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2)
“아니, 난 이런걸 대체 어떻게 튕겨냈던거지?”
목 없는 철갑 기병을 클리어 한 후, 나는 기병이 쓰던 창을 낑낑거리며 말로 옮겼다. 이 거대한 창이랑 잘린 말대가리를 토벌의 증거로 쓸 생각이었다.
이런 흉악한 무기를 그냥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말에 탄 상태에서 전력으로 휘두르는데, 몸 좀 밀려나는 선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이 튕겨내는 게 가능한 스스로가 무척이나 신기했다.
현실이었으면 이걸 맞는 순간 튕겨내기고 나발이고 무기째로 허공을 날지 않았을까.
말은 내가 고삐를 묶어두었던 자리에 그대로 서서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갈기를 몇 번 쓰다듬어준 후, 안장 옆에 무기를 걸쳤다. 반대편에는 잘린 말대가리를 묶었다.
둘 모두 내가 낑낑거리며 들어야 할 무게였음에도 말은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일단 하나는 됐고.’
말에 훌쩍 올라타 말고삐를 잡았다. 목 없는 철갑 기병을 클리어하긴 했지만, 아직 기사단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은 아니었다. 그 전에 할 일이 남아있지 않은가.
그 영주 놈을 꾀어낼 물건을 찾아내는 거.
나는 말을 몰아 근처에 있는 산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이동에만 꼬박 한나절 가까이를 잡아먹었다.
출발할 때는 분명 해가 머리 위에 떠 있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자 지평선 너머로 주홍빛 노을과 함께 뉘엿뉘엿 넘어가는 중이었다.
말을 다시 근처 나무에 묶어두고, 거대한 바위를 향해 다가갔다. 이 거대한 바위 뒤편에 있는 것이 내가 찾는 던전의 출입구였다.
게임을 정석적으로 진행한다면 이 뒤쪽에 있는 비밀을 알아차리는 것은 스토리가 중반에 접어든 뒤의 일이다. 그 전까지는 애초에 스토리상으로 여기에 올 일 자체가 없었다.
스토리 진행은 안하고 서브퀘스트만 주구장창 해댄다면 또 몰라.
하지만 이미 비밀을 알고 있다면 안으로 들어가는 일 자체는 간단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동그랗게 생긴 돌 하나를 꺼내들었다. 목 없는 철갑 기병이 드랍한 아이템이었다.
이게 던전 입구의 봉인을 푸는 열쇠인데, 길 가던 야생마가 풀 뜯어먹다가 우연히 이걸 같이 삼키고선 그 힘에 잠식당해 목 없는 철갑 기병이 탄생한 것이다.
그걸 들고 바위 뒤편으로 걸어가 주위에 잔뜩 우거진 풀들을 마구 헤집었다. 게임에서는 화염마법으로 여길 불태워야 비밀이 드러나지만, 지금은 굳이 불 안질러도 풀 쯤은 제거할 수 있으니까.
풀숲을 모두 파헤치자 흙바닥 밑에서 무언가 드러났다. 가운데에 동그란 구멍이 뚫리고, 그 양쪽으로 무언가 복잡한 문자가 새겨진 석판이었다.
양쪽 석판에 쓰여있는 문자는 경고였다. 대충 요약해서 ‘이 문자를 읽을 수 있다면, 악마의 봉인을 풀지 말 것’이라는 내용의.
‘딱히 쓸모는 없겠지만.’
애초에 제국 끄트머리 중에서도 끄트머리에 위치한 이런 곳까지 와서 뭔가를 탐험하려는 놈들이 저런 경고를 보고 물러서지는 않을거다.
나는 목 없는 철갑 기병이 드랍한 아이템을 석판의 동그란 구멍에 끼웠다. 아이템은 빈틈없이 딱 맞게 들어갔다. 그러자 석판이 옅은 백색의 빛을 발했다.
뒤로 조금 물러나 바위를 관찰했다. 바위가 우르르릉, 소리를 내며 진동하더니 표면에 균열이 생겨났다. 밑부분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은 점점 더 커져선 곧 바위 전체로 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콰르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바위가 무너졌다. 부서진 돌조각들이 산비탈 밑으로 데굴데굴 굴러내려갔다. 근처에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드디어.’
팔을 휘저어 흙먼지를 흩뜨렸다. 바위가 무너진 자리에서 정확히 사람 한 명이 들어갈만한 크기의 던전 입구가 보였다. 내가 찾는 물건은 이 안에 있었다.
근처에 아무런 몬스터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말로 돌아가 안장에서 횃불을 꺼내들었다.
게임에서는 그냥 퀵슬롯에 넣고 다니다가 마우스 휠을 돌려서 꺼내면 불이 붙은 채로 나왔었는데, 지금은 당연히 그럴 리가 없으니 내가 직접 불을 붙여야 했다.
부싯돌은 난생 처음 써보는지라 헛짓거리를 조금 한 후에야 간신히 불이 붙었다.
‘에어컨에 선풍기에 형광등까지 있으면서 라이터는 왜 없지?’
화염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라서 그런건가.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으로 피 묻은 검을 빼어든 채 던전 입구 앞에 섰다. 허리춤에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식량을 채운 가방도 하나 동여맸다.
게임에서야 적당한 크기의 던전이었지만, 지금은 얼마나 커다란 곳으로 바뀌어있을지 모른다. 목 없는 철갑 기병 보스필드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확 늘어났던 것처럼 말이다.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오래된 공간 특유의 곰팡이 냄새가 훅 끼쳐왔다.
‘게임이랑 다른 점은…… 없어보이네.’
안쪽에는 다른 점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게임이랑 똑같은 모습이었다. 통로를 따라 안으로 계속 걸어들어갔다.
여기는 아주 오래 전, 성국의 사제와 성기사들이 어느 악마와 혈전을 벌이다 끝내는 토벌에 실패하고 차선책으로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동굴 자체를 봉인시켜놓은 장소였다.
봉인을 풀지 말라는 경고가 새겨진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성국이 토벌에 실패할 정도로 강대한 악마가 다시 세상에 풀려난다면, 어떤 대참사가 밀어닥칠지 모르니까.
하지만 성국이 그 악마에 대해 잘못 이해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여기 봉인된 악마도 마찬가지로 사제와 성기사들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점이다.
전신의 살점이 조각조각 부서져 던전 곳곳에 흩뿌려지고 신성력에 몸이 정화되면서도 온갖 발악을 해댄 끝에 사제와 성기사들을 후퇴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악마 자신이 입은 상처도 심각했다.
힘의 대부분이 흩어져버려 자연적으로는 복구가 불가능한 수준에까지 이르렀기에 길 가던 야생마가 봉인의 열쇠를 집어삼켰음에도 지금껏 봉인을 부수지 못했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멸되어 지옥으로 돌아가는 일을 막기 위해 책에 깃든 상태로 누군가 여기에 들어와 봉인을 풀어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성국이 그걸 알았더라면 희생을 더 내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물고늘어졌을테지만. 안타깝게 된 일이었다.
‘……라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을 수 있지.’
그것도 무려 여기 봉인돼있었던 악마 본인한테 직접.
브닼 4의 또다른 특징들 중 하나였다. 하나의 퀘스트를 여러 가지 조건으로 클리어 할 수 있어서, 모든 스토리를 보려면 필수적으로 다회차 플레이를 해야 했다.
ㅡ으어어어……
동굴 저편에서 잔뜩 바람빠진 신음소리가 들렸다. 피 묻은 검을 겨누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저만치에서 으어어어, 하는 소리를 내며 무엇인가가 비척비척 걸어왔다. 살점은 모조리 썩어문드러지고, 다 녹슬어버린 갑옷을 입고, 이가 다 빠져버린 검을 든 채로.
예전에 이곳에서 악마와 싸웠다던 성기사의 시체였다. 그 시체들에 조각조각 흩뿌려진 악마의 살점이 하나씩 달라붙어선 저렇게 망자로 부활시킨거다.
비록 지금은 다 썩어문드러진 시체의 꼴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예전에는 성기사였다는 사실을 과시라도 하듯이, 망자가 비척이며 자세를 잡았다.
나 역시 횃불을 잠시 오른쪽 바닥에 기대어두고, 피 묻은 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성기사 망자가 칼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더니 몸을 앞으로 확 기울이며 달려들었다.
오른쪽으로 굴러 공격을 빠져나가고, 옆구리에 검을 휘둘렀다. 놈의 다 낡아빠진 검이 바닥과 부딪히며 깡! 소리가 동굴에 울려퍼짐과 동시에 옆구리가 퍽 터져나갔다.
놈은 옆구리가 잘려나가든 말든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로 몸을 돌려 다시 덤벼들었다. 이게 망자류 잡몹의 성가신 점이었다. 공격을 맞아도 경직이 전혀 안 걸리는거.
특대망치나 특대검처럼 아예 몸뚱아리 그 자체를 멀찍이 날려버리는 거대한 공격이 아니고서야, 일반적인 무기에는 그 어떤 경직도 받지 않았다.
일반 무기를 대상으로는 상시 슈퍼아머 적용 상태라고 생각하면 편했다.
ㅡ터엉!
‘하지만 패링은 먹히지.’
튕겨내기 공방을 몇 번 주고받은 다음, 놈의 움직임이 느려진 걸 보고 왼손에 소형 방패를 꺼내들어 휘둘러지는 칼을 걷어냈다.
경쾌한 텅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휘청이자, 나는 그대로 피 묻은 검을 목에 박아넣고 비틀었다.
뚜둑, 머리가 180도로 회전하더니 살점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빙그르르 돌아 뜯겨나갔다. 머리 잃은 몸이 팔을 허우적거리다 무너지고, 몸 잃은 머리가 저만치에서 입을 딱딱거렸다.
이름은 ‘전투 피로’인데 왜 이미 시체인 망자들에게까지 전투 피로가 쌓이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굳이 쓸데없는 의문을 가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가능하니까 써먹을 뿐.
옆에 세워두었던 횃불을 집어들고, 내가 찾는 물품이 드랍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시체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하지만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쯧, 허탕인가.’
아무래도 여기를 조금 오래 돌아다녀야 할 것 같았다. 운만 좋다면 처음 만나는 두 녀셕이 하나씩 떨궈서 곧장 책으로 직행할 수 있는 경우도 생겼는데.
저만치에서 시체 비척이는 소리가 더 들렸다. 뭐, 괜찮았다. 어차피 모아야 되는 양은 2개가 전부다. 2개 정도는 대충 몇 분만 투자하면 챙길 수 있을거다.
예전에 업적 깨겠답시고 100개를 다 모아야 했을때는 진짜 마우스 집어던질 뻔 했는데, 그때에 비하면 별 거 아니었다.
ㅡ으어어어어어……
이번에는 사제복을 입은 망자가 두 명이나 걸어나왔다. 횃불을 다시 옆에 내려놓고 피 묻은 검을 양손으로 잡았다.
원래 모든 가챠의 기본은 나올 때까지 돌리는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