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4)
은빛 여명 기사단의 최근 분위기는 뒤숭숭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에 세 번 있는 식사 시간에도 최소한의 이야기만 이루어졌고, 예전과 같은 활기나 시끌벅적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원인은 물론 최근에 들어온 신입 때문이었다.
클라우디아마저 토벌에 실패하고 중상을 입은 채로 돌아오게 만든 마물을, 신입이 자기 혼자 토벌하겠답시고 훌쩍 떠나버렸기에 그 안위를 걱정하느라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버린 것이다.
언제나 없는 활기와 분위기도 만들어내는 수준이었던 리제가 제일 먼저 입을 다물었고, 에리카도 언니의 영향을 받았는지 가뜩이나 침착하던 성격이 더 조용해졌다.
아이리스는 가끔 머리를 감싸쥐고 스스로를 자책하기까지 했다. 성에 있는 총 인원들 넷 중에 셋이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전체적인 분위기가 개판일 수 밖에 없었다.
딱 한명, 클라우디아만 빼고 말이다.
클라우디아는 평소와 딱히 다를 것 없이 지냈다. 그 신입과 친분도 없었고, 제대로 알지도 못했으니까.
혹여나 돌아오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마음은 당연히 있었지만, 그건 단순히 신입을 걱정하는 기사단장의 마음에 불과했다.
다른 셋은, 특히 리제는 그 남자를 단순한 신입으로 여기는 게 아닌 듯 했으니.
무엇보다 자기는 안 가겠다 했는데 남들이 가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니고, 남들은 다 반대하는걸 자기 스스로 가겠다고 끝까지 고집을 부려서 어거지로 허락 받아내고 떠나지 않았는가.
객기를 부려 혼자 뛰쳐나갔다가 토벌에 실패하고 그대로 죽어버린다면, 그냥 거기까지인 남자다. 어설픈 객기의 말로가 어떤지는 이미 지겹도록 보아왔었다.
만약 천재일우의 확률로 성공하고 돌아온다면 또 몰라.
이런 생각 덕분에 클라우디아만큼은 평소대로였으나, 하루종일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던지라 분위기 쇄신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클라우디아, 신입이 살아돌아올 수 있다고 보나?”
“또 그 질문이야?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는 알아?”
아이리스가 침통한 목소리로 던진 질문에 클라우디아는 질색을 했다.
“……지금의 나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 다른 두 명도 마찬가지고. 여기서 침착하게 있을 수 있는 사람은 클라우디아 너밖에 없지 않은가.”
클라우디아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체 여기서 뭔 짓을 하고 갔길래 고작 며칠만에 주변 사람들이 자기 하나 없다고 좌불안석이 될 정도로 존재감이 깊어진건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도 확신은 없는데, 아마 그 신입이 내 대검보다 훨씬 더 강한 파괴력을 낼 수 있으면 토벌하고 살아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무조건 죽는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군.”
“말은 이렇게 했지만, 혹시 알아? 아이리스 네 말대로 그 엄청난 실력을 이용해서 내가 생각 못한 활로를 찾아낼지. 나야 뭐 대검이 씨도 안 먹히는거에 당황하다가 죽을뻔 했던거고.”
죽다 살아난 사람 치고는 굉장히 태평한 목소리였다.
물론 사람은 잘 죽지 않는다. 생채기 따위는 몇 분이면 사라지고, 전신의 뼈가 부러지고 팔다리가 뒤틀리고 피부가 찢기는 중상을 입어도 목숨만 붙어있다면 결국 회복할 수 있다.
심지어는 팔이나 다리가 잘려나가도 포션과 마법을 이용한 치료가 제때 들어간다면 다시 붙이는것까지 가능하니, 사람의 목숨은 굉장히 질긴 축에 속했다.
클라우디아는 그 중에서도 더 특출난 편이었지만.
사실 굳이 병실에 더 누워있지 않고 지금 당장 퇴원하는 것도 가능했는데, 에리카가 치료 끝나기 전까지는 병실 밖으로 나갈 생각도 하지 말랬으니 얌전히 틀어박혀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처를 붕대로만 대충 치료한 채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면서도 이틀씩이나 버텨준 육체가 여기서 회복을 못했을 리가 있나.
“그렇게까지 자신있는 얼굴로 떠났는데 믿어보자고. 걔도 뭔가 생각해놓은 구석이 있었겠지. 그리고, 오히려 그러는게 신입한테 더 실례야. 너도 알잖아? 너희들이 하는 행동은 신입을 절대 못 믿을 놈으로 여기는 행동이나 마찬가지인거.”
“…….”
“아이리스 너도 사람 표정은 대충 읽을 수 있으니 진작 눈치챘을테지만, 걔 얼굴에 망설임이나 공포 같은게 있었어?”
아이리스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니었다. 절대로 아니었다. 공포나 망설임은커녕, 살짝 들떠있기까지 했었다. 대체 왜 들떠있었는지 도저히 짐작조차 가질 않았다.
이해할 수가 없는 사내였다. 대체 무엇을 자신하고 있길래, 얼마나 자신하고 있길래 클라우디아마저 가볍게 패퇴시킨 마물을 혼자 잡으러 가면서 들뜬 기분을 느낀단 말인가?
“나는 아직도 신입을 그곳에 혼자 보냈어야 했는지 확신이 없다. 거리를 두고 따라간다는 방법도 있지 않았었나.”
“혹시라도 따라올 생각은 하지도 말랬었잖아. 들키면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신입이 우리 기척을 감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나, 클라우디아?”
“아, 그것도 그렇긴 하네. 걔 저주 받아서 레벨이 1이랬지?”
“내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너도 그 신입에 대해서는 들었지 않나.”
클라우디아가 넌더리를 쳤다.
“그래. 지겹도록 들었지. 신입이 마녀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도, 감옥에서 조잡한 강철 검 하나만 들고 마물을 혼자 때려잡았다는 것도, 리제와 입단 시험을 치렀을 때 뭘 보여줬는지도 전부 다. 이제는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야.”
“하다못해 기사단의 일반 기사만큼의 능력치만 됐었더라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을거다. 클라우디아 너도 마녀의 저주를 받았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고 있을텐데.”
“알지. 아는데, 아이리스.”
침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연분홍색의 눈동자가 아이리스를 향했다.
“걔가 선택한 길이야. 그 마물을 잡고 돌아온다면 우리가 반드시 재능을 꽃피워줘야 할 인재인거고, 못 돌아온다면 자기 주제도 모르고 객기를 부렸던 병신인거지. 그건 우리가 간섭할 일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 돼. 만약 그 신입이 자기 주제도 모르고 나서서 죽을뻔 했는데, 우리가 도와줘서 살아났다 치자고. 그러면 성격이 고쳐질 것 같아? 전혀 아닐걸?”
“…….”
“그리고, 나는 오히려 아이리스 너를 더 이해 못하겠는데. 대체 그 신입을 그렇게 과보호하는 이유가 뭐야? 인간 도살자도 검 하나 들고 때려잡았다며, 리제 패링도 간파했다며, 입단 시험도 통과했다며? 문제될 거 하나도 없잖아. 나는 딱히 기대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걱정도 안 해. 그렇게 자신있게 떠났으니 한 번 믿어보는거지.”
“……그런가.”
“그런가? 가 아니라 그래. 그렇다고. 네가 하는 건 쓸데없는 걱정이야. 참 나, 그 신입이 대체 뭘 했길래 리제 걔도 그렇고 아이리스 너도 그렇고 죄다 걱정을 못 해서 안달이야? 뭐 여자를 홀리는 페로몬이라도 있나?”
얼굴이랑 몸이 제법 반반하기는 하던데. 클라우디아는 그런 생각을 하며 쭈욱 기지개를 켰다. 침대에만 있자니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빠지다니! 그런 게 아니다! 나는 그저 신입이 걱정돼서ㅡ”
“신입!!!!!!”
순간, 아이리스의 말을 끊고 창 밖에서 쩌렁쩌렁한 리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리스와 클라우디아는 서로를 바라본 채로 잠시 멍하니 굳었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분위기가 왜 이래, 리제? 내가 뭐 잘못했어?”
“잘못? 엄청 크게 했지. 너 없는동안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었는지 알아?”
토벌 증거인 말대가리와 놈이 쓰던 거대한 창을 가지고 돌아오자, 뭔가 전체적으로 굉장히 어정쩡한 분위기가 나를 맞이해주었다. 순간적으로 내가 돌아오자마자 뭘 잘못했나 싶었다.
“아니,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런 약속이 어디 지키려 한다고 지켜지는건줄 알아?!”
리제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긴, 창작물에서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보통 사망 플래그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난 지켰잖아?”
물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내가 당당하게 말하자 리제가 황당함이 가득 담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맞는 말이었기에 반박할 수단이 없는 듯 했다.
“정말이지…….”
리제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활짝 웃으며 나를 정면에서 꼭 끌어안았다. 물컹한 가슴이 내 복부와 맞닿았다. 순간 제멋대로 솟아오르려는 하반신을 간신히 제어해냈다.
내가 민소매 한 장 너머로 가슴과 맞닿은 감촉에 하반신을 반응시키지 않으려 애쓰고 있으려니, 에리카가 미소를 지으며 옆으로 다가왔다.
“신입 씨.”
“아, 에리카.”
“정말이지, 신입 씨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네요.”
어딘가 질렸다는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표정에는 안도감이 같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얼굴에 떠오른 미소에도 부정적인 감정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토벌 성공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입단 일주일만에 대형 마물의 개인 토벌이라니, 신기록이네요. 아마 앞으로도 절대 깨지지 않을 기록일테고요.”
“고마워. 하긴, 내가 세운 기록 깨려면 어지간한 재능으로는 안 되겠지.”
“어지간이요? 너무 겸손한 단어 선택 아닌가요?”
나와 에리카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바닥에 내려놓은 거대한 말대가리를 진지하게 살펴보던 아이리스와 클라우디아가 몸을 일으켰다.
“……정말이로군.”
“세상에, 이걸 진짜로 잡았네.”
아이리스는 말대가리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고, 클라우디아는 헛웃음을 흘렸다.
“내가 말했잖아. 잡아오겠다고. 이제 좀 믿음이 가?”
“정말이지…… 너는…….”
멍한 얼굴로 날 쳐다보며 말문이 막혀버린 아이리스를 대신해, 클라우디아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 어깨에 팔을 척 걸쳤다. 키가 거의 비슷했기에 굉장히 자연스러운 자세가 나왔다.
“축하해, 신입. 진짜 엄청난데? 나도 이 한마디는 꼭 해야겠어. 아이리스는 너 같은 애를 어디서 업어온거야?”
“감사합니다, 클라우디아 기사단장님.”
“술 잘 마셔?”
“네?”
축하한다는 말에 감사하다는 대답을 하자마자 밑도끝도 없이 술을 잘 마시냐는 질문이 들어왔다. 어리둥절해진 내가 되물었다.
클라우디아는 호탕하게 웃으며 어깨를 두른 팔에 힘을 주었다. 아직 포옹을 풀지도 않았는데 나와 어깨동무를 한 것이 신경에 거슬렸는지, 날 끌어안은 리제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술 잘 마시냐고. 원래 이럴때는 한 잔 걸치면서 축하해야지. 거부권은 없으니까 나중에 얌전히 따라와. 오늘은 특별히 내가 따라줄게.”
“어…… 일단 오늘은 안되겠는데요.”
“오늘은 안 된다고? 왜?”
중성적인 얼굴이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변했다. 나는 내 허리춤에 단단히 고정된, 악마가 깃든 책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흘끗 내려다보았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어서요.”
할 일이 아직 남았다는 내 말에, 기사단장들 네 명이 동시에 의문을 표했다.
“할 일이 남아있다니, 그게 뭔 소리야?”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곧 알게 되실겁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