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08)
r 208 – 악을 인도하는 루시퍼 – 3
창은 전통적으로 브닼 시리즈의 초보자에게 제일 추천하는 무기였다.
방패로 가드를 올린 채 공격이 가능한 유일한 무기군이라는 점도 있고, 리치가 굉장히 길어 ‘나는 닿는데 너는 안닿는’ 공격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점도 있어서였다.
과거 행적을 기사로 선택하고 물리컷 100 방패를 든 뒤, 중갑을 입고 방패 뒤에서 창질만 하는 식으로 게임을 진행해서 실력을 전혀 키우지 못한 뉴비들을 일컫는 멸칭마저 있었을 정도니까 말이다.
물론 사기 소리까지는 듣지 못했다.
내가 알기론 브닼 1까지는 사기라고 불리기 충분했었는데, 제작사가 후속작을 낼 때마다 꼬박꼬박 자잘한 너프를 먹였다나. 강인도라든가, 가드를 올렸을 때 공격 속도라든가.
그래도 방패 뒤에서 공격할 수 있다는 점과 무기 자체의 어마어마한 리치 하나는 변하지 않았기에 브닼 4에서도 초보자 추천 무기 목록에 하나씩은 꼬박꼬박 오르곤 했다.
그렇다면, 플레이어가 들어도 리치가 어마어마한 창을 보스가 들고 덤빈다면 어떻게 될까.
ㅡ쿠웅!
정답은, ‘범위가 더럽게 넓어서 접근도 제대로 못 한다’가 된다.
나무 뿌리가 서로 얽히고 뭉치며 어느덧 내 키보다 두 배 가량 커져버린 루시퍼가 손에 든 창을 사방으로 붕붕 휘둘러댔다.
실질적으로 창이라기보다는 손잡이 달린 원뿔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거기다 길이도 더럽게 길어서 온 사방이 다 공격 범위였다.
루시퍼의 키가 나와 비슷했을 때도 족히 3m 이상은 되어보였는데, 키가 커지니까 창의 길이도 똑같이 늘어나서 지금은 아무리 작게 잡아도 6m 이상은 되지 않나 싶었다.
놈이 창을 앞으로 내지르는 걸 확인한 뒤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두 번을 굴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날개 잃은 악몽이 닿기에는 택도 없는 거리였다. 리치 차이가 너무 심했다.
내가 남은 거리를 속으로 가늠해보는 사이, 놈이 창을 옆으로 휘저었다. 휘둘렀다기보다는 휘적인 것에 가까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땅에서 훌쩍 뛰어올라 휩쓸기를 피했다. 그 즉시 창을 부숴버린 루시퍼가 손에 새로운 창을 만들어내고선 자기가 언제 하단 공격을 했냐는 듯 찌르기로 바꿨다.
그걸 공중에서 튕겨내자, 반동으로 몸이 한참을 밀려나 저만치에 내려앉았다.
이것까지는 예상했다. 저놈의 창은 고정된 무기가 아니라 얼마든지 자기 의지로 해체했다가 새로 만들 수 있는 물건이니까. 게임에서도 저런 패턴이 제법 많았고.
‘또 이러네.’
하지만, 다른 하나는 예상 못 했다.
속으로 짜증을 내며 몸을 일으켰다. 루시퍼는 저만치에서 창을 겨눈 채로 언제든 공격해 들어올 것 같은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래놓고 하는 짓은 니가와였다. 마치 내가 제풀에 나가떨어지는 걸 기다리기라도 한다는 듯이.
처음엔 분명 저놈이 먼저 달려들었다. 문제는 나한테 일방적으로 반격당하고 몇 번 두들겨 맞더니, 그 이후로 계속 저런 모습이라는 것이다. 도무지 거리를 좁힐 생각이 없어보였다.
게임에서는 DLC의 최종 보스답게 아주 지랄맞은 난이도와 플레이어를 상대로 공중 콤보를 해댈만큼 무지막지한 연격 패턴, 포션 마실 시간도 안 주는 미친 호전성으로 정평이 나 있는 보스였건만, 지금은 멀리서 뽁뽁거리며 창질이나 해대는 뭔가 이상한 혼종이 탄생했다.
거리를 좁히려 드는 순간 찌르기로 견제가 들어오는데, 그러면 나는 공격을 굴러서 피하든 튕겨내든 해야 한다. 내가 그러는 동안 저놈은 뒷걸음질로 거리를 벌리고.
이런 놈은 처음이다. 여태껏 만났던 다른 적들처럼 자기가 죽든 말든 나를 죽여버리겠다며 전력으로 달려드는 게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실 저게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아닐까 싶긴 한데.’
자기 목숨을 내다버리는 것마냥 아득바득 나를 죽이려고 덤벼드는 것보다는, 적당히 목숨을 챙기는 선 안에서 덤벼드는 쪽이 훨씬 더 정상적으로 보이긴 했다.
상대하는 내 입장에선 게임 좆같이 하네, 소리가 절로 나오는 짓거리긴 해도 말이다.
‘그래. 니가 이러고도 안 덤벼드나 해보자.’
날개 잃은 악몽을 마법 속성으로 바꿨다. 저쪽에서 안 온다면 나도 안 가면 된다. 그리고 날개 잃은 악몽의 특수 능력에는 원거리 견제기도 있었다.
아무리 소모 마나가 적다 한들 무한히 쏠 수는 없겠지만, 상관 없었다.
저쪽은 그걸 모르지 않는가.
칼 끝을 놈에게 겨누머 검신에 마나를 응집시켰다. 저렇게 나무 뿌리로 뒤덮여 있는 1페이즈와 2페이즈에서는 신성 계열 공격 말고 다른 공격으로도 피해가 제대로 들어간다.
물론 상성 관계는 어디 안 가서 신성 공격의 대미지가 제일 크게 들어가긴 하는데, 어쨌든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게 핵심이었다.
푸른색으로 변한 검신에 푸른색의 마나가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소용돌이는 이내 눈에 확 들어올 수준의 회오리로 변해 휘몰아쳤다.
루시퍼는 뭔가 큰 공격이 들어온다는 걸 알아챈 즉시 달려들었지만, 여태껏 거리를 벌려둔 것이 오히려 독이었다. 내가 특수 공격을 시전하는 것이 한박자 더 빨랐다.
날개 잃은 악몽을 수평으로 든 채 오른쪽 어깨를 뒤로 바짝 당겼다가, 앞을 향해 내질렀다. 푸른 마나로 이루어진 소용돌이가 놈을 향해 뻗어나갔다.
빌어먹을 푸른색 꼬마 기차를 1/3쯤 갈아버렸던 그 회오리였다.
주변의 열기와 공기를 모조리 빨아들이며 앞으로 뻗어나간 푸른색의 마나 폭풍이 루시퍼에게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놈은 내게 창을 찔러넣는 시간보다 회오리가 자신에게 닿는 시간이 더 빠르다고 판단한 듯, 제자리에 멈춰 창을 내지르며 공격을 막았다.
ㅡ콰과과광!
나무 뿌리와 회오리가 충돌하며 거센 폭발이 터져나왔다.
물론 실질적인 효과는 없었고, 회오리는 창 끝을 약간 뭉툭하게 만들기만 한 채 허공으로 흩어졌다. 뭉툭해진 창 끝은 곧장 원래대로 돌아왔으니 진짜로 효과가 없다고 볼 수 있었다.
“안 덤비지? 한번 더 해볼까?”
나는 그 말과 함께 다시 한번 회오리를 내쏘았다. 놈은 이번엔 정면으로 막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쪽을 택했다. 마나의 격류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다음. 곧바로 3번째 회오리가 날아들었다. 그 와중에 피하는 게 익숙해졌는지 놈은 방금 전보다 훨씬 적은 몸놀림으로 회오리를 피했다. 소용돌이는 애꿎은 바닥을 갈아마셨다.
여전히 효과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하루종일 피하기만 할 거면 그러든가. 나도 하루종일 이것만 사용하면 되니까. 너도 죽을 때까지 쏘면 죽겠지.”
날개 잃은 악몽에 계속해서 푸른색 소용돌이가 휘감기자, 놈은 더 이상 피하기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듯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계속 거리를 벌린다 한들, 내게 창보다 더 긴 거리에서 쓸 수 있는 원거리 공격 수단이 있다면 그런 행동이 무용지물이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완벽히 헛짚었다.
내 노림수대로 놈이 달려들어주는 순간에 날개 잃은 악몽의 속성을 바꾸며 똑같이 달려들었다. 검신에서 황금색과 은색이 섞인 찬란한 빛이 새어나왔다.
드디어, 아주 오랜만에 저놈과의 거리가 날개 잃은 악몽이 닿을 거리만큼 좁혀졌다. 루시퍼는 대충 창 길이 정도로만 좁히려 한 것 같은데, 내가 그렇게는 못 둔다.
익숙한 모습이 나왔다. 창의 길이가 놈의 키 정도로 줄어들고, 넓은 범위를 길게 휩쓰는 대신 좁은 범위를 짧게, 대신 더 많이 휩쓰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게임에서 봤던 연격 패턴이었다.
‘찌르기.’
제일 먼저 정석적인 찌르기가 들어왔다. 그걸 튕겨내자 놈은 아무렇지도 않게 방금 전의 찌르기를 반복하려는 것처럼 창을 치켜들었다.
당연히 엇박이다.
나는 속으로 박자를 셌다가, 반박이 지난 다음에서야 날개 잃은 악몽을 휘둘렀다. 창 끝이 신성한 빛을 내뿜는 칼날에 부딪히며 옆으로 튕겨나갔다.
루시퍼는 창이 옆으로 꺾이며 몸이 반쯤 돌아가자마자 어깨치기를 해왔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그걸 튕겨내고 바로 칼을 찔렀다. 나무 뿌리 몇 개가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 것쯤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 놈의 다리가 반쯤 치켜올려졌다. 발 구르기 패턴이다. 아주 놀랍게도, 저것 역시 튕겨내는 게 가능한 패턴이기도 했다.
커다랗고 울퉁불퉁한 발바닥이 땅을 내리찍었다. 사방으로 충격파와 먼지가 휘몰아치는 타이밍에 맞춰 먼지 구름에다 대고 날개 잃은 악몽을 휘둘렀다.
충격파와 먼지가 내 몸을 휘감듯이 옆으로 비껴나갔다.
아직 안 끝났다. 왼발을 강하게 내리찍은 즉시 루시퍼가 오른발을 앞으로 한 발짝 내딛으며 창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위쪽을 향했던 창의 위아래가 어느순간 뒤집혔다.
창을 구성하고 있던 나무 뿌리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반대편 끝을 향해 이동했다. 창을 거꾸로 쥔 듯한 모양새가 된 루시퍼가 그걸 아래로 내리찍었다.
옆으로 한 발짝 움직여 피했다. 어깨 바로 옆을 거대한 기둥이 내리찍고 지나갔다. 창의 끄트머리가 바닥을 파고들자 바닥이 쿠르릉 울렸다.
놈은 바닥에 박힌 창을 뽑아드는 대신 왼팔을 휘두르는 방법을 택했다. 새로운 뿌리가 마구 돋아나며 왼팔이 몇 배로 비대해졌다.
그 몇 배로 비대해진 왼팔이 마치 그물을 펼치듯 근처 땅을 휩쓸어버렸다. 저걸 어떻게 피할지 고민하다가, 정석적인 방법처럼 훌쩍 뛰어올랐다.
내가 허공에 떠 있는 동안 나무 뿌리가 아래를 휩쓸어버렸고, 나는 바닥에 착지하며 놈의 가슴팍에 칼질을 했다. 이번에도 나무 뿌리가 뭉텅이로 잘려나갔다.
게임에서도 1페이즈와 2페이즈 상태의 루시퍼를 때리면 나무 뿌리가 떨어지는 연출이 있었으니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착지한 직후에 곧장 날개 잃은 악몽을 치켜들었다. 검신에 빛이 모이고, 팔을 수직으로 내리치자 빛의 기둥이 내리꽂히며 놈의 머리를 강타했다.
여기서도 특수 능력이 통하는구나 싶었다. 기둥은 여기서도 하늘에서 내려온 듯했지만,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것이 손해였다.
어차피 그래봤자 답이 나오지도 않는다. 지금은 왜 되는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된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는 걸로 족했다.
‘이번에도 능력이 증폭되지는 않았네.’
기둥에 머리를 처맞고 휘청이는 루시퍼의 허벅지에 칼을 박아넣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루시퍼도 엄연히 악마니까 혹시나 했는데, 베히모스를 상대할 때처럼 빛의 기둥이 증폭되는 일은 없었다. 안 도와준 건지, 지옥이라 못 도와준 건지는 불명이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놈의 복부가 위아래로 벌어지며 그 사이에서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나무 뿌리들이 튀어나왔다.
복부가 마치 입처럼 정면을 깨물기 직전에 거리를 벌렸다. 허공을 한 입 크게 깨문 나무 뿌리들이 다시 스멀스멀 제자리로 돌아갔다.
ㅡ다시 묻겠다. 진실된 신을 따를 생각은 없는가.
그러고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길래 또 니가와를 시전하려는 건가 싶어 바짝 긴장하고 있으려니, 놈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또 그 소리야? 생각 없다고 했을 텐데.”
ㅡ어찌하여 구원을 거부하는가. 참으로 무지하다.
그 말과 함께, 놈의 등 뒤에서 나무 뿌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날개가 촤악 펼쳐졌다. 저 뿌리들 자체로 살아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끊임없이 꿈틀거려대고 있었다.
원래는 2페이즈에서 나와야 할 날개였지만, 이젠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저걸로 놀라기에는 너무 늦었지.’
지옥의 악마 왕이 세계를 먹는 자를 신으로 섬기고 추앙하는 것까지 본 마당에, 페이즈 스킵 따위는 놀랄 축에도 못 낀다.
루시퍼가 다시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 창 끝이 나를 향하도록 거꾸로 쥐고, 어깨를 살짝 뒤로 빼며 손목을 머리 근처까지 들어올려서 손에 든 걸 투척할 준비를 했다.
보이는 그대로 창을 투척하는 패턴이자, 2페이즈의 개막 패턴이기도 했다. 1페이즈가 통째로 건너뛰어진 것이다.
내가 타이밍에 맞춰 ‘재는 재로’ 마법을 시전하려는 찰나.
‘잠깐만. 방금…… 뭐였지?’
핏빛으로 새빨갛게 물든 하늘에서, 그것보다 훨씬 더 새빨간 눈동자가 스쳐지나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