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02)
r 202 – 지옥 – 5
두근두근. 마르가리타는 터질 듯이 뛰어대는 심정을 애써 억눌렀다. 침대에 누운 지 시간이 제법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잠이 오질 않았다.
‘저 두사람은 대체…….’
마르가리타가 이렇게 된 것은 모두 뜬금없이 지옥에 찾아온 2명 때문이었다.
자신을 카이킬리아라고 소개한 여자 쪽은 아이테르눔 제국의 황제이고, 자신을 델타라고 소개한 남자 쪽은 황제를 보필하는 기사라고 했던 그 2명.
분명 주군과 신하의 관계라고 했으나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2명 말이다. 대체 세상의 어떤 기사가 자신의 황제에게 저런 식으로 대한다는 말인가.
꼬박꼬박 존칭을 붙이면서 존댓말을 사용하긴 했어도, 남자의 태도는 기사가 황제에게 보여야 할 예의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마르가리타는 비록 성국의 사람이지만 제국의 예의범절에 대해서 아는 게 제법 됐다. 만약 저따위 행동을 보이는 기사가 있다면 당장에 목을 날려버릴 빌미로는 차고 넘친다는 것도 알았다.
이상한 점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마르가리타가 악마의 눈을 뽑은 직후에 두 사람은 서로를 거의 끌어안다시피 하고 있었다. 아니, 반쯤은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 맞다고 봐야 했다.
기사 쪽은 황제의 옆구리에 손을 올린 채 허리를 천천히 쓰다듬는 중이었고, 황제 쪽은 야한 신음을 흘리며 그 손길을 받아들이는 중이었으니까.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특별한 감정이 없지 않고서야 자신에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자는 자연스레 옆구리를 쓰다듬었고, 여자도 그 손길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며 쾌락을 억지로 참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누가 보더라도 평범한 관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두 사람의 무력 격차를 생각해보면 훨씬 더 그랬다.
델타 역시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제법 훌륭한 기사였지만, 힘조차 별로 들이지 않고 단신으로 악마 수백 구를 썰어버린 카이킬리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원한다면 언제든 저 남자의 손을 제압하고 그에 합당한 처벌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런 저항 없이 만져지고 있었다는 건…….
‘암묵적인 허락.’
고개를 푹 숙여버린 탓에 델타에게는 보이지 않을 각도였지만, 마르가리타는 그 둘과 직각으로 서 있었기에 똑똑히 보았다.
쾌락으로 녹아내리기 일보직전이었던 황제의 표정을 말이다.
옆구리를 좀 만져졌다고 그런 표정을 짓는다? 여자의 몸은 그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러니 둘은 서로의 몸에 대해서 무척이나 잘 알고 있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둘은 마르가리타의 질문에 서로가 단순히 황제와 기사의 관계일 뿐이라고 답했다. 100% 거짓말일 수밖에 없었다.
‘외부에 저 비밀스러운 관계가 퍼져나가는 걸 경계해서일 테고.’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당장 마르가리타와 저 2명은 만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 짧은 시간에 저만한 수준의 비밀을 털어놓는 편이 더 이상했다.
마르가리타는 커튼 밖으로 눈만 빼꼼 내밀었다. 델타는 창문 근처의 의자에 기대어 검을 만지작거리는 중이었고, 카이킬리아는 밖으로 나갔다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대체 뭘 하고 있길래 아직까지도 안 돌아오는지를 궁금해하던 순간.
ㅡ흣…….
‘어?’
마르가리타의 귀가 작은 신음 소리를 포착했다. 마르가리타는 눈만 빼꼼 내민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고 믿고 싶었다.
ㅡ흐, 읍…….
‘……미친.’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도 흥분시킬 수 있을 정도로 음탕하기 짝이 없는 신음이, 바깥에서 커튼을 뚫고 아주 옅게 들려오고 있었다.
새빨간 빛을 막기 위해 커튼이 몇 겹이나 쳐진 탓에 소리 자체는 굉장히 작았지만, 가뜩이나 예민해져 있는 귀는 그 소리를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저 신음의 주인이 누구일지 예상하기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밖에서? 아니, 아무리 나 때문에 안에선 못 한다고 해도. 진짜로 밖에서? 여기로 오기 전에는 대체 얼마나 자주 해댔길래?’
마르가리타는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근처 악마를 싸그리 다 때려잡아서 보는 눈이 없다 해도, 어떻게 사방이 탁 트인 바깥에서 저런 대담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노출로 쾌감을 얻는 성격이기라도 한 건가?
간신히 충격에서 벗어난 마르가리타는,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무기를 만지작거리는 중인 델타를 향해 슬쩍 질문을 던졌다.
“……있잖아. 밖에서 무슨 이상한 소리 안 들려?”
물론 그쪽의 연인이 밖에서 달아오른 몸을 달래는 중이라며 대놓고 밝힐 수는 없으니, 최대한 조심스럽게 돌려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요?”
커튼 너머를 잠시 쳐다보던 델타가 태연하게 답했다. 마르가리타는 다시 한번 경악했다.
‘밖에서 저러는 정도는 이상한 축에도 안 끼는 건가?’
저 정도의 실력을 지닌 기사라면 감각 역시 무척이나 예민할 터.
당장 몇백 년에 걸쳐 녹이 슬대로 슬어버린 마르가리타조차 들을 수 있을 크기의 신음소리인데, 자신보다 월등한 실력을 갖춘 이 남자가 듣지 못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아니, 그러지 말고 좀 더 자세히 들어봐. 진짜로 안 들려?”
“……진짜로 안 들린다니까요?”
델타는 마르가리타의 다급한 되 물음에 눈을 감고 한참 집중하다가, 눈을 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인간이 대체 왜 저러나, 하는 표정이었다. 틀림없었다. 밖에서 들려오는 저 소리를 이상하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다.
혹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연인의 행동을 애써 못 들은 척 해주는 것이거나.
마르가리타는 어떻게든 후자 쪽이라 믿고 싶었다. 전자 쪽이라면 상상도 못 할 변태 커플이라는 의미가 되니까.
“미, 미안해. 여기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흥분해서 잘못 들었나 봐.”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죠. 충분히 이해합니다.”
잠시 우물쭈물 하던 마르가리타는, 눈을 딱 감고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그…… 있지. 나가서 왼쪽 절벽에 가보면 제법 커다란 틈이 하나 있거든? 내가 집 짓기 전에 거기서 생활해봐서 아는데, 제법 넓고 아늑해. 누울 수 있는 공간도 있고. 조금 깊이 들어가면 밖으로 소리도 안 새어나갈거야.”
“왜 그런 걸 가르쳐주시는진 모르겠는데, 일단 알겠습니다.”
델타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마르가리타는 자신의 배려심에 혼자서 감탄하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물론 누워봤자 잠은 오지 않았다. 밖에서 저런 야릇한 신음이 계속 들려오는 마당에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알려줬는데 왜 안 나가지?’
시간이 꽤 되었음에도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결국 마르가리타는 참다 못해 커튼 밖으로 다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신음은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는데, 델타는 의자에 앉은 채로 꿋꿋이 움직이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제는 눈까지 감고 있었다. 잠을 청하려는 게 분명했다.
연인의 저 애타는 소리를 듣고도 방치해두다니,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마르가리타의 의문이 커져갈 무렵,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마르가리타는 급히 침대에 누워 자는 척을 했다. 어차피 몇 겹으로 쳐진 커튼 때문에 보이진 않겠지만.
희미한 복숭아 향기도 같이 풍겨왔지만, 복숭아 향기에 의문을 가질 시간 따윈 없었다. 방금 전보다 훨씬 또렷한 신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해서였다.
‘……설마 여기서?’
다행히 이번 소리는 짧았다. 마르가리타는 자신의 추측이 틀렸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곧이어 바깥이 조용해졌다. 침대에 얌전히 누워 있던 마르가리타는,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눈만 빼꼼 내밀어 바깥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하마터면 소리를 낼 뻔 했을 정도로 놀랐다.
델타의 몸 위에 카이킬리아가 다리를 좌우로 벌린 채 걸터앉아 있었던 것이다. 연인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은 황제는 그 평온히 자는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었다.
저 평온한 얼굴을 쳐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조금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제 위에서 뭐 하십니까?”
약간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자 한 명 분의 무게가 허벅지에 올라탔으니 눈을 뜨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델타의 목소리가 들리자, 마르가리타는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침대에 누워버렸다. 들킨 건 이쪽이 아니라 저쪽인데도 심장이 쿵쿵 뛰었다.
‘설마…… 여기서 저지르진 않겠지?’
마르가리타는 만약 그 설마가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아주 잠깐이지만 진지하게 고민했다. 못 들은 척을 해줘야 할지, 아니면 나가서 하라고 눈치라도 줘야 할지.
이런 생각으로 한참을 고민하다가, 채 30초도 견디지 못하고 또다시 커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호기심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워낙 긴 시간 동안 여기에 갇혀있던지라 360도를 미쳐서 다시 제정신에 가깝게 돌아온 것도 있고, 어쨌든 마르가리타도 사람이어서 그런 것도 있었다.
눈앞에서 저런 짓을 벌여대는데 관심을 가지지 말라니,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것은…….”
그 다음으로 입술을 뗀 것은 카이킬리아였다. 카이킬리아는 뭔가 한참을 고민하는 기색이더니, 여전히 근엄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질문에 답했다.
“……그래, 벌이다.”
“벌이라 하셨습니까?”
“그렇다. 감히 신하 된 몸으로 황제의 옥체를 멋대로 우롱하였지 않느냐. 여가 친히 이 불충한 기사를 단죄할 것이니라.”
“이런 식으로 단죄당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요. 무슨 벌을 내리려고 이러십니까?”
“두고보면 알 것이다.”
마르가리타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더 내밀었다. 분위기가 오묘했다. 혹시 저러다가 진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라도 한다면ㅡ
“폐하께서 어떤 생각이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검은색 눈동자가 마르가리타를 향했다.
설마 여기서 이쪽을 쳐다보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에, 마르가리타는 그대로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보는 눈이 있는 자리에서 그러셔도 상관 없으십니까?”
“……!”
그 말에, 황금빛 눈동자가 마르가리타를 향했다. 옅은 빨강으로 뒤덮인 세상 속에서도 본연의 황금빛을 전혀 잃지 않은 눈동자였다.
딸꾹, 하고. 누가 했는지 모를 딸꾹질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성검을 들고 무뚝뚝하게 걸어가는 카이킬리아의 옆을 따라가고 있었다. 마르가리타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우리 둘의 눈치를 연신 살펴대며 따라오고 있었고.
내 말로 인해 분위기가 박살이 나버린 뒤, 우리는 시간이 어영부영 흘러 하늘이 노을빛을 되찾자마자 다음 아이템이 있는 장소로 출발했다.
카이킬리아의 표정은 여전히 무뚝뚝했으나, 중간에 마주친 악마 무리를 분풀이라도 하듯 썰어버린 것을 보면 어떤 심정일지는 대충 예상이 갔다.
‘그러게 플로레타 걔는 왜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해선…… 아니, 시비는 먼저 걸렸으니까 받아치는 게 맞긴 한데…….’
카이킬리아가 뜬금없이 그런 행동을 벌인 이유. 그건 플로레타가 했던 말 때문이 분명했다.
말이 좋아 순결한 몸을 가져서 부럽다는 거지, 속내가 뭐였을지는 뻔했으니까. 사실상 면전에다 대고 티배깅을 해버린 셈이니 눈이 안 돌아갈래야 안 돌아갈 수가 없었다.
‘내 것’이라고 대놓고 말할 정도로 나한테 눈독을 들였던 카이킬리아인데, 교황의 행동을 보고 홧김에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어젯밤에 일부러 분위기를 흩뜨렸던 것 역시, 카이킬리아에게 조금 더 이성적으로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 우리 지금 재료 찾으러 가는 거 맞지?”
저 멀리서 우물쭈물하던 마르가리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왜 그러시죠?”
“별건 아니고, 왜 여기로 가는가 해서. 이 방향으로 쭉 가면 절벽이잖아?”
“네. 절벽이죠.”
“그러면 왜……?”
나는 바위산 근처 절벽에 있을, 아직 작동되지 않은 마법진의 자리를 흘끗 쳐다보았다.
“걸어가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