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11)
r 211 – 악을 인도하는 루시퍼 – 6
손바닥이 바닥과 충돌하며 천지를 울리는 것 같은 굉음과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듯 살벌했다.
“잠시 기다리거라, 교황.”
하지만 실제로 싸움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카이킬리아가 교황들을 막아세운 탓이었다.
“……어떠한 연유로 그러시는지요.”
“여가 보기에 저것은 싸울 마음이 전혀 없노라. 그러니 안심하여도 좋다.”
카이킬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성검을 내렸다. 플로레타와 루나는 긴가민가하면서도 성유물을 들어올렸던 팔을 살짝 내렸고, 스텔라와 셀레네가 그 뒤를 따랐다. 나머지가 마지막이었다.
결과는 금방 나왔다.
그 말대로였다. 나무 뿌리로 뒤덮인 손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 끝을 세워 바닥을 찍었다. 손가락 마디 끄트머리가 바닥을 힘껏 파고들었다.
손가락이 뒤틀린 공간 쪽으로 끌어당겨지며 바닥을 갈아엎었다. 콰드드득, 하는 소리가 들리고, 길다란 다섯 줄의 자국이 남았다.
카이킬리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나머지는 살짝 놀란 표정으로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꼭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모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려는 것입니까?”
“그 생각이 맞을 것이다, 달의 교황.”
이내 팔뚝 너머의 모습까지 드러나기 시작했다.
뒤틀린 공간 사이로 어깨가 나타나고, 목이 나타나고, 얼굴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검붉은색의 나무 뿌리로 뒤덮여 있었으며, 얼굴에는 한쪽 눈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얼굴을 내민 무언가는 하나밖에 없는 눈으로 바깥의 풍경을 이리저리 살펴댔다. 눈동자가 회전할 때마다 나무 뿌리가 꺾이고 부서지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끔찍하고 역겨운 기운에, 성기사와 전투 수녀 몇 명이 더 버티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통, 플로레타가 성유물 끝으로 바닥을 가볍게 쳤다. 황금빛 장막이 펼쳐졌다. 그러자 곳곳에서 들려오던 헛구역질이 잦아들었다.
울렁거림이 잦아든 뒤에 찾아온 것은 본능적인 공포였다. 전투 수녀와 성기사들이 자신도 모르게 무기를 치켜들었다가, 교황의 모습을 보고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다시 내렸다.
교황들은 저 역겨운 것의 모습을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놈의 손가락이 바닥에서 빠져나왔다. 처참하게 갈려나간 바닥과, 굵직한 다섯 줄의 선이 보였다.
그러더니 다시 바닥을 내리치고선, 손가락을 박아넣으며 몸을 끌어올렸다. 상반신이 한층 더 많이 드러났다. 왼쪽 어깨와 갈비뼈 부근까지 드러나기 직전이었다.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놈은, 안쪽의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리라고 말이다.
“무얼 그리 놀란 표정을 하고 있느냐.”
카이킬리아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황제께서는 놀랍지 않으십니까?”
“반대로 묻겠노라. 여는 저 안에 누가 있는지를 뻔히 알거늘, 놀라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단 말이냐.”
“아.”
교황들의 목소리가 겹쳤다. 그제서야 둘의 표정이 봄날 눈녹듯 녹아내렸다. 스텔라와 셀레네도 비슷했다. 몸의 긴장이 확 풀어지는 게 뻔히 보일 정도였다.
나무 뿌리로 뒤덮인 저 사특한 것이 워낙 요란하게 발버둥을 쳐대는 탓에 나머지는 미처 듣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습니다. 귀빈께서 저 안에 계셨지요. 귀빈이라면 당연히 저럴 수 있으실진대. 저희들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플로레타가 말하고,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아주 간단히 납득했다. 귀빈께서 저것을 상대하고 계신다면, 당연히 그 힘을 보고 저렇게 도망쳐야 정상이다.
그와는 반대로, 정작 말을 한 당사자인 카이킬리아는 약간의 의문을 품고 있었다. 델타는 악마왕을 저렇게 만들만큼 강한 신성력이 없었다. 적어도 카이킬리아가 봤을 때는 그랬다.
게다가 저 놈, 처음 봤을 때보다 몸집이 족히 2배는 커져 있지 않은가. 그런 녀석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팽개친 채 도망치게 만들 정도로 찍어눌렀다고?
‘무엇을 숨기고 있었느냐, 델타. 힘? 능력?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무언가?’
카이킬리아는 무척이나 즐거운 마음으로 입술을 핥았다. 또다시 아주 훌륭한 흥밋거리가 생겼다. 역시 저 사내가 옆에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즐거운 미소를 짓고 있던 카이킬리아의 귀에, 무언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악마왕이 빠져나오려고 노력하던 공간 너머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신성력이 터져나왔다.
“이것이, 무슨……!”
플로레타와 루나마저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거릴 수준의 신성력이었다. 카이킬리아는 성검을 들었다. 성검 자체가 방금 터져나온 신성력과 미친 듯이 공명하고 있었다.
성유물 끄트머리에 달린 태양과 달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러다 터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만큼 흔들려댔다. 깜짝 놀란 플로레타와 루나가 헛숨을 들이켰다.
교황들의 반응이 이 정도였으니, 나머지가 보일 모습은 뻔했다. 스텔라와 셀레네, 전투 수녀들과 성기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를 올렸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악마왕의 반응 역시 남달랐다. 놈은 아직 갈비뼈 밑부분이 들어가 있는 공간 너머를 흘끗 내려다보더니, 필사적으로 앞을 향해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오른팔로 바닥을 찍고, 왼팔로 바닥을 찍고, 그러면서 몸을 끌어올리고. 보는 사람한테 다 절박함이 느껴졌다.
물론 다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몸이 빨려들어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악마왕은 최후의 저항인지 양 손가락을 바닥에 힘껏 박아 넣었지만, 그것뿐이었다.
그 상태 그대로 빨려들어갔으니까.
뒤틀렸던 공간이 다시 닫혔다. 찬란히 느껴지던 신성력이 사라지고, 바닥에는 열 줄 가량의 길다란 자국만이 남았다.
침묵이 감돌았다. 누구 하나 쉽사리 말을 하려 들지 않았다.
“…….”
“…….”
“…….”
하지만 침묵은 잠시였다.
카이킬리아가, 플로레타가, 루나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공간이 다시 비틀리더니, 방금 전에 느껴졌던 그 막대한 신성력과 함께 그 사이로 익숙한 얼굴의 남자 한 명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오른손에 황금색과 은색이 반씩 섞인 검을 들고, 약간 감성에 젖은 듯하면서도 무척 복잡해 보이는 얼굴로, 왼손에 목부터 잘려나간 악마왕의 머리를 질질 끌고 있는.
검은색 머리에 검은색 눈을 하고 검은색 제복을 입은 남자.
델타였다.
“저 왔습니다, 황제 폐…… 어?”
바로 앞의 카이킬리아를 향해 인사를 하려던 델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칠흑색의 동공에 벌벌 떨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스텔라와 셀레네, 마찬가지로 벌벌 떨며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전투 수녀와 성기사들, 그리고 플로레타와 루나가 들어왔다.
“…….”
칠흑색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그래서, 교황 성하들이 꼬박 하루 동안 그러고 계시는 이유가 델타 너 때문이라 이거지?”
“나보고 어떻게든 성국으로 데려와서 성자로 모실 테니 걱정 말라고 하시던데.”
뒤에서 날 끌어안고 있던 리제가 깔깔 웃었다.
옆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렸다. 클라우디아였다. 에리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고, 아이리스는 안절부절못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쇼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선 우아하게 차를 홀짝이면서도 흘끔흘끔 이쪽을 쳐다보는 아우로라까지 있었다. 사실상 예전의 그 인원이 고스란히 다 모인 셈이다.
“그러면 황제 폐하랑 교황 성하들이 서로 못 가져서 안달인 남자를 내가 처음으로 찍었단 소리네. 나 진짜로 안목이 좋아도 너무 좋은 거 아니야?”
“…….”
나와 시선이 마주친 리제는 꺄르륵거리며 자기 가슴 사이로 내 머리를 끌어당겼다. 머리가 가슴골로 파고들면서 뒤통수에 부드럽고도 물컹이는 감촉이 느껴졌다.
내가 있는 곳은 은빛 여명 기사단장의 방, 그 중에서도 정확히는 리제의 방이었다. 기사단장들은 각자 개인실을 쓴다고 하니 말이다.
실질적으로 관심을 가지진 않아도 처우는 확실하게 챙겨주겠다 이건지, 개인실임에도 크기가 상당했다. 우리 여섯 명이 다 들어가고도 공간이 한참 남을 만큼.
팔짱을 끼고선 벽에 기댄 채로 리제를 따라 히죽이던 클라우디아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풀썩, 침대에 걸터앉아 이쪽으로 몸을 당겼다. 자연스레 거리가 좁혀졌다.
“이야. 우리 델타, 죄 많은 남자네. 그렇지?”
“안 그래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너까지 그럴래?”
“내가 틀린 말 했나? 너 하나 때문에 교황 성하들께서 알현실 앞에서 시위 중이신 거잖아?”
클라우디아가 키득거리며 내 뺨을 콕콕 찔렀다. 틀린 게 하나도 없어서 더 열받았다.
그 일이 있은 이후, 플로레타와 루나는 나를 성국으로 데려가겠노라고 아주 강력하게 주장했다. 카이킬리아는 당연히 헛소리 말라면서 으르렁댔고.
수십 번에 걸친 주장이 모조리 거절당하자, 황궁까지 따라와서는 알현실 앞에서 날 데려가겠다며 여태껏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카이킬리아가 그런다고 눈 하나 감짝할 리 있나. 덕분에 지옥에서 돌아온 지도 꼬박 하루가 넘어가는데 머리는 여전히 복잡했다.
미네르바와 은빛 여명 기사단장들, 심지어는 소식 듣고 달려왔다는 아우로라까지 처음엔 내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방방 뛰며 기뻐했다가, 저러는 교황들의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했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
가슴에 마구 문질러지는 뒤통수의 감촉을 애써 무시하며 아우로라를 살폈다.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이 사실은 그게 아님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옆에 올 거면 오시죠, 영주님.”
“어, 어어?”
내가 설마 이런 말을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듯, 화들짝 놀라 당황하던 아우로라가 큼큼 헛기침을 하며 스리슬쩍 내 옆으로 다가왔다. 거절은 안 하겠단 의미였다.
아우로라는 내 오른쪽 팔을 살짝 들어올리고선 자기 어깨에 둘렀다. 그리고는 몸을 나한테 바싹 붙이며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클라우디아는 그냥 옆에 걸터앉았을 뿐이니 논외로 친다면, 대놓고 여자 둘을 끼고 있음에도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저기, 델타.”
리제가 옆으로 고개를 불쑥 들이밀었다. 가슴이 너무 큰 탓에 어깨 근처까지가 한계였다.
“왜?”
나도 고개를 살짝 돌려 리제를 바라보았다.
“앞이 휑하지 않아?”
“갑자기?”
“원래 이런 건 균형을 맞춰야 되는 거야. 뒤에도 있고 오른쪽에도 있고 왼쪽에도 있는데 앞에만 없으면 돼?”
“응? 나?”
자신도 모르는 새에 왼쪽을 담당하게 된 클라우디아가 눈을 끔뻑였다가, 말 뜻을 이해했는지 씨익 웃으며 옆에 달라붙었다. 몸 전체가 내장형 근육이라도 되는지 엄청 딱딱했다.
“이런 거에 균형 맞추라고 누가 그러든?”
“내가.”
리제는 뻔뻔하게 웃더니 고개를 들었다. 움찔, 그 시선이 닿는 곳에 있던 아이리스가 몸을 움찔거렸다.
“무슨 말 하는지 알겠지, 아이리스?”
그 말을 들은 아이리스가 나를 쳐다봄과 동시에 나머지 다섯 명의 시선도 아이리스에게로 쏠렸다. 그러고보니 저번에 매혹이랑 연관해서도 오해를 풀어야 하는데.
아이리스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소심한 고양이처럼 우물쭈물 다가와서는 내 다리 사이로 들어왔다. 톡, 은색 머리카락이 내 가슴팍에 맞닿았다.
사방이 모두 채워진 것을 확인한 리제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리카는 더할 나위 없이 한심한 얼굴로 자신의 언니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균형도 채워졌으니 말인데, 델타.”
리제가 턱으로 내 어깨를 콕콕 찔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교황 성하들께서 널 못 데려가서 안달인 거야?”
“어…….”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걸 말해도 되나 싶어서였다.
‘괜찮겠지.’
얘네들이랑 남남도 아니고. 우리 정도 관계면 충분히 믿고 털어놓을 수 있다.
“내가 걔들 신이랑 직접 만났거든.”
어깨를 찌르던 턱이 우뚝 멈췄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