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35)
r 235 – 접근
이 세계에 온 이후로 몇 번이고 느꼈던, 내가 잘못 본 건가 싶은 감정. 설마 그 감정을 속죄의 여신상까지 찾아와서 느끼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나머지 것들도 모조리 뜯어냈다. 푹신푹신한 질감을 가진 이상한 털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제대로 된 모습이 드러났다.
굉장히 매력적인 여체였다. 가슴은 머리와 맞먹을 정도로 컸고, 그 이외의 다른 부위도 흠잡을 데 하나 없었다.
여성의 몸이라면 이 세계에 온 이후로 셀 수 없을 만큼 봐온 나지만, 눈앞의 조각상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완벽 이외의 다른 단어는 떠오르지조차 않을 정도였다.
한낱 조각상마저 이렇게나 무시무시한 미모를 갖추고 있다면, 실제 모습은 대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물론 그런 감정은 아주 잠깐이었다.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몸이 아니라 옷에 눈길을 주었다.
차라리 내가 잘못 봤으리라 믿고 싶은, 조각상의 옷차림에.
‘……교황들 성복도 어쩌면 무척 건전한 게 아니었을까?’
차라리 플로레타와 루나의 성복이 더 건전해보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만큼 어마어마한 노출도.
아니, 노출도를 따지기 전에 먼저 ‘이걸 옷이라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만드는 무언가였다.
목과 쇄골 근처에 동그란 목걸이가 걸렸고, 목걸이에서 가슴골 윗부분에 위치하는 부분엔 하트 모양의 장신구가 추가로 박혔다.
목걸이에서는 두 개의 천조각이 내려왔다. 중간쯤에 X모양의 무늬가 새겨진, 단지 그것뿐인 천조각. 사실 이것 자체로는 적당히 패션으로 취급해 넘길 수도 있었다.
가슴을 가린 옷이 그게 전부가 아니었더라면 말이다.
다른 의복은 전무했다. 옷이라거나, 속옷이라거나, 하다못해 마이크로 비키니같은 끈조차도 없었다. 그냥 목걸이에서 내려온 천이 끝이었다.
심지어 하반신은 더했다. 옆구리에서 아래를 향하는 대각선으로 이상한 끈이 매어졌고, 십자가 모양의 장식이 정확히 자궁이 있는 자리에 위치해 있었으니까.
옆구리를 둘러싼 천이 십자가 모양 장식과 연결돼선, 아랫부분의 천으로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가리는 중이었다.
바지도 입지 않았고, 속옷도 입지 않았고, 하다못해 스타킹조차 입지 않았다. 그저 바람이라도 불면 그대로 속을 드러낼 듯 얇디 얇은 천조각 하나뿐이었다.
‘다 벗고 액세서리만 걸친 건가?’
교황들의 성복을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나는 차마 이걸 옷이라 부를 용기가 없었다. 그냥 장신구에 중요 부위를 가릴 수 있도록 천을 덧댄 물건에 가까웠다.
이걸 대체 어떻게 입고 있지? 하는 의문이 야한 생각보다도 먼저 들게 만드는 옷. 그게 내 감상평이었다.
“……이것도 모드 탓인가?”
살짝 인지부조화가 온 채로 중얼거렸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였다.
여신상은 팔꿈치를 옆구리에 붙인 채, 손을 좌우로 살짝 벌려 누군가를 환영하는 자세로 서 있었다. 몸을 가린 털뭉치 안쪽의 모습을 보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그 모습이 상상 이상으로 충격적이어서 그렇지.
‘잠깐만. 그러면 설마 빛무리 안에 있던 모습이…….’
이게 정말로 성국의 신을 묘사한 조각상이라면 빛무리 속 여신은 이런걸 입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의미가 된다.
차라리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모드로 인해 상식이 개변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기라도 하지, 지금은 그러기도 뭐했다. 날 여기로 데려온 여신이 바깥의 복장을 모를 리가 없으니까.
“…….”
언젠가 질문할 내역에 조용히 한 줄을 더 추가했다. 대체 왜 그런 차림으로 있냐는 질문만큼은 반드시 해야될 것 같았다.
일단 지금은 더 급한 게 있으니 말고, 나중의 언젠가 말이다.
여신상 앞으로 다가갔다. 예전에 교황들이랑 같이 대화를 시도했을 때처럼 무릎이라도 꿇을까 했지만 그만뒀다.
날 대하던 태도를 돌이켜보면, 무릎 하나 안 꿇었다고 대화를 거부하고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여신님. 아마 듣고 계시겠죠.”
그 앞에서 입을 열었다. 내가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 그건 여신에게 직접 답을 듣기 위해서였다.
성국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지금 성국에 발을 들였다간 여신이랑 대화는커녕 나를 떠받들어 모시는 무리에 휩쓸릴 것 같았기에 얌전히 포기했다.
그렇다고 제국에서 빈 곳을 찾아 기도를 하자니, 만에 하나 여신이 직접 나타나기라도 했다간 성국의 입장이 크게 곤란해져서 그건 그거대로 애매한 일이었다.
태양이든 달이든 누구 하나가 성국이 아닌 제국에 나타났다? 그 이후에는 아주 난리도 아닐 거다. 수습하려면 내가 몇 배는 더 바쁘게 뛰어다녀야 하겠지.
그래서 속죄의 여신상 앞으로 온 것이다. 신과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설령 그쪽이 직접 나타난다 한들 당분간은 별 탈 없을 장소니까.
“질문드릴 게 있는데, 대답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물론 조각상은 잠잠했지만, 어차피 부르자마자 대답하리라고는 기대도 안 했다.
“여신님이 다른 세계에 있던 영혼 수호녀, 닉스를 여기로 데려오셨다 했죠. 그런데 닉스가 그러더라고요. 제가 원래는 다른 세계, 그러니까……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3의 주인공이었다고요.”
처음에는 다른 세계라고 돌려 말할까 했는데, 어차피 상관 없을 것 같았다. 여신이 날 여기로 끌고 왔다면 이렇게 말해도 잘 알아들을 거다. 아무렴 여신인데 말이다.
“그 앞의 세계도 그렇고요.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1이랑 2 말입니다.”
계속 생각해봤다. 닉스가 굳이 브닼 1과 2의 주인공을 언급하고 설명하면서 ‘빙빙 돌려 말했다’ 라고 표현했던 이유를.
정말로 만에 하나 정도라고 생각하는데다, 아직 물증은 없고 심증 뿐이지만…… 만약 내가 브닼 3에서만이 아니라 1과 2에서도 주인공의 위치에 있었다면?
닉스가 굳이 그런 말을 한 이유도 납득이 간다. 그 의미심장한 표현들이 모두 맞아떨어질 확률 역시 크게 올라가고 말이다.
“제 말 듣고 계시는 거 다 압니다. 애초에 제 말을 무시하시려 했다면 저한테 이런 짓을 시키지도 않으셨겠죠. 그러니 대답해주세요.”
약간 뜸을 들였다가,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시리즈는 대체 뭡니까? 그리고, 제 잃어버렸다는 기억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
침묵이 이어졌다. 슬그머니 눈을 떴다. 옷 비스무리한 장신구를 걸친 조각상은 여전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조금 더 기다려봤지만 무언가 들려올 낌새는 없었다.
내가 한번 더 재촉해봐야되나 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할 무렵,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졌다. 피부에 저릿한 감각이 밀려들어왔다. 털이 쭈뼛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여신이 직접 왔나 했는데, 아니었다. 명백히 달랐다. 기분이 훨씬 더 나쁘고, 본능적으로 오싹해지는 그런 느낌. 여신이 나타났을 때는 이렇지 않았었다.
“이게 어떻게 된…….”
내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오른팔이 조각상 안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뭐야, 미친?!”
급히 오른팔을 붙잡고 끄집어내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오히려 점점 더 안쪽으로 빨려들어갈 뿐이었다.
온 힘을 다해 버티느라 신발 밑창이 바닥과 마찰하며 불길한 소리를 내기까지 했음에도 버틸 수 있는 것은 겨우 10여 초 정도가 한계였다.
곧이어, 몸 전체가 조각상 안으로 사라졌다.
“…….”
천천히 눈을 떴다. 나는 어느샌가 흙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비강으로 흙 특유의 냄새가 몰려들어왔다.
조각상이 플레이어를 빨아들인단 이야기는 듣도 보도 못했는데 뭐가 어떻게 된 건가 싶었다.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곳곳에 묻은 흙을 털어냈다.
“아.”
몸을 일으키자마자 여기가 어디인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세계를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 하늘의 오른쪽에 떠 있는 태양과 왼쪽에 떠 있는 달. 태양이 떠있는 곳은 낮이고 달이 떠 있는 곳은 밤이었다. 낮과 밤이 공존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쯤되면 여기가 어디인지를 못 알아차리는 쪽이 더 이상했다. 누가 봐도 태양과 달이 있는 장소일 테니까. 그냥 대답만 요구했더니 설마 여기까지 데려올 줄은 몰랐지만.
‘이왕 데려올 거면 좀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주지.’
속으로 투덜거렸다. 팔이 갑자기 빨려들어가기 시작하는데 그걸 차분히 받아들이는 편이 더 이상하다. 누가 됐든 일단 팔 빼내려는 시도부터 했을 거다.
주위는 낮과 밤이 공존하고 태양과 달이 동시에 떠 있는 것을 제외하면 생각보다 평범했다.
낮이 있는 자리에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밤이 있는 자리에는 나무와 풀이 청량한 향을 풍겨댔다. 그 정확히 가운데 위치한 것이 별로 크지 않은 2층집이었다.
소박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성국의 여신이라는 지위에 걸맞은 집이냐면 그것 역시 절대로 아니다.
“……나 불러놓고 어디 간 거야?”
그런데 정작 날 여기까지 데려온 당사자가 안 보였다. 불러놓고 어디로 간 건가 싶었다.
“설마 집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ㅡ 응?”
문득 느껴지는 위화감에 고개를 들었다. 딱히 소리가 들렸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뭔가 불길했다. 위화감의 정체는 손쉽게 드러났다.
태양과 달이 휘청이고 있었다.
“저게 대체 무슨…….”
내가 그 사실에 경악하기도 잠시, 그 사이에서 누군가 아래로 내려왔다.
정확히는 추락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누구도 땅에 급속도로 내리꽂히며 흙먼지를 일으키고 자기 몸으로 크레이터를 만드는 행위를 ‘착지’라 표현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콰아아앙! 하는 굉음이 들렸다. 급히 추락한 자리로 달려가서, 자욱하게 일어난 흙먼지를 헤치고 크레이터 안으로 뛰어들었다.
크레이터의 중심에는 조각상과 똑같은 모습을 한 여자가 누워 있었다. 색이 입혀졌단 차이점이 있긴 해도 세세한 부분은 모두 같았다.
머리카락은 검은색이었고, 목걸이에서 뻗은 천조각과 십자가에서 뻗은 천조각이 각각 유두와 음부를 가렸다. 천의 절반은 황금색, 나머지 절반은 은색이었다.
이런 정신없는 상황임에도 용케 중요 부위를 노출시키지 않았다. 역시 신이 입는 장신구는 달라도 뭔가 다르다 이건가.
“으으…….”
여자가 낮은 신음을 흘렸다. 그 외모처럼 어마어마한 미색을 갖춘 목소리였다.
어느정도였냐면, 중요 부위만을 아슬아슬하게 가린 차림임에도 불구하고 그 미모에 압도당해서 야한 생각이나 음심이 전혀 들지 않을만큼.
조심스레 몸을 받쳐주었다. 아마 여신이리라 추측되는 여자가 다시 한번 옅은 신음을 흘리더니, 살며시 눈을 떴다. 오른쪽 동공은 황금색이었지만, 왼쪽 동공은 은색이었다.
내가 그 이질적인 조합에 놀리는 와중에, 날 확인한 여자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신이 여길 어떻게……?”
“어떻게 왔냐니. 여신님이 제 기도 듣고 부르셨던 거 아니십니까?”
“아, 아니에요. 전 지금 그럴 시간이ㅡ 윽?!”
여신이 얼굴을 찡그리며 또다시 신음을 흘렸다. 일단 내 말에 긍정하는 걸로 미루어보아 여신이 맞긴 한 것 같았다. 태양과 달,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어떻게 된 상황이고요?”
“그놈이에요.”
“네?”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의문은 곧 풀렸다.
태양과 달이랑 비슷한, 어쩌면 그것보다 더 큰 크기의 붉은색 눈동자가 떠올라서였다.
“또 저거야?!”
익숙한 붉은색의 세로 동공을 보자마자 몸에 힘이 들어갔다. 한번만 나타나도 속이 철렁할 지경이건만, 이번으로 벌써 세 번째였다. 슬슬 노이로제까지 걸릴 것 같았다.
“시간은 제가 벌어볼 테니 도망치ㅡ”
여신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몸이 붉은색 기운으로 감싸이더니 바닥을 모조리 갈아버릴 기세로 어디론가를 향해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바닥이 갈아엎어지는 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나는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버린 주변을 잠시 둘러보다가, 하늘에 떠 있는 붉은색 동공에 눈길을 주었다.
“이번에는 뭔데? 또 나한테 그 이상한 권유나 하려고 불렀냐?”
내가 그렇게 외치자 하늘에 드래곤의 얼굴이 드러났다. 검은색과 남색이 혼합된 비늘, 그리고 무시무시하게 큰 크기도 여전했다. 그 입이 서서히 벌어지더니 심상치 않은 기운이 뭉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권유가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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