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26)
r 226 – 용언 – 4
“다른 방법이라면 어떤……?”
“저번에도 말했지만, 용언을 다루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직접 써보는거야. 그래서 입술을 맞대고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하면 된다고 한 건데, 안된다고 거절당했으니까…….”
파르나리는 말꼬리를 흐리며 흘끔 미네르바의 눈치를 살폈다. 인간의 눈치를 살피는 드래곤이라니, 제법 희귀한 광경이었다.
“네가 말한 단어에 용언이 멋대로 반응했다고 했지?”
“그렇죠.”
“어떤 단어였는지 기억해? 기억 못 해도 내가 흔적을 따라가보면 되니까 상관은 없는데, 지금 말해주면 더 편해져서.”
그때 어떤 단어에서 용언이 반응했더라. 드래곤의 시체를ㅡ
“‘처리’였습니다.”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파르나리가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다가오더니, 주위를 빙빙 돌며 날 관찰했다. 파르나리는 그 상태로 몇 바퀴나 돌고나서야 제자리로 돌아갔다.
“신기하네.”
“뭐가 말이죠?”
“어떻게 제일 처음 배운 단어가 파괴인거지? 보통은 간단한 창조의 개념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파괴하는 개념으로 넘어갈텐데.”
무언가를 만드는 것 보다는 부수는 게 더 쉽지 않나 싶었지만, 용언 쪽은 내가 모르는 개념이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그런 쪽으론 나보다 파르나리가 훨씬 더 잘 알겠지.
“그렇게 신기합니까?”
“인간으로 따지면…… 음…… 그래. 갓 일어서기 시작한 어린아이가 걷는 것보다 달리는 걸 먼저 배운 셈이야. 그렇게 이해하면 돼.”
아주 간단명료한 설명이었다. 나였어도 저런 일이 벌어졌다면 엄청 놀랐을 거다.
“아무튼, 내가 가르쳐줄 건 그거야. 네 몸이 용언을 완전히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
“몸이 이해하다니, 어떻게요?”
“직접 맞아보면 돼.”
파르나리의 눈이 작게 빛나기 시작했다. 입술이 뻥긋거리고, 충격파가 터져나왔다.
ㅡ부서져라.
그 간단한 말과 함께 내 주위가 말 그대로 터져나갔다. 바닥이 가뭄 든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졌다. 벽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장에서 돌조각이 비처럼 쏟아져내렸다.
단 한마디 말에, 미네르바의 실험 공방이 폐허나 다름없게 변해버린 것이다.
부서진 벽과 바닥, 천장은 미네르바가 지팡이를 살짝 흔들자 곧바로 수복되었지만, 미네르바 역시 자신이 직접 만든 공간을 이토록 쉽게 부쉈다는 사실이 제법 놀라운 듯했다.
“이게 용언이야.”
파르나리는 이런 것쯤은 당연하다는 얼굴이었다. 저 입장에서는 단순히 말 한마디를 툭 던졌을 뿐일테니까 말이다.
“……꽤 쓸만해 보이는구나, 파르나리.”
은백색 동공에 호기심이 차올랐다. 그 눈에 들어찬 감정을 읽었는지, 파르나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너는 못 써. 용의 영혼을 흡수하지 못했으니까, 백날 연습해봐야 사용 못 할거야. 설령 용의 영혼을 흡수한다 해도 격이 맞지 않아서 몸이 붕괴될테고.”
“저 아이는 견딜 수 있다는 말이니?”
“맞아. 케쿠스 영혼도 흡수했고, 헬트라 영혼도 흡수했으니까. 인간이 드래곤의 영혼을 두 개나 받아들이고도 멀쩡하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어. 쟤는 특별해.”
“그건 알고 있었단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범상치 않았던 아이였으니까. 단지…….”
날 향한 미네르바의 눈동자는 탐욕에 가까운 감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그러하였을 뿐이지.”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애써 시선을 피했다.
“방금, 네가 왜 무사했는지 알겠어?”
파르나리가 타이밍 좋게 질문을 던져왔다. 나는 재빨리 대답했다.
“파르나리 씨가 저를 비껴나가도록 사용해서 그런거 아닙니까?”
“비슷하지만, 달라.”
절레절레, 고개가 좌우로 내저어졌다.
“내가 너를 직접 향하지 않아서도 있지만, 네 몸에 있는 드래곤의 영혼이 용언에 반응해서 그런 것도 있어. 만약 영혼이 없었다면 너를 직접 노린 게 아니었어도 똑같이 부서졌을 거야.”
“영혼이 반응했다기엔 저는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요?”
“그건 본능의 영역이니까. 너는 숨을 의식하고 쉬거나, 눈을 의식하고 깜빡여? 아니잖아. 나는 인간처럼 숨쉬고, 인간처럼 눈을 깜빡이기 위해 노력해야 했어. 드래곤은 그러지 않으니까. 그거랑 똑같아. 드래곤에겐 용언에 반응하는 일이 본능의 영역인 거야.”
뭔가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한 말이었다. 내가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이자, 파르나리는 다시 용언을 준비했다.
“걱정 마. 이해할 때까지 하면 되니까.”
ㅡ부서져라.
콰지지직! 그 말과 함께 터져나온 충격파로 인해 방금 전에 원래 모습을 되찾았던 바닥과 천장, 벽이 모조리 박살났다. 이번에도 나는 멀쩡했다.
미네르바가 태연히 부서진 자리를 수복하는 사이, 내 앞에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파르나리가 가까이 다가왔다.
“으음…… 이제 된 것 같아. 이만하면 너도 용언을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자, 저쪽 벽에 대고 해 봐.”
“벌써요?”
“용언에 시간은 중요하지 않아. 그만큼 네 안에 깃든 영혼이 잘 동화됐다고 생각하면 돼.”
손가락이 반대편 벽을 가리켰다.
“그냥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내질러. 말 속에 생각을 담는다는 느낌으로. 저 벽한테 부서지라고 명령하는 거야. 네가 몰라도 괜찮아. 영혼이 알아서 네 의지대로 움직일테니까. 스스로의 의지로 쓰는 건 나중에. 지금은 그러는 척만 하면 돼.”
파르나리의 조잘거림을 들으며, 숨을 골랐다. 최대한 저 말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말 속에 생각을 담고, 벽한테 명령을 내리듯이.
“어떤 단어를 사용하면 되죠?”
“그거야말로 너한테 달렸어. 네 힘이니까 네 생각대로 자유롭게 골라. 저번처럼 ‘처리’를 골라도 되고, 나를 따라 ‘부서져라’고 말해도 돼. 용언은 개념이지, 속박이 아니야.”
“일단 정하면 못 바꾼다거나 그런건ㅡ”
“없어. 그러니까 안심해.”
자세를 잡았다. 뭘 골라야 할지는 정해져 있었다. 일상적인 단어로 용언을 발동시킨다면, 내가 힘을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기 전까지는 말을 아주 신중히 해야 하겠지. 그런 건 사절이다.
벽에 명령한다는 느낌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ㅡ부서져라.
그러자, 몸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이 치솟아올랐다. 느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예 전신이 달구어지는 것 같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몸 안을 가득 채운 열기가 목을 거슬러 입 밖으로 터져나왔다.
귀에서 삐이ㅡ 하는 이명이 들렸다.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바닥이 부서지다 못해 한 줌의 가루로 되돌아갔다. 마찬가지로 가루처럼 분쇄되어버린 천장이 스스로의 잔해를 뿌연 안개처럼 흩뿌렸다.
파괴는 바닥과 천장으로 그치지 않았다. 손 닿는 모든 장소를 재로 되돌려버리던 충격파가 벽과 맞닿자, 공방의 벽이 산산조각나며 밖을 향해 터져나갔다.
또 다시, 커다란 폭음이 울려퍼졌다.
바깥에 잘 앉아있다가 마른 하늘에 먼지벼락을 맞은 마법사들이 무슨 일이냐며 당황 가득한 목소리로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이런 상황을 저번에 겪어본 적 있던 미네르바와 나는 공방 한쪽이 완전히 터져나갔음에도 태연한 표정이었지만, 파르나리는 그러지 못했다.
어버버거리며 입술을 몇 번이고 뻥긋거리다가, 수많은 시도 끝에 간신히 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너…… 드래곤이었어? 나처럼 인간으로 변해 있던 거야?”
제일 처음 튀어나온 말이 헛소리인 걸로 보아, 어지간히도 충격이 컸던 모양이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카이킬리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황금을 고스란히 녹여 주조한 듯 반짝이는 금안이 눈꺼풀 사이에서 빛을 발했다.
전신을 휘감고선 놓아주지 않던 쾌락이 방금 막 잦아든 참이었다. 상체를 일으켰다. 몸에 덮여 있던 담요가 흘러내리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드러났다.
드러난 몸을 가릴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카이킬리아는 먼젓번의 일을 곱씹었다.
과연 그 이상의 쾌락이 존재하기는 할까 의문이 들 정도로 강렬한 경험이었다. 심지어 중간부터는 의식을 반쯤 잃어버렸던지라 기억이 흐릿하기까지 했다.
절정을 느끼고, 느끼고, 또 느껴서 머리가 다 타버리다 못해 이성이 붕괴되고 본능만이 남았던 시점에, 자신이 무엇을 했더라? 밑에 깔려서 굴욕적으로 시키는 걸 다 따랐었나?
마지막에는, 물건을 입으로ㅡ
“……윽.”
목구먹을 꽉 채워오는 이물의 감각, 그 이물을 기쁘게 만들기 위해 목을 조였던 감각, 목구멍 안쪽이 쿡쿡 찔리는 감각, 목 안으로 끈적하고 비린 것이 쏟아져 들어오는 감각.
그 모든 감각이 다시 느껴지는 것 같아서, 카이킬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목을 더듬었다. 침을 삼키기라도 할 적이면 그때의 일이 자동반사적으로 떠올랐다.
카이킬리아가 쾌락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이, 누군가 침실 문을 열고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애써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침입자를 향해 톡 쏘아붙였다.
“여의 침실에는 무슨 연유로 발을 들였느냐, 교황.”
인기척의 주인은 플로레타와 루나였다.
귀빈을 성국으로 모시기 전까진 떠나지 않겠다며, 중앙 홀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두 민폐덩어리 교황들이 카이킬리아의 침실로 찾아온 것이다.
하긴, 카이킬리아의 침실을 저토록 당당히 들어올 수 있는 존재는 세상 전체를 통틀어도 넷 뿐이었다. 영원의 마법사, 태양의 교황, 달의 교황. 그리고 마지막으로……
“간밤의 쾌락은 실컷 즐기셨습니까?”
“입 다물어라. 너희들이 상관할 바 아니다.”
루나의 목소리에, 카이킬리아는 무척 날카로운 반응을 되돌려주었다.
교황들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래봐야 뻔했으니까 말이다. 그 남자를 성국으로 데려가게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찾아왔겠지. 그걸 허락할 생각은 절대로 없었다.
“또 그 이상한 제안을 하러 찾아온 것이라면, 여의 대답은 그때와 동일하니 이대로 돌아감이 좋을 것이다.”
“아닙니다, 제국의 황제시여.”
플로레타가 살짝 웃었다.
“이번에는 다른 제안을 드리러 온 것입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