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21)
r 221 – 두 번째 거래 – 2
“자, 편히 쉬려무나, 아이야.”
“……감사합니다.”
나는 혼이 쏙 빠진 얼굴로 소파에 기댔다. 몸도 힘들고 정신도 힘들었다.
“내 제자들은 어땠니? 같이 재미있게 잘 보냈을까?”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잘 보낸 것 같지도 않은데요.”
내 대답을 들은 미네르바가 쿡쿡 웃었다. 딱히 비웃는 것 같지는 않았고, 표정을 보아하니 대답 자체가 재미있게 들려서 웃은 쪽에 가까웠다.
애석하게도 날 소용돌이 안으로 끌고간 3명이 끝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마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마법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개중에는 남자를 거의 10년 만에 본다는 사람도 있었다. 꼭 10년씩이나 되는 게 아니더라도, 평균적으로 4~5년 정도는 남자랑 담쌓고 지냈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마탑 안은 죄다 여자뿐이고, 황궁도 이래저래 따져보면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고, 자기들은 마탑이나 황궁 밖으로 나갈 일도 거의 없어서였다나.
제일 짧은 사람이 2년 반이라던가 그랬다.
그런 상황에 남자가, 그것도 자기네들 마탑주를 이름으로 부를 만큼 관계가 깊은 걸로도 모자라 고대의 스크롤을 찾을 때 옆에 있기까지 했다던 남자가 찾아온 것이다.
도저히 관심을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나는 미네르바와 떨어져 있었던 그 10분 남짓한 시간 만에, 백 명도 넘는 마법사들한테 둘러싸여 수천 개의 질문 폭격을 받았다.
질문이 너무 많아서 대답해주기는커녕 제대로 듣지도 못했다.
가끔 내 냄새를 맡으려 한다거나, 나를 이리저리 만지려 시도한다거나, 내 옷을 찢어 기념품으로 가져가려는 머리가 이상한 애들도 있긴 했는데, 곧장 응징을 당해서 질질 끌려갔다.
물론 나머지도 그런 변태같은 짓만 안 했다 뿐이지 아주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후훗, 안타깝게 됐구나.”
“전혀 안타깝게 여기는 얼굴이 아니십니다만.”
“그렇게 보였다면 유감이란다.”
미네르바는 태연히 대답하고선 맞은편 소파에 앉으려다가, 잠시 멈칫 하더니 뭔가를 깨달은 얼굴로 내 옆에 다가와 걸터앉았다. 그러고선, 내 어깨를 붙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뒤통수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허벅지와 맞닿았다. 콧속으로 미네르바의 살내음이 훅 끼쳐들어왔다. 바로 위에서 목욕 가운이 팔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느새 미네르바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있었다.
미네르바를 쳐다보려 했지만, 목욕 가운으로 감싸인 풍만한 가슴 빼고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눈 닿는 거의 모든 곳이 가슴이었다. 새삼 미네르바도 어마어마한 거유구나 싶었다.
가슴 크기가 한참 상향평준화 된 이 세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마 평균보다 몇 치수 더 큰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저기ㅡ”
몸을 일으키려던 내 머리를 가슴이 막아세웠다. 일어서려는 낌새가 보이자마자 상체를 숙여 자기 가슴을 내 눈앞으로 들이민 것이다.
덕분에 나는 밑가슴에 코를 박았다가 그대로 다시 허벅지 위에 추락했다. 미네르바는 어처구니 없어 하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미네르바 님.”
“아이가 여성의 몸에 관심이 아주 많은 것 같아서? 내 몸도 아주 훌륭한 편에 속할 텐데, 마음에 들었을까?”
“없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저도 정상적인 가치관을 지닌 남자니까요. 하지만 이런 뜬금없는 상황에 가슴만 들이밀어졌다고 좋아하고 그러지는 않습니다.”
“어머, 그러니? 내가 잘못 판단했구나. 황제랑 거의 하루 가까이 몸을 섞었길래 이런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 줄 알았단다.”
“…….”
말문이 막힌 내가 허벅지에 가만히 누워 있으려니, 미네르바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이야, 다음 스크롤은 어디에 있니? 어디로 가면 될까?”
“그 전에 하나만 질문드리겠습니다. 고대의 스크롤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으음…… 크리스탈 스크롤에 관해서는 다 파악했지만, 나머지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구나.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물어봐도 되겠니?”
“혹시 원하시는 게 있으시다면 그쪽으로 먼저 갈까 싶어서 그렇습니다.”
어딜 먼저 들러도 좋아할 것 같긴 한데, 혹시 원하는 게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내 말을 들은 미네르바는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우뚝 멈추고선, 몸을 살짝 떨었다. 그리고는 뭘 하려는 건가 싶기도 전에 가슴으로 내 얼굴을 눌렀다.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귀여운 짓만 골라서 하는구나, 아이야.”
“…….”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가슴이 입을 단단히 틀어막은 탓이었다.
미네르바는 내 머리를 가슴으로 꼬옥 끌어안고 있다가, 비강에 가슴의 살내음이 가득 들어찼을 때쯤 허리를 폈다. 얼굴을 짓누르던 무게감이 사라지고, 시원한 공기가 밀려왔다.
“무엇을 먼저 찾아주든 상관 없단다. 스크롤 그 자체만으로도 내겐 커다란 보상이거든.”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대신, 일단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말하려무나. 어떤 대가를 원하니? 뭐든지 말해주어도 괜찮단다.”
“……정말로 뭐든지 말해도 되는 겁니까?”
예전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이 있다. ‘아무거나 다 된다’라는 말로 사람을 모집하면, ‘정말로요?’라고 묻는 사람이 제일 공포스럽다고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미네르바도 혹시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미네르바는 살며시 웃더니 왼손으로 내 손목을 붙잡았다.
“설마 이 영원의 마법사가 지킬 수 없는 말을 하였겠니, 아이야?”
오른손이 가슴으로 끌어당겨지고, 손 전체가 가슴 속에 푹 파묻혔다. 체온과 함께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져왔다.
“말 그대로, ‘뭐든지’ 가능하단다.”
미네르바가 팔을 움직였다.
내 손이 목욕가운 안쪽으로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겨드랑이에 잠시 머물렀다가, 옆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며 가슴 밑까지 들어갔다.
손가락이 밑가슴과 갈비뼈 사이로 끌려들어갔다. 다른 장소보다 훨씬 더 따뜻했다. 손등에는 묵직한 가슴 전체의 무게가 전해져오고 있었다.
미네르바의 손놀림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손이 가슴골로 진입했다. 내 손목 탓에 목욕가운이 옆으로 밀려나며 유두를 아슬아슬하게 드러내기 직전까지 갔다.
가슴 끄트머리에서 핑크빛의 무언가가 살짝 보이는 것 같았다.
내 손을 자신의 가슴 사이에 끼운 미네르바가 그대로 팔뚝을 모았다. 가슴이 양 옆에서 좁혀들며 내 손을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손 전체가 가슴에 파묻혀 안쪽으로 사라졌다.
가슴이 서로 교차하듯 위아래로 비벼지기 시작했다. 내 손이 가슴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 그대로 말이다.
“기억해두려무나, 아이야.”
미네르바는 가슴으로 손을 쥐어짜며 속삭였다. 어떻게 된 조화인지, 머리가 분명 저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삭임은 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아이가 원한다면, 이 마탑 전체를 가질 수도 있단다…….”
한참이 지나, 손에 온기를 넘어서 열기가 느껴질 지경이 되고 나서야 미네르바가 내 손을 풀어주었다. 유두를 보여주기 직전까지 갔던 목욕 가운이 다시 원래의 느슨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가슴으로 문질러졌던 손바닥에서 옅은 우유 냄새가 풍겼다.
“내게 그토록 많은 것들을 베풀어주었으니, 나 역시 그래주어야겠지. 자, 원하는 것을 말해줄 마음이 들었을까?”
“……일단,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그러려무나. 이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면, 시간은 많단다.”
이미 크리스탈 스크롤을 실컷 즐긴 뒤라서 그런지, 제법 여유 있는 목소리였다. 그때처럼 나를 보채고 그럴 기미는 없었다.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하지만, 나 역시 막상 요구할 만한 게 없었다.
돈이라면 차고 넘치도록 있는 데다, 저번에 받은 미네르바의 증표는 몇 번 쓰지도 않았다. 금빛 황혼 기사단을 고스란히 흡수했으니 작위를 받기도 좀 그랬고.
그렇다고 내가 마법 쪽에 관심이 있어서 미네르바한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로 애매했다.
‘아.’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스쳤다. 예전에 어떻게든 끝내야겠다고 다짐만 해놨다가 기회가 없어서 어영부영 미뤄뒀던 거.
“방금 막 하나 떠올랐습니다.”
“말해보려무나.”
“혹시, 드래곤에 관심 있으십니까?”
한가득 쌓인 눈이 신발에 짓밟히며 뽀득, 하는 소리를 냈다. 분명 높이가 어마어마했는데, 막상 그 위로 발을 디디니 발목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쌓이고 쌓이다 못해 자기들끼리 뭉치고 굳어버려서 바위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도 시야 저편에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만큼의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내 주위만 빼고.
미네르바가 구름을 죄다 쓸어버렸기에 이 주위에는 햇빛마저 내리쬐고 있었다. 설마 여기서 햇빛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래도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보온 마법이 아니었더라면 진작 얼어죽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곳이니?”
미네르바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눈 덮인 설산 한복판임에도 여전히 목욕가운 한 장만을 입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제법 신기한 녀석이로구나. 이런 설산 한복판에 살다니.”
이곳은 브닼 4의 2번째 DLC인, ‘울부짖는 설산’이었다.
눈이 깊게 쌓였다면서 독늪처럼 강제로 느린 걸음을 하게 만드는 일부 지역과, 항상 휘몰아치는 눈보라 탓에 가시거리가 대폭 줄어든다는 컨셉을 가진 장소.
물론 지금은 아니었다. 미네르바가 주변 날씨를 싹 바꿔버렸고, 어차피 순간이동으로 움직일 테니 발 빠지는 것도 의미가 없으니까.
“그리고, 아이도 잘 기억해두렴.”
손가락이 내 뺨을 살짝 잡아당겼다.
“아이가 말한 조건으로는 스크롤의 값을 치르기에 턱없이 부족해. 이건 빚으로 쌓아둘 테니, 나중에 반드시 원하는 걸 더 말해야 한단다. 알았니?”
“알겠습니다.”
부탁하는 쪽은 덜 받으려고 하는데 부탁받는 쪽이 더 주려고 하다니, 어째 주객이 전도된 기분이었다. 나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받아낸 미네르바는 나를 데리고 설산의 분화구 근처로 이동했다. 분화구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미네르바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 하는 감탄사를 흘렸다.
“은폐 마법이로구나.”
“정확히 보셨습니다.”
역시 미네르바라면 단번에 눈치챌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다.
분화구에 걸린 마법이 안쪽의 모습을 숨겨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미네르바조차 얼핏 봐서는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정교하게 숨겨진 마법이었다.
원래는 설산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근간이 되는 비석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마법을 해제해야 하지만, 미네르바가 있다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해제하면 되겠니?”
“네. 부탁드립니다.”
미네르바가 지팡이를 들었다. 지팡이로부터 시작된 마나가 투명한 분화구 전체를 감쌌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수십 겹의 마법진이 나타나더니 푸른색으로 빛났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법진이 물에 젖은 휴지처럼 녹아내렸다. 분화구 내부의 진짜 모습이 드러났다.
안에는 얌전히 엎드려 잠든 드래곤이 있었다.
“…….”
드래곤의 모습이 작아보일 만큼 엄청나게 깊은 분화구였지만, 미네르바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놈의 외형을 본 미네르바가 얼굴을 살짝 굳혔다.
저런 표정을 보일 만했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얼어붙은 사람들의 시체가 드래곤의 몸에 마치 비늘처럼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으니까 말이다.
시체가 얼마나 많이 붙어 있는지, 다리는 짜리몽땅하고 몸통이 비대해서 드래곤이 아니라 날개 달린 돼지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이야, 저 드래곤은…….”
“보시는 대로입니다.”
세계를 먹는 자 보스전을 위해 용언을 배우려면 드래곤을 처치하는 과정이 필수적인데, 그 중에서 잡을 때 제일 짜증났던 놈으로 데려왔다.
당해왔던 걸 갚아줄 시간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