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07)
r 207 – 악을 인도하는 루시퍼 – 2
그 말을 들은 플로레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웨이브 진 금발과 성복으로 감싸인 몸이 황금빛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가 곧바로 스텔라의 앞에 나타났다.
“다시…… 다시 말씀해보시지요.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자기가 400년 전에 성기사였다고 주장하는 여자가 나타났는데, 그 여자가 귀빈님께 가는 방법을 알고 있대요.”
스텔라는 방금 전에 말했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했다. 플로레타의 녹안이 파르르 떨렸다. 조금의 떨림조차 없는 스텔라의 녹안과는 정확히 반대였다.
귀빈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태양께서, 그리고 달께서 그분의 생존 여부에 관해 확답을 내려주셨으니 그것을 의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그곳에 어떻게 가는지를 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신께서는 아무리 답을 갈구해도 침묵만을 지키고 계셨으니 말이다.
“자세한 사항은 교황 성하께서 직접 알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서요. 영혼의 순수성이 확실치 않다고 해서 이단으로 확정되지도 않은 사람을 심문할 수도 없잖아요?”
“신성력의 흔적은 확인하였습니까?”
“네. 일단 몸에서 신성력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사실은 확인했어요. 단어 그대로 흔적 수준이라 너무 미약해서 그렇지. 그리고 악마의 흔적도 같이 발견됐는데…… 그건 제가 설명드리는 것 보다는 교황 성하께서 직접 들으시는 편이 낫겠네요. 악마의 흔적이 발견됐는데 이단 판별을 통과한 사람은 저도 처음이에요.”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는지요?”
“이단심문소 지하로 가시면 돼요.”
스텔라가 대답한 그 즉시 플로레타의 몸이 사라졌다. 다음 순간에, 태양의 교황은 이단심문소의 지하실로 도착해 있었다. 황금빛 하이힐이 차갑디 차가운 대리석 바닥을 밟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순은과 대리석으로 장식되어 마치 얼어붙은 동토처럼 느껴지는 이단심문소 지하에, 화사한 태양의 황금색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또각, 하는 하이힐 소리와 함께 따스한 기운이 넘쳐흐르자, 의자를 둘러싼 채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던 전투 수녀들이 차례로 고개를 돌렸다. 셀레네가 마지막이었다.
“태양의 교황 성하.”
한쪽 무릎을 꿇으며 플로레타를 맞이한 셀레네를 시작으로 나머지 전투 수녀들 역시 그 행동을 따라했다. 머리를 숙이지 않고 있는 사람은 교황인 플로레타와 예의 그 성기사뿐이었다.
고개를 든 셀레네가 옆으로 길을 텄다. 정면에 여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갈색 포니테일의 머리카락을 뒤로 길게 늘어뜨리고, 구릿빛 피부에 노란색 비키니를 입은 여자였다.
“태양의 교황 성하를 뵙습니다.”
구릿빛 피부에 노란색 비키니를 입은 여자, 마르가리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예를 갖췄다. 무려 400년만에 뵙는 교황인지라 예법을 모두 까먹어버려서 자세가 굉장히 뻣뻣했다.
“성기사의 복장입니까.”
“네.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요.”
마르가리타가 비키니의 가슴 끈을 주욱 잡아당겼다. 굉장히 너덜너덜했다.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단순히 오래됐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여성 성기사들이 갑옷 밑에 받쳐 입는 의복. 저 노란색 비키니의 정체였다. 색깔은 10년을 주기로 바뀌는데, 노란색 역시 그 변경 주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플로레타는 잠시 머릿속으로 저 복장의 주기를 계산해보았다. 400년쯤 됐다. 일단 허투루 저 옷을 입고 있지는 않은 듯했다.
그럼에도 스텔라가 옷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은, 작정하면 저런 천 쪼가리 따위는 얼마든지 흉내낼 수 있기 때문이리라.
“가만히 계시지요, 전 성기사여. 검증할 것이 있습니다.”
황금빛 신성력이 마르가리타를 감쌌다. 하지만 마르가리타는 그 빛에 고통스러워 하지도, 빛을 벗어나려 발버둥치지도 않았다. 얌전히 자신을 감싼 빛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영혼이 아직 오염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플로레타가 빙긋 웃었다.
“당신의 영혼은 오염되지 않았습니다. 아주 훌륭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성기사시여.”
“그거 다행이네요. 교황 성하한테 직접 그 말을 들으니까 안심되는 기분이에요.”
마르가리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인 즉, 육체의 오염만 치료하면 멀쩡히 활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건 죽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어차피 꾸준한 신앙과 믿음이 있다면 육신의 오염쯤은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니 말이다.
주변을 둘러싼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졌다. 악마의 기운이 느껴졌기에 혹시나 싶어 경계를 하고 있던 건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이제 설명을 시작하시지요. 귀빈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하셨습니까.”
“귀빈……? 아, 델타 말하는 건가 보네요. 귀빈이라니, 어쩐지 신성력이 그렇게 찬란하더라니만. 자기가 제국 사람이긴 무슨. 누가 봐도 성국 사람이던데.”
말한 당사자는 모르겠지만, 방금 전의 투덜거림으로 플로레타의 호감도를 약간 상승시킨 마르가리타가 설명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자신이 400년 전에 성전을 위해 들어갔다가 실패하고 혼자 살아남아 지옥에 갇혔던 일과, 지옥에서 악마들의 시체를 뜯어먹으며 연명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사실 중간 과정은 설명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혼자서 시체 뜯어먹으면서 버티고, 집 짓고, 거기 틀어박혀서 벌벌 떨면서 살고. 이렇게 3개가 끝이었으니까.
“……그렇게 몇백 년동안 버티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흑발의 남자와 성검을 든 흑발 여자가 제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남자 쪽은 이름이 델타라고 했고, 성검을 든 여자 쪽은 제국의 황제인 카이킬리아라고 소개했고요.”
흘끔. 여기까지 말한 마르가리타가 교황의 눈치를 살폈다. 솔직히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던 탓이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지만 플로레타는 태연했다. 그 얼굴에 의심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교황이 자기 설명을 신뢰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 마르가리타는 나머지 일까지 모두 말했고, 전이 장치를 완성한 뒤에 그 2명이 마르가리타를 먼저 돌려보냈다는 부분에서 끝을 맺었다.
“감사합니다, 태양이시여…….”
설명이 끝나자마자 플로레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그런 은총을 내려주신 신들에 대한 감사와, 귀빈이 여전히 할 일을 해내고 계신 것에 대한 안도였다.
교황이 눈물을 흘려대는 모습을 보고 마르가리타는 뭔가 잘못됐나 싶어 화들짝 놀랐지만, 셀레네와 전투 수녀들은 태연했다. 뻘쭘해진 마르가리타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만, 마르가리타가 끝까지 말하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제국의 황제와 델타가 연인 사이라는 사실이었다.
남의 연애사를 굳이 까발릴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껴안고 쓰다듬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던 걸 보면 서로 좋아서 사귀는 것 같던데, 다른 사람이 참견할 사항은 아니었다.
“……마르가리타 자매님이라 하셨습니까.”
다 울었는지, 소매로 쓱쓱 눈물을 훔친 플로레타가 마르가리타와 시선을 마주했다.
“당신의 그 신을 향한 믿음, 분명 태양과 달께서도 기꺼워하실 것입니다. 저, 태양의 교황 플로레타 에반젤리나가 그 사실을 보증하겠습니다. 신의 품으로 잘 돌아오셨습니다, 어린 양이시여.”
그 머리가 꾸벅 숙여졌다. 무려 교황이 일개 성기사에게 고개를 숙인 행동이었으나,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이것이 도리였으니까.
무려 400년 간 지옥에 갇혀 있었던 사람이다.
진작 신앙을 잃고 타락하거나 악마에게 바쳐졌어도 이상하지 않았을진대, 아직도 영혼의 순수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위업이었다.
“어……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르가리타 역시 마찬가지로 태연했지만, 태연한 이유는 조금 달랐다.
360도를 미쳐서 겉으로는 정상인처럼 보인다 한들, 어쨌든 기본적으로 제정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마르가리타였다. 놀라지 않은 것이 아니라, 놀랄 수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옥에 가는 방법을 아신다고 하셨지요.”
인사를 끝낸 플로레타가 머리를 들며 눈을 빛냈다. 지금부터가 본론이었다.
마르가리타는 드디어, 하는 생각으로 방금 전보다 한층 더 열정을 다해 설명했다. 자신의 은인인 그 2명을 돕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지옥에 복수하고픈 마음도 있어서였다.
비록 자신이 쳐들어갔을 땐 처절하게 실패했지만, 델타와 카이킬리아가 지옥을 반쯤 갈아엎다시피 한 이후인 지금이라면 분명 가능할 것이다.
마르가리타의 설명을 경청하던 플로레타는 설명이 끝나자 차분한 눈으로 셀레네를 쳐다보았다.
“이단심문관.”
“예, 교황 성하. 말씀하십시오.”
“달의 교황을 불러주실 수 있겠습니까.”
세라피카 언니가 아닌 달의 교황을 불러달라는 것. 그것은 동생과 언니의 관계가 아니라 태양의 교황과 달의 교황의 관계로서 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셀레네는 군말없이 대답했다.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전투 수녀와 성기사를 집합시키세요. 이것 또한 태양의 교황으로서 내리는 명령입니다.”
플로레타의 손에 성유물이 나타났다. 네 쌍의 날개 사이에서 빛나고 있는 작은 태양이 지하실 전체를 밝게 비추었다. 마르가리타가 오, 하고 작은 감탄을 흘렸다.
“지금부터, 공식적으로 성전을 선포하겠습니다.”
“……이해가 하나도 안 가는데.”
루시퍼는 율법을 전파하는 선지자처럼 제자리에서 양팔을 활짝 벌리고 서 있었다. 여전히 나를 공격할 기색은 조금도 없어보였다.
“진실된 신이라면, 그 드래곤을 말하는 거냐?”
ㅡ그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마라.
‘이제 좀 대화가 통하네.’
방금 전까지는 일방적으로 떠들기만 하더니, 지금 내 말을 듣고 화를 내주기라도 한다. 그래도 아주 나를 개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떠드는 놈은 아닌 것 같았다.
“함부로 불러대긴 무슨. 난 아직 그놈 이름도 모르는데.”
게임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세계를 먹는 자, 라고만 불렸을 뿐 다른 정보는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ㅡ그렇다면 알려주마. 진실된 신앙을 향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해라.
“뭐?”
저렇게 쉽게 알려준다고? 하면서 당황하기도 잠시, 놈의 머리에서 인간으로 치면 입에 해당하는 부분이 위아래로 쩌억 벌어졌다.
그 안에서 징그럽게 생긴 나무 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와 마치 지렁이처럼 꿈틀거려댔다.
ㅡ그분의 이름은…….
나무뿌리가 꾸물거리며 소리를 만듬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풍압이 터져나왔다.
“윽?!”
바람에 정통으로 휩쓸린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며 뒤로 한참을 밀려났다.
날개 잃은 악몽을 땅에 박아넣었다. 발뒤꿈치가 아슬아슬하게 절벽 끄트머리 밖으로 밀려나기 직전에서야 간신히 몸을 멈출 수 있었다. 간신히 한숨을 돌리며 고개를 들었다.
루시퍼의 근처는 공간이 일그러지고 터져나가면서 검은색으로 물들었다가 멀쩡한 공간과 서로 뒤섞이며 다시 사라지는 등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입이 다물어지고, 나무 뿌리가 다시 얽히며 입처럼 생겼던 구멍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놈의 목소리가 덤덤하게 울렸다.
ㅡ이해하였나.
“전혀.”
뭔 악마가 용언을 쓰냐. 나는 투덜거리면서 섬 안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용언이라는 게 저런 개념이라고는 했다. 말 자체에 세계의 법칙과 진리가 담겨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 세계를 먹는 자 보스전을 치를 때도 용언을 이용해야 하는 거다.
상식적으로, 용언을 이용해 움직임에 제약을 걸어두지 않는다면 드래곤이 구태여 땅에 내려와서 인간과 드잡이질을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냥 공중에서 브레스 한 번 쏘면 끝이니까.
한 번으로 모자라면 죽을 때까지 쏘면 되고.
‘용언에 담긴 힘이 강할수록 격이 높은 거라고 했었나.’
단순히 이름을 말한 정도로 공간이 찢어지고 뒤틀린다면, 세계를 먹는 자의 격이 어느정도일지는 뻔했다.
ㅡ바깥 세상의 신화를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그놈의 이름을 알려주는 호의를 베풀었음에도 내가 여전히 움직일 기색이 없자, 루시퍼의 목소리가 또다시 울려퍼졌다. 내가 어지간히도 탐나는 모양이었다.
그게 세계를 먹는 자의 의지인지, 저놈의 독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바깥 세상의 신화?”
ㅡ들어본 적 없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거짓된 신의 비호를 받는 자여. 진실된 신의 구원을 거짓된 신이 거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필시 알고 있을 터.
“…….”
저게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하다가, 성국의 역사서 이야기라는 걸 알아차렸다. 성국의 신이 세계를 먹는 자의 침공을 막고 있다는 이야기 말이다.
쓸데없이 종교적인 단어 때문에 순간 뭔가 했다.
“그래. 들어본 적 있긴 해.”
들어본 적이 있긴 한데, ‘이 세상에서’ 들어본 것은 아니었다. 게임에서 문서 찾아볼 때 봤었지.
설마 나를 성국 사람으로 착각해서 성국 사람이니까 당연히 자기 나라 역사서를 봤을거라고 여기고 있는 건가.
ㅡ그 신화는, 하나를 제외하면 모두 거짓이다.
“하나는 진실이라는 의미겠네. 그 하나가 뭔데?”
살짝 의외였다. 그냥 전부 다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할 줄 알았는데.
ㅡ거짓된 신과 진실된 신이 충돌했다는 것.
‘……어?’
저놈이 말하는 진실된 신은 당연히 세계를 먹는 자일테고 거짓된 신은 태양과 달일텐데. 그놈이 창조신과 직접 맞붙을 정도로 강력한 드래곤이었나?
브닼 4 주인공은 그런 존재를 원트에 잡아낸거고?
‘뭐하는 괴물이야?’
내가 했던 게임이지만, 진짜 뭐하는 녀석이지.
내가 브닼 4 주인공의 힘을 진지하게 가늠해보는 사이, 루시퍼가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ㅡ거짓된 신은 단 2개의 세계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잃었다. 그 남은 세계 중 하나는 이미 태곳적 무로 되돌아갔노라.
‘……태곳적 무?’
어디서 들어본 설정 같은데. 뭐였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브닼 3에서 나온 설정이었나?
ㅡ구원은 필연적이다. 거짓된 신은 오직 도망치기만을 반복했지. 이미 수많은 세계가 구원을 얻었다. 이제 오직 하나만이 남았노라.
여기서부터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바짝 집중했다. 저 말이 통째로 나를 현혹시키려는 거짓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전부 다 듣고 나서 판단하면 될 일이다.
ㅡ한낱 인간이 신을 거부할 수는 없다. 거짓된 신의 비호를 받는 자여. 너도 눈을 떠라. 굴레를 벗어던지고, 진실을 마주해라.
“…….”
ㅡ내밀어진 손을 잡아라. 진실된 신을 섬길 기회를 놓치지 마라. 세상에 구원이 임박하였으니, 어둠은 오직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을지어다.
“……하나만 묻자. 그 구원이라는 게 대체 뭔데?”
내 질문에, 루시퍼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ㅡ모든 것이 멸종하는 것. 무엇 하나 남지 않는 것. 믿는 자를 포함해 존재하는 전부가 진실된 신의 품 속에서 하나로 융합되는 것. 그것이 구원이다.
“미친놈 아니야, 이거?”
사이비 맞네.
날개 잃은 악몽을 겨누었다. 자신을 향해 겨누어지는 칼 끝을 본 루시퍼의 눈동자가 반시계 방향으로 데구르르 회전했다.
ㅡ구원을 거부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
“구원은 무슨. 나보고 그냥 죽으라는 소리잖아. 내가 미쳤다고 그런 놈을 따라가?”
사실 가치관이 정상적이었어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지만, 저 말을 들으니 더더욱 그러기 싫었다. 믿고 따라가봤자 죽는다는 의미밖에 더 되나.
내가 단칼에 거부하자, 놈의 오른손에서 나무 뿌리가 서로 뒤엉키며 길다란 창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ㅡ애석하다. 어찌하여 진실된 신의 구원을 거부하는가.
“누가 진실이고 누가 거짓인지는 내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지. 그쪽이 아니라. 그리고 그게 구원이면 내가 지금 당장이라도 해줄 수 있는데, 어때?”
ㅡ그렇다면 스스로의 무지함을 원망하며 죽어가거라.
파이크와 맞먹는 길이의 창이 나를 향해 겨누어졌다. 그 길이가 터무니 없이 길었음에도, 마치 원뿔처럼 손잡이 부분이 두꺼운 창이었다.
놈이 땅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