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3)
탐색은 제법 수월하게 끝났다. 사제와 성기사의 모가지를 다 합쳐서 30개 쯤 땄을까, 내가 원하던 물품이 2개 다 드랍된 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는 덜 걸렸다.
나는 그걸 챙겨들고 곧장 책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던전의 규모가 게임과 완벽하게 동일했기에 길 찾기는 쉬웠다.
중간에 간간이 보이는 망자들은 무시했다. 물품 확보가 끝났으니 굳이 저런것들과 실랑이를 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누가 봐도 여기네.’
악마가 잠들어있는 방 입구는 척 보기에도 뭔가 성스러워보이는 물건들에 성국의 문자열로 적힌 기도문까지 빼곡이 적혀 있는 모습이었다. 저 망자들조차 여기에는 얼씬도 못했다.
사실 이런거 다 필요없이 그냥 문을 잠가놓기만 했어도 다른 누군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악마가 봉인을 자력으로 풀 일은 절대로 없었을테지만, 그 사람들은 몰랐으니까.
나는 방 주위를 돌며 무너진 돌무더기를 찾아다녔다. 다른곳은 전부 말끔한데 딱 한 장소만 무너져 있어서 특징짓기는 쉬웠다.
그 돌무더기 앞으로 다가가 제일 앞에 놓인 바위를 끙끙대며 옆으로 굴려 치웠다. 그러자, 사람이 기어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미세한 구멍이 드러났다.
나는 곧장 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통로는 내 키에 조금 못 미치는 길이였기에 머리가 금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혹시 몰라 나가기 전에 주변을 살폈다. 일단 적은 없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몸을 일으켰다.
무언가 음침하고 불길한 기분이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힘이 조금씩 새어나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게임에서 여기 아무리 오래 있어도 딱히 디버프가 걸리고 그러지는 않았으니 아마 단순히 내 기분탓일 확률이 높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벽에 고정된 횃불들은 진작에 손잡이까지 타들어가서 재만 남긴지 오래였고, 방 한가운데에 직사각형의 제단이 보였다.
그 제단 위에 내가 찾던 책이 놓여 있었다.
‘찾았다.’
이게 바로 악마가 봉인되어 있는 책이었다. 두께는 대략 내 손가락 한 마디쯤 됐고, 표지는 물론 내부의 종이까지 모조리 칠흑처럼 어두운 검은색이었다.
나는 제단으로 다가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책을 주워들었다. 힘이 워낙에 약해진 상태의 악마인지라, 단순히 집어드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해도 못 끼친다.
책의 겉표지에는 정체모를 문자가 줄줄이 적혀 있었다. 설정상 악마의 언어로 적힌 글자였지만, 딱히 읽어보고 싶지는 않았기에 뭔가 적혔나보다 하고 넘겼다.
그 대신,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사제와 성기사 망자들을 때려잡으며 드랍되길 기다렸던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이게 바로 온 동굴에 흩어졌다던 악마의 살점조각이었다.
색은 전체적으로 몹시 시뻘겠고, 가끔 기분나쁘게 저 혼자 꿈틀거리기까지 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동물의 생간이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생간은 자기 혼자 꿈틀거리지는 않던데.’
작게 투덜거리며 악마의 살점 하나를 책에 갖다대자, 책이 그걸 천천히 빨아들였다. 두 개가 합쳐지며 원래의 모습대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두 번째 살점도 마찬가지였다. 책은 내가 갖다댄 살점을 꾸물거리며 빨아들였고, 흡수가 끝나자 움직임을 멈췄다. 겉표지의 색이 처음보다 조금 더 붉어져 있었다.
이거면 됐다. 나는 책을 갈무리해 따로 가져온 가방에 넣었다. 이제 기사단으로 복귀하기 전에 물건 하나만 더 챙기면 끝이었다.
‘2레벨 정도는 더 올랐겠지?’
지금껏 얻은 경험치를 잠시 계산해보았다. 아마 목 없는 철갑 기병이 주는 경험치만으로도 2레벨 쯤은 충분히 더 올랐을 것이다.
정 안되면 기사단으로 복귀한 다음에 잠깐 레벨링하러 다녀오는 방법도 있고.
밖으로 나올때도 똑같이 틈새를 기어야 했다. 저 문은 애초에 출입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게 아니라서 손잡이가 없었다.
몸을 일으키자, 비척이며 걸어다니던 망자들이 썩어 흐물흐물해진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까 전처럼 나를 공격하려들지는 않았다.
내가 들고 있는 책 때문이었다.
저것들은 모두 악마의 살점이 깃들어 망자로 부활한 것이니, 당연히 악마 본인이 깃든 책을 들고 있는 나를 공격 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나한테는 강한 신성력도 느껴지지 않으니까. 그냥 악마 숭배자가 봉인을 풀기 위해 책을 들고간다 정도로 생각하겠지.
주위에 몰려든 망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왔던 길이 아닌 반대편 길로 몸을 돌렸다. 이 상황에서는 샌드백이나 다름없는 놈들이긴 한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잡고싶지는 않았다.
재수 없으면 책에 살점이 하나 더 흡수되는 수가 있다.
책을 들고 있는 상황에서는 저것들을 죽여도 살점이 드랍템으로 떨어지는게 아니라 바로 책으로 흡수되니, 자칫하다간 내 작전이 완전히 꼬이게 되어버린다.
게다가 살점을 드랍하기 전에는 죽여도 죽여도 부활하는 놈들이라서 경험치 효율마저 개판이었다. 1회차 기준으로 한번 죽일때 들어오는 경험치가 2였던가 3이었던가.
내 처참한 레벨대로도 저건 잡는 시간이 아까운 수준이다. 여기보다 더 효율적인 레벨링 장소라면 널리고 널렸다.
‘수지타산이 안 맞는거지.’
길은 굽이굽이 이어졌다. 가는 길에도 망자들이 제법 있었지만, 전부 다 나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할 뿐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앞길을 막아대는 놈들을 거리낌없이 발로 뻥뻥 걷어차 비키게 만들며 걸어간 지 얼마나 지났을까, 저만치에 끝이 보였다. 막다른 길이었다.
‘시체는…… 있구나.’
그 앞에는 바싹 마른 해골이 벽에 기대어 쓰러진 채로 죽어 있었다. 과거에 악마 토벌을 위해 성국에서 여기로 파견된 사제들 중 하나였던 인물이다.
옷차림이 조금 더 화려한데다 다른 사제들과는 달리 시체가 망자로 일어서지 않고 죽은 그대로였으니, 유저들 사이에서 아마 굉장히 강력한 사제였으리라고 추측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백골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옷을 뒤졌다. 허리춤 근처에서 무언가 날카로운 물체가 잡혔다. 그걸 집었다.
내 손에 잡힌 것은 평범하게 생긴 단검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전혀 녹슬지 않고 날카로운 상태를 유지하는 중인, 신성력으로 제련된 단검. 게임에서라면 여기에 ‘축복받은’이라는 수식어가 붙겠지.
‘역시 들 수는 있나보네. 지금 휘둘러도 아마 제 위력은 안나오겠지만.’
그걸 조심스레 품에 챙겼다. 악마가 깃든 책이 영주를 꾀어내는 데 핵심적인 물품이라면, 이 단검은 꾀어낸 영주를 처리하는데 핵심적인 물품이었다.
이제 여기에 더 볼 일은 없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를 멍하니 쳐다보는 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망자들을 뻥뻥 걷어차며 한참을 걸어 밖으로 나오자, 주변에는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횃불을 들어 사방을 비추면서 말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말은 얌전히 나무에 묶여 있다가 날 보자 히힝, 소리를 냈다. 갈기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가방을 풀어 안장에 묶었다.
이제 기사단으로 돌아가 그 영주 놈을 죽일 시간이었다.
온갖 성스러운 물품들로 장식된 방에서, 어느 여인이 눈을 떴다.
방 안에는 광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으나, 벽 하나를 통째로 사용해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 너머에서 만월의 빛이 쏟아져들어와 방 안을 훤히 밝혔기에 전혀 어둡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창가로 다가간 여인은 조용히 가슴 앞에서 손을 모았다. 깍지 낀 손에 노란색과 백색이 섞인 색채의 신성한 힘이 떠올랐다.
그 힘이 나타난지 얼마나 지났을까, 문이 벌컥 열렸다. 얼굴에 싱글싱글한 미소가 떠올라 있는 여인이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나요, 교황 성하?”
“악마의 봉인이 풀렸습니다.”
“어머.”
여인은 자신이 교황 성하라 부른 존재의 말을 듣고 놀란 듯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하지만 절대 진심으로 지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저 겉치레로 놀라는 척만 한 듯 했다.
“어느 장소에 있던 봉인인가요? 저희 성국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엄중히 관리되고 있으니…… 제국의 것이겠죠?”
“예, 그렇습니다.”
“봉인을 푼 놈을 잡으러 가면 될까요? 아니면 그 악마 토벌?”
교황 성하라 불린 존재가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곳에도 빛은 존재하니까요.”
“빛이라…… 음, 글쎄요. 저는 그 여자 못 믿겠던데.”
“성검을 지닌 여인입니다. 악마 따위는 상대조차 되지 않겠지요. 걱정은 접어두시길.”
“그렇기야 하겠네요. 인성이 좀 개판이긴 해도 성검 보유자니까. 그래서, 지금 당장 봉인 푼 놈을 잡으러 갈 것도 아니고, 악마를 토벌하러 갈 것도 아니라면 저는 왜 부르셨을까요?”
“그저 사실만을 전달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저도 봉인이 풀린 지금에 이르러서야 알아차린 사실이지만, 그 악마의 힘은 굉장히 약화되어 있습니다. 저희들의 견습 수녀분조차도 그 악마를 무척이나 손쉽게 처치할 수 있을만큼요.”
“그래봤자 제국 쪽의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사항이잖아요? 약화됐다고 해봐야 신앙심이 없으면 악마는 절대 못 죽일테니까. 괜히 나섰다가 악마한테 힘이나 보충 안 해주면 다행이겠죠.”
교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까지 길게 늘어져 있는, 웨이브 진 금발이 금빛의 파도를 만들었다.
“그러면 일단 애들한테 말만 해둘게요. 악마랑 성전을 벌이지는 않을건데, 그럴 가능성이 있으니 평소보다 더 열심히 훈련하라고. 그 정도면 충분한가요?”
“예, 충분합니다.”
교황의 대답을 듣고 빙글 돌아 문 밖으로 나가려던 여인은, 뭔가 까먹었던 게 떠올랐다는 듯 “아!” 소리를 내며 몸을 돌렸다.
“교황 성하. 한가지만 더 여쭤봐도 되죠?”
“얼마든지요.”
“나중에라도 성전을 시작하러 떠나게 된다면, 악마의 봉인을 푼 그 녀석은 어떻게 할까요?”
녹안이 가늘게 떠졌다. 그 눈동자는 매우 잔혹한 감정을 담아 빛나고 있었다. 녹색의 동공에 지독한 가학심이 번들거렸다.
“뜻대로 하시지요. 저는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이단심판관이여.”
“기꺼이 그러죠.”
이단심판관이라 불린 여인은 활짝 웃으며 머리를 가볍게 숙이고는 방을 떠나갔다. 교황은 닫힌 문을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몸을 돌렸다.
“교황 성하. 한가지만 더요.”
정확히는, 돌리려 했다. 방금의 그 이단심판관이 갑자기 문을 열고 불쑥 고개를 들이밀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교황을 만나는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으리만치 경박한 태도와 말투에 짜증이 날 법 한데도, 교황은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말투로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더 남으셨는지요?”
“달의 교황께는 따로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나요?”
그 질문을 들은 교황은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비치는, 만월의 달빛을 흘끗 바라보았다.
“그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늘에는 무척이나 둥근 보름달이 떠 있었다.
“지금은 만월이 떠오른 밤이니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