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03)
r 203 – 지옥 – 6
“저 쓰레기같은 것들이 사용하는 마법진이로구나.”
역오망성이 새겨진 마법진을 천천히 관찰하던 카이킬리아가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우리가 사용해도 문제는 없느냐?”
“네.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그리하면 됐노라.”
아무런 근거조차 없이 무작정 괜찮으리라 말했음에도, 카이킬리아는 그걸 순순히 받아들였다. 내 말을 검증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듯했다.
마르가리타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선 마법진을 살펴보고 있다가 카이킬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카이킬리아는 딱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게 작동하는 건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건 어떻게 사용할지 알고 있다는 뜻이지?”
“그렇게 되겠죠.”
새삼스레 놀랍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마르가리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넌 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이런 것까지 다 알고 있고. 평범한 사람이…… 아니지, 평범하진 않겠구나. 아무튼 사람이 지옥에 그려진 마법진까지 다 꿰고 있다는 게 말이 돼?”
나는 가볍게 웃으며 대답을 회피해버렸다. 마르가리타도 대답을 기대한 것은 전혀 아니었는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다시 쪼그려 앉아 마법진을 톡톡 건드렸다.
필드 곳곳에 그려진 이 역오망성의 마법진은 각자의 컨셉이 확고한 브닼 4 DLC 중에서도 악마들의 성소 DLC만이 보유한 컨셉이었다.
조각상이 필드 전체를 통틀어서 딱 2개밖에 없는 대신, 역오망성 마법진을 사용해 지역 어디로든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보스룸 근처는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한다며 막혀 있다. 그래서 나머지 조각상 1개가 있는 곳도 보스룸 앞이었다.
“이쪽입니다.”
나는 둘을 데리고 절벽 끄트머리로 다가갔다. 반대편에 깎아지른 듯한 모습의 절벽이 보였고, 아래로는 어마어마한 길이와 높이의 골짜기가 펼쳐져 있었다.
맞은편 절벽에 보이는 희미한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안으로 들어가서 제단을 작동시키면 됩니다. 그러면 마법진을 쓸 수 있을 겁니다.”
마르가리타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높이에 질려버린 듯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카이킬리아는 골짜기 아래를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 정도 거리라면 뛰어서 넘어갈 수 있을 법하다만. 그리하면 되겠느냐?”
“……따로 방법이 있으니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폐하.”
족히 30~40m 가량 되어 보이는 골짜기를 도약해서 넘어갈 수 있다는 말에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절벽에서 약간 오른쪽의 부자연스럽게 튀어나온 부분에 섰다.
그리고, 그 앞에서 망설임 없이 허공으로 발을 내딛었다.
깜짝 놀란 마르가리타가 잠깐만, 이라며 나를 제지하기도 전에 내 오른발이 절벽 밖의 허공을 딛고 멈춰섰다. 누군가 뒤에서 헛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머지 한 발도 앞으로 내딛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공중을 걷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몸을 돌렸다.
“보셨죠?”
“어, 어어?”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나를 본 마르가리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시다시피, 투명한 발판입니다. 그냥 이렇게 걸어가면 돼요.”
“……이해하였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카이킬리아는 내 옆의 허공으로 발을 내딛었다. 가죽 부츠가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허공을 짓밟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델타, 이 발판에 표식을 남겨둘 수 있느냐?”
“직접 보시는 편이 더 빠를겁니다.”
나는 절벽으로 다시 돌아가 모래를 한 움큼 집어들어 투명 발판에 뿌렸다. 모래는 투명한 발판에 닿자마자 똑같이 투명해지면서 사라졌다.
“특수한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는 것이로구나. 충분히 알아들었노라.”
“……나는 여기 있을게. 갔다 와.”
마르가리타는 자긴 도저히 못 건너겠다며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겉보기로는 시원시원한 라틴계 미녀 스타일이었는데,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미지와 괴리감이 커서 묘했다.
뭐, 겉모습과 성격 사이의 괴리감이 제일 심한 사람을 꼽자면 단연 리제겠지만 말이다. 도도한 고양이상 같은 얼굴을 해놓고선 그런 성격이었으니.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 근처 악마는 폐하께서 싹 정리해놔서 아무것도 안 나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리려는데, 뭔가 우물쭈물하던 기색이던 마르가리타가 조심스레 말을 덧붙였다.
“……있잖아. 오래 걸려도 충분히 이해하고 기다려줄 순 있는데, 그렇다고 너무 늦으면 안 된다?”
“……?”
이상한 말을 하는 마르가리타를 뒤로 하고 카이킬리아와 함께 투명 발판 위를 걸어갔다.
절벽을 반쯤 건넜을까, 이상한 일렁임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 카이킬리아를 멈춰세웠다. 카이킬리아는 내가 바라보는 일렁임을 정확히 바라보면서 턱짓을 했다.
“저것 때문이느냐?”
“예, 폐하.”
절벽 너머의 문은 마법진과 일직선으로 놓여 있는데 투명 발판은 마법진의 오른쪽에서 시작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각도가 제법 많이 틀어져 있었다.
그 각도 탓에 생긴 함정이 왼쪽으로 한 번 꺾어지는 구간이었고.
눈썰미만 좋다면야 저 앞에서 뭔가 일렁여대니 함정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긴 한데, 여길 처음 건너는 유저들은 보통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무작정 걷다가 낙사하기 마련이었다.
나도 그랬었다.
“참으로 악취미적인 구조로다. 저 역겨운 것들이나 떠올릴 법한 생각이구나.”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얼마 안 가 마법진 위에서 희미하게 보이던 문 앞에 도착했다. 그대로 문을 열어젖혔다. 쿠구궁, 하는 소리가 들리며 문에 붙어 있던 흙먼지가 사방으로 날렸다.
안으로 들어갔다. 카이킬리아는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양 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악마 조각상을 보고 눈살을 있는대로 찌푸리며 성검을 들었다.
뒷일은 안 봐도 뻔했기에 내버려두고 제단으로 걸어갔다. 등 뒤에서 무엇인가가 잔뜩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카이킬리아가 조각상을 박살내는 동안, 나는 중앙의 제단 앞에 서서 발판을 밟았다. 제단의 양 옆이 오목하게 파이고, 파인 자리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와 제단을 채우기 시작했다.
곧이어 제단 전체가 피로 가득 찼다. 오목하게 파였던 부분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어느덧 조각상들을 모조리 박살낸 카이킬리아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된 것이더냐.”
“그렇습니다. 이제 마법진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역겹기 짝이 없다. 이러니 그것들을 박멸함이 옳은 것이다.”
카이킬리아는 조각상들을 모조리 부숴버리고도 아직 불편한 심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말투에 가시가 잔뜩 돋혀 있었다.
저런데 악마들의 마법진을 사용하게 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지만 곧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카이킬리아의 성격에, 마법진을 쓰기 싫다면 그렇다고 진작 말했을 것이다.
제단을 작동시킨 내가 밖으로 나서기 직전, 카이킬리아의 목소리가 나를 멈춰세웠다.
“어딜 여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움직이려 하느냐. 당장 멈추거라.”
“……무슨 일이십니까, 폐하?”
뒤를 돌아보았다. 카이킬리아가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표정만으로 심정을 짐작하기란 거의 불가능했기에,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살짝 긴장한 채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카이킬리아가 내 바로 앞까지, 거의 끌어안을 듯 다가왔다.
ㅡ쪽.
그리고, 입을 맞췄다.
‘아니, 갑자기 뭔…….’
입술이 닿는 말랑말랑한 감촉과 내 앞까지 다가온 여체의 따뜻한 체온, 그에 따른 흥분보다는 당황이 앞섰다.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 내가 어리둥절하게 서 있자, 카이킬리아는 몸을 한층 더 바짝 밀착시켰다. 가슴을 받치고 있는 란제리의 감촉이 내 가슴팍에 느껴질 정도였다.
“읏…….”
옅은 신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물론 카이킬리아의 것이었다. 내가 몸을 빼지 못하도록 손목을 단단히 움켜쥔 카이킬리아가 입술 사이로 대뜸 혀를 집어넣었다.
“츄릅…… 흐웁…….”
약간의 끈적끈적한 물소리와 함께 카이킬리아의 몸이 들썩였다. 저번과 똑같이, 그저 키스를 한 것만으로 허벅지를 베베 꼬며 옅은 절정에 도달하고 있었다.
대체 뭘 원해서 이러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빠르게 보내버리고 그 다음에 물어보는 게 맞을 것이다. 지금 입술을 떼도록 허락할 것 같지가 않았으니까.
아직 붙잡히지 않은 쪽 손으로 카이킬리아의 엉덩이를 쥐었다. 몸 전체가 부르르 떨리는 걸 확인하고, 엉덩이를 가슴 주무르듯 이리저리 주무르면서 다른 쪽 팔을 정장 코트 안으로 집어넣었다.
내가 벗어나려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호응해주고 있어서인지, 카이킬리아는 순순히 손목을 놓아주었다.
코트 안쪽으로 팔을 넣어 척추 라인을 따라 움푹 들어간 부분을 찾았다. 와이셔츠가 워낙에 얇아서 속이 살짝씩 비칠 정도인지라, 손가락의 감각만으로 찾기도 쉬웠다.
꼬리뼈 근처의 움푹 들어간 부분을 손가락으로 지긋이 누르면서, 입 안에 들어온 혀를 휘감았다. 움푹 들어간 라인을 따라 손가락을 쭈욱 훑어올리며 엉덩이를 주무르는 손에 힘을 주었다.
“ㅡ!!!!!!”
카이킬리아는 곧바로 몸을 경련하며 절정에 도달했다. 제대로 된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입술로 꽉 막힌 신음만을 내뱉으며 몸을 부르르 떨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몸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걸로는 모자란 듯했다. 척추를 따라 날개뼈 근처까지 올렸던 손가락을 겨드랑이 근처로 가져갔다.
겨드랑이를 손가락으로 간지럽히자, 카이킬리아가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그 상태로 허리 라인을 쓰다듬으며 옆구리까지 내려왔다.
정장 바지에 아슬아슬하게 걸친 장골을 몇 번 주물러주고, 밑으로 더 내려갔다. 내 손가락이 아랫배를 타고 더 밑으로 내려가자 몸이 흠칫 떨렸다.
마지막으로, 손을 뻗어 허벅지 안쪽을 쓱 훑었다.
“응, 읏! 으읍!”
카이킬리아의 입에서 신음이 아니라 교성에 가까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몸이 여태까지중에서 제일 격렬하게 뒤틀렸다.
경련이 끝나자 맞닿았던 입술도 떨어졌다. 카이킬리아는 무릎을 휘청이면서 내게 기대왔다. 등에 손을 둘러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몸을 받쳐주었다.
침묵이 감돌았다.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후욱, 후욱 하며 거친 숨을 내쉬는 카이킬리아의 숨소리만이 들릴 따름이었다. 나는 이 틈을 타 질문했다.
“갑자기 왜 이런……?”
내 질문을 받고서도 한참이나 숨을 몰아쉰 이후에야, 카이킬리아는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얼굴은 이러기 전의 근엄한 모습 그대로였지만 쌕쌕거리는 숨소리는 여전했다.
“……벌, 이니라.”
“벌이라고 하셨습니까?”
내가 황당하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카이킬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더 힘든 것 같은데?’
아직 멀쩡하게 서 있는 나에 비해서, 카이킬리아는 다리가 완전히 풀려선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중이었다. 이래서야 누가 누구한테 벌을 준 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이게 벌은 맞는지도 의문이었다. 설마 이런 것까지 모드로 상식이 개변되지는 않았을 텐데. 그냥 사심 채우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건 그거대로 황당한 일이지만.’
뭘 했다고 벌써 이런 걸로 사심을 채우려 한다는 말인가. 카이킬리아는 몸이 민감할 뿐이지, 뒤늦게 쾌락에 눈떴다거나 하는 성격이랑은 거리가 한참 멀 건데 말이다.
“일단 알겠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죠.”
“마음대로 하거라. 벌은 아직 남았으니,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긴장?’
나는 속으로 웃으며, 다리를 휘청여대는 카이킬리아를 이끌고 투명 발판을 건넜다. 카이킬리아가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된 것은 투명 발판을 반쯤 지나간 이후였다.
마르가리타는 우리더러 왜 이렇게 일찍 왔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갔다. 아무래도 우리 관계를 제대로 오해하고 있는 듯했다.
사실 저렇게 오해받아도 할 말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작동하는 건데? 우리한테는 안 알려줘도 돼?”
‘어?’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가, 그 질문을 받고 잠시 제자리에 굳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여기서는 UI가 아무것도 안 뜨지 않는가. 게임에서는 마법진 위에서 E키 누르면 지도 UI가 떴었는데.
‘…….’
정적이 흘렀다. 카이킬리아와 마르가리타는 왜 저러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거, 성 안쪽까지는 어떻게 이동해야ㅡ’
그리고 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역오망성의 마법진이 붉게 빛나며 우리 셋을 집어삼켰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살며시 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익숙한 모습의 성벽 위에 올라선 상태였고, 근처의 악마들이 눈을 희번뜩하게 뜬 채로 쳐다보는 중이었다.
‘……이게 되네?’
내가 속으로 놀라고 있는 사이, 마르가리타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우리 뒤에 바짝 달라붙었다. 비명을 들은 악마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ㅡ콰지지직!
“역겨운 것들이, 그 입 닥치지 못하겠느냐.”
물론, 별 소용은 없었다. 어느새 손에 성검을 든 카이킬리아가 성검을 휘둘러 열 마리에 가까운 악마를 토막내버린 것이다. 검붉은 피가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성 안이 단숨에 조용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