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09)
r 209 – 악을 인도하는 루시퍼 – 4
하늘에 뜬 붉은 눈은 아주 잠깐 뿐이었다. 내가 잘못 봤나 싶어 하늘을 다시 확인할 때쯤엔 그것은 이미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잘못봤나, 라고 넘겨버리기에는 영 찝찝했다.
어차피 하늘은 시뻘건 색깔이고 태양과 달 비스무리하게 떠오른 붉은 무언가까지 있으니 잘못 본 거라고 믿고 싶긴 한데, 그러기엔 신경 쓰이는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루시퍼가 손에 들린 나무 뿌리 창을 힘차게 투척했다. 얼마나 세게 던졌는지 무슨 대포를 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2페이즈의 개막 패턴이었다.
나무 뿌리가 얽히고 설키며 이루어진 거대한 기둥이 앞으로 쏜살같이 내쏘아졌다. 창에는 악마 특유의 검붉은 기운까지 감돌고 있었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창 끝이 근처 공기를 찢어버리며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들었다. 잡념을 정리했다. 지금은 다시 전투에 집중할 때였다.
왼손을 쥐며 흑마법을 시전할 준비를 했다. 체력이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왼손에 검은색 마법진이 그려졌다. 창 끝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확 가까워졌다.
정확히 타이밍에 맞춰 왼손을 쭉 뻗었다. 착탄 지점의 모든 것을 꿰뚫어버릴 기세로 날아오던 창은 내 손에 그려진 마법진으로 빨려들어가며 분해되어 흡수당했다.
팔을 잡아당겼다. 꽉 쥔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척 보기에도 불길한 검은색 기운이 팔꿈치 아래쪽을 모조리 휘감으며 넘실대고 있었다.
다시 나무 뿌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을 만들어낸 루시퍼가 쿵 내려앉았다. 날개가 등 뒤에서 힘차게 펄럭였다.
그와 동시에, 부글부글 끓는 피의 강에서 나무 뿌리로 뒤엉킨 팔이 불쑥 나타났다. 팔의 주인은 곧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루시퍼의 모습을 1/2 사이즈로 축소시켜놓은 듯한, 나와 거의 똑같은 크기의 무언가였다. 몸 전체가 나무 뿌리로 뒤덮였고, 오른손에도 창을 들고 있었다.
다만, 얼굴에 한쪽이나마 눈이 돋아있는 본체와는 달리 저놈의 얼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래서야 앞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몸뚱아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일단 한 마리.’
제작사가 악마왕이라는 컨셉을 살리고 싶었는지 2페이즈 한정으로 소환해대는 놈이었다.
그리고 한 마리도 아니었다. 제일 처음 튀어나온 것과 비슷하게 생겨먹은 놈들이 3마리나 더 비척비척 걸어나왔다.
놈들은 루시퍼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선 나를 향해 차례대로 무기를 겨누었다. 각자 들고 있는 무기도 달랐다.
제일 처음 나온 녀석은 창, 두 번째로 나온 놈이 롱소드와 방패, 세 번째로 나온 게 대검, 마지막이 거대한 활이었다.
‘잡는 것 자체는 크게 문제 없을 테고.’
지금의 내 스펙이라면 그럴 것이다. 저것들을 잡는 일 자체는 인챈트 건 날개 잃은 악몽으로 네다섯 대면 충분하다. 그건 닼라 모드에서도 안 변했다.
진짜 문제는, 바닐라와 달리 닼라 모드에선 저놈들이 페이즈를 넘기기 전까지 계속해서 보충된다는 것이다. 4마리까지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도 말이다.
대충 방치해두면 수십 마리의 복제품 군단과 싸워야 할 수도 있었다.
날개 잃은 악몽의 속성을 바꿨다. 검신이 다시 회색빛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흉흉한 기운이 감도는 왼손을 크로스가드 윗부분에 올리고 쓰다듬듯 위로 밀어올렸다.
손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흑염이 타올랐다. 재는 재로 마법 덕분에 화력이 한층 더 강화된지라 불길이 예전보다 더 거셌다.
루시퍼가 창을 들고 있는 손을 내밀었다. 그걸 신호 삼아 셋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활을 든 놈은 제자리에 버티고 서서 활시위를 당기는 중인지라 예외였다.
‘제일 앞에 있는 놈부터.’
계산을 끝내고 자리를 약간 옮겼다. 활을 든 놈이 나를 노리는 동시에, 앞에서 달려드는 다른 놈들의 뒤통수가 들어오는 위치였다. 그 행동에 맞춰 활시위도 옆으로 살짝 비틀렸다.
얘네들은 주변에 동료가 있든 말든 죽어라 무기를 휘두른다는 특징이 있으니까 말이다.
퓻, 소리와 함께 화살이 발사됐다. 멍청한 지능은 그대로인지, 화살은 내게 꽂히는 대신 같은 사선에 있던 제일 뒷놈의 뒤통수에 박혔다.
대검 들고 다가오다가 뜬금없이 같은 편한테 공격당한 놈이 고개를 푹 숙이며 휘청대는 사이, 앞으로 몇 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칼 든 녀석이 무기를 휘두르려는 틈을 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칼 끝이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갈랐다. 놈이 자세를 바로잡는 동안 날개 잃은 악몽을 휘둘렀다.
검은색 화염이 방패 옆으로 파고들며 나무 뿌리를 불태웠다. 바싹 타들어간 뿌리가 땅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이제 등 뒤에서 공격이 날아올 시간이었다. 나는 그걸 확인하지도 않고 옆으로 굴러 빠져나갔다. 그러자마자 내가 있던 자리로 창이 쑤셔졌다.
텅! 하며, 창 끝이 애꿎은 방패에 맞고 튕겨나갔다. 창 든 놈이 반동 탓에 몸을 휘청였다.
바로 앞에서 대검이 양 손으로 치켜들어졌다. 어느새 회복한 복제품 하나가 그걸 치켜든 것이다. 놈이 그걸 휘두를 준비를 했다. 한번 더 굴러서 빠져나왔다.
비스듬하게 휘둘러진 대검은 나 대신 창 든 놈의 갈비뼈를 후려갈겼다.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대검에 후드려맞은 놈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기호 ‘[’처럼 몸이 꺾인 나무 뿌리 인간은 대검이 휘둘러진 방향대로 날아갔다. 그리고, 방패에 거하게 충돌했다. 그 탓에 방패 든 놈도 덩달아 몸을 휘청였다.
칼질 한 번으로 2명을 무력화시켰다는 아주 훌륭한 위업을 달성한 대검 든 놈의 뒤통수에, 화살이 퓻! 소리를 내며 박혔다. 놈의 머리가 앞으로 홱 꺾였다.
지능이 게임이랑 똑같은 놈들이라 다행이었다.
“신을 섬기는 어린 양들이여.”
플로레타의 목소리가 찬란한 태양빛 아래 모인 사람들에게 울려퍼졌다. 수백 쌍, 혹은 수천 쌍의 시선이 오롯이 두 명을 향하고 있었다.
태양의 교황과 달의 교황이었다.
“저희는 셀 수 없이 오랜 시간 동안, 태양과 만월께 기꺼움을 드렸습니다. 신의 기쁨을 위해 노래하고, 신의 은총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찬란한 태양과 서늘한 만월을 찬양했습니다.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신을 위하여 나아갔습니다.”
제일 가까이 선 것은 당연히 스텔라와 셀레네였다.
스텔라는 철퇴의 무게추 부분을 바닥에 두고 손잡이가 하늘을 보도록 세워놓은 채로, 셀레네는 레이피어의 끝이 땅을 향하도록 단단히 쥔 채로 서 있었다.
마르가리타의 자리는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에게서 한 발짝 정도 떨어진 부근이었다. 스텔라와 셀레네 급은 아니지만, 성기사보다는 격이 높은, 그런 애매한 직위를 부여받았기에.
갑옷도 조금 달랐다. 전체적으로 완벽한 순백색이란 사실만은 다른 성기사들과 같았으나, 가슴께에 세 줄의 검은색 선이 그려졌다.
“저희들은, 신의 품 안에서 안식을 얻었습니다.”
플로레타가 말을 끝맺자 세상이 고요해졌다. 무려 수천의 사람이 모였음에도 절그럭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잠시 광장의 사람들에게 눈길을 주던 플로레타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이 세상 바깥에는 빛을 흐리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치 에메랄드와도 같은 색깔과 모양의 녹안에, 결연한 의지가 깃들었다.
“인간을 현혹하고, 신앙을 모독하고, 신을 조롱하는. 차마 입에 담아서도 안되고 담지도 못할. 그런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무리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플로레타에게 화답하듯, 그 머리 위로 찬란한 태양빛이 내려왔다. 마치 플로레타가 빛의 기둥 속에 들어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오늘, 우리는 그 사특한 존재에게 징벌을 내릴 것입니다.”
이번에는 루나가 앞으로 나섰다.
자연스럽게 플로레타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루나가 입을 열자, 아직 대낮임에도 하늘에 보름달이 나타나 루나에게 빛을 내려주었다. 기적이라 부르기에 충분했다.
“더 이상 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자줏빛 눈동자가 수천의 군중을 훑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무척 조곤조곤한 말투였으나, 아주 또렷이 울려퍼졌다.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 그리고 그 직속의 수십이나 되는 전투 수녀. 그에 조금 못 미치는 수백의 전투 수녀. 그리고 새하얀 갑옷을 차려 입은 수백의 성기사.
마지막으로 교황의 성전 선포를 경견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수천의 신도까지. 누구 하나 광장에 울려퍼지는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어나십시오. 신의 어린 양들이여. 그 손으로 사악한 것들에게 진정한 믿음을 일깨워주어, 신께서 바라는 바를 이루도록 하십시오.”
플로레타가 원래 자리로 걸어나왔다. 그 오른손에 들려 있던, 네 쌍의 날개 위에 달린 작은 태양이 빛을 발했다.
루나가 자리에 똑바로 섰다. 그 왼손에 들려 있던, 네 쌍의 날개 위에 달린 작은 만월이 빛을 발했다.
태양과 달을 상징하는 성유물이 설령 신을 믿지 않는 자라고 해도 느낄 수 있을만큼 환히 빛나고 있었다.
성유물을 머리 높이까지 들어올린 플로레타와 루나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모순된 표현이었지만, 실제로 그랬다.
“자애로운 태양이, 모든 곳을 환히 비추기를.”
“자비로운 만월이, 모든 것을 품에 감싸기를.”
플로레타와 루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런 연설이 끝나면 으레 나오곤 하는 우레와도 같은 함성이나 박수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소름이 쭈뼛 끼쳐올 정도로 조용했다.
일반 신도들은 무릎을 꿇고선 태양과 달을 위해, 그리고 지금부터 신성한 전쟁을 펼칠 태양과 달의 대리자들을 위해 진심어린 기도를 올렸다.
스텔라 휘하의 전투 수녀들 역시 함성을 지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손에 든 방패로 바닥을 몇 번 내리찍으며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할 뿐이었다.
셀레네 휘하의 전투 수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저 조용히 손에 든 레이피어를 얼굴 앞에 수직으로, 칼 끝이 하늘을 보도록 만들며 가져올 뿐이었다.
성기사들도 그랬다. 한쪽 무릎을 꿇고, 그 머리 위를 비추는 빛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기만 했다.
그 어떤 강대한 적을 상대해야 할지 모른다.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 수십 수백의 악마가 동시에 달려들 수도 있다. 목숨을 더없이 가볍게 잃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수십 년간 대성당 밖을 두문불출하던 교황들이 직접 나와 자신들을 축복해주었다는 것, 그리고 교황의 옆에서 함께 싸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기는 한없이 드높았다.
거기에 더해, 신께서 직접 빚어내신 성유물까지 있으니 말이다.
성유물 위의 태양과 만월이 빛나기 시작했다. 두 교황 사이에서 빛이 뭉치고, 거대한 원 사이로 다른 세계가 열렸다.
원 안의 풍경을 확인한 사람들이 그 끔찍한 모습에 헛구역질을 했다.
땅은 생명력이 없어 바싹 말라버렸고, 하늘은 끔찍한 핏빛이었고, 강에서는 피가 물처럼 흐르고, 흙으로 이루어진 산 대신 인간의 해골로 이루어진 산이 드높이 솟았다.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그런 지옥을 향해 교황들이 발을 내딛었다.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하이힐이 바싹 마른 흙먼지를 짓밟았다. 무감정한 눈동자가 정면을 쳐다보았다.
카이킬리아와 델타의 이동 경로에 있지 않아 운 좋게 목숨을 건졌던 악마들 위로, 태양과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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