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31)
r 231 – 변화하다
그 사악한 계획을 깨달은 내가 잠시 전율하던 와중, 싱글싱글 웃고 있던 미네르바는 날 쳐다보더니 얼굴에 만발한 웃음기를 지우며 눈을 빛냈다.
“그런데, 아이야. 분명 아이가 능력 확인 구슬을 사용하도록 해주고 얼마 안 되었지 않았니?”
“네. 얼마 안 됐습니다. 왜 그러시죠?”
“아이의 몸이 그 짧은 시간만에 굉장히 많이 달라졌구나. 아주 많이 달라졌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예전에도 봤던,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이었다. 은백색 동공이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파르나리도 미네르바를 따라하다가 고개를 몇번 끄덕였다.
“맞아. 너 엄청 강해졌어. 어떻게 된 거야?”
둘 모두 내 스탯이 확 올라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듯했다.
힘이 강해졌다는 걸 알아차릴 수는 없고, 신성력이 올라갔다는 걸 감지할 수 있을 리도 없으니, 아마 마력의 양이 변화했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미네르바와 파르나리의 반응으로 추측컨대,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내가 스탯을 확정짓기 전까지는 증가량이 적용되지 않고 있던 모양이었다.
‘뒷목 잡을 뻔 했네.’
그러다 내가 능력 확인 구슬을 한참 뒤에 봤으면 어떡했으려고.
무려 150레벨어치 분량의 스탯을 확인조차 못한 채로 아등바등 굴렀을 가능성을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랬다간 홧병이 나서 한 달 정도는 드러눕지 않았을까.
“교황들이 절 성국으로 데려가겠다며 중앙 홀 앞에 버티고 섰던 이유와 일맥상통 할 겁니다.”
이런 내 대답에 미네르바는 아주 간단히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해하였단다. 태양과 달이 직접 강림하여 축복했을 정도라면 마땅히 그리하여야겠지.”
그러면서 내게 가까이 다가온 미네르바가 얼굴을 옆으로 겹쳤다. 앵둣빛 입술이 귓가에 맞닿았다. 소곤거리는 속삭임이 들렸다.
“아이는 언제나 내 예상을 뛰어넘는구나. 생각해보면 우리가 처음 만난 이후로 쭉 그래왔지. 지난 이백 년보다 아이와 있던 몇 달이 훨씬 더 즐거웠으니.”
입술이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귓바퀴에 더운 숨결이 불어넣어졌다.
“그러니, 여태껏 아이가 그래왔던 것처럼…….”
미네르바가 입술로 내 귓불을 살짝 물었다. 그 이질적인 감각에 몸이 움찔 떨렸다. 입술이 떨어진 것은 혀가 귓불을 핥으며 입에 든 것을 빠는 쯥쯥 소리를 몇 번이고 낸 뒤였다.
“앞으로도 나를 더욱 즐겁게 해주렴.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겠단다.”
“…….”
고혹적인 미소가 떠오르고, 미네르바는 입술을 매만지며 뒤로 물러났다. 타액이 점차 말라붙기 시작하며 약간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파르나리는 우리가 왜 이런 표정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자, 아이야. 가벼운 대화도 끝났으니 이제…….”
“압니다. 고대의 스크롤을 찾으러 가야겠죠.”
내 말에 미네르바는 황홀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여태까지는 나름 침착하게 기다렸지만, 막상 두 번째 스크롤을 손에 넣을 시간이 코앞까지 다가오니 감정을 주체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 전에, 부탁 하나만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부탁?”
“네. 저희들 말고 한 명을 더 데려가고 싶습니다.”
“아이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그러려무나. 모든 것은 아이가 결정할 일이니 나는 상관 없단다. 누구를 데려가길 원하는 걸까?”
“어…… 헤헤. 안녕하세요, 미네르바 님…….”
닉스가 소심하게 인사를 건넸다. 미네르바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나마 내가 직접 데려왔고, 내가 옆에 서 있고, 고대의 스크롤을 찾으러 출발하기 직전인 상황이라서 그렇지, 아니었더라면 분명 한마디쯤 했을 법한 얼굴이었다.
“한명 더 데려간다는 사람이 저것이었니, 아이야?”
“네.”
“아이의 결정이니 얌전히 따르도록 하겠다만…… 나는 저것과 굉장히 친하지 않다는 사실만은 알아두려무나.”
“제 옆에 붙여서 옆으로 다가가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닉스를 내 뒤로 슬쩍 숨겼다. 닉스는 곧바로 내 허리를 끌어안고선 옆구리로 꾸물꾸물 파고들어 고개만 슬쩍 내밀었다. 흘끔, 검은색 눈동자가 미네르바의 눈치를 살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런 반응이지?’
적어도 내가 아는 미네르바는 저런 날 선 성격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닉스 역시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남한테 대들지도 못할 만큼 소심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미네르바는 닉스를 보자마자 으르렁대고, 닉스는 연신 미네르바의 눈치를 살펴대고 있으니 나로서는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신 말로는 닉스가 다른 세계에서 넘어왔다던데, 그 넘어오는 과정에서 사고가 터지기라도 했나.
평소였다면 굳이 둘을 붙여놓진 않았겠지만, 이번에는 닉스를 데려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고대의 스크롤이 보관된 던전쯤 되면 누군가 엿들을 염려는 없을테니 말이다.
“잡담은 이쯤 해두자꾸나, 아이야. 어디로 이동하면 되겠니?”
“미네르바님께서도 알고 계시는 장소입니다.”
“나도 알고 있다니, 그게 무슨 소리일까?”
“여기니까요.”
나는 미네르바가 띄워둔 지도의 어느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위치를 본 미네르바가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이야, 그곳은…….”
“알고 있습니다. 미네르바님께서 예전에 이미 비밀을 밝혀내셨던 장소죠.”
미네르바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지팡이를 콩 내리찍었다. 곧장 푸른 마나가 우리 넷을 감쌌다. 닉스는 내 허리를 끌어안고선 눈을 꼬옥 감았다.
1초도 채 지나지 않아 잔디가 넓게 깔린 드넓은 평원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이런 초장거리 순간이동은 처음이었는지 파르나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초록빛 풀로 뒤덮인 평원의 중심에서, 이상하게 생긴 삼각 기둥 모양의 구조물과 그 한가운데 솟아오른 2층 높이의 탑이 보였다. 삼각 기둥은 정확히 30개였다.
삼각 기둥과 탑을 보호하고 있던 마법 결계는 결계의 주인이 발을 내딛자 눈 녹듯 사라졌다.
“이 장소에 다시 방문하게 될 줄은 몰랐구나. 이미 찾을 수 있는 것은 다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미네르바가 경탄이 반쯤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드넓은 평원 위에 드문드문 흩어진, 순백색의 이상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 새하얀 삼각 기둥들. 굵기는 내 허벅지 정도였고, 표면에는 티끌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무언가 있을 것 같다는 의심을 품을 만큼 이질적인 풍경이었고, 실제로 비밀이 숨겨져 있었기도 했다.
삼각 기둥의 비밀을 발견해내어 탑이 솟아오르도록 만든 사람이 내 옆에 있는 영원의 마법사였으니까. 그게 설정상 백년 전이었나 이백년 전이었나.
“그래서, 아이야. 고대의 스크롤은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
“간단합니다.”
나는 날개 잃은 악몽을 빼들고 기둥 앞으로 다가갔다.
“알고 계시겠지만, 이 기둥들은 아무리 잘게 부수더라도 저절로 수복되죠. 그래서 이렇게 멀쩡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거고요.”
“그렇지.”
“미네르바님. 그때 기둥을 어떤 순서로 배치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기억하고 있단다.”
태양이 뜨는 방향의 제일 바깥쪽에 놓인 기둥. 그 앞으로 다가가 칼 끝으로 표면을 톡톡 건드렸다.
닉스는 여전히 내 옆구리에 바짝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질 않았다. 압도적인 질량의 가슴이 계속해서 허리 근처에 짓눌렸다.
“이게 첫번째입니다. 맞죠?”
끄덕, 미네르바가 긍정했다. 날개 잃은 악몽을 대각선으로 치켜들고, 닉스가 팔에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며 수평으로 휘둘렀다.
ㅡ콰지지직!
기둥 윗부분이 바닥을 굴렀다. 파편이 우수수 떨어졌다. 새로운 비밀이 밝혀지기 직전이라 그런지, 미네르바는 굉장히 흥미진진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가 방금 한 것처럼, 그때 기둥을 배치하셨던 순서대로 이걸 전부 부숴버리시면 됩니다. 대신, 제한 시간 안에요.”
“시간에 제한이 있다면, 얼마나 되는 걸까?”
“5분입니다. 미네르바님한테는 넘치고도 남을 정도죠.”
게임에서조차 원거리 캐릭터로 한다면 시간이 제법 넉넉히 남는 퍼즐인데, 미네르바는 말할 것도 없다. 설령 5분이 아니라 5초였더라도 당연하다는 듯이 해내겠지.
“알았단다. 조금만 기다리렴.”
방긋 웃은 미네르바가 허공에 마나 구체를 띄워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체에서 마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마나로 이루어진 투사체를 발사하는 마법이었다.
투사체가 두 번째 기둥을 부수고, 세 번째 기둥을 부수고, 네 번째 기둥을 부쉈다. 기둥들은 마치 도미노가 무너지듯 차례대로 박살이 났다.
한 치의 오차조차 없이, 착탄 시간까지 정확히 계산된 수치였다.
눈을 몇 번 깜빡일 시간만에 30개의 기둥을 모조리 부순 미네르바가 손짓을 했다. 허공에 떠오른 마나 구체가 사라졌다.
처참하게 박살나 잔디 위를 뒹굴던 파편과 남은 밑동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무언가 있구나.”
미네르바의 중얼거림과 함께, 허공으로 떠오른 파편들이 탑에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아무렇게나 달라붙는 것이 아닌, 일정한 규칙을 띄면서.
머지 않아 탑의 겉모습이 바뀌었다.
앞뒤로 납작해지며, 갈수록 좁아지는 원통 모양이 아니라 납작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변했다. 원래 문이 있던 자리가 활짝 젖혀지고, 흰 안개벽으로 가로막힌 통로가 나타났다.
더 이상 마탑이 아니라 일종의 문으로 변해버린 구조물이 떡하니 아가리를 벌리고 섰다. 저게 바로 고대의 스크롤이 보관된 던전으로 들어가는 출입구였다.
“저 안입니다.”
나는 태연히 말했고, 파르나리는 짝짝 박수를 치고 있었으며, 닉스는 내 옆구리에 달라붙어 헤실헤실 웃어댔다.
“…….”
물론 미네르바의 반응은 우리와 비교할 수조차 없이 격렬했다. 그 자리에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무척이나 허망한 얼굴로 쩌적 굳어버렸으니까 말이다.
게임에서도 고대의 스크롤을 건네주며 어디서 찾았는지를 말하면 크게 탄식하는 반응을 보인다.
바로 눈앞에 스크롤이 있었음에도 그걸 발견하지 못해서, 백 년이 넘도록 이미 개량했던 마법을 또 개량하며 허송세월을 보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딱히 미네르바의 탓은 아니다. 솔직히, 이미 퍼즐을 풀어서 탑이 솟아나온 자리에 또 다른 퍼즐이 숨겨져 있으리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슬프구나. 바로 눈앞에 진실이 있었는데도 그걸 못 보고 이런 꼴이라니. 영원의 마법사라는 이름이 울겠는걸.”
미네르바는 꼭 물에 빠진 생쥐처럼 처량한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저런 모습의 미네르바는 처음이었다.
“이제라도 찾았으니 괜찮습니다. 자, 들어가시죠.”
조심스레 손을 잡아주었다. 미네르바는 움찔 하더니, 잠시동안 가만히 있다가 단단히 깍지를 껴왔다. 떨림이 조금은 가라앉은 듯했다.
미네르바와 내가 먼저 흰 안개벽 안으로 들어가고, 자연스레 내 허리에 매달린 닉스가 다음, 파르나리가 마지막으로 들어갔다.
던전 내부는 입구가 제일 높아 아래쪽이 훤히 보이면서 점차 밑으로 내려가는 구조였다. 아래의 광장에는 위를 향하는 드넓은 미로가 펼쳐졌다.
그 미로의 끝, 던전의 천장과 거의 맞닿을 듯한 부분에 스크롤처럼 생긴 무언가가 떠올라 있었다.
“저것이…….”
미네르바가 황홀한 목소리로 순간이동을 사용하려 하길래, 깍지를 낀 손에 힘을 주어 제지했다. 휘둘러지려던 지팡이가 우뚝 멈췄다.
하지만, 본능에 가까운 반응이었는지 눈은 여전히 스크롤에 고정되어 있는데다 반쯤 풀린 동공도 회복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금씩 풍겨오기 시작한 옅은 레몬향은 덤이었다.
나는 그 레몬향을 애써 무시하며 미네르바의 눈 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흐느적거리던 은백색 동공이 약간의 생기를 되찾았다.
“……왜 그러니, 아이야?”
“저거, 함정입니다. 그냥 환상이에요. 속으시면 안 됩니다.”
함정이라는 말에 은백색 동공이 생기를 되찾았다.
“그러면?”
“진짜는 따로 있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