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32)
r 232 – 미러 스크롤
아주 가끔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성능이 좋은 아이템이나 재료일수록 더 구하기 어렵도록 만드는 것이 게임 레벨 디자인의 기본이다.
대표적으로 퀘스트 수행하다가 사람 혈압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시험해보기 딱 좋게 설계된 날개 잃은 악몽이라든가.
고대의 스크롤 시리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 던전에서 발견되는 ‘미러 스크롤’의 특징을 제일 먼저 꼽아보라면, 거울이란 이름답게 설계되어 있는 던전 속 미로와 그 미로에 배치된 온갖 거울 함정을 꼽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처음 발을 들인 플레이어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갈겨버리는 최후의 낚시로 화룡점정을 찍어버리는 것이다.
“함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일까, 아이야?”
“허공에 떠있는 저걸 자세히 보시면 아실 겁니다. 저한테는 안 보이지만, 미네르바 님이라면 충분히 관측하실 수 있으시겠죠.”
내 말에, 미네르바와 파르나리의 시선이 일제히 던전 천장에 떠 있는 스크롤로 쏠렸다. 닉스는 여전히 내 허리를 끌어안고 몸에 얼굴을 부벼대기 바빴다.
참고로 저거, 얼핏 보기에는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투명다리 위에 놓인 거다. 아래쪽에 펼쳐진 미로를 끝까지 돌파하면 알 수 있다.
한동안 스크롤을 살피던 미네르바는, 흥분이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환상 마법이로구나.”
순식간에 평정을 되찾은 얼굴이 다시 차분하게 변했다. 분노가 조금 섞인 것처럼도 보였다. 스크롤로 장난을 쳤다는 사실에 열이 뻗친 모양이었다.
“저 위에 떠 있는 것이 환영이라면, 진짜는 어디에 있는 거니?”
“바로 옆입니다.”
“옆?”
미네르바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3명을 데리고 던전의 입구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고, 절벽으로 끊겨 있기만 한 장소.
얼핏 보기에는 그랬다. 얼핏 보기에는.
그 자리에서 입구와 제일 가까운 쪽 벽에는 안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공간이 있었다. 오목한 공간의 위치는 내 키의 6~7배 높이쯤 됐다.
일부러 고개를 한참 들어 확인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눈치챌 수 없는 데다, 얼핏 보기에는 텅 빈 절벽뿐이니 굳이 시선을 줄 이유도 없는 곳이었다.
“진짜 스크롤은 저기에 숨겨져 있습니다.”
처음 여기 들어온 플레이어는 보통 눈앞의 절벽으로 다가가 미로의 구조를 외우기 바빴다.
천장에 아이템이 놓여져 있고, 던전의 중심에는 미로가 펼쳐져 있다면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미로를 돌파해 아이템을 획득하는 방식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테니까.
게다가 오목한 공간의 높이상, 따로 모드를 설치하지 않는다면 바닐라의 FOV와 카메라 구조로는 절벽에서 떨어지기 직전까지 이동하더라도 저 위의 공간을 발견할 수 없다.
절벽 끄트머리의 오브젝트가 카메라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절묘하게 3인칭 시야의 바깥에 위치하는지라, 적어도 입구 쪽 절벽에 있는 동안은 저 위의 오목한 공간을 찾아내지 못하도록 설계된 장소가 바로 여기였다.
“……앞에 무언가 있구나.”
오목한 공간을 살펴보던 미네르바가 지팡이로 바닥을 가볍게 건드렸다. 그러자, 푸른 마나가 눈송이처럼 내려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차곡차곡 내려앉았다.
마치 눈이 쌓이듯 마나가 쌓이며 투명한 비탈길의 윤곽이 드러났다.
벽에 바짝 달라붙어 올라가는 방식이고, 넓이도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올라갈 정도로 좁아터져선 벽에 비벼대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에야 눈치채기 힘든 그런 비탈길.
혹시라도 플레이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비탈길에 걸리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구조다.
이런 디자인 탓에, 플레이어는 거울 미로와 함정, 적들을 죽어라 돌파해서 저 위의 스크롤까지 도착한 뒤에야 자신이 낚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크롤과 상호 작용을 하면 오목한 공간이 밝게 빛나고, 입구로 향하는 숏컷이 나타나는 동시에 투명 비탈길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악랄한 것들.’
뭐, 그래서 일단 한번 낚인 이후부터는 미로에 들어갈 필요 없이 투명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서 스크롤만 먹고 나오면 되니 압도적으로 간편하긴 했지만.
그리고 불합리를 지양하는 브닼 제작사답게 이것도 알아챌 수 있는 기회를 주긴 한다. 미로를 향해 내려가는 길에서 중간쯤 도착해 카메라를 뒤로 꺾으면 오목한 공간이 보이니까.
보고도 그냥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렇지.
“너 신기해. 그런 것도 알고 있어?”
파르나리는 무척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미네르바는 내가 이러는 걸 한두번 본 게 아니기도 한데다 눈앞의 스크롤에 정신이 팔려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고, 닉스는 여전히 자기 욕구를 채우느라 바빴다.
“설명드리긴 조금 애매한데, 그냥 익숙해지면 됩니다. 저희가 앞으로도 만나게 된다면 제 이런 모습을 여러 번 볼지도 모르거든요.”
“익숙해지라니, 어떻게?”
고개를 갸웃거린 파르나리가 뭔가를 더 질문하려는 찰나, 미네르바가 실성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우리 둘의 사이로 걸어가는 바람에 눈이 휘둥그레지느라 말이 끊겼다.
저 위에 진짜가 있다는 말은, 반대로 말해 눈앞에 고대의 스크롤이 있다는 의미도 된다. 그건 미네르바가 슬슬 정신을 놓아버리기 직전이라는 뜻이었다.
“스키엔티아 님? 왜 그래?”
미네르바는 파르나리의 질문을 깔끔히 무시해버리고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발을 내딛었다. 샌들로 감싸인 발이 허공을 짓밟았다.
투명 비탈길을 밟고 올라갔다는 게 아니다. 진짜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밟으며 올라서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탈 스크롤을 발견했을 때도 비슷한 증상을 보였었기에 나는 그러려니 하고 넘겼지만, 파르나리는 그게 안 되는 모양이었다. 얼굴에 당혹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미네르바의 뒷모습이 오목한 공간 안쪽으로 사라졌다. 파르르 떨리는 동공이 그 뒤를 쳐다보고 있었다.
“파르나리 씨.”
“……응.”
여전히 충격에서 못 벗어났는지, 대답이 제법 늦었다.
“조수로 들어가시자마자 죄송한 일이지만, 당분간은 미네르바 님을 만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스키엔티아 님 못 만나? 왜?”
“저 안에 있는 게 예전부터 미네르바 님이 계속 염원하시던 물건이라서요. 그걸 연구하느라요.”
“음……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돼? 백년? 이백년?”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길어봐야 한 달 남짓이지 않을까요.”
파르나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달 너무 짧아. 예전부터 계속 염원하던 거라고 했어. 아무리 못해도 오십 년은 있어야 해.”
“…….”
나이로 따지면 네 자릿수를 넘어 다섯 자릿수도 바라볼 드래곤이라서 그런지, 시간 관념이 우리와는 아주 많이 다른 듯했다.
저래서 사실상 대학원생이나 마찬가지인 미네르바의 조수 노릇 300년을 태연히 받아들인 게 아닐까 싶었다.
여러모로 알쏭달쏭한 얼굴인 파르나리를 뒤로 하고, 아직도 내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닉스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시선을 느낀 닉스가 얼굴을 빼꼼 들어올렸다. 음침한 미소가 돌아왔다.
“헤헤, 왜 그러세요?”
“부탁 하나만 하려고. 나중에 흑마법 좀 가르쳐줄 수 있을까?”
그 머리 위에 의문이 떠올랐다.
“흑마법이라면 이미 가르쳐드렸는데요?”
“재는 재로 말고, 다른 것도. 공격형이든 방어형이든 상관 없이 네가 가르칠 수 있는 종류는 전부 다 배우고 싶은데. 왜? 안 돼?”
“아니요, 못 가르쳐드릴 건 전혀 없고…… 오히려 환영이긴 한데…… 헤헤.”
소심하게 웃은 닉스가 흘끗 내 눈치를 살폈다.
“저번에 흑마법은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하셨으니까요. 아, 탓하려는 건 진짜 절대로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그때랑은 상황이 좀 바뀌었거든. 이제부터는 흑마법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배워두려는 거야.”
이런 반응인 것으로 미루어보아, 아무래도 닉스는 미네르바처럼 내 마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는 사실을 감지하진 못하는 듯했다.
“헤헤. 알았어요.”
닉스는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이여댔다. 나는 그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헤헤거리는 웃음과 함께 얼굴이 다시 품에 파묻혔다.
왠지 어디선가 고롱고롱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아아……!”
깊은 환희로 들어찬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파르나리는 깜짝 놀랐는지 몸을 움츠렸다가, 그게 미네르바의 목소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방금, 스키엔티아 님?”
“그분 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예전에도 한번 겪어본 적 있었기에 태연히 대답한 나와는 달리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한 파르나리의 생각을 깨부수듯, 미네르바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전체적으로 저번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황홀경에 빠져버린 눈, 헤 벌어진 입, 움찔거리는 몸, 스크롤을 소중히 끌어안은 팔.
그걸 본 파르나리는 제자리에 쩌적 굳어버렸다.
“스키엔티아 님…… 왜 저래?”
“일상적인 모습입니다. 받아들이세요.”
“일상적이야? 저게? 인간, 이상해…….”
졸지에 인간 자체가 이상하다는 확신을 가져버린 파르나리를 달래주었다. 솔직히 내가 봐도 고대의 스크롤 찾은 마법사들은 이상한 게 맞아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미네르바는 흐느적거리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미러 스크롤이라는 이름처럼, 손에 들린 스크롤의 표면에 주변의 모습이 그대로 비쳤다.
“미네르바 님.”
끄덕, 미네르바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파르나리 씨랑 먼저 마탑으로 돌아가 계세요. 저는 닉스랑 같이 할 일이 있어서 여기 잠시 남겠습니다.”
“…….”
끄덕.
“얼마 안 걸릴 겁니다. 혹시 누가 저 어디갔냐고 물으면 그렇게 대답해주시면 됩니다.”
“…….”
끄덕.
“그리고, 스크롤 해독이 끝나면 저한테 마법도 좀 가르쳐주셨으면 하는데요.”
“……?”
끄덕?
미네르바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잠시 멈칫 하더니, 은백색 동공에 서서히 생기가 돌아왔다.
“아이야, 방금 뭐라고……?”
“나중에 마법 좀 가르쳐달라고요. 이왕 마력이 생겼으니 제대로 써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잠시 멍해져 있던 미네르바가,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두려무나, 아이야.”
이게 제정신이 돌아온다고? 하면서 내가 속으로 놀라는 사이, 인간과 드래곤은 던전을 빠져나갔다. 우리 둘만 남게되자 닉스가 슬그머니 떨어졌다.
미네르바가 사라져서 그런 듯했다.
“헤헤, 그러면 시작해도…….”
“그 전에 하나만 물어보고.”
마법을 배우겠다는 이유로 굳이 닉스랑 같이 여기에 남은 제일 큰 이유. 그걸 질문할 시간이었다.
“성국의 신한테 직접 들었어. 닉스 너, 다른 세계에서 여기로 넘어왔다며.”
“…….”
헤헤거리며 사람 좋게 웃던 입꼬리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갔다. 검은색 동공이 칙칙하게 가라앉았다.
“어떻게 넘어왔는지는 안 물을게. 여신이 어련히 알아서 하셨겠지.”
“…….”
“내가 묻고싶은 건 하나야. 네가 왔다는 그 세계, 내 기억에도 있는 것 같거든. 대충 짐작이 가.”
닉스 본인의 입으로 지네에 관해서 언급했으니 반쯤 확신하는 중이었지만, 처음에는 브닼 3라고 하려다가 혹시나 싶어 두루뭉술하게 표현했다.
“그 세계에서 불사 지네가 깃든 인간을 모두 진혼하고 세계의 끝을 결정지었던 사람, 누구야?”
다른 말로, 브닼 3의 주인공이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 이후로 계속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분명 제작사는 브닼 1~3과 브닼 4가 완전히 다른 세계관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서는 마치 동일한 신인 태양과 달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처럼 나왔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래선 안 됐다.
“…….”
한동안 빛이 완전히 꺼져버린 눈으로 나를 응시하던 닉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 앞에 있잖아.”
“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