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24)
r 224 – 용언 – 2
아무리 넝마라지만 일단 뭔가를 걸치기라도 한 것과 아닌 것은 천지 차이다. 내가 뜬금없는 스트립쇼에 당황하기도 잠시, 여자의 몸이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몸 자체가 남성보다 여성에 가깝기는 했다. 흉부에는 자기 머리만한 크기의 가슴도 제대로 달려 있고, 골반과 허벅지를 비롯한 전체적인 굴곡도 그렇고.
하지만, 인간이라면 당연히 존재해야 할 것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깨는 마치 철판처럼 평평했고, 머리만큼이나 커다란 가슴은 유두와 유륜 없이 동그란 살덩이만 달린 것이 전부였다.
배 역시 어깨와 똑같은데다 그 밑으로는 배꼽마저 사라져 있었다. 심지어는 여성을 상징하는 균열이 자리잡고 있어야 할 자리조차 마찬가지였다.
꼭 인간의 몸이 아니라 가슴 달린 마네킹 같았다.
여자는 이런 자기 몸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지 덤덤히 입을 열었다.
“몸…… 잡아줘…….”
“……잡아달라니, 어디를ㅡ”
“됐어…… 내가 직접 할게…….”
내 손을 덥썩 붙잡은 여자가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가슴을 쥐도록 위에서 꾹꾹 눌렀다. 손바닥에 눌린 가슴이 옆으로 한껏 찌그러지며 모양을 바꿨다.
가슴을 만진다기보다는, 가슴 크기의 고무공을 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외형도 그랬고 감촉도 그랬다.
이런 걸 자랑스러워하기는 뭐하지만, 가슴이라면 이미 수없이 만져봤었으니까 말이다.
“가만히 있어…….”
눈을 감아버린 여자를 무언가 희끄무리한 것이 뒤덮는가 싶더니, 변화가 일어났다.
피부에 묻었던 검댕과 그을음이 사라졌다. 피로 범벅이던 상처가 메꿔지고, 핏자국이 말끔히 증발했다. 마치 시간을 되감기라도 한 것 같은 광경이었다.
순식간에 몸의 수복을 끝낸 여자가 눈을 떴다.
“이제 손 놔도 돼…….”
손을 놓자마자 힘으로 눌려 있던 가슴이 탄력적으로 튕겨 올라오며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이렇게 보니 정말로 공장에서 찍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완벽한 구형의 가슴이었다.
여자는 몸을 일으키며 똑바로 섰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지라 뒷모습이 훤히 보였다. 역시 마네킹이랑 비슷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갖추고 있어야 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옷이 생겨나며 몸을 다시 가렸다. 옷이라기보다는 천을 조잡하게 이어붙인 옷 비스무리한 무언가에 더 가까웠지만, 아무튼 노출을 가릴 수는 있었다.
“너랑 같이 온 여자…… 도와야 해…….”
다급한 목소리로 돌아본 여자가 태연하게 일어서는 날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렇게 태평한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그 여자…… 안 도와……?”
“네. 안 도와줘도 될 것 같은데요.”
언제부터인지 싸우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여자는 내 말을 듣고 하늘을 쳐다봤다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네르바는 드래곤을 완벽하게 압도하고 있었다.
인간 비늘룡을 휘감았던 화염 사슬이 검은색 드래곤의 몸을 휘감았다. 사슬이 그대로 조여들자, 날갯짓이 점차 희미해졌다. 저 녀석도 화염 사슬을 끊어내지 못했다.
드래곤은 미친 듯이 발버둥치며 어떻게든 사슬을 끊어보려 발악을 했으나, 오히려 더 단단히 조여들 뿐이었다. 점점 휘감기는 부위가 늘어났다.
이내 화염 사슬의 마수가 놈의 목까지 뻗쳤다. 목을 휘감긴 드래곤은 몇 번 더 발악하다가 마침내 전신이 꽁꽁 묶인 수준까지 이르자 힘없이 추락했다.
쿵! 하며 주변에 토사가 흩뿌려졌다. 몸이 워낙에 터무니없이 커다란지라 흙으로 이루어진 비가 내리는 수준이었다.
이내 사슬로 입까지 봉쇄해버린 미네르바가 그 앞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화염 사슬로 몸 전체가 꽁꽁 묶여 제압당한 드래곤은 거칠게 꿈틀거려댔다.
‘……미네르바가 저렇게 강했나?’
속으로 살짝 놀랐다.
물론 설정상으로 영원의 마법사가 강한 것은 맞다. 하지만 드래곤 역시 설정상으로 넘어가면 어마어마한 존재였다.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을만큼 말이다.
인간 비늘룡이야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니 비몽사몽간이라 대응을 제대로 못했다 치더라도, 저놈은 방금 전까지 여자를 죽이려고 날뛰던 중이었지 않은가.
방금 전까지 날뛰던 드래곤을 정면에서 찍어눌렀다니, 새삼 미네르바를 다시 보게 되는 기분이었다.
항상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를 드래곤 앞 땅에 살짝 띄워놓은 미네르바가 우리 둘을 향해 걸어왔다.
“끝났단다.”
“수고하셨습니다, 미네르바님.”
“별 것 아니었으니 인사는 넣어두렴.”
얼핏 보기에는 예의를 차리는 말 같았지만,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과 여전히 흘러넘치는 여유를 생각하면 예의가 아니라 진심일지도 몰랐다.
“아이가 말한 드래곤이 이 여자니?”
미네르바의 은백색 눈동자가 내 옆의 여자에게로 향했다.
“그렇습니다.”
“생각보다는 멀쩡하게 생겼구나. 그런데…… 아래쪽은 아니고. 인간 모습이라기보다는, 인간을 흉내만 낸 것 같은 느낌인걸.”
미네르바는 순식간에 옷으로 가려진 아래쪽의 파악한 모양이었다. 우리 대화에, 여자의 눈이 또다시 동그래졌다.
“너…… 나를 알고 있ㅡ”
여자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드래곤이 발광을 시작한 탓이었다. 화염 사슬로 꽁꽁 묶인 입에서 노란색 벼락이 새어나왔다. 그걸 본 미네르바가 드래곤에게 다가갔다.
미네르바는 허공에 세워두었던 지팡이를 살짝 흔들었다. 드래곤의 입에 마치 입마개처럼 생긴 구속구가 채워졌다. 입이 다시 들썩였으나 벼락이 새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내 옆의 여자는 굉장히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죽이려 했던 동족을 바라보는 중이건만, 놀랄만큼 아무런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다 죽어가기 직전에도 저 표정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그냥 감정을 제대로 표현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여자가 작게 중얼거렸다.
“헬트라…… 왜 이런 짓을…….”
헬트라. 게임에서 저 벼락 브레스 드래곤의 이름으로 나오던 단어였다.
정확한 이름은 벼락을 마시는 헬트라였는데, 저 이름을 가진 드래곤이 2마리나 있을 가능성은 없으니 역시 내가 아는 그 드래곤이 맞았다.
‘맞는 것 같긴 한데, 외형은 왜 저렇게 바뀐 거지?’
바닥에 처박혀 꽁꽁 묶인 드래곤을 한동안 무뚝뚝하게 쳐다보던 여자는,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우리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 인사가 늦었네…… 고마워, 나를 살려줘서…… 너희들이 안 왔었다면…… 나는 아마 죽었겠지…….”
“왜 공격받은 거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나도 몰라…… 갑자기 날 찾아와선 이상한 말을 하더니…… 내가 싫다고 하니까 공격했어…… 겉모습도 저렇게 변했고…….”
“원래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는 소린가요?”
끄덕끄덕.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원래는 회색 비늘에 회색 눈이었는데…… 지금은 이상해…… 뭔가 사악한 느낌이야…….”
‘역시.’
저 드래곤은 다른 사람들처럼 모드 때문에 외형이 바뀌었다거나 한 게 아니었다. 원래는 게임이랑 똑같은 외형이었는데, 모종의 이유 탓에 바뀐 것이다.
그 모종의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말이다.
“말도 막 못 알아듣게 하고…… 거짓된 신 아래에서 벗어나라느니…… 구원을 얻으라느니…….”
“하.”
거짓된 신, 구원. 그 키워드를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탄식이 튀어나왔다. 소리가 원가 컸기에 미네르바는 물론 한창 침울해하던 여자마저 나를 돌아보았다.
“아이야, 무슨 일이니?”
“방금…… 왜……?”
“지옥에서 저놈이 했다던 말이랑 똑같은 소리를 하는 놈을 본 적이 있거든요.”
속으로 혀를 찼다. 어쩐지 외형이 닮을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놈이랑 연관되어 있는 게 분명했다.
“정말이니? 아니지, 아이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사실이겠구나.”
“지옥……?”
나에 대한 신뢰가 하늘을 뚫어버릴 지경인 미네르바와 지옥이라는 단어에 질겁한 여자를 뒤로 하고, 드래곤에게 다가갔다.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입마개 사이로, 이빨 밑에는 여전히 노란 벼락이 맴돌고 있었다.
“적어도 여기서 할만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쪽…… 음, 계속 이렇게 부르기도 뭐 하네요. 이름이 뭐죠?”
“파르나리…… 파르나리라고 부르면 돼…….”
“알겠습니다. 파르나리 씨, 아까 했던 말은 지금도 유효한 거 맞습니까? 이 녀석, 죽여도 된다는 거요.”
“맞아…… 어차피 얘도 나 죽이려 했으니까…… 말도 안 통하고…… 이대로 살려줘봤자…… 똑같은 짓만 반복하겠지…….”
의외로 강단 있는 결정이었다.
“그리고…… 내가 살펴봤는데…… 이미 영혼까지 오염됐어…… 이대로 목숨을 끊어주는 게 돕는 거야…….”
영혼까지 오염됐다, 라. 나는 조심스레 질문했다.
“방금 영혼까지 오염됐다고 하셨는데, 혹시 검은색이랑 붉은색으로 물들어있다거나 그랬습니까?”
그 말에, 자신을 파르나리라고 소개한 여자가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어떻게…… 알았어……?”
“다른 드래곤의 영혼 색깔이 그거랑 똑같았거든요.”
“다른 드래곤이라면…… 케쿠스……?”
“이름까진 몰랐지만, 흰색 비늘에 몸에는 인간 시체를 덕지덕지 달고 있는 드래곤이었습니다.”
“응…… 케쿠스 맞아…… 영혼을 봤다는 말을 보니…… 죽인 거지?”
“네. 혹시 그걸로 마음이 상하셨다거나 하면ㅡ”
파르나리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녀석은…… 인간을 장난감처럼 다루는 걸 좋아했으니까…… 죽어도 할 말 없어…… 인간을 죽일 땐…… 인간한테 죽을 각오도 해야지…….”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미네르바님?”
“알았단다.”
미네르바가 지팡이를 살짝 기울였다. 인간 비늘룡에게 그랬듯이, 주변의 공간이 서서히 뭉치기 시작했다. 드래곤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지만 빠져나갈 길은 없었다.
이내, 놈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드래곤의 몸이 추욱 늘어졌다. 호흡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숨이 완전히 끊기기 전에 날개 잃은 악몽을 들어올려 푹 찔렀다.
저번처럼 정신이 어디론가로 빨려들어가는 감각과 함께, 온통 칠흑색인 공간에서 눈이 떠졌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헬트라의 영혼을 발견하기란 그닥 어렵지 않았다.
인간 비늘룡의 영혼보다 상태가 훨씬 더 심각했으니까.
인간 비늘룡의 영혼은 그래도 원래 색이 푸르다는 것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면, 헬트라의 영혼은 원래 색깔이 뭐였는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완전한 검은색에, 붉은색 무언가가 실핏줄처럼 다닥다닥 돋아나 있었다. 징그럽다고까지 느껴지는 외형이었다.
순간 저걸 흡수해도 되는 건가 싶은 찝찝함이 느껴졌지만, 내가 고민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헬트라의 영혼이 내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얼굴을 찌른 자세 그대로 눈을 떴다. 헬트라는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미네르바는 그 시체를 저번과 똑같이 마탑으로 전송했다. 드래곤의 시체가 둘이나 생겼으니 무척 좋아할거라면서.
마침내 우리 셋만 덩그러니 남자, 파르나리는 침울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님으로 대접하고 싶은데…… 전부 다 불타서 없어…… 처음부터 다시 지어야 해…….”
“마법은ㅡ”
나는 무심코 입을 열려다 냉큼 다시 닫았다. 저번에도 인간 비늘룡의 영혼을 흡수한 직후에 용언이 터져나왔으니,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그걸 본 파르나리는 왜 저러나 싶은 얼굴이다가, 짚이는 게 있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용언 때문이라면…… 말해도 괜찮아…… 내가 제어해줄테니까…… 그것 때문에 나 찾아온 거네……?”
“네. 용언 때문입니다.”
“해준 게 있으니까…… 당연히 도와주려고 했는데…… 지금 내 상황이 이래서…… 대접도 제대로 못 해줘서 미안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대접 받으려고 찾아온 것도 아니고, 제가 가르침 받는 입장이니 오히려 드려야죠. 그런데 마법은요? 마법으로 복구할 수 있지 않나요?”
“마법…… 만능 아니야…… 할 수 없는 것도 있어…… 예를 들어서…… 집 짓는 거…….”
미네르바는 아무곳에나 다 쓰던데. 그런 생각으로 미네르바를 흘끗 쳐다보자, 방긋거리는 웃음이 되돌아왔다. 당연히 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어째 드래곤이랑 인간이랑 관계가 역전된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장소를 옮기는 것이 어떻겠니?”
“옮겨……? 어디로……?”
상황을 지켜보던 미네르바가 그렇게 제안해왔다. 파르나리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띄웠다.
미네르바의 얼굴에는 예의 그 방긋거리는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