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39)
r 239 – 가장 밝은 어둠 – 4
바로 옆의 공간을 발톱 달린 거대한 앞발이 스쳐지나갔다. 스쳐지나간 앞발은 그 여파만으로 내 발밑의 지각을 싸그리 찢어버렸다. 조각난 대지가 끝없는 구덩이 속으로 추락했다.
내 왼손에 검은색의 벼락이 맺히고, 팔의 궤적을 따라 전방으로 흩뿌려졌다. 한 발 늦게 천둥이 울렸다.
어둠을 머금은 벼락이 세계를 먹는 자의 머리에 그대로 직격했으나, 놈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로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급히 뒤로 도약해 공격 범위를 벗어났다.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를 주둥아리가 크게 씹어먹었다. 오른팔이 수평으로 휘둘러지고, 왼팔이 수직으로 내리쳐진 다음, 오른쪽으로 비틀린 머리에서 브레스가 터져나왔다.
나는 놈이 브레스를 내뿜는 동안 그 머리 위로 추락해 날개 잃은 악몽을 그대로 때려박았다.
ㅡ까앙!
하지만, 떨어지는 힘까지 더해 내려찍은 공격조차도 놈의 비늘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무슨 강철 벽에 쇠막대를 휘두른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양 손에 찌릿한 전류가 통했다.
놈이 짜증스레 몸을 비틀었다. 터져나온 충격파에 휩쓸리지 않으려 거리를 벌렸다.
‘뭐 이딴 미친…… 공격이 통하긴 하나?’
저려오는 손을 풀며 그렇게 생각했다. 맷집이 단단한 게 아니라, 그냥 공격 자체가 아예 먹히지 않는 것 같았다. 놈의 비늘은 여전히 흠집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몸집의 차이까지 너무 컸다. 게임에서도 세계를 먹는 자가 플레이어보다 한참 더 거대하긴 했는데,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땐 크긴 했어도 최소한 생명체를 상대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아예 산을 통째로 상대하는 느낌이었다. 체감 자체가 달랐다.
어디를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그 방법 자체는 알고 있다. 놈의 동작이 게임과 똑같았으니까. 그것도 닼라 모드를 통해 한참 강화시켜놓은 게임과.
여신의 말로는, 자기가 세계를 먹는 자와 싸울 때 저놈이 보여주었던 행동 패턴을 기록해놓은 게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의 세계를 먹는 자 보스전이라던가.
특히 닼라 모드 자체가 여신이 만든 모드라고 했었다. 그 수많은 적 강화 모드를 아무런 잡음 없이 하나로 합치는 게 인간 세상에서 과연 가능할 것 같냐면서.
시간이 촉박해서 자세하게는 못 들었는데, 그런 걸 보면 여신도 저걸 죽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구나 싶었다.
‘패턴이 보이는 거랑은 별개로…….’
알긴 아는데, 피한 다음에 공격하는 일이 문제였다. 체격 차이가 어마어마해진 탓에 게임과 똑같은 방식으로 패턴을 피하면 다음 공격이 들어오기 전까지 거리를 좁힐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빈틈을 이용해 때려봤자 씨알도 안 먹히고 말이다.
분명 공격을 더 많이 성공시킨 건 이쪽인데다 처음의 기습을 제외하면 한 대도 안 맞았건만, 뭐가 전혀 안 변했다.
‘그나마 여신이 도와줘서 비등비등한 거겠지. 하늘 못 날아다녔으면 답도 없을 뻔 했네.’
이제는 아예 공격을 포기한 채 내 움직임을 보조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여신을 흘끗 살폈다. 세계를 먹는 자에게 온갖 공격을 다 때려박긴 했으나 죄다 철저히 무시당한 결과였다.
자기가 무슨 짓을 해도 피해가 안 들어가는데 놈의 관심을 끌 수도 없으니까, 전략을 바꾸어 나를 강화시키고 움직임을 보조하는 일에 전력을 쏟아붓는 것이다.
하지만 나라고 딱히 뾰족한 수가 있지는 않았다.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간간이 기회를 잡아 씨알도 안 먹힐 공격을 투닥일 뿐이었다.
‘……입 안이라도 공격해야 하나?’
나는 놈이 브레스를 내뿜으려 입을 벌릴 때마다 잠깐씩 보였던, 선홍빛에 가까운 입 안의 모습을 떠올렸다. 비늘이 아무리 단단하다 해도 그 안쪽까지 단단하지는 않을 거다.
‘한번 해보자.’
제법 좋은 생각 같았다. 날개 잃은 악몽에 다시 흑염을 발랐다. 검신에 새까만 불꽃이 타오르며 아지랑이를 만들어냈다.
‘잠깐만. 혹시 여신이 먼저 시도해봤는데 안 통했던 거면 어쩌지?’
몸을 움직이려다 멈칫 했다. 만약 여신이 입 안 공격을 먼저 시도해봤는데 안 먹혔다면? 내가 하려는 행동은 완벽하게 쓸모없는 짓이 된다.
고민은 짧았다. 머리 위로 유성우가 쏟아지기 시작해서였다. 말이 좋아 유성우지, 별 하나하나가 무슨 메테오나 다를 바 없는 크기였다. 나는 급히 몸을 움직여 자리를 떴다.
자리에 주저앉아 팔자 좋게 생각할 시간 따윈 없었다. 일단 시도해 보고 안 되면 그때 다른 방법을 강구하면 된다. 중간 과정에서 한 대도 안 맞으면 최소한 손해는 아니었다.
이럴 때 텔레파시나 사념 전달법을 배워뒀더라면 쓸모가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크게 소리쳐서 여신한테 물어볼까 했지만, 그랬다간 여신도 듣고 저놈도 같이 들을 거 같아서 포기했다.
‘시전 속도가 빠르면서도 위력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이…….’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며 떨어지는 유성 하나를 박살내버린 후, 생각을 결정짓고 놈의 브레스 패턴을 유도할 위치로 가서 섰다.
세계를 먹는 자가 곧장 달려들었다. 놈이 더 가까이 붙기를 기다렸다가 달려오는 방향과 수직으로 꺾어 옆을 향해 빠져나갔다.
처음부터 입을 벌리고 돌진하는 패턴이었다면 시간이 절약됐겠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내가 옆으로 빠져나가자 놈은 나를 따라 움직이는 대신 위로 높이 솟구쳤다. 그리고 양 손에 칠흑색의 구체를 만들었다. 게임에서 본 적 있는 패턴이었다.
하늘을 향해 솟구쳤던 세계를 먹는 자가,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낙하하는 동시에 브레스를 내뿜었다. 세상이 바닷물에 던져진 화장지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구체가 땅에 내리꽂혔다. 칠흑색 에너지가 지평선까지 뻗쳤다. 게임에서는 그나마 상식적인 범위였는데, 지금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공격을 피하려 하늘로 날아오르자 놈의 머리도 따라서 꺾였다. 마치 알파벳 V처럼, 내려꽂히다 말고 다시 솟구친 세계를 먹는 자가 허공에 떠 있는 나를 향해 브레스를 내뿜었다.
“흩어져라ㅡ!!!!!!”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결과가 눈앞에 펼쳐졌다. 놈이 입을 다물었다. 아직이다. 나는 세계를 먹는 자에게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거리가 눈 깜짝할 새에 좁혀졌다.
싸우는 장소가 보스룸이 아닌 다른 공간인데다, 바닥 대신 허공에 발을 딛고 싸운다는 걸 제외하면 해야 할 일은 똑같다.
왼손에 흑염으로 이루어진 화염구를 만들어 냅다 집어던졌다. 놈은 그걸 정면으로 들이받아 부숴버렸다. 그 틈을 타 방향을 꺾어 오른발 앞까지 굴러들어갔다.
세계를 먹는 자의 머리가 자신의 오른발 쪽을 바라보았다. 마치 날 씹어먹기라도 하려는 듯 주둥아리를 활작 벌렸다. 여기까지는 내가 유도한대로 됐다.
비늘과 이빨로 감춰졌던 내부가 잠깐이나마 노출된 틈을 타, 날개 잃은 악몽을ㅡ
ㅡ콰직!
“커흑?!”
복부를 무언가 커다란 것이 관통했다. 한 발 늦게, 어마어마한 고통이 밀어닥쳤다.
쿨럭, 하고 기침을 하자 입에서 시뻘건 덩어리가 왈칵 튀어나왔다. 피 맛이 느껴졌다. 비강에 소름끼치는 비린내가 퍼지고, 목구멍으로부터 액체가 역류했다.
전신의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내렸다.
길고 뾰족한 가시 같은 게 내 복부를 뚫고 빠져나와 있었다. 어째 모습이 익숙했다.
“이…… 건…….”
날개 잃은 악몽의 검신이었다.
눈꺼풀이 자꾸 감기려는 탓에 시야가 좀 많이 침침하긴 했지만, 못 알아볼 수가 없는 외형이다. 눈동자를 돌렸다. 날개 잃은 악몽은 오른손에 그대로 들린 채였다.
힘겹게 목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내 복부를 꿰뚫고 있는 날개 잃은 악몽은 허공으로부터 솟아나와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말이다.
계속 휘청이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유지하며, 배를 꿰뚫은 것에 손을 올렸다. 표면이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었다. 입술에서 흘러내린 시뻘건 액체가 그 위에 떨어져 옆으로 새어나갔다.
칼날은 소름끼치게 두꺼웠다. 칼날이 아니라 그냥 어디서 H빔을 하나 뽑아다가 쑤셔박은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수직으로는 장골 근처부터 명치 바로 아래까지 꿰뚫렸고, 수평으로는 손가락 마디 하나 두께도 안 되어보이게 남은 옆구리만이 상체와 하체를 아슬아슬하게 이어줄 뿐이었으니까.
ㅡ인간…… 어리석고…… 하등하다…….
머릿속으로 사념이 흘러들어왔다. 명백히 날 조롱하는 말투였다. 대꾸할 힘조차 없는 나머지 몸을 축 늘어뜨리며 듣기만 했다.
설령 힘이 남아있었다 한들, 입 안을 가득 메운 피 탓에 어차피 제대로 말하지도 못했겠지만.
ㅡ거짓된 신이…… 알려주었을 것이다…… 나의 행동…… 나의 생각…… 너는 그것을 따랐다…….
‘……자기 행동이 기록당했다는 걸, 알고 있었나?’
저 말인 즉, 여태껏 게임 속의 패턴대로 움직였던 건 내 생각을 유도한 결과물이라는 의미다. 그런 짓거리를 벌인 이유는 당연히 날 놀려먹기 위해서일테고.
지금 흘러들어오는 사념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쿨럭, 또다시 기침이 새어나왔다. 피맛을 너무 많이 느껴서 혀가 마비되기라도 했는지, 비린내가 점점 옅어졌다. 아니면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죽어가고 있는 건가?
“당신! 당시이이이인!”
저 멀리서, 여신이 울부짖으며 절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