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05)
r 205 – 지옥 – 8
‘저게…… 왜 여기 있지?’
혹시 내가 잘못 봤나 싶어서 떨리는 발걸음으로 조각상을 향해 다가갔다. 목 위의 두상만을 표현하고 있는 조각상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터무니없이 커다랬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말이다. 저것이 세계를 먹는 자가 맞다는 가정 하에, 눈동자 하나 크기가 내 키보다 거대했던 원본보다는 훨씬 작았다.
붉은색 동공을 상징하는 것인지 눈동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루비로 추측되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크기가 내 머리의 족히 2배에 달할 만큼 커다란 보석이었다.
그 앞에 섰다. 울렁이는 속을 애써 진정시키며 기억을 되짚었다. 황궁에서 그놈과 정면으로 마주했던 기억, 그리고 게임에서 봤던 모델링의 기억까지. 한 군데라도 놓치지 않도록 꼼꼼히.
‘…….’
그리고 확신했다. 이건 세계를 먹는 자의 머리를 표현한 조각상이 맞았다. 최종 보스인지라 다른 드래곤보다 훨씬 더 공들여 만들어진 놈이었으니 외형을 헷갈릴 수가 없었다.
정체가 밝혀졌다면, 이제 남은 의문은 하나뿐이었다.
악마가 왜 세계를 먹는 자의 조각상을, 그것도 원래는 DLC 최종 보스인 ‘악을 인도하는 루시퍼’의 조각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이걸 가져다 놓았는지.
더군다나 여기는 설정상으로 악마들이 고위 악마에게 제물을 바치는 제단이다. 그런 곳에 이걸 갖다 놓았다는 것은 보통 의미가 아니었다.
“왜 그러고 있어?”
내가 충격에 멍하니 굳어있는 동안, 어느새 방 안으로 들어온 마르가리타가 무슨 일 있냐면서 다가오다가 똑같이 멈춰섰다. 그 눈은 나와 똑같이 드래곤의 조각상을 향해 있었다.
“……뭐야, 이거? 드래곤인가?”
“네. 드래곤입니다.”
“그게 왜 여기 있어? 여기 지옥이잖아. 악마들이 제단에 드래곤 조각상을 갖다놔야 할 이유가 있나?”
마르가리타도 이런 반응이니, 일단 모드가 원인은 아닌 듯했다. 만약 그랬더라면 교황이 나한테 축복을 내려주는 모습을 본 카이킬리아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겠지.
‘……아니, 모드 탓이 아니어도 그건 그거대로 문제잖아.’
이게 모드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면, 무슨 이유에서든 상식이 개변되지 않고도 내 지식 밖의 일이 생겼다는 의미다. 나로서는 최악의 경우이자, 제일 피하고 싶은 경우였다.
머리가 복잡했다. 세계를 먹는 자가 황궁에 직접 찾아왔을 때도 이대로 죽는건가 싶어서 잔뜩 긴장했었는데. 어째 그놈이랑 얽히면 좋게 끝나는 일이 없었다.
마르가리타와 나는 제단을 작동시킬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멍하니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놀란 포인트는 조금 다른 것 같았지만, 어쨌든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은 일치했으니까.
그렇게 굳어버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땅에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저벅저벅 하는 발소리도 들렸다.
누구일지는 뻔했다. 보스를 처치해도 우리가 안 나오니까 직접 찾아온거겠지.
고개를 돌렸다. 오른손에 밝게 빛나는 성검을 들고, 왼선에 목부터 깔끔히 잘려나간 검투사 악마의 머리를 들고 있는 카이킬리아가 방 안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잘려나간 목의 단면에서 검붉은색의 피가 뚝뚝 떨어지며 찌그러진 원 모양을 만들었다.
카이킬리아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제일 먼저 나를 쳐다보고, 다음으로 우리 둘의 앞에 있는 조각상을 쳐다보고, 마지막으로 내 옆에 있는 마르가리타를 쳐다보았다.
쿵, 잘려나간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할 일을 해라.”
“……네?”
“해야 할 일을 하라 일렀다.”
“아, 네! 알겠습니다!”
분위기를 파악한 마르가리타가 방금 집어던져진 검투사 악마의 머리를 끙끙대며 들고 방을 나갔다. 샌들이 땅에 끌리는 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성검의 효과인지, 카이킬리아는 방금 전까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들고 있었음에도 티끌 하나 없이 말끔한 손으로 문을 걸어잠그고선 내 옆까지 다가왔다.
“이런 곳에서 무얼 하고 있었느냐. 섬기는 이가 친히 찾아오도록 만들다니, 참으로 불충한 신하가 아닐 수 없구나.”
“……제 설명을 들으시기보다는, 직접 확인하심이 더 빠를 것입니다.”
황금빛 동공이 조각상을 훑었다. 조각상의 외형을 확인한 눈썹이 초승달 모양으로 살짝 휘며 제 주인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났다.
“내 묻겠다, 델타. 저것이 여가 아는 그 빌어먹을 것의 형상이 맞느냐?”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폐하.”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어찌하여 그 빌어먹을 것의 모습을 본딴 조각상이 이따위 장소에 존재한다는 말이더냐.”
세계를 먹는 자가 황궁에 나타났을 때 제대로 대응하기는 커녕 용언의 여파만으로 픽 기절해버렸던 일이 떠올랐는지, 카이킬리아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험악해졌다.
내가 부숴도 괜찮다고 허락한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저 조각상을 토막내버릴 기세였다.
“그것은 지금부터 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부터 알아본다?”
그 얼굴에서 험악함이 사라지는 대신, 놀라움과 의외가 떠올랐다. 마치 내가 모르는 것도 있냐는 듯한 눈치였다.
납득은 빨랐다. 내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깔끔히 마음을 접은 카이킬리아가 쯧, 하며 심기가 아주 불편한 얼굴로 혀를 찼다.
세계를 먹는 자는 대부분의 설정이 드러나지 않은 보스였다.
근원도 불명이고, 기원도 불명이고, 왜 굳이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는지도 모른다. 단지 말 그대로 세계를 먹어치울 정도로 강력하며, 오직 그것만을 원할 뿐이었다.
사실은 좋은 목적이 있었다거나 하지도 않고, 예전에는 착했지만 타락하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다면서 감성팔이를 시도하지도 않는. 흔히 말해 절대악 계열의 보스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세계를 먹는 자가 지옥에서 악마왕 대신 숭배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놈한테 지옥이란 그저 멸망시켜야 할 또다른 세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테니까 말이다.
“너의 모습을 보고 확신하였다. 필시, 이 자리에는 원래 저 빌어먹을 것의 머리 말고 다른 무언가가 있었어야 할 터. 말하라. 너의 지식 속에서는 이 자리에 무엇이 존재하였느냐?”
순식간에 핵심을 짚어낸 카이킬리아가 질문을 해왔다. 내 모습에서 무언가 다른 감정을 읽어낸 모양이었다.
“이곳을, 그러니까…… 지옥을 다스리는 왕의 조각상입니다.”
“악마들의 왕이라…….”
카이킬리아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렇다면, 네가 말하는 그놈 대신 저 빌어먹을 것이 왕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가능성 또한 완전히 배제할 순 없는 것이 아니더냐. 퍽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구나.”
“…….”
세계를 먹는 자가 지옥의 수장이라, 상상이 잘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애초에 이런 고민을 하게 되리라고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으니 말이다.
차라리 메인 스토리가 뒤틀렸다거나, 혹은 건너뛰어졌다거나 한 거라면 혼란스럽긴 해도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내가 지금껏 저질러놓은 게 어디 한두가지였어야지.
그런데 지옥에서 루시퍼 대신 세계를 먹는 자가 숭배받고 있다는 사실은, 그냥 넘겨보려고 해도 도저히 그래지지가 않았다.
나는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하며 발판 위에 올라섰다. 제단의 양 옆이 오목하게 들어가며 그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피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폐하.”
“듣고 있노라.”
“아무래도, 이번 일은 직접 물어보아야 할 듯 합니다.”
“누구에게 말이더냐.”
“누구이겠습니까.”
어느덧 제단이 피로 가득 차올랐다. 새빨간 피가 안에서 넘실거렸다.
“원래 저 자리에 있었어야 할 것에게 말입니다.”
“……정말로 같이 안 가도 괜찮겠어?”
완성된 전이 장치를 팔에 착용한 마르가리타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질문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카이킬리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따로 갈 방법은 마련해뒀어요. 정 걱정되신다면 그 장치를 이용해서 교황 성하들이 여기로 넘어오신다는 방법도 있지 않겠습니까.”
악마들의 본거지가 있다고 한다면 교황이 직접 움직일만한 명분으로는 충분할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기를 정화시키려고 할 테니까.
플로레타와 루나는 나 때문에라도 여기로 직접 찾아오겠지만, 그건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긴 한데…….”
내 말에도 마르가리타가 쉽사리 납득하지 못하고 우물쭈물대자, 옆에 있던 카이킬리아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우리들이 그렇게 걱정된다면 빨리 꺼지기나 하여라. 악마와 싸울 줄도 모르는 것이 여의 근처에 계속 멤도는 것이야말로 진정 발목을 잡는 일이란 사실을 정녕 모르겠느냐?”
이건 마르가리타를 속으로는 걱정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표현을 못해서 저런 격한 단어를 쓴 게 아니라, 진짜로 빨리 꺼지라는 저 단어 그대로의 의미였다.
카이킬리아가 마음에 든 몇몇 빼고 나머지 사람을 걱정할 리가 있나.
마르가리타는 잔뜩 움츠러든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고선 전이 장치를 사용했다. 손목에 찬 팔찌를 중심으로 거대한 전이문이 열리더니 몸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이내 전이문마저 점차 작아지다가 사라졌다.
“끝났느냐?”
“그렇습니다.”
마르가리타가 사라진 것을 재차 확인한 카이킬리아는, 자연스럽게 내게 안겨들더니 그대로 입을 맞춰왔다. 입술이 맞닿자마자 그 사이를 비집고 뜨뜻미지근한 혀가 얽혔다.
벌을 준다고 말한 이후로 카이킬리아는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이런 요구를 해왔다. 어쩔 때엔 2번이나 3번씩 해올 때도 있었다. 매번 혼자서만 다리를 벌벌 떨만큼 가버리면서도 말이다.
어쩌면 방금 마르가리타를 최대한 빨리 쫓아보낸게 이걸 하고싶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이제는 묵묵히 몸 곳곳을 쓰다듬으면서 혀를 얽을 정도가 됐다. 왼손을 아무렇지 않게 엉덩이로 가져가 주무르고, 나머지 한 손을 옆구리로 뻗었다.
“흐읏…… 앗…….”
등을 훑거나 엉덩이를 주무를 때마다 울리는 카이킬리아의 신음 소리도 횟수가 거듭될수록 점차 야해졌다. 처음에는 신음을 참는 느낌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조차 없었다.
덕분에 내 손놀림도 같이 대담해지는 중이었다. 와이셔츠 밖으로 쓰다듬는 것이 아니라, 와이셔츠를 끌어올려서 맨살을 직접 만지기까지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카이킬리아는 실컷 가버리고 있었다.
혀를 얽으며 엉덩이를 주물러질 때 첫 번째로, 내 오른손이 와이셔츠를 끌어올리고 옆구리를 직접 주무를 때 두 번째로, 거기서 그치지 않고 척추 라인을 따라 올라가서 갈비뼈를 만져줄 때 세 번째로.
그렇게 3번이나 가버리고 나서야 카이킬리아는 내 목을 끌어안았던 팔을 풀었다.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고, 혀는 반쯤 빼물었고, 호흡은 헐떡여댔다. 전체적으로 엉망인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위엄을 유지하려는 건지 혼자서 일어서겠다며 내 손을 밀어냈으나, 표정이 저렇게나 풀어져서야 위엄이 있을 리가 없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몸을 억지로 지탱하면서 와이셔츠를 바지 안으로 집어넣어 정리한 카이킬리아가 몸을 일으켰다. 호흡이 점차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움직여도 되겠습니까, 폐하?”
ㅡ끄덕.
카이킬리아는 말할 힘도 없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마법진 위에 올라섰다. 여태껏 해오던대로 장소를 떠올리며 생각을 집중하자, 붉은색 빛이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어느덧 거대한 성 앞에 도착해 있었다.
황궁에 맞먹을 규모라는 설정답게 끝이 보이지 않는 크기였다. 어느새 헐떡임에서 벗어난 카이킬리아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작게 혀를 찼다.
게임에서 조각상이 놓여 있던 위치를 확인했다.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부로 진입할 방법은ㅡ”
카이킬리아가 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묻기도 전에, 성문이 쿠궁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들어오라는 뜻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