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00)
r 200 – 지옥 – 3
악마에게 인간이란, 그저 무료함을 달래줄 유희거리면서 자신의 힘을 강화하는 데 쓰이는 부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였다.
지옥에 끌려온 인간을 더 악랄하게 고문하면 고문할수록 힘이 강해지고, 힘이 강해지면 자연스레 지옥에서의 위치도 올라가게 된다.
악랄한 고문 끝에 육신이 죽어버리고 남은 영혼은 악마에게 영구히 종속되어 고통에 가득 찬 절규를 내뱉으며 다시금 힘이 되어주니, 악마가 인간을 그렇게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야 했을 터였다.
뜬금없이 지옥에 들이닥쳐 악마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두 명의 남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유유자적하게 지옥을 거닐고 있는 인간 2명을 처음 발견했을 때, 악마들은 당연히 즐거운 마음으로 덤벼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객기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백에 달하는 악마 군단이 성검을 든 흑발 여자의 손에 영구히 소멸했고, 그 시체는 작은 언덕을 이룰 정도로 쌓였다. 악마들은 흑발 여자의 옷자락조차도 건드리지 못했다.
아무리 성검이 있다 한들 이곳은 악마들의 본진 그 자체인 지옥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전력을 발휘한다면 당연히 이기리라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그 반대였다.
시체로 언덕을 쌓아버린 악마들은 결국 목표를 바꿨다. 성검을 든 흑발 여자의 옆에 있는, 상대적으로 만만해보이는 흑발의 남자를 노리기로.
악마를 보이는 족족 소멸시켜버리는 흑발의 여자에 비해, 남자 쪽은 간간이 살아남아 꿈틀거리는 악마들을 마무리하기만 할 뿐이었으니 더 만만하게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남자를 향해 달려든 악마들은, 똑같이 영구적으로 소멸당했다.
남자의 손에 들린 무기는 분명 성검이 아니었으나, 성검에 필적할 정도로 강한 신성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일 먼저 달려든 악마가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은 뒤였다.
분명 성검을 든 흑발 여자만큼 압도적인 무력을 발휘하는 것도 아니건만, 수십에 달하는 악마들이 한 끗 차이로 공격을 적중시키지 못한 채 신성한 힘에 의해 죽어나갔다.
어쨌거나 둘 모두 자신들의 힘으로 이기지 못할 끔찍한 존재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악마들은 시체로 이루어진 언덕을 뒤로 하고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쳤다.
악마왕의 최측근 중 하나이자, 이 주변 일대를 다스리는 고위 악마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서.
물론, 도망친 악마들이 그 선택을 후회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별로 길지 않았다.
“황제 폐하, 이 격언을 아십니까?”
“무엇을 말이더냐.”
“고통의 근원은 머리라고 합니다. 그러니, 머리를 파괴하면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해줄 수 있다는 말이지요.”
“너의 말이 참으로 옳다. 내 친히 치하하겠노라.”
내 시덥잖은 농담에도, 카이킬리아는 약간의 칭찬과 함께 성검에 꿰뚫려 “끼에에에엑!” 하는 소리를 내뱉던 악마의 머리를 발로 짓밟아 부숴버렸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안에 든 것들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바싹 마른 흙바닥에 질척하면서도 검붉은 피가 섞여들어갔다.
수없이 많은 악마를 베어넘겼음에도 카이킬리아의 옷은 여전히 깨끗했다. 자세히 보니 성검의 힘 때문인지 악마의 부산물들이 몸에 닿자마자 허공으로 증발하고 있었다.
나는 곳곳에 검붉은 피가 묻어있는 내 칠흑색 제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저건 성검이 특별한 거다.
“허나, 너의 말에는 맹점이 하나 있구나.”
“어떤 것입니까, 폐하.”
“이 사악한 것들을 고통 없이 보내줄 연유가 무엇이겠느냐?”
우리 둘은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가 걸어가는 방향엔, 카이킬리아와 일기토를 벌였다가 아주 개박살이 나서 도망쳤던 거대한 악마가 있었다.
악마들의 성소 DLC의 보스들 중 하나, ‘네 쌍 날개 악마’였다. DLC 보스이니만큼 얘도 어지간한 본편 보스보다는 훨씬 어려웠는데, 상성이 너무 안 좋았다.
내게서 놈의 공격 패턴을 모두 전해들은 카이킬리아는, 단 한 번의 공격조차 허용하지 않고 저걸 정면에서 찍어눌러버렸다. 놈은 불쌍해보일 정도로 실컷 얻어터졌고.
죽기 직전까지 처맞은 네 쌍 날개 악마는 냅다 도망을 시도했으나, 등 뒤에서 검기 비스무리한 공격을 처맞고 얼마 못 가 땅으로 추락했다.
그게 우리가 지옥을 이토록 태평한 모습으로 걷고 있는 이유였다.
“…….”
그리고, 마르가리타가 우리 둘의 이런 태평한 모습을 뒤에서 모두 지켜보는 중이었다.
마르가리타는 역으로 겁에 질려 도망가는 악마들과, 이런 대학살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감흥도 없어 보이는 우리 두 명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있잖아. 성국 사람은 아니, 지?”
“성국에서는 교황을 폐하라는 호칭으로 칭하더냐?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인간 세상의 지식을 모조리 까먹었다고 해도 내 특별히 용서하여 주겠노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요.”
나한테 질문했다가 카이킬리아한테 살벌한 시선을 받은 마르가리타가 화들짝 놀라며 벌벌 떨었다. 아까 목젖에 성검이 들이밀어졌던 일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은 듯했다.
말투랑 행동이 저래서 그렇지, 지금 카이킬리아는 기분이 굉장히 좋은 상태다. 어지간한 건 그냥 넘어갈 수 있을텐데.
“저희는 아이테르눔 제국의 사람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분이 지금의 황제시고요.”
나는 카이킬리아 대신 대답해주었다. 마르가리타가 흘끔 저쪽의 눈치를 살폈다.
“그건 알아. 나도 같이 들었으니까. 들었는데도 너무 안 믿겨서 그래. 제국 사람이 성검 쓰는 것도 그렇고, 네가 들고 있는 무기도 그렇고. 내가 이래 봬도 한때 성기사였잖아. 무기에 신성력이 얼마나 담겨있는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고.”
지금은 아니지만, 이라는 말이 작게 덧붙여졌다.
“솔직히, 제국의 황제가 성검을 사용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거든. 그런데 어떻게ㅡ”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는 법이다, 마르가리타.”
특유의 고압적인 눈빛을 담은 시선이 마르가리타에게로 향했다. 딱 한마디를 했을 뿐이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을 단번에 알아차린 마르가리타가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저런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악마에게 물든 일가친척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 위해서 성검을 사용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왜 제국의 황제면서 성검을 쓰냐? 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필연적으로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야 할 테니, 당연히 날 선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델타. 그대 역시 마찬가지다. 기사라면 자고로 황제를 옆에서 보필해야 할 의무가 있을 터, 왜 다른 곳에 있는 것이더냐?”
“죄송합니다, 폐하.”
나는 카이킬리아와 약간 떨어진 방향에서 걷다가, 그 말을 듣고 다시 붙었다.
“더.”
한층 더 붙었다.
“더.”
그것보다 훨씬 더 붙었다.
“더.”
조금만 움직여도 팔이 닿을 거리까지 붙었다.
“되었느니라.”
카이킬리아는 그제서야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보필한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심각하게 가까운 거리였다.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팔뚝이 조금씩 스칠 지경이었다.
뒤에서 날 향한 마르가리타의 콕콕 찌르는 시선이 느껴졌다. 분명 제국의 황제와 그 기사라고 했으면서 하는 행동은 그런 관계와 거리가 한참 머니 황당할테지.
그 뒤로는 딱히 대화를 이어갈 내용도 없었고, 겁대가리를 상실해서 우리한테 덤벼드는 악마도 없었기에 조용했다. 덕분에 가는 길은 편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땅에 주저앉은 채로 잘려나간 팔다리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숨을 고르는 네 쌍 날개 악마가 보였다.
“저기…….”
“아직도 할 말이 남은 것이더냐?”
놈을 향해 다가가려다, 뒤에서 또다시 들려온 마르가리타의 목소리에 카이킬리아가 약간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반사적으로 흠칫거리던 마르가리타는, 이 말만큼은 꼭 해야겠다는 듯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두 분은…… 그, 연인…… 이신가요?”
“…….”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지만, 카이킬리아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평소와 같이 무감정하면서도 고압적인 얼굴로 질문을 던진 마르가리타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무표정하게 한참을 서 있던 카이킬리아는, 마르가리타가 벌벌 떨며 입술을 달싹이기 직전까지 가고 나서야 약간은 미묘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슨 연유로 그리 생각하였느냐?”
“어…… 머리 색깔도 닮으셨고, 옷 색깔도 닮으셨고, 사용하는 무기도 닮은 구석이 있으셔서……? 혹시 깔맞춤이라도 하신 게 아닌가 해서요.”
생각해보면 그랬다. 나는 속으로 내 모습과 카이킬리아의 모습을 슬쩍 비교해보았다.
둘 다 칠흑색의 머리카락에, 칠흑색의 제복을 입었고, 신성력을 내비치는 검을 들고 있다. 깔맞춤이라도 한 게 아닌가 싶을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거기에 명목상으로는 주군과 기사라지만 하는 행동은 전혀 그렇게 안 느껴지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얼굴로 한동안 마르가리타를 쳐다보던 카이킬리아가 홱 고개를 돌렸다.
“좋을 대로 생각하여라. 여는 그런 착각 하나하나에 일일이 반응하여 줄 만큼 한가하지 않노라.”
‘이걸 부정을 안 하네.’
카이킬리아의 성격대로라면 연인이 아니라 내 것이다, 같은 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여러 의미로 굉장히 의외였다.
황금색 동공이 다시 날 향했다. 얼른 옆으로 따라붙었다. 카이킬리아의 표정은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표정이었다.
우리는 머지 않아 바닥에 쓰러져 헉헉대고 있는 네 쌍 날개 악마에게 도착했다. 놈은 필사적으로 우리에게서 도망치려 버둥거리고 있었다.
“이놈의 눈이 필요하다고 하였느냐?”
“예, 폐하. 그렇습니다.”
“마침 잘 되었구나. 저런 더러운 눈동자로 여의 몸을 훑는 것이 역겨워 죽을 지경이었으니.”
장치의 작동 재료로는 DLC 보스들을 잡으면 주는 드랍템 2개와, 필드에서 루팅할 수 있는 아이템 2개가 필요했다. 그 드랍템 중 하나가 이놈의 눈이었다.
처음에는 튜토리얼 지역에서 인간 도살자를 잡고 피 묻은 검을 얻었을 때처럼 죽이면 알아서 몸이 녹아내리면서 아이템을 떨구지 않을까 했는데, 혹시 모르니 먼저 뽑아두기로 했다.
눈을 뽑는다는 말에 악마가 필사적으로 날개를 퍼덕였으나, 이미 90% 이상이 찢겨나가 얼마 남지도 않은 날개로 비행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카이킬리아가 태연히 턱짓을 했다.
“시작하지 않고 무엇 하느냐.”
“네? 아, 네.”
마르가리타는 잠시 허둥지둥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검을 빼들며 네 쌍 날개 악마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이 놈의 눈두덩이에 칼을 푹 찔러넣었다.
악마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몸을 꿈틀거렸다. 어차피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행동도 없었다.
“델타.”
열심히 악마의 눈을 뽑아대는 비키니 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니, 바로 옆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카이킬리아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폐하?”
“너는 저것이 했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예?”
“자꾸 섬기는 이에게 두 번을 말하도록 만드느냐. 참으로 못된 버릇이로다. 저것이 우리더러 연인 관계가 아니냐 했던 말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노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