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30)
r 230 – 고백 – 2
아우로라를 조금 달래주고 난 뒤, 나는 리제를 찾아 방을 나섰다. 아우로라는 피곤하다며 날 배웅하고는 곧장 침대에 드러누웠다.
리제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금빛 황혼 기사단은 칠흑 성야 기사단에 흡수되는 식으로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지만, 은빛 여명 기사단은 멀쩡히 잘 있었으니까 말이다.
순식간에 두 배가 되어버린 단원들의 편제는 라크시아가 알아서 하기로 했다. 라크시아는 금빛 황혼 기사단의 전원이 생각지도 못하게 다시 모이자 무척이나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다른 부기사단장이나 일반 단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다들 어리둥절한 가운데서도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사이, 나는 리제가 근무하는 장소로 향했다.
아무래도 필연적으로 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듣는 내가 다 오글거릴 정도로 칭찬이 과해서 별로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여기까진 어쩐 일로 왔어? 미네르바 님이랑 대화는 끝난 거야?”
황궁의 한쪽 방향이 훤히 보이는 위치에 서 있던 리제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허리춤에는 단검을 차고, 전신에 갑옷을 착용한 채였다.
“아직 돌아다닐 시간 아니지?”
“좀 남았어. 왜?”
“할 말이 있어서. 누가 들으면 안 되거든.”
나는 아우로라에게 했던 말을 리제에게도 고스란히 들려주었다. 리제는 처음엔 할 말이 있다니 뭔가 싶은 표정으로 듣다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끅끅거리며 박장대소를 했다.
경악한 표정으로 굳어버린 아우로라와는 전혀 달랐다. 굉장히 리제다운 반응이었다.
“그거 진짜야? 황제 폐하랑 교황 성하들까지? 델타 너한테?”
“아우로라한테도 똑같은 소리 들었는데, 그분들로 거짓말 했다간 당장 목 날아가고도 남을걸. 난 목숨을 그렇게 안 아끼는 사람이 아니라고.”
“옛날에 벌였던 짓들 보면 설득력 하나도 없긴 한데……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알았어. 믿어줄게.”
리제가 팔꿈치로 나를 툭툭 건드렸다. 갑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자칫하다 내가 다칠까봐 그러는 듯 움직임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설마 내 남자가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람이었다니, 역시 내가 보는 눈이 좋아. 괜히 첫 만남부터 내 목줄 틀어쥘 사람으로 점찍은 게 아니라니까?”
그렇게 한바탕 기뻐한 리제는, 아직 근무 시간이지만 내가 지켜줄테니 자그마한 일탈 정도는 괜찮을 거라며 투구를 벗었다.
땀으로 살짝 절어 뺨에 드문드문 달라붙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손가락으로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쓸어주었다. 리제는 간지럽다며 꺄르륵 웃어댔다.
“생각보다는 평범한 반응이네.”
“내가? 영주님은 뭐 어땠길래?”
“듣자마자 책 떨어뜨리고 차 쏟고 그랬거든.”
“그러실만 하지. 영주님도 나름 강심장이긴 하시지만, 델타 네가 벌이는 짓은 우리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잖아. 솔직히 나도 속으로는 무진장 놀랐다?”
“겉보기에는 하나도 안 그런 것 같은데?”
리제의 얼굴에 놀란 모습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눈 하나 깜짝 않는 거짓말이었다.
“뭐, 말이 그렇다는 의미야. 그래서 말인데, 델타. 그분들이랑도 했어?”
이것저것 많이 생략된 표현이었음에도, 저 말의 의미를 추측하기란 별로 어렵지 않았다.
왼손으로 만든 고리 안에 오른손 검지를 넣었다 뺐다 하는 동작 때문도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저 은근한 표정을 보면 뭘 뜻하는지를 못 알아차리는 편이 더 이상할 것이다.
“맞아. 했어.”
“……진짜? 거짓말 아니고?”
“네가 물어봐놓고 왜 놀라?”
“어…… 굉장해서?”
화들짝 놀란 리제는, 내 하반신을 흘끔흘끔 쳐다보다가 갑자기 엄청난 충격을 받은 얼굴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참으로 극적인 변화였다. 새삼스럽게 대단한 성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델타. 교황 성하들은 자매시지?”
“맞아. 달의 교황 쪽이 언니, 태양의 교황 쪽이 동생.”
“할 때도 두분이서 같이 했을 거고.”
“그것도 맞아. 왜?”
“자매덮밥을 나랑 에리카가 제일 먼저 못 먹여준게 안타까워서…….”
“그건 또 대체 어디서 배워먹은 표현이야?”
설마 여기까지 왜서 저런 단어를 들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내가 황당한 말투로 되받았다. 리제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섰다.
“그렇잖아! 에리카가 조금만 더 솔직했으면 자매덮밥도 우리가 제일 먼저 해봤을건데! 에리카 이 미련둔탱이가 그걸 못해서ㅡ 웁.”
다른 장소였다면 평소의 리제라며 대충 넘어갔을테지만, 여긴 황궁이다. 모든 곳에 귀가 있고, 모든 곳에 눈이 있는 곳. 혹시 누가 듣기라도 할까 싶어 입을 틀어막았다.
리제는 내 손으로 입이 틀어막히고도 한동안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둘이서만 하는건 거의 다 해봤으니까 세명이서 하는 쪽에도 도전해보려고 했는데…… 누가 어디를 빨아야 할지 역할도 다 생각해뒀는데…….”
“야.”
그리고 마지막에 내뱉은 말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일단 저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을 제외하면 남성 상위로 할 수 있는 체위는 전부 다 리제랑 먼저 해봤었으니까. 첫 경험 때 부탁했던 것이 있어서 말이다.
여성 상위는 우리 둘 다 마음에 안들어해서 기승위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건너뛰었다. 리제는 아예 질색을 했고, 나도 그런 쪽은 영 내키지 않았기에 의견이 일치해서였다.
“어쨌든 잘됐네. 그분들까지 포함시켰으니까 이제 눈치 안 보고 더 늘려도 되는 거 아니야? 나는 20명까지는 환영인데. 그 이상은 조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마구잡이로 늘릴 생각도 없고, 그렇게 많이 늘릴 생각도 없거든? 날 대체 뭘로 보는 건데?”
“음…… 어디. 계산 좀 해 보고.”
건틀렛에 들어간 손가락이 하나씩 접혔다 펴졌다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뭔가를 계산하는가 싶더니,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10명까지는 확정일 것 같은데?”
“어디서 나온 계산이야?”
“황제 폐하랑 교황 성하들, 나랑 영주님까지 합해서 5명이잖아. 그리고 내 친구들 포함하면 8명. 마지막으로 너라면 여기저기 숨겨둔 여자가 2명쯤은 더 있을 것 같아서?”
저 목록에 포함은 안 됐지만, 여신이 직접 다른 세상에서 넘어왔다고 확답을 준데다 이상할 정도로 나를 잘 따르는 닉스를 더하면 9명에, 미네르바까지 혹시나 싶어 합하면 진짜로 10명쯤 됐다.
그 사실에 속으로 전율하며 화제를 돌렸다.
“……나머지 기사단장들은 왜?”
“내가 저번에 말하지 않았나? 아이리스는 나한테 너 좋아한다 했고, 에리카는 나랑 남자 취향 비슷해서 조금만 꼬셔도 넘어올거라고. 그러면 일단 걔들은 확정이지 뭐. 클라우디아는 술 빼면 그런 쪽으로 관심이 하나도 없어보여서 잘 모르겠는데, 너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그것 참 무책임하네. 그리고 아이리스는 악마한테 당했던 거라니까.”
“괜찮아, 괜찮아. 나는 델타 널 믿거든. 넷 모두 같은 남자랑 있는 게 우리한테도 더 좋지 않겠어?”
리제는 웃으며 윙크를 했다. 내가 다른 여자와 사귀는 것에 대한 질투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미소였다.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는 건가.
“그래서, 나 찾아온 이유는 그걸로 끝? 끝이면 잠깐만 와 봐.”
“끝이긴 한데, 왜ㅡ”
리제가 대뜸 몸을 기울여 키스를 해왔다.
얘가 왜 이러나 싶어 잠시 가만히 있다가, 입술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혀를 얽으며 호응했다.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가슴팍에 딱딱한 갑옷의 감촉이 느껴졌다.
먼저 입을 맞춘 것도 리제였고 먼저 혀를 얽은 것도 리제였지만, 한동안 숨결을 교환하다 입을 땠을 떼 더 많이 몽롱해진 얼굴로 더 많이 헥헥대는 것도 리제였다.
리제는 반쯤 풀린 눈을 하고선 혀를 빼물고 더운 숨을 내쉬었다. 호흡 사이로 리제의 향이 섞여들었다.
“뭐, 뭐야, 너. 실력 또 늘었어?”
“글쎄. 잘 모르겠는데.”
“이씨, 이러다 나중에 진짜 키스만 했는데 가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건 진짜 여자로서 실격인데…….”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음을 참았다. 카이킬리아가 자기 말처럼 키스만으로 절정해버렸단 사실을 알면 무슨 반응이려나 궁금해지게 만드는 투덜거림이었다.
물론 고의는 아니겠지만, 자기가 섬기는 황제를 여자로서 실격이라고 욕한 셈이다. 리제가 몸이 민감하니 허접이니 어쩌니 해도 카이킬리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니까.
“그 정도면 괜찮아. 평균 이상이야.”
대체 뭔 헛소리지, 하는 시선이 되돌아왔다.
[능력치] [레벨] 75(+4) [체력] 1 [마나] 10 [신앙] 10 [지구력] 5 [숙련] 1 [힘] 75(+50) [마력] 60(+50) [신성력] 60(+50) [내구] 7“…….”
지금껏 쌓인 경험치를 생각하고 능력 확인 구슬에 손을 올린 나는, 스테이터스를 확인하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숫자의 향연에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힘을 빌려준다고 하더니 말 뿐인 립서비스가 아니라 정말 약속을 지켰던 모양이었다. 여태껏 차근차근 쌓아온 수치가 무색할 정도로 상승폭이 컸다.
여신은 분명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최대한으로 지원해주겠다 말했었고, 이 3가지 능력치에 찍힌 상승폭이 그 최대한의 성과일 것이다.
남은 힘으로는 그 드래곤이 최후의 세계마저 먹어치우지 못하도록 막는데만도 벅찰테니까.
저 3개를 제외한 다른 스탯은 그대로였지만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머지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크게 불편하진 않은 수준인데다, 체력 같은 경우는 오히려 올라가면 곤란하다.
혹시나 싶어 스탯을 투자해보았다.
[능력치] [레벨] 75(+1) [체력] 1 [마나] 10 [신앙] 10 [지구력] 5 [숙련] 1 [힘] 76(+51) [마력] 61(+51) [신성력] 61(+51) [내구] 751로 변한 숫자 증가폭과, 각각 1씩 더해진 최종 능력치. 다시 말해, 이대로 스탯을 확정시키고 능력 확인 창을 닫는다면 그만큼 올라간다는 의미다.
날 도와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빛기둥 한번 더 내려주려나 하고 넘겼었는데, 설마 이렇게 직관적인 도움을 받으리라고는 진짜 상상도 못했다.
예전에 간간이 그랬던 것처럼 신성력이나 좀 증폭시키고 말 줄 알았지.
‘당분간은 바빠지겠어.’
마법도 필요하고, 흑마법도 필요하고, 신성 주문도 필요하고, 마법 지팡이도 필요하고, 신성 촉매도 필요하다. 효율 때문에 건너뛰어서 그렇지, 쓸 수 있다면 무조건 쓰는 게 맞았다.
어차피 구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을 거다. 마법은 미네르바한테, 흑마법은 닉스한테, 신성 주문은 교황들한테 부탁하면 끝이니까. 지팡이나 신성 촉매 역시 말만 하면 손에 들어올테고.
‘굳이 안 붙어도 된다는 점이 제일 좋겠네.’
상황에 따라서 마법과 흑마법, 신성 주문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면 아슬아슬하게 근접전을 펼치지 않아도 된다.
흑마법으로 깎여나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간간이 흡혈 충동 룬을 써먹어야 되긴 하겠지만, 지금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근접전만 벌여댈 필요는 전혀 없었다.
원거리에서 체력을 확 깎아둔 다음에, 가까이 다가가서 마무리하고 흡혈 충동을 발동시키는 것으로 끝이니 말이다.
[능력치] [레벨] 75 [체력] 1 [마나] 12(+2) [신앙] 12(+2) [지구력] 5 [숙련] 1 [힘] 75(+50) [마력] 60(+50) [신성력] 60(+50) [내구] 7스탯 포인트를 마나와 신앙에 나누어 투자하고 능력 확인 구슬에서 손을 뗐다. 둘 모두 15까지만 올린 뒤에 나머지는 모두 마나에 올인할 예정이었다.
신성력 스탯 60이면 신성 주문을 물쓰듯 사용하지 않는 이상 신앙이 모자랄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봐도 좋다. 그러니 스탯을 적당히만 투자해두면 되는 것이다.
마나는 자연 회복 수단이 딱히 없으니 포션을 들고 다녀야겠지만, 그것도 별 문제는 안 된다. 바로 옆이 최고급 마나 포션의 생산지인 마탑인데 뭐하러 그런 걱정을 하겠는가.
‘나중 가서 무기를 어떻게 바꿀지나 고민해야지.’
게임에서야 그냥 Ctrl키 누르고 마우스 휠을 위아래로 돌리면 캐릭터가 알아서 꺼내든다 하더라도,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신성 촉매는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허리춤에 찬다 치는데, 지팡이는 어떻게 가지고 다닐지를 고민 좀 해봐야 할 것 같았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탑을 나섰다. 복잡했던 심정이 어느정도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150레벨 분량의 스탯이 추가됐는데 레벨은 전혀 안 올라서 아직 75에 불과했다. 그 말인 즉, 150레벨만큼의 경험치도 같이 이득을 봤다는 뜻이다.
세 자릿수 레벨 근처의 경험치 구간이 아무리 크다곤 하지만, 200렙 이상의 고레벨대 구간에 비하면야 새발의 피 정도밖에 안 된다.
“무척 좋아보이는 얼굴이로구나, 아이야.”
밖에서는 미네르바가 활짝 웃는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보고 좋아보이는 얼굴이라고 해놓고선, 자기는 아예 날아갈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원래는 아우로라의 영지로 돌아가서 거기 있는 능력 확인 구슬을 사용하려고 했는데, 미네르바가 그럴 필요 없다며 마탑의 물건을 사용하도록 해주었다.
“안녕, 델타. 또 보네.”
미네르바의 옆에 서 있던, 마탑의 마법사들이 입는 것과 똑같이 생긴 로브를 입은 파르나리가 날 향해 손을 흔들었다. 머리 위의 뿔은 마법으로 감춰두기라도 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직 안 떠나셨네요, 파르나리 씨?”
“당분간 미네르바의…… 아니, 스키엔티아님의 조수를 하기로 했어.”
결국 성공했구나, 하고 넘어가려다가 잠시 멈칫 했다. 이것만은 꼭 물어봐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였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요, 방금 말하신 ‘당분간’은 몇 년쯤이죠?”
“얼마 안 돼. 삼백 년 정도.”
파르나리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
미네르바의 웃는 표정에는 고대의 스크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유도 섞여 있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