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36)
r 236 – 가장 밝은 어둠 – 1
주둥아리를 크게 벌리고, 아래를 향해 칠흑색의 브레스를 내뿜으려 준비하는 자세. 어딘가에서 본 적 있는 모습이었다.
그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반사적으로 머리가 회전했다. 게임에서는 일단 브레스를 내뿜는 패턴이 나온다면 죽어라 달려서 공격 범위를 벗어나야 했었다.
‘……똑같이는 안 되겠지.’
하지만, 여기서는 똑같은 방법이 안 통할 게 뻔했다. 그때는 세계를 먹는 자의 크기가 거대하긴 했어도 상식적인 수준 내의 거대함이었으니까 말이다.
지금은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한쪽 눈동자의 크기가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랑 비슷할 정도인데, 이대로 달려봤자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내가 고민하는 동안에도 놈의 아가리가 점점 더 크게 벌어지면서 검은색 기운 역시 점차 강해졌다. 그러다가, 이내 칠흑색의 브레스가 내쏘아졌다.
어둠 그 자체라고 부르기에도 손색이 없을 브레스가 저 앞에서부터 땅을 짓무르고 녹여버리며 빠르게 접근했다. 꽃과 풀, 나무들이 실시간으로 녹아내렸다.
좌우 범위는 아무리 낮게 잡아도 수십 미터였다. 도망칠 공간 따윈 없으니, 다른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시험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용언을 연습했을 때처럼 심호흡을 하고 자세를 잡았다. 만약 이 방법이 먹히지 않는다면, 나 역시 저기서 녹아내리고 있는 자연이랑 똑같은 신세가 될 거다.
배에 힘을 주고,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흩어져라ㅡ!!!!!!”
파르나리에게 배웠던 5가지 용언 중 하나, ‘흩뜨리다’였다. 게임에서는 단순히 놈의 브레스를 막는 정도에 그쳤다면, 여기서는 아예 궤를 달리하는 기술.
용언이 검은색의 브레스와 충돌하자, 칠흑색 기운이 말 그대로 ‘흩어졌다’. 브레스라는 개념을 구성하는 존재 하나하나가 모조리 붕괴된 것이다.
구심점을 잃어버린 파괴의 힘은 얼마 버티지 못했다. 검게 물들어 녹아내리던 풍경이 확장을 멈췄다.
‘됐다.’
통했다.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용언에 개념이 담기는 순간 힘의 차이는 무의미해진다. 내가 ‘흩어지라’는 명령을 내린 이상, 같은 용언이 아니고서야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들은 명령을 따를 뿐이다.
나는 자리에 버티고 서서 하늘에 뜬 붉은 눈을 올려다보았다. 내 행동에 놀랐는지 세로 동공이 잠시 수축하는가 싶더니, 제 크기를 줄이기 시작했다.
태양과도 맞먹을 수준이던 붉은 구체가 상식적인 선까지 줄어들고, 곧이어 목 아래의 모습도 형체를 갖췄다. 익숙한 크기였으며, 익숙한 모습이었다.
ㅡ마지막 발악이라 생각했거늘…… 아니었나…….
사념이 휘몰아쳤다. 머리가 터지지 않도록 간신히 버티는 것마저 고역이던 그때와는 다르게, 지금은 아무런 부담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힘을 약간이나마 되찾아서든지 용언을 배워서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여신이 바닥을 갈아엎으며 밀려났던 자리를 흘끔 쳐다보았다. 대체 어디까지 밀려난건지 아직도 돌아올 기색이 없었다.
ㅡ익숙한 기운…… 이제 알겠다…… 세계를 지켰던 인간…… 그것이 기억을 봉인하였으나…… 풀리고 있다…….
“익숙한 기운이면 내가 누군지도 알겠네. 말해봐. 내가 누군데?”
이건 날 위한 질문이기도 했다. 원래 대답을 해줬어야 할 여신이 어디론가로 사라져버린 와중에, 저놈이 대답을 알고 있는 듯 하니 말이다.
ㅡ최초의 불사자…… 사명을 이어받은 자…… 저주를 억누른 자…….
“…….”
ㅡ모두…… 네가 거쳐온 길이다…….
세계를 먹는 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듣자마자 소름이 오싹 끼쳤다. 저 3개 모두가, 차례대로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시리즈의 주인공을 지칭하는 단어였기 때문이었다.
세계에서 최초로 나타난 불사자인 브닼 1의 주인공.
브닼 1의 세계에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눈을 뜬 브닼 2의 주인공.
불사 지네를 본인의 의지로 억누르고 이성을 유지한 채 활동한 브닼 3의 주인공.
그렇기에 차례대로 최초의 불사자, 사명을 이어받은 자, 저주를 억누른 자인 것이다. 저놈은 그 3명을 내 과거라 말하고 있으니, 내가 직접 그 일을 겪었다는 뜻이 된다.
단순히 추측에 불과했던 퍼즐들이 차곡차곡 맞춰지고 있었다.
‘지금이야 기억을 잃어버려서 이 모양일테고.’
ㅡ허나…… 무의미하다…….
“무의미해? 뭐가?”
ㅡ이미 늦었으니.
그리고, 놈의 눈동자가 붉게 빛남과 동시에 무언가 들이닥쳤다.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했지만, 무언가 동작을 하기엔 너무 늦어 있었다.
“되돌ㅡ”
용언을 미처 사용하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들이닥쳤다. 나는 바닥에 등부터 처박혀 근처의 지반을 모조리 갈아버리며 뒤로 한참을 밀려났다.
갈아엎어진 흙더미가 몸 위로 쏟아져내리며 제복을 더럽혔다. 머리가 상황을 인식하자 전신에 저릿한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특히 등 쪽이 훨씬 더 아팠다.
“크윽……?!”
헛숨을 들이켰다. 여태까지는 이런 강렬한 고통을 느껴볼 일 자체가 거의 없었던지라 미치도록 아팠다. 너무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나는 그렇게 뒤로 한참을 날아갔고, 커다란 나무를 두 개나 더 박살낸 다음에야 세 번째 나무를 반쯤 부숴버리며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머리 위로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콜록.”
입에서 마른 기침이 새어나왔다. 피를 토하고 그러지는 않는 걸 보아하니 죽을 정도는 아닌 듯했다.
전신을 살폈다. 칠흑색이었던 제복은 풀과 흙, 나뭇잎으로 엉망진창에 몸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나마 뼈와 살은 멀쩡해보이니 다행이었다.
‘방금…… 뭐였지? 뭔가 공격을 당했는데.’
분명 세계를 먹는 자가 날 이렇게 만든 건 맞다. 하지만, 동공이 잠시 빛나기만 했을 뿐 그 이외의 동작은 보이지도 않았었다.
용언을 절반이나마 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방금의 공격을 반응하지 못해 고스란히 처맞았더라면 필시 산산조각이 나버렸으리라.
비틀거리며 손으로 바닥을 짚고선 몸을 일으켰다. 세계를 먹는 자는 아직도 저만치에 그대로 서 있었다. 크기가 크기인지라 참 빌어먹게도 잘 보였다.
고통이 그럭저럭 가라앉자 이성적인 생각이 가능해졌다. 여신을 뒤로 밀어버렸던 그것. 그 공격을 나도 처맞은 게 분명했다.
‘……나 아직 살아있나?’
바닥을 딛고 일어서자 꼭 팔꿈치를 얻어맞은 듯이 짜릿한 전류가 흘렀다. 일단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괜찮나요? 당신?”
몸을 추스르고 있으려니, 위에서 여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바로 옆에 내려앉았다. 착지의 충격으로 머리만한 가슴이 크게 출렁였다.
아마 이 세계의 여신이 분명할, 칠흑색의 머리카락에 황금색과 은색의 오드아이를 지닌 여자.
무척이나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건만, 유두와 음부를 가린 천은 떨어질 기색이 없었다. 접착제로 붙여놓기라도 했나 싶을 정도였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걸 보면 고정되어 있지는 않은 듯한데, 그렇게 보일듯 말듯 하면서도 절대로 보여주지는 않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죄송해요. 보호 방벽을 걸어드리려 했는데 너무 늦어버려서…… 그대로 돌아가셨으면 어쩌나 했어요.”
여신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누구인지 알고 계신 것 같으니 저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그쪽은 성국의 신 맞으십니까?”
“일단은요. 지금은 저놈한테 가진 걸 거의 다 뺏겨버려서 신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무언가밖에는 안 되지만요.”
민망한 건 그쪽 옷차림 같은데요. 나는 치밀어오르려는 말을 간신히 삼켰다.
“그렇다면 하나만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그쪽, 태양입니까 달입니까?”
“……네?”
여신이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 그대로 제자리에 굳었다.
“예전부터 계속 궁금했는데 잘 됐네요. 성국의 신은 태양과 달 이렇게 두 명이라고 알고 있는데, 대체 한 명은 어디로 사라졌길래 저걸 혼자서 상대하고 계십니까? 저번에도 물어봤었는데 어물쩡 넘어가셨었죠. 이번에는 꼭 들어야겠습니다.”
“…….”
이런 내 질문에, 여신은 난처하다는 듯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침울하다기보다는 대답하기가 살짝 미묘한 쪽에 가까운 표정.
표정을 보아하니 일단 세계를 먹는 자에게 죽었다거나 한 건 아니다. 만약 그랬었다면 도리어 내가 사과를 해야 됐을 테니까.
“그, 그게…….”
여신은 계속해서 우물쭈물했다. 이쯤되니 슬슬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번에 태양인지 달인지를 물었을 때도 대답 못 했고, 두 명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던 적은 한 번도 없고, 옷에는 황금색과 은색이 반씩 섞여 있는데다 눈동자마저 오드아이라면…….
설마.
“……설마 처음부터 1명이었던 건가요?”
끄덕.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이건 또 이거대로 충격이었다. 여태껏 확고하게 2명으로 알고 있었건만, 사실은 태양과 달이 하나였다고?
“아니, 그럼 왜 2명인 것처럼 행동하셨죠?”
“여기에는 바다보다 더 깊은 사정이…….”
“대답.”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 그것 때문이에요.”
“……그놈 말입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이랑 여신이 1인 2역을 하는 거랑 뭔 상관이 있길래.
“그게 괴상한 피조물로 뒤틀리면서 유일신이라는 개념까지 같이 오염시켜버려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놈 곁에 있던 심연 기억나시죠? 전부 다 제가 유일신이었던 시절에 받은 신앙이 변질된 결과물이에요.”
“어…….”
내가 굳어있는 사이, 여신이 다급히 몸을 돌렸다.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드릴게요.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에요!”
우리 앞에 황금색 빛무리로 이루어진 장벽이 나타나자마자 브레스가 충돌했다. 장벽으로 가로막힌 양쪽 옆이 사정없이 녹아내리며 불길한 검은색 연기를 피워올렸다.
“으윽……!”
여신이 이를 악물고 눈살을 찌푸렸다. 입술 사이로 침음이 흘러나왔다. 저 브레스를 막아세우는 것조차 힘에 벅찬 모습이었다. 장벽 곳곳에 금이 가고, 손은 부들부들 떨려댔다.
더 이상은 못 버틸 듯 했기에, 힘을 담아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흩어져라ㅡ!!!!!!”
용언의 범위에 포함된 장벽과 브레스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여신이 놀란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당신, 언제부터 용언을……? 드디어 힘이 돌아오신 건가요?”
“힘이 돌아왔다니, 무슨 소리시죠? 그쪽이 저한테 돌려준 것 아니었습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놀라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둘 모두 ‘얘가 대체 뭔 소리지?’ 하는 눈이었다. 우리 둘 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 제가요? 당신한테요?”
“지옥에서 헤어질 때 저 도와준다며요? 그래서 저놈이랑 싸울 힘은 남겨두고 여유분으로 제 각성 도와주신 줄 알았는데요?”
“무, 물론 도와준다고 한 건 맞지만! 저 녀석이 날뛰는 걸 막는데만도 벅차서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도저히 없었다고요! 일부러 안해준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못해준 거예요!”
‘아니, 여신이 돌려줬다며?’
분명 닉스도 그렇게 말했었다. 여신이 개입한 건 맞지만, 힘을 올려준 게 아니라 돌려준 거라고 말이다. 이러면 닉스가 틀린 게 되는 건가.
서로 핀트가 엇나가버린 상황에 우리 모두 어리둥절해 있다가, 여신이 먼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어떻게 됐는지 알 것 같아요! 당신의 몸이 머리보다 먼저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는 뜻이에요!”
“……좋은 겁니까, 그거?”
“옛날이었다면 저것한테 빌미를 주는 행동이 되었을테니 안 좋았겠지만…… 지금은 이미 늦었으니 최대한 빨리 힘을 되찾는 쪽으로 가야죠.”
쿵! 거대한 몸이 내려앉는 소리에 대화가 끊겼다. 검은색과 남색이 섞인 몸뚱아리가 근처까지 다가왔다. 그 비늘 곳곳에는 황금색과 은색의 신성력이 묻어 있었다.
친절하게도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려준 것이 아니라, 여신이 나름대로 방해 공작을 펼치며 시간을 번 것인 듯했다.
ㅡ마지막 발악…… 하찮다…… 실패했다…….
“주둥아리 닥치세요. 저희는 아직 지지 않았습니다.”
ㅡ패배하지 않았다……?
순간, 놈의 감정이 표출되며 그 여파만으로 지축이 뒤흔들렸다.
한 아름은 훨씬 더 되어보이는 거목들이 세계를 먹는 자의 반대 방향으로 우르르 넘어지고, 꽃과 풀이 모조리 갈아엎어지며 황량한 흙바닥이 드러났다.
ㅡ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저 인간을 이용하려 하는가…… 추잡하고…… 역겹다…….
“…….”
여신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날 이용한다니, 뭔 소린가 싶었다. 일단 저런 반응인 걸 보면 여신도 무언가 찔리는 게 있긴 하다는 소리인데.
ㅡ인간…… 저것의 마지막 희망…… 저것이 네게 어떤 행동을 하였는지…… 알고 있는가…….
“알고 있어. 날 다른 세계로 보냈다며. 그것도 세 번이나. 아니지. 3번 모두 시간대만 다르지 같은 세상이었으니 한 세계에 세 번을 보냈다는 쪽이 더 정확하겠네.”
ㅡ그 세계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 알고 있는가…….
“글쎄. 그것까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기억을 전부 다 잃어버렸거든.”
그러자, 사념 속으로 비웃음에 가까운 감정이 섞여들어왔다.
ㅡ셀 수 없는 고통을 겪었고…… 셀 수 없는 죽음을 겪었다…… 저것은 너를 망가뜨렸다…… 인간…… 기억이 지워진 이유…… 무엇일지 생각하라…….
사실, 어느정도까진 예상했다.
설정상으로 한 번의 사망조차 없이 엔딩까지 도달한 브닼 4의 주인공과는 달리, 브닼 1부터 3까지의 주인공들은 불사자인지라 정말 죽어라 죽고 또 죽었으니 말이다.
내가 그 일을 똑같이 겪은 거라면, 나도 세는 게 불가능할만큼 죽었겠지. 딱히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브닼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몇 번을 죽는다 해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부활하는 것은, 플레이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캐릭터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은유니까.
나 역시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엔딩까지 봤겠지.
ㅡ너를 망가뜨린 원인이…… 너를 위하는 척 하는 것…… 크나큰 위선이다…….
“…….”
여신이 고개를 떨구기 직전, 내가 선수를 쳤다.
“그래서?”
내 대답이 예상과 전혀 달랐던 듯, 동그랗게 떠진 오드아이가 날 향했다.
그리고 예상과 달랐던 건 세로 동공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ㅡ이해하지 못하였나…… 인간…….
“아니. 이해라면 차고 넘치도록 했는데. 여신님이 날 여기로 데려왔고, 덕분에 죽어라 굴렀다는 거잖아. 못 알아듣는 게 이상하지.”
날개 잃은 악몽을 빼들었다. 이게 저놈한테 상처를 입힐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는데, 옆에 여신까지 있으니 어떻게든 될 거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 의지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할테고.
“그런데, 내가 죽어라 구른 거랑 그쪽이 내 생각을 멋대로 단정짓는 거랑 뭔 상관이야?”
칼 끝을 놈에게 겨누었다. 붉은색의 세로 동공이 살짝 수축했다.
“내가 여신님을 용서하든, 아니면 화를 내든. 그건 내가 정할 일이라고. 너 같은 도마뱀 새끼가 멋대로 정할 일이 아니라. 알아들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자, 여신이 몸을 흠칫 떨었다.
“여신님.”
“……네.”
“뭐, 이것저것 말씀드릴 것들이 많긴 한데. 나머지는 전부 끝난 뒤에 듣겠습니다. 대신 이것 하나는 지금 말해주세요. 대답 듣는 거 두 번이나 실패하고 진짜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거든요.”
“……알겠어요. 무엇인가요?”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시리즈는 대체 뭐였습니까?”
“그것은…….”
한참이나 입술을 달싹이던 여신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께서 저의 세계에서 겪으셨던 일을, 당신 세계의 개념으로 제작한 것입니다.”
“아, 그러니까 제가 게임 속 세계로 빙의된 게 아니라, 제가 빙의됐던 세계를 여신님께서 게임으로 제작하신거다, 이 소리네요. 게임 주인공의 행적이 곧 제가 했던 행동이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래, 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
내가 게임 속으로 빙의당해서 플레이어 캐릭터 대신 주인공 행세를 했던 게 아니었다. 내가 겪었던 일들을 게임으로 만든 게 브닼 시리즈였던 것이다.
이제서야 닉스가 했던 말의 진의를 알 것 같았다. 브닼 3의 주인공이 누구였냐는 질문에 나를 가리켰던 것도, 브닼 3 자체가 내 행적을 다룬 게임이었기에 그런 말을 한 거겠지.
퍼즐이 모두 풀리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최근에는 이래저래 심경 복잡할 일밖에 없었는데, 오랜만에 머리가 좀 맑개 개이는 기분이었다.
“대체 왜 그걸 게임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그건 나중 일로 미루겠습니다.”
검을 겨누었다. 이런 내 태도가 심기에 굉장히 거슬렸던 듯 세계를 먹는 자가 으르렁거렸다. 가뜩이나 아수라장이던 주변 풍경이 다시 한번 뒤집어졌다.
“지금은 저걸 쫓아내는 일이 더 급선무일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