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25)
r 225 – 용언 – 3
“우와아아…….”
파르나리는 황궁에 도착하자마자 눈을 빛내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본인 키의 몇 배는 될법하게 솟아오른 황궁의 천장과 번쩍거리는 샹들리에를 보고 입을 떡 벌리거나, 황금 장식품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걸 보고 신기해하기도 했다.
겉모습은 늘씬한 장신의 거유 미녀인데, 하는 행동은 꼭 열 살짜리 어린애 같았다.
“전혀 드래곤답지 않은 모습이로구나. 겉모습만 저러지 않았더라면 어린아이라고 해도 믿겠는걸.”
미네르바도 비슷한 감상인지, 내 옆에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마탑이 아니라 여기로 데려왔냐고 물으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긴 했지만.
나는 황궁 복도를 방방 뛰어다니며 물 만난 고기처럼 놀고 있는 파르나리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와이셔츠 한 장에 미니스커트, 그리고 허벅지 절반쯤 올라오는 검은색 스타킹.
넝마 한 장만 걸치고 있도록 놔둘 수는 없다며 미네르바가 즉석에서 만들어준 의상이지만, 여기가 아니라 빙의 전 세상 기준으로도 제법 정상적인 차림이다.
미니스커트의 길이가 엉덩이조차 아슬아슬하게 가릴 만큼 좀 심하게 짧긴 했어도, 다른 충격적인 옷들에 비하면 별거 아닌 수준에 불과했다.
“파르나리 씨?”
복도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파르나리가 종종 뛰어왔다.
“응…… 왜……?”
“아까 말한대로 용언에 관한 부탁을 드리고 싶은데요. 만약 조금 더 쉬고싶으시다면 그러셔도 됩니다. 상처를 제법 크게 입으셨으니까요.”
“상관 없어…… 완전히 회복했으니까…… 지금 바로 도와줄게…….”
파르나리는 짜잔, 하는 효과음을 내기라도 할 것처럼 양 팔을 번쩍 들어보였다.
“알겠습니다. 미네르바 님?”
지팡이가 바닥을 두드리는 짤막한 소리와 함께, 우리 셋은 마탑의 실험 공방으로 이동해 있었다. 어지간한 정원만큼 넓은 공간에 들어서자 파르나리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그러면 바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용언을 사용하는 법만…… 가르쳐주면 돼……?”
“지금 당장은요. 나중에 따로 부탁드릴 게 있긴 한데, 그건 용언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게 된 이후에 드릴 부탁입니다.”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파르나리가 뜬금없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가슴을 누르느라 터질 듯 팽팽해져 있던 단추를 뜯어내다시피 끄르고, 와이셔츠를 풀어헤쳤다. 엉덩이를 간신히 가리던 수준의 짧은 미니스커트가 허벅지를 타고 스르륵 흘러내렸다.
마지막으로 스타킹 안쪽에 손을 집어넣었다. 몸의 세세한 부분까지 구현되지 않은지라, 속옷은 안 입고 있었기에 와이셔츠와 미니스커트, 스타킹이 옷의 전부였다.
당황한 내가 급히 시선을 올렸다.
“갑자기 옷은 왜……?”
“드래곤…… 옷 안 입어…….”
“그거야 그렇겠지만, 파르나리 씨는 지금 인간이잖아요?”
“용언…… 드래곤이 쓰는 언어야…… 드래곤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가야 해…….”
“……그러면 옷을 벗으실 필요 없이 드래곤으로 변신하셔도 되는 것 아닌가요? 아니지, 변신하신다기보단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신다고 보는 쪽이 더 정확하겠네요.”
예전부터 파르나리가 왜 드래곤으로 변신하지 않는지 궁금하긴 했다. 심지어는 플레이어에게 뒤통수를 맞아 죽을 때까지도 드래곤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하고 죽었으니까.
뭔가 신념이라도 있는 건지, 아니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인지.
게임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고, 심지어는 추측할 수 있는 단서마저 남겨주지 않아서 온갖 근거 없는 추측만이 난무했을 뿐이었다.
“…….”
파르나리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누가 보더라도 당황한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스타킹을 내리던 손이 오금 근처에서 우뚝 멈춰섰다.
그리고는 혼자서 쩔쩔 매더니, 띄엄띄엄 입을 열었다.
“그…… 사실…… 드래곤으로 돌아가는 방법…… 까먹었어…… 이제 못 돌아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나는 벙찐 채로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파르나리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미네르바는 쿡쿡 웃고 있었다.
“……드래곤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까먹으셨다고요?”
“응…… 한번 인간으로 변신해봤다가…… 너무 편해서…… 그래서 계속 인간 모습으로만 있었더니…… 어떻게 돌아가는지 까먹어버렸어…….”
“어…… 네. 언젠가는 다시 떠올릴 수 있겠죠. 괜찮습니다. 나중에는 분명 기억해내실 수 있으실거예요.”
나는 간신히 스턴 상태에서 풀려났고, 그 동안 파르나리는 꾸물거리며 스타킹을 마저 벗었다. 완벽히 알몸이 됐지만 음심은 전혀 동하지 않았다.
방금 전의 충격이 너무 컸던 것도 있는 데다, 인간이라기보단 인간의 피부를 덧씌운 마네킹같은 체형이어서 그런 것도 있었다.
알몸이 된 파르나리가 팔을 활짝 벌렸다.
“나한테…… 붙어…….”
그 앞으로 다가가자, 파르나리도 나한테 붙어왔다. 키가 거의 똑같은지라 눈높이가 서로 맞먹었다. 가슴이 우리 사이에 낑겨 짓뭉개질만큼 달라붙은 파르나리가 질문했다.
“넌…… 용언이 뭐라고 생각해……?”
게임에서도 들어왔던 질문이다. 나는 정답이었던 선택지를 그대로 읊었다.
“필요에 따라서 힘이나 개념을 담을 수 있는 언어입니다.”
용언은 단어 그대로, 그냥 드래곤이 사용하는 언어였다. 하지만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와는 달리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힘이나 개념을 담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인간이 강철 벽에다 대고 백날 부서지라고 해봤자 강철 벽이 부서질 리는 없지만, 드래곤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정확해…… 용언도 일종의 언어니까…… 언어를 받아들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걸 직접 해보는 거야…….”
“해보다니, 어떻게 말이죠?”
“내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면 돼…….”
내 얼굴을 붙잡은 파르나리가 그대로 끌어당겼다. 얼핏 보기에는 대충 당기는 것처럼 보였는데, 일단은 드래곤이라 그런지 힘에서 상대도 안 됐다.
그렇게 우리 둘의 입술이 맞닿으려는 찰나.
“거기까지 하려무나.”
얼굴 사이에 푸른색으로 빛나는 벽이 나타났다. 파르나리는 그대로 벽에 이마를 박았고, 나는 장벽에서 흘러나온 빛이 조심스레 뒤로 밀어주어 안전하게 말려났다.
미네르바였다. 미네르바는 이마를 문지르며 울상을 짓는 파르나리와 어리둥절해 있는 나를 향해 걸어왔다.
“벽…… 왜……?”
파르나리는 굉장히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드래곤 정도 되는 신체 스펙이면 벽에 머리 좀 박았다고 아프진 않을 텐데, 표정만 보면 정말로 아픈 것 같았다.
“혹시 인간들끼리 입술을 맞대는 행위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것이니, 파르나리?”
“몰라…… 무슨 의미인데……?”
“인간 모습으로 오래 살아왔다면서, 이런 쪽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인간…… 나 오래 살았는데…… 아무도 안 찾아왔어…… 그래서 몰라…….”
온갖 마물들이 득실거리는 독늪 한가운데 위치해 있고, 거대한 나무가 무슨 성벽처럼 깔린 곳에 작은 집 하나 지어놓고선 인간이 찾아오길 바라는 게 욕심 아닐까.
“그렇다니 알려주겠단다. 인간에게 입술을 맞댄다는 의미는, 서로 특별한 감정이 있다는 뜻이니 잘 알아두렴.”
“특별한 감정……?”
고개를 갸웃거리던 파르나리는 곧 아, 하는 탄성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들어본 적 있어…… 교미하고 싶다는 뜻이지……?”
“…….”
미네르바는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침착하고 여유있는 표정이던 미네르바였으니, 저런 표정을 짓도록 만든 것은 나름 대단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우리들의 표정을 보고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파르나리는 뭔가 떠올랐는지 미네르바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 잡아봐…….”
“왜 그러니?”
“나…… 지식…… 받아들일 수 있어…… 훨씬 더 나을 거야…….”
잠시 고민하던 기색이던 미네르바가 손을 내밀었다. 파르나리는 그 손을 맞잡고 눈을 감았다. 내 손을 잡고 몸의 상처를 치유할 때랑 똑같은 표정이었다.
그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손을 푼 파르나리가 눈을 떴다.
“됐어. 이제 손 놔도 돼.”
말이 굉장히 깔끔해져 있었다. 끝을 질질 끌거나 하는 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흐느적거리던 표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너, 인간치고는 굉장히 오래 살아왔네? 조금 놀랐어.”
“말투가 달라졌구나.”
“네 지식을 받아들였으니까. 아, 걱정은 안 해도 돼. 네가 쌓아올린 업적과 연구는 하나도 안 건드렸거든. 그것까지 가져오는 짓은 예의가 아니잖아. 그냥 인간의 ‘상식’을 이해했을 뿐이야.”
상식을 이해했다기엔 내 앞에서 알몸이 되어놓고도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아닌데. 설마 아직도 드래곤이라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중인 건가.
“인간들 사이에서 키스가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알았어. 너희가 그런 표정을 지을만했구나. 내가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네.”
“지금이라도 알았다니 다행이란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미네르바…… 라고 했지? 너한테 가르쳐줄 테니까 네가 직접 할래?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그래도 이것만큼 확실한 건 없어.”
“……무슨 의미일까? 일단 나한테 동성과 입술을 맞대는 취미는 없단 것만 알아두렴.”
“드래곤은 성별이 없긴 하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야. 내가 일단 용언을 말할게. 그러면 네가 내 입술 모양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면 돼. 저 남자는 안되겠지만, 너는 가능하잖아. 그렇지?”
“그렇단다.”
“그 따라한 입술 모양을 네가 저 남자랑 입을 맞대고 전해주는 거야. 어때, 쉽지?”
미네르바의 얼굴이 복잡미묘하게 변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입맞춤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해하였다고 하지 않았을까, 파르나리?”
파르나리도 지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해해서 이러는 건데? 너는 저 남자랑 교미ㅡ”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미네르바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마법을 시전에 파르나리의 입을 틀어막았다.
분명 뭔가를 말하려고 한 것 같기는 한데, 마법이 시전되는 소리와 겹쳐서 ‘저 남자랑’까지밖에 못 들었다. 지식을 공유하면서 뭔가를 더 알아차리기라도 한 건가.
입을 막고 있는 마법을 풀려고 끙끙대던 파르나리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이걸 풀어달라며 손짓을 했다. 미네르바는 빙긋 웃으며 구속을 풀어주었다.
구속에서 풀려난 파르나리는 얌전히 말을 바꿨다.
“알았어. 그러면 다른 방법을 쓰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