵심 전투 요소를 짚어보라고 한다면, ‘전투 피로’라고 불리는 사실상 제2의 체력이나 다름없는 개념을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전투 피로는 공격을 방어할 때와 튕겨낼 때, 공격을 맞을 때, 그리고 구를 때 일정량씩 쌓이는 개념인데, 어떻게 보면 이 전투 피로의 관리가 체력의 관리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전투 피로 게이지가 가득 찬 상태에서 적에게 피격당하거나 공격을 제대로 튕겨내지 못한다면 게이지가 초기화되며 캐릭터가 2초간 무력화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무력화 상태에서는 캐릭터가 회복되기 전까지 아무런 조작을 할 수 없고, 모든 대미지를 1.5배로 받는다. 바닐라에서조차도 보스전에서라면 게이지가 일단 터지는 순간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다키스트 라이트 모드에서는 그걸로도 모자라 무력화 상태의 지속시간이 4초로 늘어나고 받는 피해 증폭량도 1.5배가 아닌 2배가 된다. 그냥 죽으라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튕겨내기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적의 공격을 제대로 튕겨내기만 한다면, 전투 피로 게이지가 끝까지 쌓이더라도 절대로 터지지 않고 가득 찬 상태를 유지하니까 말이다.
물론 적들 역시 전투 피로 게이지가 있다. 그걸 꽉 채우는 것이 ‘패링’이라는 특수 공격을 시전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그리고, 이 목 없는 철갑 기병은 괴물형 적임에도 유일하게 패링을 시도할 수 있는 보스였다.
ㅡ푸르르륵!
전신을 철갑으로 둘둘 감싸 중무장을 한 말이 날 보며 투레질을 했다. 그 위에 탄, 어깨 위로 아무것도 없고 마찬가지로 철갑으로 중무장한 기수가 위협하듯 창을 빙빙 돌렸다.
왜 이 보스의 이름이 ‘목 없는 철갑 기병’인지 아주 잘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가뜩이나 일반적인 말에 비해 어깨높이가 족히 두 배는 되어보이는데, 무식한 두께의 철갑까지 전신에 두르고 있으니 위압감이 어마어마했다.
정말로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단순히 주변을 뛰어다닐 뿐인데 땅이 엄청나게 진동해댈 정도였다.
ㅡ히히히히히히힝!!!!!!
말이 앞발을 위로 솟구치면서 크게 울었다. 이제 시작이다. 나는 피 묻은 검을 양손으로 단단히 쥐었다. 거리가 좁혀지자 두두두두 같은 귀여운 소리도 아니고 드드드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한 번씩. 그리고 내려찍기.’
이미 내가 기사단장들 앞에서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늘어놓았던 패턴이었다. 횡으로 휘둘러지는 창을 각각 튕겨내고, 아래로 내리찍는 공격은 구르기로 피했다.
기수는 땅에 꽂힌 창을 오른손으로 뽑아들고선 머리 위에서 몇 바퀴 돌려 흙을 털어냈다. 그러더니 전방으로 크게 한 번 휘두르고, 다시 말을 몰아 저만치로 사라졌다.
커다란 원을 그리며 다시 이쪽으로 달려온 기병이 창을 찔러들어왔다. 공격을 튕겨내자, 채앵!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전신에 반동이 밀려들었다.
바로 다음 공격이 이어졌다. 말이 앞다리를 치켜들고, 기수가 창을 머리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을 준비를 했다. 그걸 보고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딜타임이다.’
딜타임이라는 말은 곧 갑옷 파훼 기믹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도 됐다. 말이 앞다리를 땅에 쾅 내려놓는 동시에 기병이 양손으로 있는 힘껏 창을 내리찍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구르기로 그 자리를 벗어난 뒤였다. 창끝은 애꿎은 바닥에 푹 박혀 먼지를 일으켰다. 기수가 창을 회수하는 틈을 타, 이번 보스 공략의 핵심 물품을 꺼냈다.
착탄 지점에 폭발을 일으키는 소형 폭탄. 저 철갑을 부술 수 있는 유일한 아이템이었다.
‘지금!’
기병이 창을 막 빼낸 직후, 말의 머리를 조준하고 폭탄의 신관을 작동시켜 집어던졌다.
폭탄은 말의 머리를 향해 정확하게 날아갔고, 갑옷에 닿자마자 울긋불긋한 화염과 함께 성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ㅡ히히히히히히힝!!!!!!
화염과 폭음에 놀란 말이 울음소리를 내며 펄쩍 뛰었다. 그 위에 탄 기병이 몸을 휘청였다. 하나를 더 던질까 했지만, 욕심부리지 말고 안전하게 가기로 했다.
바닐라에서는 하나만 제대로 꽂히면 경직에 걸린 동안 나머지도 하나씩 차근차근 던져서 갑옷을 바로 부숴버릴 수 있지만, 닼라 모드에서는 경직 시간이 너무 짧아서 타이밍을 극도로 미세하게 맞춰야 했다.
‘괜히 욕심부리지 말자. 안전하게 가자고. 안전하게.’
방금처럼 폭탄을 말의 머리에 다섯 번 맞추면, 말의 몸에 둘러진 철갑이 부서져서 맨살이 드러나게 된다. 그때부터는 아무곳이나 막 때려도 상관없이 대미지가 들어갔다.
바닐라에서는 아예 이 근처 필드에 상인이 있어서 그 상인에게서 폭탄을 헐값에 무제한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설정상으로는 그 상인이 폭탄의 발명가다.
그 상인에게 말을 걸고 물건을 산다는 선택지 대신 대화한다는 선택지를 고르면, 이 폭탄은 자기 발명품인데 ‘약점 부위에 여러번 맞추면 아무리 두꺼운 철제 갑옷이라도 부술 수 있을 것’이라며 대놓고 이 보스전에 대한 힌트를 준다.
물론 철제 갑옷을 부순다는 건 목 없는 철갑 기병 보스전 한정 기믹이었다. 다른 갑옷 입은 적에게는 백날 맞춰봐야 못 부쉈다.
하지만 폭탄을 무제한 판매하는 상인이 존재해서 투척을 실수해도 몇 번이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바닐라와는 달리, 닼라 모드는 훨씬 더 악랄하기 짝이 없는 조건이 걸려 있었다.
상인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근처 필드를 다 돌며 플레이어가 일일이 폭탄을 찾아다녀야 했다. 게다가 숫자 자체도 다섯 개 밖에 안됐다.
갑옷을 벗기려면 다섯 번을 맞춰야 하는데, 이 근처 필드에서 구할 수 있는 폭탄도 다섯 개가 전부다.
그 말인 즉 다섯 개 중에 하나라도 빗나가면 끝장이라는 의미였다.
ㅡ푸르르르륵!
말이 투레질을 하며 잔뜩 화가 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눈 전체가 붉은 안광으로 뒤덮여 살벌한 색을 띠었다.
나는 그걸 비웃으며 올 테면 와보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저놈이 이 제스쳐를 알아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철갑 기병이 땅을 뒤흔들며 내게 달려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