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12)
r 212 – 영접 – 1
“……정말로?”
리제가 내 머리를 자기 가슴 위로 끌어당기며 목을 뒤로 젖혔다. 얼굴이 거꾸로 보였다. 리제는 고개를 앞으로 숙인 채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방에서 경악으로 물든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제외하고, 여기 있는 모두가 똑같은 반응이었다. 신을 직접 만났다는 건 위업을 논할 수준의 일이 아닐 테니 그럴만도 했다.
“설마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어? 그랬다간 신한테 천벌 받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그렇지만…….”
리제가 말꼬리를 흐렸다. 교황들이 저리도 줄기차게 나를 요구해대는 이유가 납득이 가는 것을 넘어, 걱정까지 되는 모양이었다.
저 방법이 먹히지 않는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자기네 나라로 데려가려 할 테니까 말이다.
“대체 어떻게 만났는데? 일단 그것부터 설명해 봐.”
오른팔에 달라붙어 있던 아우로라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리제의 얼굴 옆에 얼굴이 하나 추가됐다.
“일단은…….”
나무 뿌리 악마의 목에 날개 잃은 악몽을 박아넣었다. 오른쪽 목으로 들어간 칼 끝이 내부를 헤집으며 왼쪽 목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체력을 회복하는 느낌이 밀려옴과 동시에 놈의 몸을 걷어차며 칼을 뽑았다. 벌러덩 뒤로 넘어진 나무 뿌리가 충격을 받아 잘게 부서졌다. 한때 나무뿌리였던 가루들이 땅 밑으로 스며들었다.
지금 당장은 저놈이 마지막이다. 몸을 돌렸다. 날개 잃은 악몽에는 여전히 흑염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루시퍼도 여전히 나를 하나밖에 없는 눈으로 응시하는 중이었다.
1대1을 이어갈 수 있는 시간은 짧다. 얼마 안 가서 새로운 놈이 튀어나올 테니까. 그 안에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다 해야 했다.
내가 무릎을 살짝 굽히며 달려나갈 준비를 하는 그 순간까지도 루시퍼는 움직이지 않았다. 왜 저러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한테 좋은 일이었다.
‘……?’
막 땅을 박차려는 순간, 또다시 무엇인가가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발을 멈칫 거렸다. 이유는 몰라도 무시해서는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루시퍼는 아직도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아예 나를 적극적으로 공격할 의지 자체가 없는 듯했다. 여태껏 내가 받은 공격이라곤 창질 몇 번이 다였으니 말 다한 거다.
‘그러고보니, 처음 하늘에서 뭔가 느껴지고 나서부터 저랬던 거 같은데.’
세계를 먹는 자가 날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기라도 했나.
‘……저건 또 뭐야?’
하늘에서 붉은색의 거대한 실루엣이 생겨났다. 주변의 색이 한층 짙어지고, 짙어진 색깔이 비늘 비스무리한 모양을 갖추며 허공에 무언가를 만들었다.
세로 동공.
아는 눈동자였고, 잊을 수도 없었고, 잊어서도 안 됐다. 저걸 바로 코앞에서 확인하기까지 했으니 그러기란 불가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래곤의 한쪽 눈 근처만 뚝 떼다가 허공에 가져다놓은 것 같은 형상이 완성됐다. 그 사이에 또렷이 박힌 눈동자가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경악에 찬 나와는 달리, 루시퍼는 바닥에 넙죽 엎드리더니 절을 하듯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었다.
역시 조금 전에 느꼈던 위화감은 저놈이 나를 지켜보고 있어서 그랬던 게 분명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저놈이 왜 저런 짓을 하고 있냐는 의문이었다. 황궁에서 만났을 때는 직접 날아와놓고선, 지금은 왜?
하늘에 나타난 눈은 척 보기에도 황궁보다 훨씬 더 거대해보이는 크기였다. 만약 저게 세계를 먹는 자의 진짜 크기라면, 저번의 모습은 대체 뭐였던 건가 싶었다.
다행히 혼란스러운 감정과는 별개로 머리는 냉정했다. 이 상황에 대한 공포보다는 저걸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그 방법을 먼저 고민하기 시작할 정도로.
물론 방법이 떠오를 리가 없었다. 한쪽 눈동자가 황궁보다도 더 거대해보이는 놈을 무슨 수로 죽이겠는가. 내 칼은 이쑤시개만도 못할 텐데.
‘…….’
대치는 제법 오래 이어졌다.
하늘에 떠오른 붉은 눈은 아래를 쳐다보기만 할 뿐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고, 나는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서 움직일 수 없었으며, 루시퍼는 머리를 조아린 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상태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행동을 개시한 것은 세계를 먹는 자였다. 비늘 가운데 박힌 붉은 세로 동공이 점점 지상과 가까워졌다.
곧이어, 머릿속에 사념이 때려박혔다.
ㅡ그 인간…….
단순히 사념이 울려퍼진 것만으로도 피의 강이 훨씬 더 격렬하게 끓어오르고, 하늘의 붉은빛이 지독히도 짙어졌다. 하늘과 강의 색깔이 구분이 안 될 지경이었다.
귀를 틀어막으려다 어차피 소용없는 짓이란 걸 떠올리고 팔을 내렸다. 그때 멀쩡했으니 이번에도 멀쩡하겠지. 설마 머리가 터져 죽기야 하겠어.
ㅡ여신이 개입한 이유…… 이해하였다…….
저놈이 혼자서 지껄여대는 건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물어봤자 절대로 안 알려줄 거다.
다행히 이번 혼잣말은 그럭저럭 짧았다. 멋대로 사념을 때려박으며 혼잣말을 지껄여대던 녀석이, 갑자기 다시 말을 걸어왔다.
ㅡ인간…… 제안을 하지…….
나는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제안?”
ㅡ너의 그 믿음…… 나를 향해라…….
“……뭘 하라고?”
ㅡ머지 않아…… 멸망할 신…… 무의미한 믿음이다…….
“멸망할 거라니, 그게 무슨ㅡ”
내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주위 모든 것을 백색으로 물들일만큼 강력한 신성력이 터져나왔다. 신성력이라서인지 눈은 하나도 부시지 않았다. 덕분에 주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용암처럼 격렬히 끓어오르던 피의 강이 깨끗이 증발했다. 피처럼 붉던 하늘은 마치 푸른 하늘의 낮처럼, 별이 빛나는 밤하늘처럼 맑아졌다. 하늘에 낮과 밤이 공존하기 시작했다.
바싹 마른 불모지나 다를 바 없었던 대지가 푸르른 자연으로 바뀌었다.
이슬을 잔뜩 머금은 풀이 돋아나고, 피의 강이 흐르던 자리에는 유리처럼 맑고 투명한 시냇물이 흘렀다. 나무들이 빽빽이 자라나며 울창한 숲을 만들었다.
흙내음과 풀내음이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새들이 지저귀는 짹짹 소리가 들렸다. 지옥이 한순간에 자연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는 뻔했다. 내 앞에 나타난, 이 어마어마한 신성력의 주인이 벌인 짓이겠지.
‘……성국의 신인가?’
전력을 발휘한 교황을 본 적은 없지만, 아무리 교황들이라 해도 루시퍼가 직접 만든 공간을 한순간에 자연으로 바꾸는 건 불가능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당연히 하나뿐이었다.
안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려 했다. 하지만 빛무리 탓에 그러기가 힘들었다. 눈이 부시거나 한 건 아닌데, 그냥 빛 자체가 물리적으로 몸을 뒤덮고 있었다.
ㅡ여기까지 오다니…… 저 인간…… 너의 역린이었나…….
“그 입 다물어라.”
ㅡ추악한 패배자의…… 마지막 발악인가…….
“그 입 다물라 하였다!”
노호성이 터져나왔다.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인지라 톤이 제법 다르긴 했지만, 기억 속에 있는 목소리였다.
성국에서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했던, 그 목소리가 분명했다.
빛이 퍼져나가며 공간과 공간이 부딪혔다. 무엇인가가 마구잡이로 뒤섞이며 인간의 인지 능력을 뛰어넘는 파괴를 벌여댔다. 분명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이해가 불가능했다.
ㅡ힘 없는 자의 분노…… 무의미하다…….
이번에는 사념과 함께 감정이 전달되어 왔다. 말투로 추측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사념 그 자체에 세계를 먹는 자가 방금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전해진 것이다.
날아든 감정은 조롱과 비웃음이었다.
빛무리가 파르르 떨렸지만, 그게 전부였다. 명백한 조롱과 비웃음이 담겨 있음에도 침음을 흘리며 떨어대기만 할 뿐, 조금의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힘의 격차가 명백하다는 뜻이었다.
ㅡ들어라…… 인간…….
세계를 먹는 자의 목소리가 다시 날 향했다.
ㅡ너의 존재…… 흥미롭다…… 관심이 간다…… 여신이 필요로 하는…… 특별한 인간…….
“저 말은 들으시면 안 됩니다.”
방금 말로 저 빛무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답을 받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빛무리는 다급하게 저 말을 부정하려 했다.
ㅡ그러니…… 나를 섬겨라…….
루시퍼에 이은 영입 제안이었다.
ㅡ인간 하나…… 한없이 작다…… 무의미한 발버둥이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당신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어요. 무시하세요.”
여신의 목소리가 한층 간절해졌다.
ㅡ나를 섬기면…… 그 무엇 하나…… 필요치 않다…… 오직…… 기다리는 일…… 그것이 전부이니…….
“저것이 거짓은 아니지만, 진실도 아닙니다. 당연히 기다리기만 해도 되겠죠. 세계가 멸망할 테니까요.”
그건 이미 알고 있다. 루시퍼한테 들었으니까. 구원이랍시고 하는 짓이 세계를 집어삼켜서 파괴하는 거라고 했던가.
“저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반드시요. 하지만 저것은 그저 흥미를 위해 저따위 말을 지껄여댈 뿐입니다. 저와는 달라요.”
처음부터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 따윈 조금도 없었지만, 왜 굳이 나를 끌어들이려 하는지는 궁금했다. 하늘에 떠 있는 세로 동공에 눈길을 주었다.
자신의 크기에 비하면 손톱 밑의 모래알만도 못할 동작이었지만, 세계를 먹는 자는 용케도 그걸 알아들었는지 사념을 펼쳤다.
ㅡ여신의 마지막 발버둥…… 그것을…… 완전하게 짓밟는 일…… 아주 흥미롭다…… 흡족할 것이다…….
“저것 보세요.. 저 밑으로 들어가봤자 미래는 뻔할 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절대 속으시면 안 됩니다. 가봤자 죽는다고요.”
ㅡ너의 밑에 있더라도…… 그렇게 될 것이다…… 하찮고…… 나약한 존재여…….
세계를 먹는 자와 여신. 둘 사이의 격차는 굉장히 큰 모양이었다. 저놈이 끊임없이 조롱을 퍼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마디의 반박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나는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런 내 말을 거절의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하늘에 떠오른 눈동자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ㅡ시간…… 얼마 남지 않았다…… 다른 세계의 흡수가 끝나면…… 오직 하나만이 남을 테니…….
이내, 눈동자가 완전히 사라졌다. 피로 물들어 있던 하늘이 지평선 끝까지 낮과 밤으로 물들었다. 놈의 사념이 마지막으로 울려퍼졌다.
ㅡ멸망을 붙잡음은…… 의미 없는 행동이니…… 똑똑히 새겨두어라…….
그리고, 사념이 사라짐과 동시에 끔찍한 괴성이 들려왔다.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던 루시퍼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한 것이다.
악마들의 왕 따위로 성국의 신이 직접 내뿜는 신성력을 감당할 순 없을 테니 당연했다.
빛무리는 루시퍼에겐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듯,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저대로 신성력에 천천히 타 죽도록 내버려두려는 모양이었다. 가까이 와도 모습이 안 보이는 건 여전했다.
“분명 하시고 싶은 말씀도, 궁금한 점도 많으시겠죠.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네. 아주 많죠. 잘 알고 계시네요. 일단 이것부터 묻겠습니다. 거의 확신하긴 했는데 혹시 몰라서요. 성국의 신 맞으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제가 달리 무엇일까요?”
“그러면 태양과 달 중에서 어느쪽이신……?”
일단 색을 보면 태양 같긴 한데, 하늘에는 밤하늘이 펼쳐져 있는 데다 달까지 같이 떠 있는지라 살짝 애매했다.
빛무리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전혀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아무렇게나 생각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지금 중요한 일은 그게 아니니까요.”
황금색과 은색의 빛이 내 손을 덮었다.
“우선, 제가 답해드릴 수 있는 내용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어째서죠?”
“당신의 육신이 버티지 못할 것이기에 그래요. 교황이 어떤 연유로 그토록 강력한 힘을 지녔겠나요. 그래야만 저의 목소리를 받아들이고도 무사할 수 있어서입니다.”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는요?”
“세계의 진리에 도달하는 과정이 아니지 않습니까?”
빛무리가 살포시 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세계의 진리라니, 그것들이 그렇게까지 심각한 질문이었나.
“현재 당신의 육신으로 견딜 수 있는 질문은 한정되어 있어요. 저는 딱 그것만 답해드릴 거예요. 당신을 잃기는 싫으니까요.”
방금 말을 들으니 뭔가 기분이 묘해졌다. 당신이라는 호칭에 더해 잃기 싫다고까지 표현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내 기분이 이상한 건 이상한 거고, 할 일은 해야 했다. 나는 빛무리를 향해 되물었다.
“어떤 것 말이죠?”
“당신 옆에 있는, 그 귀여운 꼬마 마녀에 대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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