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04)
r 204 – 지옥 – 7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그 역겨운 몸뚱아리를 들이미느냐.”
카이킬리아의 싸늘한 읊조림과 함께 날아간 황금색 검기가 막 주먹을 내리찍기 직전이었던 거대한 악마의 머리를 반으로 쪼개버렸다.
안에 든 내용물이 절단면을 통해 밖으로 줄줄 흘러나오고, 머리 위로 치켜들어졌던 팔은 힘없이 늘어졌다. 거대한 몸뚱아리가 뒤러 넘어가면서 성벽을 들이받았다.
성벽이 진동했다. 실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흐느적거리는 고깃덩이가 벽에 질척한 핏자국과 살점을 남기며 천천히 아래로 무너져내렸다. 몸뚱아리 아래의 흙이 검붉은 피로 물들었다.
거대한 악마의 몸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근처에서는 다른 악마들이 성검의 희생양이 되고 있었다.
성검은 절대로 한 놈에게 빛을 두 번 반짝이지 않았다. 한 번의 움직임으로 머리가 쪼개지고, 목이 날아가고, 몸이 반토막났다. 새삼 카이킬리아와 악마 간의 스펙 차이가 실감이 났다.
황금빛 칼로 인해 수십의 악마가 명을 달리했고, 수백의 악마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나는 악마를 상대할 수단이 없는 마르가리타를 대신해 우리 둘에게 달려드는 놈들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나를 만만하게 보고 덤볐던 악마들은 허공에서 내리꽂힌 신성한 빛기둥에 명을 달리했다. 마르가리타는 뒤에서 소심하게 응원만 하다가, 근처가 다 정리된 느낌이자 슬그머니 나왔다.
“혹시 어젯밤에 있었던 거 말고 따로 뭔 일 있었어? 아무리 봐도 악마들한테 화풀이 하시는 것 같은데?”
성 안의 연무장처럼 생긴 공간에서 펼쳐지는 무차별적인 대학살을 본 마르가리타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속삭여왔다. 이 말이 혹시 카이킬리아에게 들리기라도 할까봐 겁먹은 눈치였다.
“글쎄요? 그런건 못 느꼈는데요.”
뭔 일이 있긴 했지만, 그건 남한테 말할만한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화풀이를 한다면 아마 어젯밤의 일 때문에 그러는 게 맞을 거다.
근처 정리를 끝내고 카이킬리아가 싸우는 모습을 성벽 위에서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도와줄까 했는데, 카이킬리아의 성격상 자기 손으로 직접 썰어버리는 쪽을 더 선호할 것 같았다.
성검이 아래에서 위로 휘둘러지자 바닥에 성스러운 장판이 깔렸다. 그걸 밟은 악마들은 마치 레고라도 밟은 듯이 펄쩍 뛰었다. 이내 장판이 폭발하며 악마들을 황금색으로 불태웠다.
카이킬리아가 성검을 땅에 수직으로 내리꽂았다. 그 자리를 중심으로 성을 거의 뒤덮을만큼 넓은 범위에 황금색의 장막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장막을 모두 펼친 카이킬리아는 성검을 다시 뽑아들어 흐느적대는 악마 한 놈을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반토막냈다.
‘어우.’
나는 그걸 보고 질색을 했다. 예전에 황제를 맨손으로 잡을 때가 떠올라서였다.
저건 황제 보스전의 패턴 중 하나였다. 일종의 자가 버프인데, 바닐라 기준으로 장막 안에서 황제는 이동 속도가 10% 빨라지고 전투 피로가 쌓이지 않는 버프를 얻는다.
닼라 모드에서는 몇 술쯤 더 떠서, 이동 속도 증가율이 30%로 올라가고 상시 슈퍼 아머를 얻으며 전투 피로가 쌓이지 않는 것은 물론 역으로 줄어들기까지 한다.
거기에 지속시간마저 2배로 늘어나고 범위도 한참 넓어지니, 불합리함으로 대표되는 닼라 모드 다운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불합리함은 여전해서, 눈에 띄게 빨라진 속도로 악마들을 종횡무진 도륙해대는 카이킬리아를 본 마르가리타가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 정도는 돼야 제국의 황제라고 불릴 수 있는거구나.”
“교황 성하께서도 무력으로만 따지자면 성국에서 첫 손가락에 꼽을 수 있지 않으십니까? 이단심판관이나 이단심문관보다도 훨씬 더 강하실텐데요.”
“그렇긴 한데, 교황 성하랑 황제 폐하는 근본적으로 다르잖아. 우리는 교황 성하께서 간택되면 그 이전의 능력이 어쨌든 태양이랑 달께서 직접 힘을 내려주시거든. 그러니까 반쯤은 신님들 덕분이라고 봐야지. 황제는 온전히 본인의 능력 아니야?”
사실 제국의 황제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른다.
일단 설정상으로 제국의 초대 황제가 어마어마한 강자였다는 건 확실하고, 지금의 황제인 카이킬리아가 똑같이 어마어마한 강자라는 것만 알고 있으니까.
그 중간에 있었던 황제들도 똑같이 굉장한 강자였는지, 아니면 단순 핏줄 때문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는지는 불명이었다. 딱히 관련된 문서도 없었고.
ㅡ께에에에에엑!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울려퍼졌다. 카이킬리아는 이제 얼마 남지도 않은 악마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있었다. 사방이 죽어 널브러진 고깃덩이로 가득했다.
악마들 중 절반은 이성을 놓아버렸는지 막무가내로 덤벼들다 죽고, 나머지 절반은 성벽을 기어오르며 도망치려 하다가 죽었다. 그리고, 방금 움직인 게 마지막이었다.
‘이래서야 누가 여기 갇힌 건지…….’
문득 녹색 슈트를 입은 주인공이 악마 때려잡는 게임이 떠올랐다. 그때도 주인공이 악마와 지옥에 갇힌 게 아니라 악마가 주인공과 지옥에 갇혔다고 표현됐었는데.
비록 훌륭한 대화수단인 전기톱과 정당한 영광을 하사하고 빛을 만드는 더블 배럴 샷건은 없지만, 지금 보이는 상황도 뭔가 그 게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악마를 피해다니는 것이 아니라 악마가 인간을 피해다니니 말이다.
ㅡ쿠구구궁…….
“아, 드디어 나오네.”
마지막 악마가 반토막나자, 성 안쪽의 제일 커다란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저 안에서 나타날 예정인 녀석이 네 쌍 날개 악마에 이은 DLC의 두 번째 보스였다. 저 놈 잡고, 마법진 사용해서 나머지 아이템이 있는 장소로 이동하면 된다.
최종 보스는 잡을까 말까 고민하긴 했는데, 나중에 교황 데려와서 잡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냥 넘기기로 했다. 최대한 빨리 돌아가는 것이 1순위다.
“…….”
카이킬리아는 성검을 바닥에 수직으로 꽂아두고, 가슴 밑에서 팔짱을 낀 채 문을 열고 나오는 새로운 악마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가죽 부츠의 끄트머리가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두들겼다.
문이 완전히 열렸다. 그 안에서 거대한 악마가 위풍당당하게 걸어들어왔다. 내 키의 족히 2배는 되어보이는 덩치를 지닌 악마였다.
머리 위에는 악마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한 쌍의 뿔이 돋았고, 몸 전체가 갑피에 가까운 비늘로 덮였다. 그리고 비늘 위로도 알 수 있을만큼 엄청난 근육질이었다.
악마는 시뻘건 눈동자로 성벽 위의 우리를 흘끗 쳐다보다가 이내 관심을 끄고 카이킬리아에게로 눈을 돌렸다. 놈의 관심은 오로지 카이킬리아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게임에서도 저랬지.’
설정상으로 저 놈은 싸움 자체를 즐기는 성격이었다. 지금 악마들을 다스리는 왕에게 복종하는 것도 그놈한테 덤볐다가 완전히 박살나서 그런거라나.
애초에 등장 조건부터가 ‘이 성의 악마들을 모두 처리할 것’이다. 주인공이 자기 부하들을 죄다 죽여버리니까 흥미가 돋아서 나타나는 쪽에 가까웠다.
플레이어에게는 아주 다행스럽게도 일단 한 번 등장시켜놓으면 보스전을 치르다 죽더라도 사라지진 않는다. 그러니 보스전 치르려고 매번 성을 정리할 필요는 없었다.
“네가 말한 것이 이놈이더냐?”
“그렇습니다.”
내가 카이킬리아의 질문에 대답하는 동안, 놈의 왼팔에서 방패가 돋아났다.
말 그대로였다. 손목이 있는 자리부터 팔꿈치까지의 피부에서 비늘이 솟아올라 커다란 방패를 형성한 것이다. 놈의 몸이 전부 다 가려질만큼 커다란 방패였다.
그 윗부분에는 입을 쩍 벌리고 정면을 쳐다보는 악마 머리 모양의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놈이 방패 밑부분으로 바닥을 쿵 찍으며 반대손으로 그걸 쾅쾅 두들겼다.
곧이어 커다란 포효가 내질러졌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는 정도로 넘겼지만, 옆에 있던 마르가리타는 귀를 틀어막고 잔뜩 움츠러들었다.
카이킬리아는 일말의 표정 변화조차 없이 덤덤히 성검을 겨누었다.
“여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하여라, 델타. 내 그것을 친히 들어주겠노라.”
“방패에 그려진 악마 조각의 눈이 빛날 때 공격하시면 됩니다. 그리하면 저 방패를 손쉽게 박살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악마들의 성소 DLC의 2번째 보스, 속칭 ‘검투사 악마’는 어지간한 공격은 방패로 죄다 막아버려서 공략을 까다롭게 만드는 보스였다.
슈퍼 아머가 달린 공격이 아닌 이상, 어떤 무기를 사용하든지 저 방패에 맞으면 100% 확률로 튕겨서 플레이어가 경직에 걸리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공격을 허용하게 된다.
그래서 졸렬하다고 욕도 많이 먹었다. 저따구로 싸우는 놈이 싸움 자체를 즐기다니 개소리 하지 말라면서 말이다.
물론 파훼법은 있었다. 놈의 방패에 달린 조각상이 눈을 빛낼 때 공격하면 방패가 점점 부서지다가 결국에는 완전히 박살나니까.
방패가 박살나면 잠시 그로기 상태에 빠지면서 신나는 프리딜 타임을 제공한 뒤 2페이즈로 넘어간다. 그 뒤부터는 호전성이 대폭 증가하는지라 진짜로 검투사 악마라는 이름값을 했다.
안 부수고 잡는 것도 가능은 한데, 초장기전으로 흘러가는지라 딱히 추천할만한 방법은 아니었다.
“알아들었다. 이제 할 일을 하거라.”
간단히 대답한 카이킬리아가 땅을 박차며 훌쩍 뛰어올랐다. 허공에서 칼 끝이 바닥을 향하도록 거꾸로 쥐고, 그대로 악마를 향해 힘껏 내리꽂혔다.
악마는 왼팔의 방패를 들어 공격을 막았다. 성검이 방패와 먼저 충돌하고, 그 다음으로 가죽 부츠가 방패를 디뎠다. 카강! 하는 소리와 함께 원형의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방패로도 충격을 완전히 흡수 못 했는지, 악마가 다리를 휘청이며 한쪽 무릎을 꺾었다.
‘……저게 되네.’
솔직히 좀 많이 놀랐다.
이후로도 놈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 시작한 카이킬리아를 뒤로 하고 성의 안쪽을 향해 들어갔다. 저 놈이 나왔다는 건 성에 남은 악마가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니 말이다.
카이킬리아는 안쪽으로 들어가는 나를 흘끗 쳐다보다가 다시 방패를 두들겼다. 대신 마르가리타가 내 뒤를 종종 따라왔다. 노란색 비키니로 감싸인 가슴이 걸음에 맞춰 출렁였다.
“성에는 왜?”
“어차피 폐하께서 이기실테니까 그동안 미리 마법진부터 작동시켜 놓으려고요.”
마르가리타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둘 다 카이킬리아가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얼마나 내려가야 돼?”
나는 대답 대신 바로 앞에 있는 사다리를 발로 툭 건드렸다. 그 밑을 내려다 본 마르가리타가 몸을 움찔 떨었다.
“……놀랐어. 엄청 깊네.”
“이건 딱히 큰 축에도 못 낍니다. 얘네들 왕이 있는 성 보면 까무러치시겠네요.”
거긴 악마들의 왕이 거주하는 장소라서 그런지, 거의 황궁에 맞먹을만큼 크다. 중간중간 완전히 무너졌다거나 길이 끊긴 곳이 많아서 실제로 갈 수 있는 곳은 몇 안됐지만.
진짜로 황궁급 크기가 고스란히 적용됐다면 입구 쪽 조각상 1개로 클리어하기에는 혈압 깨나 올랐을 거다.
“설마 보여주겠다고 데려갈 건 아니지?”
“설마요. 저희도 최대한 빨리 나가야 하는 입장인데요.”
ㅡ쿠오오오오오오오오오!
문득 밖에서 거대한 포효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굉장히 오랫동안 이어지는 포효였다.
‘뭐야. 벌써 2페이즈라고?’
그리고, 검투사 악마가 2페이즈에 진입할 때 내지르는 포효이기도 했다. 성 안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2페이즈로 들어간 건가 싶어서 어리둥절해졌다.
“이제 반쯤 잡으신 것 같습니다. 우리도 서두르죠.”
“어, 벌써?”
“네. 벌써요.”
그대로 사다리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나는 대충 사다리 옆을 잡고 주욱 내려왔는데, 마르가리타는 그렇게 못 하겠다며 발판을 하나하나 딛으면서 내려왔다.
발판을 딛을 때마다 탄력적으로 씰룩이는 엉덩이와 좌우로 흔들리는 골반은 덤이었다. 그 모습에서 눈을 돌리고 제단이 있는 문 앞에 섰다.
‘……카이킬리아가 보면 또 한바탕 난리 나겠지.’
이름처럼 악마가 다른 고위 악마에게 인간을 공양하는 장소니까 말이다. 악마 왕의 조각상도 있을테고, 이래저래 카이킬리아한테는 그냥 못 두고 볼 모습일 것이다.
나는 제단만 작동시키고 나와야겠단 생각으로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어?”
그리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원래 악마들의 왕이 새겨진 조각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드래곤의 머리가 새겨진 조각상이 있었다.
세계를 먹는 자의 머리가 새겨진 조각상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