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38)
r 238 – 가장 밝은 어둠 – 3
사용한 내가 다 어리둥절해질 위력의 공격이었으나, 정작 그걸 직격으로 뒤집어 쓴 당사자는 아주 멀쩡히 움직이고 있었다. 피해를 입기는커녕 비늘조차 그을리지 않았다.
‘방금 그거면 어지간한 놈들은 다 한방에 끝냈을 것 같은데.’
브닼 시리즈에서는 무기에 인챈트 된 속성을 검기처럼 날리는 기술이 없었던지라 확신은 못하겠지만, 일단 실제 위력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비슷하리란 사실은 분명했다.
그런데, 저놈은 그걸 정통으로 얻어맞고도 무반응이었다. 혹시 게임에서 나왔던 그대로 특정 기믹을 해제하기 전까지는 무적인 건가 싶었다.
진짜라면 조금 많이 곤란해지는데.
내가 머릿속으로 방법을 계산하는 사이, 놈이 날개를 펄럭이며 달려들었다. 단순히 날아다니는 것만으로 땅이 쩍쩍 갈라지며 주위의 공간까지 같이 뒤틀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공격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움직이고 있는데 주변이 찌그러진다고?
내가 어이가 없든 말든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커다란 몸뚱아리가 지척까지 다가왔다. 그 주둥아리가 한껏 벌어졌다.
플레이어의 정면으로 날아들어 입을 벌리는 동작. 어딘가에서 본 적 있었다. 게임 속에 등장하던 패턴 그대로였으니까.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저놈은 왜 게임이랑 똑같은 모습이지?’
문득 떠오른 의문 탓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머리를 대신해 몸이 먼저 움직였다. 게임에서 그렇게 했듯이 대각선으로 훌쩍 굴러 빠져나갔다.
차이점이 있다면 놈의 몸이 게임과 비교해서 터무니 없이 커다랗다는 것이고, 내가 굴러서 이동한 거리 역시 게임과는 비교조차 안 될 만큼 길었다는 것이다.
내가 왼쪽 앞발을 향해 굴러 빠져나가자 거구의 몸이 고스란히 따라왔다. 상체가 비틀리고, 목이 비틀리며 주둥아리가 날 향했다. 크기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였다.
오른발이 휘둘러졌다. 상식적으로 내가 저 공격을 막아내기란 불가능했다. 저놈의 몸집과 내 몸집 사이에는 모기와 인간 수준의 격차가 있으니까.
하지만, 상식이란 단어는 이미 수없이 부정당한 명제였다. 땅에 검을 박아넣고 손잡이를 내쪽으로 비스듬하게 꺾었다. 검의 날 부분이 세계를 먹는 자의 앞발에 먼저 닿도록.
그러면서 다리에 힘을 주었다.
ㅡ콰드드드득!
놈의 앞발이 근처 지반을 갈아엎으며 날개 잃은 악몽과 충돌했다. 닿는 그 순간에 터져나갔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날개 잃은 악몽은 가해지는 압력을 버텨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팔에 저릿한 느낌이 몰려오긴 했지만, 뒤로는 단 한 발자국도 밀려나지 않았다.
대신 내 뒤의 지반이 터져나갔다. 등 뒤에서 온갖 것들이 무너지고 파괴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잠잠해지자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흘끔 뒤쪽을 살폈다. 거목이 뿌리째 뽑히고 엎어지며 개판이 나긴 했어도 숲이라는 본연의 형상은 나름 유지하고 있던 장소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골짜기가 되어 있었다.
골짜기의 시작을 알리는 절벽은 내 발뒤꿈치와 맞닿은 상태였다. 한 발자국, 아니, 반 발자국이라도 더 밀려났었다간 그 즉시 밑바닥조차 보이지 않는 무저갱으로 떨어질 뻔 했다.
‘이런 스케일은 감당 안 되는데.’
다리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겨우 팔 한번 휘두른 걸로 저만한 규모의 골짜기가 생겨나고, 몸을 움직이는 걸로 공간이 뒤흔들리는 전투라니. 이런 쪽은 내 취향이랑 거리가 멀었다.
‘아직 멀었나?’
여신이 있던 장소를 쳐다보았다. 뭘 하고 있는지, 제자리에 앉아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무언가를 말하는 중인 듯했다.
내가 몸에 힘을 주며 서서히 놈의 앞발을 밀어내기 시작할 무렵, 여신이 눈을 떴다. 황금색과 은색의 동공 속에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아랫배 앞에 매달린, 십자가 비스무리한 악세서리와 똑같은 문양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저런 거 없었는데. 대체 뭐지.
그 기묘한 모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여신이 눈을 깜빡이자마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으니까.
“당신! 저도 도울게요!”
눈동자를 원래대로 되돌린 여신은 그렇게 말하며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눈동자 색과 장신구의 색처럼 오른손이 황금색에 왼손이 은색이었다.
빛이 퍼져나가자 세계가 수복되기 시작했다. 조각조각 흩어졌던 공간이 모여들고, 끝을 알 수 없던 골짜기가 다시 땅으로 채워졌다.
여신의 손짓에 세계를 먹는 자의 몸이 신성력으로 뒤덮였다. 놈이 짜증스레 몸을 움직이는 틈을 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내가 빠져나간 즉시 빛무리가 와장창 깨져나갔다.
그 자리를 곧장 또다른 신성력이 채웠다. 처음부터 단번에 박살날 것을 전제로 하고 사용한 모양이었다. 피해는 못 입히겠지만 시간을 벌기엔 충분해보였다.
“괜찮으신가요? 혹시 다치신 곳은요?”
여신이 잠시 숨을 고르고 있던 내 옆으로 다가왔다. 가슴과 음부를 가린 천은 여전히 바람에 살랑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중요 부위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목적에 충실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이쯤되니 옷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괜찮습니다. 아직은요. 저놈이랑 공격 한 번씩 주고받은 게 전부니까요.”
“다행이에요. 지금부터는 저도 도울게요.”
그 얼굴에 진심으로 안도하는 감정이 떠올랐다. 나는 세계를 먹는 자가 부숴도 부숴도 달라붙는 신성력에 포효를 터뜨리며 짜증을 내는 사이, 방금 봤던 광경을 질문했다.
“물어볼 게 있는데, 방금은 뭘 하고 계셨던 겁니까? 눈에 이상한 문양이 떠올라 있으시던데. 그…… 아랫배 앞에 있는 거랑 똑같은 문양 말입니다.”
“아, 제 자궁 앞의 이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콜록, 나는 필터라곤 조금도 없는 여신의 말에 속기침을 했다. 여기서 저런 식으로 말을 해버리네. 혹시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결여되어 있나.
“네. 아무튼 그거 맞습니다.”
“저를 신앙하는 인간에게 계시를 내렸어요.”
“계시요?”
여신은 대답을 하려다 말고 은색 장막을 펼쳐 세계를 먹는 자에게 내려보냈다. 놈은 칠흑색의 브레스를 내뿜어 장막을 단숨에 녹여버렸다.
분명 교황들의 신성력을 따위로 취급할 수준의 힘이건만, 세계를 먹는 자 앞에서는 한낱 물에 젖은 휴지만도 못한 신세에 불과했다.
“힘을 거의 다 잃어버렸기에 제약이 크다고는 하나, 단편적인 미래를 보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 미래를 위해 계시를 내린 거예요.”
미래를 위해서라니, 교황들이 따로 해야 할 일이라도 있는 건가.
“그러면 제가 지금 저놈을 죽일 수 있는지 어떤지도 아시겠네요?”
“그것은…….”
여신이 말을 흐림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포효가 몰아닥쳤다. 기껏 제 모습을 되찾았던 세계가 다시 한 번 조각조각 흩어져 박살났다.
근처의 땅은 여신과 내가 발을 붙이고 있는 한 줌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나머지 모든 것은, 끝없이 펼쳐진 무저갱으로 추락했다.
세계를 먹는 자가 짜증스레 이빨을 맞부딪혔다. 놈은 명백히 화나 있었다. 붉은색의 세로 동공에 살벌한 기운이 맴돌았다.
“피하세요. 당신의 움직임은 제가 보조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놈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달려들었다. 무심결에 발을 내딛자 신발 밑창이 자연스레 텅 빈 허공을 짓밟았다.
공중에 떠 있다는 사실로 놀랄 틈 따위는 없었다. 곧바로 세계를 먹는 자의 공격이 들어왔다. 내가 훌쩍 뛰어 물러난 빈자리를 주둥아리가 힘차게 씹었다.
꼬리 근처에서 연신 황금빛과 은빛이 번쩍였으나, 놈은 집요하게 오직 나만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여신에게는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모양새였다.
아마 날 먼저 죽이고 여신을 조롱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내가 먼저 죽어야 여신이 훨씬 더 깊이 절망할 테니까.
거기에 더해 여신의 공격이 실질적인 피해를 입히지 못해서도 있을 테고. 아무리 목적이 있다 한들, 자기가 상처를 입는 상황에서까지 날 먼저 노리긴 힘들 거다.
ㅡ저것에 대해서는 저도 알지 못해요. 그리고 저것과 연관된 모든 것도요. 그건 이미 제 손을 떠난 일이니까요. 그러니, 저희가 저놈을 죽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하지만, 저는 당신과 연관된 하나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칠흑색의 브레스가 날아들었다. 용언을 통해 흩어지라는 명령을 내렸다. 삼라만상을 녹이며 다가오던 브레스가 힘없이 흩어졌다.
ㅡ당신은, 지상으로 추락할 겁니다.
“스텔라, 태양으로부터 계시가 내려왔습니다.”
“셀레네, 달로부터 계시가 내려왔습니다.”
긴급하게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을 부른 교황들이 각자의 신으로부터 계시가 당도하였음을 알렸다. 스텔라가 그 말을 듣고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계시이길래요?”
“저희 교황 뿐만이 아니라 그대들까지 포함된 계시입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셀레네가 되물었다.
“저희까지 포함되셨다…… 하셨습니까?”
“예, 이단심문관. 그렇습니다.”
“벌써 계시를 해석하셨어요? 제가 느끼기로는 신께서 응답해주신지 얼마 안 되셨는데.”
“이번에는 무척 짧고 간결하여 해석이 쉬웠습니다. 말씀드릴테니 집중하여 들으시지요.”
스텔라와 셀레네가 짧게 성호를 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 역시 신앙심으로는 교황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할 사람들이다. 그 표정이 대번에 진지해졌다.
플로레타가 손에 든 성유물을 살짝 움직였다. 황금색 빛무리가 네 사람을 감쌌다. 빛무리가 걷혔을 땐, 넷 모두 황량한 언덕에 도착해 있었다.
언젠가 이곳에 신성한 빛이 내려온다는 전설을 담은 장소였다.
“여기로 가라는 계시였습니다.”
“이 장소로…… 말입니까?”
셀레네가 의문이 가득 담긴 얼굴을 했으나, 그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네 사람이 동시에 표정을 굳혔다.
“먼저 와 있었느냐.”
“이런 상황인데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지 않겠니?”
그 시간, 카이킬리아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고선 마탑의 꼭대기에 올라섰다. 그 자리에는 진작 도착해선 하늘을 쳐다보는 미네르바가 있었다.
“너답지 않은 행동이로구나, 미네르바. 고대의 스크롤을 찾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일진대, 그토록 자주 바깥을 나다닌다는 말이냐. 여는 너의 모습을 한 달 정도 볼 수 없으리라 각오하였거늘.”
“꼭 나만 그런 것은 아니잖니. 카이킬리아 너도 그 아이가 방에 틀어박혔다니 그 앞까지 직접 행차했지 않았을까?”
“……부정은 하지 않겠노라.”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하늘을 쳐다보았다. 기분이 굉장히 많이 이상했다. 그것도 무척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황금색 동공이 잠시 아래를 향했다. 은빛 여명 기사단과, 이제는 완전히 해체되어 칠흑 성야 기사단에 흡수된 기사들마저 나란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어디 그 뿐이던가. 황궁의 메이드는 물론 기사가 아니라 경비까지도 그랬다.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시선이 모조리 하늘을 향했다.
카이킬리아가 그 이질적인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이, 미네르바는 마법을 사용해 근처의 도시들을 살폈다. 그쪽 역시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제국의 모든 시민이 불길한 기운에 몸서리치고 한데 모여 웅성이며, 본능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시야 공유를 종료한 미네르바가 드물게 심각한 표정을 했다.
“이건 또 터무니없는 일이구나. 모든 도시가 다 이 상태란다.”
“황궁에 한정된 것이 아니란 말이더냐.”
“간단히 백여 곳 정도만 살펴봤는데, 모두 그렇구나. 성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국 전체가 저 이상한 기운의 영향권 안이라는 건 확실하다고 봐야 하겠지.”
“……이해하였다.”
카이킬리아가 이 다음에 내릴 명령을 생각할 무렵이었다.
하늘이 말 그대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싸울 준비를 갖췄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땅이나 바다도 아니고 하늘이 흔들리다니?
“미네르바.”
“말하려무나, 아이야.”
“지금 당장 황제의 권한으로 대피령을 내리고, 전 기사단에 전투 태세를 갖추라 일러라. 마탑의 마법사들 역시 모두 동원해야 할 것이다. 필시 보통 일은 아닐 터이니.”
“알았단다.”
미네르바가 마법진을 펼치는 동안, 카이킬리아는 오른손에 성검을 소환했다. 지금까지의 투박한 빛무리 모습과는 전혀 다른, 고급스러운 예식용 검처럼 바뀐 성검.
성검의 소유자인 카이킬리아조차 여태껏 이런 힘을 끌어낼 수 있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델타는 이걸 보고도 태연했다.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애초에 성검이 이렇게 변한 것조차 그 남자를 제대로 의식하게 된 이후의 일이었으니, 카이킬리아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진정 패배하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미네르바에게 언젠가 자신을 뛰어넘는 남자가 있다면 열과 성을 다해 모시리라는 말을 했던 생각도.
“…….”
카이킬리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언젠가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자신은 아직 그 남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옛날의 본인이었다면 ‘언젠가’라는 가정조차 하지 않았으리란 사실을, 지금의 카이킬리아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키히힛, 결국 시작됐네.”
“시작돼? 뭐가?”
자신의 방에서 창문을 열고 하늘을 쳐다보던 닉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래에서는 바니걸 복장을 입은 기사들이 단체로 우왕좌왕하는 중이었다.
“넌 몰라도 돼.”
“이익! 자꾸 그럴래?”
닉스가 양 볼을 쭈우욱 잡아당겼다. 그렇게 시작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한참을 이어졌고, 결국 패배한 건 닉스였다. 닉스는 빨갛게 변한 볼을 부여잡고 울상을 했다.
“아파…….”
“나도 아파. 키히힛, 바보 아니야? 네가 나인데 그렇게 자기 볼을 막 잡아당기게?”
곧바로 2차전이 벌어졌다.
닉스와 닉스의 싸움으로 인해 닉스의 몸 곳곳이 빨갛게 물들어갈 무렵, 하늘의 울림이 한층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하늘을 붙잡고 흔들어대는 게 아닌가 싶을만큼 커다란 진동이었다. 둘은 자연스레 행동을 멈췄고, 부어오른 피부를 마법으로 가라앉혔다.
“……대체 뭘까?”
“글쎄. 누군가 싸우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
“싸워? 누가? 누구랑?”
닉스는 싸움의 여파로 인해 하늘이 진동한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당장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인물을 넷이나 알고 있었으니까.
황제, 영원의 마법사, 그리고 성국의 교황들. 하나같이 탈인간의 영역에 도달한 사람들이었다.
그 목록의 인물들이 죄다 저걸 보면서 같이 놀라고 있다는 걸 알면 생각이 좀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이상 현상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지금은 그랬다.
왜 하필 이 근처에서 싸울까, 하는 의문만이 남을 뿐. 물론 여기서 말하는 근처란 싸우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서 여파만 느껴질만큼의 거리였다.
“키힛, 내가 그걸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었을까?”
닉스가 음침하게 웃었다. 닉스는 뺨을 잔뜩 부풀렸다.
그래, 닉스는 결과를 모른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거라곤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삼켜야 할 기도 뿐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