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33)
r 233 – 닉스
“네가 말한 그 사람, 내 앞에 있다고.”
무척이나 덤덤한 목소리였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당혹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금 닉스의 앞에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건 나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내가 뭘 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는데.”
더듭더듬 답했다. 닉스는 내가 당연히 이러리라고 예상했다는 듯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걱정 마.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머리도 복잡할 거고. 내 말이 이해가 안 가기도 할 거고. 이대로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을 테고. 이해하는 쪽이 비정상이지.”
말투가 180도 달라져 있었다. 평소에 대화할 때처럼 ‘키히힛’하는 괴상한 웃음 소리를 흘리지도 않고, 음침한 미소를 지어대는 일도 없었다.
내 질문에 대답한 순간부터 반말을 쓰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인격이 바뀐 것만은 분명한데, 그 바뀐 인격마저 평소와는 심각하리만치 다른 모습이었다.
그냥 전부 다 이상했다.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면 지금 상황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테지만…… 당장은 안 되겠네. 유감이야.”
마치 자신은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표현. 그 기억이란 게 뭐냐고 되묻기도 전에, 닉스가 선수를 쳤다.
“넌 그걸 대가로 원래 세계에 돌아갔으니까.”
저 말을 듣자마자 몸에 전율이 일었다.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전신의 털이 바짝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방금 닉스가 말한 ‘원래 세계’라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바보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고 자란 세계.
이 세상을 현실이 아니라 게임으로 플레이하던 세계.
그리고, 이곳에 빙의되기 전 세계를 의미할 테니까.
이 세계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어야 할, 그리고 알아서도 안 됐어야 할 이야기가 닉스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머리가 점점 회전을 멈추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닉스, 너……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데? 그리고,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
닉스는 답을 해주는 대신 칙칙한 검은색 눈동자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시선이 겹쳤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동공이었다. 하다못해 일말의 감정까지도.
“대답해. 너, 정체가 뭐야?”
새까만 흑안이 눈꺼풀 아래로 사라졌다. 마치 명상이라도 하듯 모든 동작이 멈췄다. 저 행동을 방해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떠올랐기에, 잠자코 끝나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꺼풀이 열렸다. 그 아래로 사라졌던 흑안이 다시 나타났다. 눈을 뜬 닉스가 이쪽을 응시했다. 여전히 무감정한 눈이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하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입술 사이로 순순히 대답이 흘러나왔다.
“최후의 불사 지네가 사라진 다음에, 그것이 자리잡고 있던 몸을 수습해 묻어준 사람.”
“……뭐?”
최후의 불사 지네. 그 단어를 듣자마자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3의 4가지 엔딩 중 하나이자, 온갖 이벤트와 트리거가 덕지덕지 붙어 있기에 사실상 진엔딩으로 평가받는 ‘희생’ 엔딩.
브닼 3의 시간대에 이르러 세계 그 자체가 수명을 다해 꺼져가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대륙 곳곳에 뒤틀린 균열이 생겨났다.
불사 지네란 그 뒤틀린 균열을 통해 나타나는 기형적인 생물이었다.
세계의 뒤틀림에서 태어났기에 그 자체만으로 균열을 더 커지게 만들고, 그러면 균열 속에서 더 많은 불사 지네가 나타나는 악순환이 무한히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불사 지네에 기생당하고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주인공이 세계 각지에 퍼져나간 지네를 모두 처치하는 이야기가 브닼 3의 줄거리라고 할 수 있었다.
‘희생’ 엔딩 기준으로, 주인공의 여정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어 오직 하나의 불사 지네만을 남기게 된다.
주인공의 몸에 기생하고 있는 놈이었다.
세계에 뒤틀린 존재가 하나라도 남아있는 이상 새로운 괴물이 나타날 것은 너무나도 자명했기에, 브닼 3의 주인공은 스스로에게 진혼을 사용해 불사 지네를 제거한다.
자살을 택한 것이다.
온갖 이벤트와 트리거를 거치며, 비록 꺼져가는 세계라 할지라도 자신의 한 목숨 바쳐 다른 생명들을 구하겠단 사명을 품게 되었기에 가능했던 행동이었다.
그리고, 영혼이 갈기갈기 찢어진 데다 불사 지네마저 죽어버려 껍데기만 남아버린 주인공의 시체를 수습해준 것이ㅡ
“……영혼, 수호녀?”
‘영혼 수호녀’ 였다.
브닼 3의 극초반부에 주인공과 만나서 엔딩을 맞게 되는 최후반부까지 플레이어와 함께 하던 NPC이자, 플레이어가 레벨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NPC.
“맞아.”
닉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시킨 행동이었다. 브닼 3에 나오던 그 NPC가, 여기 눈앞에 있는 닉스라고?
“어, 떻…… 어떻, 게……?”
“다른 세계에서 여기로 넘어온 한 명이 내 눈앞에 있는데, 두 명째가 없으리란 법도 없잖아.”
무척이나 태연한 대답이었다.
회전을 아예 멈추다시피 한 머리를 억지로 쥐어짜내며 생각을 정리했다. 저 말을 종합해보면, 나는 이미 브닼 3의 세계를 거쳐갔었단 의미가 된다.
그 방법이 뭐가 됐든, 엔딩을 본 이후에는 다시 원래 세계, 즉 브닼 시리즈를 게임처럼 플레이하던 곳으로 돌아간 거고.
‘브닼 3의 주인공이 나라고? 왜?’
하지만 이 가설을 따르자니 모순이 생겨났다.
나는 분명 브닼 3의 주인공이 누군지에 대해 질문했는데, 닉스는 그 주인공이 나라고 말했다. 내가 브닼 3의 주인공에 빙의된 것이라면 나올 수 없는 대답이었다.
엄연히 원본 게임과 원본 주인공이 있지 않은가. 닉스가 내 질문을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답을 내놓은 것이 아닌 이상에야, 내 존재와 원본 주인공의 존재가 서로 충돌하게 되어버린다.
‘……모르겠다.’
조금 차분히 생각해본다면 모순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는데,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차분히 생각하기는커녕 방금 들어온 정보를 받아들이기만도 벅찼다.
내가 ‘이 문장은 거짓이다.’를 입력당한 프로그램처럼 제자리에 굳어버린 사이, 닉스는 또 다른 폭탄 발언을 시작했다.
“너, 능력은 얼마나 올렸어? 마법에 처음 걸렸을 때보다는 한참 올랐을 텐데. 그걸 뭐라고 하더라…… 음…….”
이제는 더 놀랄 힘도 없었기에 나는 얌전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 그래. ‘레벨’이랑 ‘경험치’, ‘스테이터스’라고 불렀지, 아마? 여기 올 때 신님한테 들었는데 하도 오래 안 써먹어서 기억이 좀 희미했어.”
더 놀랄 힘도 없다는 말은 취소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도저히 있어선 안 될 이야기를 하는 닉스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바닥에 주저앉을 뻔 했지만, 이 악물고 버텨냈다.
“너는 그걸 네 스테이터스를 ‘올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틀렸어.”
“……틀렸, 다니?”
“그건 ‘올리는’ 과정이 아니라, ‘되찾는’ 과정이니까.”
일부러 단어마다 힘을 잔뜩 준 채 말해졌기에, 뭐라고 했는지 못 알아듣기가 더 힘들었다.
“……되찾아? 뭐를?”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내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봤자 답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축 늘어진 채로 닉스가 다음에 할 말을 기다렸다.
“이유라면 신님이 알려주셨을 텐데. 만약 네 신체 능력을 극한까지 추락시키는 마법이 없었다면 거대한 드래곤이 널 찾아내서 죽였을 거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너한테 마법을 걸 수밖에 없었다고.”
저 말대로였다.
신은 분명 그렇게 설명했었다. 세계를 먹는 자가 날 죽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힘을 빼앗았다고 말이다. 내 존재가 신의 안배임을 알면서도, 너무 하찮아서 무시하도록.
“추측도 아니고 확신이었잖아. 네가 여기 나타나는 순간 그 드래곤이 찾아와서 널 죽일 거라는 확신.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한 것조차 아니었다고.”
“…….”
“겉으로 보기에는 고작 인간 하나 따위에 불과한데, 왜 신님은 네가 마법에 걸리지 않고 멀쩡했다면 그놈이 찾아올 거라고 확신하셨을까? 네가 대체 어떤 존재이길래?”
모른다. 내가 예전에 뭐였는지, 어떤 존재였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알 리가 없고 알 수도 없다. 그건 아주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었다.
나는 멍하니 내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손. 하지만, 지금은 예전에 무슨 행동을 저질렀을지 모를 손이기도 했다.
“지금 네 몸에 깃든 능력이 그 증거야. 너는 아마 신님이 하사해주셨다고 생각했겠지. 우리한테 마법을 가르쳐달라며 부탁해온 이유도 그래서잖아?”
능력 확인 구슬로 봤을 때 힘과 마력, 신성력이 50씩 올라가 있던 일을 말하는 듯했다.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행동을 본 닉스가 조소를 흘렸다.
“틀렸어. 신님이 도와준 건 맞지만, 그건 네가 원래 지녔던 걸 아주 약간 ‘되찾아준’ 행동에 불과해.”
머리가 기어코 작동을 멈춰버렸다. 충격이 너무 큰 탓이었다.
“너는…… 우웁.”
충격에 빠져 있던 나는, 급작스럽게 들려온 꺼림칙한 소리에 정신을 되찾았다. 닉스가 입을 틀어막은 채 헛구역질을 해대고 있었다.
입을 막은 손가락 사이로 새빨간 피가 왈칵 흘러나왔다.
“괜찮아?!”
황급히 다가갔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닉스가 손으로 입가를 닦았다. 철퍽, 철퍽 하며 붉은 덩어리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피도 아니고 핏덩이를 토한 것이다. 그것도 몇 개씩이나.
“……신님이 나한테 금제를 걸어둔 이유도 이래서야. 너무 많은 진실을 말하면 내 몸이 못 버티니까. 날 보호하기 위해서였지. 쓸데없이 막아둔 건 아니야.”
“그러면 지금은?”
“신님의 말에서 살짝 더 얹었을 뿐이잖아. 그런데도 그 살짝에서 조금 더 나가려고 하니까 바로 이런 꼴이네. 뭐, 그래도 일시적인 현상이야. 입 다물면 다시 괜찮아져.”
속으로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잠깐만. 그때 금제에 놀랐던 건…….”
“당연히 연기지. 새삼스레 뭘 그래? 아, 나 말고 존댓말 인격이 놀란 건 진짜였어. 그건 연기 아니야.”
“…….”
“존댓말 쪽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 다른 인격 있잖아. 걔는 아무것도 몰라. 너도 걔한테 말해줘선 안 되고. 모든 진실은 오롯이 내가 짊어져야 해. 그래서 ‘닉스’가 둘로 나뉜 거니까.”
‘닉스’라는 단어가 상당히 강조된 말이었다.
“너씩이나 되는 존재의 힘을 빼앗는 마법이야. 아무리 여신의 가호가 있더라도 인간 하나가 그 반동을 모두 감당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지. 하지만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했고.”
“그러면 너는…….”
“일종의 방패라고 보면 돼. 본체 쪽의 영혼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는 방패. 영혼의 근원은 저쪽에 있으니까, 저쪽만 멀쩡하면 난 알아서 회복되거든.”
닉스의 손에 흑염이 일어났다. 손목과 입, 바닥에 떨어졌던 핏자국이 검은 불꽃에 휩싸여 말끔해졌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해줄게. 떠들 건 아직 한참 더 남았는데, 슬슬 몸이 위험할 것 같아서.”
“뭔데?”
“불사 지네가 나타난 세계보다 훨씬 더 과거의 세계, 그리고 그 훨씬 더 과거의 세계보다 훨씬 더 과거의 세계에 있던 두 사람은 각각 누굴까? 그리고, 너는 어떻게 불사 지네에 기생당하고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엄청 복잡한데, 수수께끼야?”
“수수께끼는 아니고, 그냥 빙빙 돌려 말한 거야. 직접 말하면 내 몸이 못 버텨. 이렇게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게 최선이라고. 아무튼 잘 생각해 봐.”
그 말과 함께, 닉스가 고개를 푹 꺾었다.
“닉스? 닉스!”
내가 급히 그 어깨를 잡았다. 고개를 쳐든 닉스는, 바로 앞에서 어깨를 흔들어대는 날 보고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왜, 왜 그러세요? 호, 혹시…… 키, 키키키, 키스, 하시려는 거라면…… 저, 아직 마음의 준비가…… 헤헤…….”
존댓말 쪽이었다.
닉스가 당부한 것을 떠올렸다. 존댓말 쪽 인격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고, 나 역시 알려줘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부탁은 충실하게 지켜줘야겠지. 어깨에서 손을 뗐다. 닉스는 여전히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그, 혹시 흑마법은 언제부터 배우실 거예요? 지금 시작할까요?”
음침하게 웃는 닉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머리에 손을 얹었다. 멈칫거림은 짧았다. 평소대로의 소심하고 음침한 웃음이 떠올랐다.
나는 그 머리를 오랫동안 쓰다듬어주었다.
아주 오랫동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