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27)
r 227 – 용언 – 5
“이제 끝이야.”
짝짝짝, 용언의 마지막 단어까지 알려준 파르나리가 훌륭하다는듯 손뼉을 쳤다.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건 전부 가르쳤어. 설마 한 시간도 안 돼서 전부 습득할거라곤 예상 못했는데.”
아직까지도 내가 당연히 이러리라고 예상했다는 표정인 미네르바와는 달리, 파르나리는 엄청나게 놀라워하는 표정이었다. 동그랗게 떠진 눈이 원래대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미네르바와 파르나리의 중간쯤이었다. 용언은 게임에서조차 이렇게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해결해야 할 서브 퀘스트가 제법 많았다.
‘뭐, 신이 도와주기라도 했겠지. 나한테 그렇게 관심을 쏟고 있었다는데 이런 버프 하나 못 걸어줄까.’
물론 의문을 가질 생각은 없었고, 이 상황을 깊게 고찰해볼 생각도 없었다. 용언을 빨리 습득해서 좋았으면 좋았지, 더 이상 고민하는 건 시간낭비였다.
“인간에게 용언을 가르쳐본 적이 없어서 비교는 못하겠지만, 엄청 빠른 속도라는 건 분명해. 혹시 뭔가 특별한 힘이라도 있어?”
특별한 게 있긴 하지. 나는 애매모호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성국의 여신이 나를 여기로 불렀다는 것은 누구한테 털어놓을만한 비밀과 거리가 멀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박수를 치며 내 성장 속도에 감탄하던 파르나리는, 방금 떠올랐다는 듯 손을 멈추고 질문했다.
“용언 배우기 전에 말한 부탁, 지금 할래? 용언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게 되면 따로 부탁할 게 있다고 했잖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저런 말도 했었다. 원래는 단계를 밟아가며 차근차근 습득할 생각이었는데, 상황이 바뀌었다. 나는 미네르바를 돌아보았다.
“미네르바님, 죄송하지만 잠시 자리를 비워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미네르바가 용언에 대해 듣는 건 상관 없다. 하지만, 그 용언에 대해 말하려면 필연적으로 세계를 먹는 자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테니 필요한 선택이었다.
그놈에 대해 설명하는 건, 여기서 지나가듯이 툭 던지는 게 아니라 황제와 교황까지 모두 모아놓은 자리에서 이루어져야 하니까.
파르나리는 세계를 먹는 자와 동족이라서 그런 거고.
“알았단다. 10분 정도 지나서 돌아오면 되겠니?”
“네.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미네르바님.”
“별 것 아니란다. 편하게 얘기하려무나.”
미네르바는 나를 향해 싱긋 웃어주고, 파르나리를 살짝 흘겨본 다음 순간이동으로 사라졌다. 대놓고 나한테 키스를 하려 했던 일과 뭔가를 말하려다 급히 저지당한 일의 연장선인 듯했다.
시선을 받은 파르나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래 산 인간, 무서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최소로 잡아도 수천 년은 살았을 드래곤이 400살밖에 안 된 미네르바에게 저런 말을 한다는 게 아이러니할 뿐.
“그래서, 부탁하고 싶다는 게 뭐야?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건 다 가르쳤는데. 나는 더 이상 도움 안 될 거야. 새로운 용언을 만들려면 너 스스로 해야 해.”
“새로운 용언을 만들려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파르나리 씨의 도움이 꼭 필요해요. 저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게임에서도 이 용언을 습득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파르나리였다. 상황 자체가 달라져서 똑같이 흘러갈지 확신은 없어도 최대한 말해봐야 했다.
“내가 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힘 닿는 데까지는 도와줄게. 뭘 하면 돼?”
“그 전에 하나만 질문드리겠습니다. 혹시, 용언에 단순히 힘이나 개념을 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용언의 대상에게 세계의 법칙을 강제할 수도 있습니까?”
“약간 애매한 표현이네. 그 법칙이라는 걸 네가 직접 창조하려고?”
“저도 정확한 의미를 몰라서 제대로 답해드릴 순 없지만, 아마 비슷할 겁니다.”
“으으음…….”
파르나리는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가, 제법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아.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 어디에 쓰려는지 물어봐도 될까?”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나는 세계를 먹는 자에 대해서 파르나리에게 설명해주었다. 성국의 여신이 알려준 내용만 빼고 말이다. 그건 저쪽에서 먼저 알고 있다고 말하기 전까진 함구하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파르나리라면 그놈에 대한 지식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동족이기도 하고, 자기 입으로 드래곤 중에서 제일 오래 살았다고 말하기도 했으니.
잠자코 내 설명을 듣고 있던 파르나리는,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한층 심각해진 얼굴을 했다.
“그러니까 네 말을 종합하면, 어떤 드래곤이 있는데 그 드래곤이 세계를 파괴하려 한다 이거지? 자기는 그걸 구원이라 부르고.”
“네.”
“헬트라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어. 그놈한테 오염당했구나. 너희가 안식을 찾도록 만들어줘서 다행이네.”
후우, 하고 작은 한숨이 내쉬어졌다.
“잠시 크기 계산좀 해 볼게. 눈동자가 네 키와 맞먹거나 더 큰 수준이라면…… 드래곤 모습으로 돌아간 나보다 클 수도 있겠어. 자로 재본 적은 없어서 나도 내 크기를 확실하게 아는 건 아니지만.”
파르나리는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끙끙대며 뭔가를 계산한 후에야 고개를 들었다.
“드래곤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해서 성장하니까, 덩치가 크면 클수록 강력하다는 건 당연히 알지?”
방금 처음 들었는데.
하지만 여기서 몰랐다는 말을 꺼내기엔 파르나리가 너무나도 확신에 찬 얼굴이었기에, 서로 무안하지 않도록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네 말대로면, 아무리 못해도 작은 산 정도의 크기는 돼. 그 크기라면 내가 본래 모습이어도 승패를 장담 못할 괴물이야. 그런 괴물한테 세계의 법칙을 강제하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일단 설명을 들어봐야겠어. 어떤 걸 원해?”
사실 나도 세계를 먹는 자 보스전에 필요한 용언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임에선 단순히 이러이러하다, 정도의 수박 겉 핥기식 설명으로 끝냈으니까.
지옥에서 그런 일을 겪은 지금에 와서는 솔직히 의문이 들기도 했다. 성국의 신을 압도할만큼의 힘을 지닌 드래곤이, 고작 그따위 용언에 주저앉을까 하는 의문.
“드래곤을 더 이상 날아다니지 못하도록 하는 용언입니다.”
그래도,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
“정말로?”
파르나리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다. 동그래졌던 눈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래야만 싸움이라는 걸 성립이라도 시켜볼 수 있을테니까요.”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인간과 드래곤의 사이에는 싸움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놈들의 비행을 봉쇄하기 위해 지금 설명하는 용언이 필요한 것이다.
게임에서 파르나리가 해준 설명에 따르면, 세계의 법칙에 드래곤이 날지 못하도록 만드는 개념을 추가하고 용언을 통해 세계를 먹는 자에게 덧씌우는 방식이라던가.
‘그런다고 날아다니는 패턴을 아주 안 쓰는 것도 아니지만.’
세계를 먹는 자의 패턴 중에는 분명 낮게나마 비행하며 보스룸의 절반을 브레스로 휩쓸어버리는 패턴도 있었다. 닼라 모드에서 추가된 것도 아니고, 무려 바닐라에 등장하는 패턴이다.
제작사의 설명에 따르면 스스로의 힘으로 세계의 법칙을 거스르고 있는 모습이라던데, 게임에서 볼 때는 별로 강하단 체감은 안 들었다.
저놈 저거 또 날아오르네, 하는 짜증밖에 없었지.
“……말하려는 게 뭔지는 알겠어.”
파르나리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해져 있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확실하지 않아. 자신도 없고. 드래곤을 날지 못하도록 만드는 용언이라니, 그건…….”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놈을 막지 못하면 저희 모두 끝이에요.”
“응. 그러니까 노력해야지. 나도 굉장히 오래 살아왔지만, 내 의지로 삶을 끝내는 게 아니라 다른 녀석의 손에 죽기는 싫으니까. 그리고…….”
“그리고?”
“검은색과 남색이 섞인 비늘에, 붉은 동공을 가진 드래곤이라고 했지?”
“맞습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한동안 뭔가를 골똘히 고민하던 파르나리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뭔가 기억날 듯 말 듯 한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어. 나중에 혹시라도 생각나게 되면 알려줄게.”
“천천히 생각하셔도 됩니다. 그러면 이제ㅡ”
“아이야?”
누군가 대화를 끊었다. 미네르바의 목소리였다. 벌써 10분이 지났나 싶어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어째 갈 때보다 숫자가 늘어나 있었다.
제일 선두에는 카이킬리아가, 그 뒤로는 플로레타와 루나가 보였다. 미네르바는 제일 뒤였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조합에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고, 파르나리는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정장이 아니라 평소에 입던 제복 차림으로 돌아온 카이킬리아는, 내 옆의 파르나리를 확인하자마자 살벌한 시선을 보냈다. 히끅, 하고 딸꾹질 소리가 들렸다.
“황제 폐하? 교황 성하들까지?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내가 교황 성하라고 부르자, 플로레타와 루나의 얼굴이 뾰로통해졌다. 공기가 잔뜩 들어간 뺨이 샐쭉하게 부풀어올랐다.
“이제 저희 자매에게 격식을 차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델타. 설령 다른 사람의 앞이라 하더라도요.”
플로레타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 바뀌었다.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무척이나 오랫동안 불려오던 호칭이었기에 그 사실을 곧장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분명 하루 전까지만 해도 귀빈이었건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렇습니다, 델타. 더 이상 저희 자매와의 사이를 숨길 필요도 없습니다.”
루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슨 바람이 불었나 싶어 당황하는 사이, 교황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팔을 한쪽씩 붙들어 가슴 사이에 끼웠다.
“숨기지 않아도 된다니, 그게 무슨…….”
“황제시여?”
내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플로레타가 카이킬리아를 불렀다.
“시끄럽다. 그런식으로 재촉하지 않아도 여가 어련히 알아서 할 것이니라.”
카이킬리아는 심기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착실히 거리를 좁혔다. 그 발걸음은 주먹 몇 개가 간신히 들어갈 거리까지 다가온 이후에야 멈췄다.
“너의 황제가 명한다. 얌전히 듣고 있거라.”
제복으로 감싸인 양팔이 가슴 밑으로 들어가 팔짱을 꼈다.
“칠흑 성야 기사단장. 너는 여의 것이다. 여가 눈독을 들인 순간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불멸히 그럴 것이다.”
가죽 부츠의 앞부분이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두들겼다.
“허나, 태양과 달이 너를 직접 선택하였다는 것 또한 보통 일은 아닐 터. 신이 너를 택하였으니, 성국 또한 너를 포기하지 않을 테지.”
한 발짝. 거리가 더 줄어들었다.
“이대로는 항구히 평행선만을 달림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교황이 내게 제안을 하였노라. 이번 일의 손잡이를 네게 쥐어주자 하였다.”
달콤한 복숭아 향과 함께, 입술이 달싹였다.
“너는 어느쪽이더냐, 델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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