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40)
r 240 – 가장 밝은 어둠 – 5
여신이 날 향해 황금히 날아올랐지만, 나한테 닿기도 전에 이상한 붉은 기운으로 뒤덮여 저지당했다.
“다, 당신…… 안 돼, 안 돼…….”
흐릿한 눈으로 쳐다보니, 여신은 울기 직전이었다. 표정은 있는 대로 일그러졌고, 눈가에는 굵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우리 둘의 몸이 놈의 코앞으로 날아갔다. 여신과 나를 한데 모아둔 세계를 먹는 자가 조롱이 가득 담긴 사념을 전달했다.
ㅡ거짓된 신…… 이것이 네가 믿었던 희망이다…… 모두 너의 탓이자…… 너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말해보아라…… 믿었던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심정을…….
“저 때문에…… 흐윽…… 저 때문에…….”
마침내, 그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한 방울은 두 방울이 되고, 두 방울은 세 방울이 되었으며, 이내 끊기지 않는 폭포가 되어 뺨을 따라 턱까지 이어졌다.
ㅡ인간…… 너 역시 그렇다…… 나를……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더냐…….
“그 입…… 쿨럭, 좀, 닥쳐 봐…… 기분 끝장나게 더러우니까…….”
차라리 처음부터 전력으로 꽝 붙어서 졌다면 또 모르겠는데, 힘을 숨겨서 우릴 갖고 놀다가 이겨먹었으니 기분이 두 배로 더러웠다. 쌍욕이라도 퍼붓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다.
ㅡ나약하고…… 한심하다…….
그 뒤로도 놈은 여신과 나를 계속해서 깎아내렸다. 처음부터 우리가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는 둥, 진작 구원을 받아들이고 포기하지 그랬냐는 둥.
여신은 멘탈이 완전히 박살난 모습인 데다 나는 반쯤 죽어가고 있으니, 우리를 처리하는 일은 저놈 입장에선 숨쉬기보다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놈은 그러지 않았다. 날 과다출혈로 죽이기라도 하려는 건지, 연이은 승리로 차곡차곡 쌓아온 오만과 자만을 폭발시키며 우리를 실컷 조롱했다.
손에서 점점 힘이 빠졌다. 아직까지는 간신히나마 무기를 놓치지 않고 있긴 한데, 그게 전부였다. 무기를 휘두르기는커녕 팔을 들어올리지도 못할 것 같았다.
ㅡ거짓된 신…… 똑똑히 보아라…….
마침내 말을 끝냈는지, 놈이 날 끌어당겼다.
ㅡ희망이라 믿었던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을…….
여신은 고개를 푹 숙인 모습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린 모습이었다. 움직이려 해봤자 몸을 휘감은 붉은 기운 때문에 그럴 수도 없겠지만.
고개가 억지로 돌려졌다. 바로 앞에 붉은색의 세로 동공이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더 역겨웠다.
ㅡ너의 기억…… 모두 흡수하고…… 영혼을 구원하겠다…… 비록 진실을 섬기지는 않았으나…… 구원은 모두에게 평등할지어니…….
“구원은 지랄…….”
나는 다 꺼져가는 목소리로 욕을 내뱉었다. 이런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한 세계를 먹는 자가 동공을 밝게 빛냈다. 몸 전체가 붉은색 기운으로 뒤덮였다.
“흡, 커헉?!”
첫인상은, 그냥 닥치고 미친 듯이 아팠다는 것이다.
단순히 고통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작열통이 세상의 모든 고통 중에서 가장 아프다던데, 꼭 그것처럼 세포 하나하나를 꼼꼼히 불태워버리는 기분이었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고통스럽지 않은 부위가 없었다. 빈사 상태로 늘어졌던 몸이 과다출혈조차 잊고 발버둥치기 시작했으나, 그렇다고 구속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곧이어, 머리에서 무언가 ‘읽히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게 뭔지 알 것 같았다.
내 기억들이었다.
“끄으, 윽……!”
내가 지독한 고통으로 인해 발버둥을 치든 말든, 놈은 내 기억을 무차별적으로 빨아들였다. 머릿속의 모든 것이 엉망진창으로 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몸부림을 이어갔다. 배에 거대한 칼이 꽂힌 채로 격렬하게 움직였다간 상하체가 분리되며 즉사할 수도 있고, 이래봤자 빠져나갈 수도 없으니 무의미한 행동에 불과했다.
하지만, 몸 전체를 뒤덮은 고통이 이성적인 사고를 마비시켰다. 발버둥이라도 치지 않고서는 맨정신으로 견디기가 힘들었다.
“…….”
고통의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내가 의식을 잃어감에 따라 몸부림도 차차 잦아들었다. 전신에 힘이 빠져나갔다.
지금 잠들었다간 영원히 깨지 못하리라 직감했다. 했는데, 머리로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서도 밀려오는 졸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눈꺼풀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머리 한 구석을 막고 있던 것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으며 눈을 감았다.
ㅡ진혼이 무엇을 의미한다 생각하십니까, 저주를 억누른 자여.
‘……이건?’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들어본 기억은 없는데 제법 익숙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였다.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그럴 힘이 나질 않아서, 축 늘어진 채로 듣기만 했다.
ㅡ그것은 단순히 영혼을 부수는 과정이 아닙니다. 훨씬 더 넓은 개념이지요.
ㅡ생각해보십시오. 진혼이 단지 인간의 영혼을 부술 뿐이라면, 왜 불사 지네까지 같이 죽겠습니까? 놈들은 단순히 인간을 숙주로 삼는 흉물에 불과한데요. 숙주가 죽는다면 다른 숙주를 찾아가면 되는 것이죠.
‘……그러게?’
듣고 보니 이상했다. 불사 지네는 말 그대로 특정 무기를 제외한 어떤 공격에도 불사인데, 왜 진혼을 사용하면 깃들어 있는 인간이랑 같이 처치당하는 걸까.
ㅡ진혼(鎭魂)이란, 단순히 죽은 자의 영혼을 부수어 안식을 찾게 해주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 본질과 맞닿아 있는 모든 것을 단절하는 과정입니다.
ㅡ그러니 본질과 합쳐진 불사 지네 또한,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내리는 것이지요. 죽은 이후에도 현세에 억지로 붙들린 영혼을 진혼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주를 억누른 자여.
‘…….’
ㅡ잘 모르겠다고요? 당연하죠. 처음부터 척척 해낼 수 있으면 제가 왜 그쪽 곁에 있겠습니까. 다행스럽게도 이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것이 연습 상대이니, 기초부터 차근차근 시작해봅시다.
머리 한 구석에 억눌리고 짓눌려 있던 기억들이, 구멍 뚫린 댐으로 물줄기가 쏟아지듯 터져나왔다. 한번 시작된 역류는 도저히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ㅡ그쪽의 몸이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 이 하나만 기억하십시오.
ㅡ진혼이란, 그 본질을 깨뜨리는 것임을.
그 말을 마지막으로, 머릿속을 맴돌던 목소리가 사라졌다. 하지만 기억만은 게속해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옛날의 일, 옛날의 일, 또 옛날의 일. 내 과거란 이렇게나 방대한 것이었다. 멈출 기미도,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무수히 떠오르던 과거의 기억 중에서, 마음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던 한 문장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직이다.’
그 말을 다시금 떠올리자, 신기하게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손가락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무언가를 잡아채려 반사적으로 힘이 들어갔다.
눈으로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의 정체는 알 수 있었다. 내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증거이자, 무수히 많은 시간동안 쌓아올린 노력의 집합체.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마음 깊은 곳으로 가라앉으려던 의식을 억지로 끄집어냈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복부에는 여전히 더럽게 큰 칼날이 박혀 있고, 머리는 욱씬거리고, 몸은 아팠다. 하지만 괜찮았다. 어디 이런 감각을 느껴본 적이 한두 번이던가.
고통 따위는 무시했다. 손가락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것을 끌어올렸다. 익숙한 무게와 익숙한 촉감이 전해져왔다.
날개 잃은 악몽을 쥐었다.
뒤틀린 존재는 의문을 가졌다.
눈앞의 인간이 지닌 기억을 죄다 읽어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기억이 끊임없이 솟아나고 있었다. 인간 하나 분량의 기억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치였다.
이게 전부였더라면 의문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 인간의 정체는 진작에 알아차렸다. 몇 사람분의 기억을 가졌다는 사실쯤은 전혀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
의문을 품은 이유는, 새로 솟아난 기억을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저 기억들이 만들어진 세계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무한한 시간동안 수없이 많은 세계의 생명을 구원하면서도, 그 기억을 흡수하지 못했다거나 읽어들이지 못했던 적은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리하여, 뒤틀린 존재는 붉은 기운을 강화했다. 자신에게 마지막까지 농락당하다 절망 속에 죽어가고 있는 인간을 힘껏 쥐어짰다.
그리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읽을 수 없는 기억들은 여전히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나왔고, 인간은 죽어가기만 할 뿐 아직도 죽지 않고 있었다.
의문이라는 개념이 확고하게 자리잡을 무렵이었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고, 바닥을 드러낸 우물처럼 희미하던 생명이 조금씩 맥동하기 시작했다.
뒤틀린 존재는 이것 역시 이해할 수 없었다. 평범한 인간은 당장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를 입었고, 기억을 흡수하며 구원까지 이루어졌다.
그 과정을 거쳤는데 어떻게 아직 살아서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인가? 단지 영혼과 기억만을 공유할 뿐, 과거와는 전혀 다른 육신을 지니고 있는데?
새로 떠오른 의문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손의 물건을 더 단단히 틀어쥔 인간이 움직임을 보였다. 전신의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스스로의 머리를 위로 치켜올렸다.
칠흑색 눈에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가끔 저런 식으로 구원을 거부하며 끈질기게 저항하려 드는 생명이 존재하였으니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이 정도로 질기게 살아남은 적은 처음이었지만.
인간의 손에 들린 자그마한 검이 들어올려졌다. 주제도 모른 채 저것을 들고 발악하였기에, 일부러 똑같은 외형의 물체를 만들어 되돌려주었던 검.
무의미한 발악이자 꺼져가는 희망을 상징하던 검이 수직으로 그어졌고, 그 상징이 더 이상 무의미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ㅡ서걱.
검을 수직으로 긋는다는 아주 간단한 동작만으로, 뒤틀린 존재의 본질이 잘려나갔다. 있어야 할 것이 토막나는 감각이 느껴졌다.
ㅡ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포효가 터져나왔다. 뒤틀린 존재가 전력으로 내지른 포효에, 근처의 공간이 가루처럼 부서지며 깨져나갔다.
지독하기 짝이 없는 고통이었다. 자신에게 이런 짓을 저지른 인간이나, 방금 전까지 떠올라 있던 의문, 반드시 죽였어야 할 존재인 거짓된 신 따위는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이것과 비견될만한 감정은 뒤틀린 존재가 처음 탄생했을 때 느꼈던 굶주림밖에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했다. 그땐 최소한 지금처럼 모든 것을 잊고 발광해대지는 않았었으니까.
ㅡ쿠오오오오오오오!!!!!!
태산과도 같은 몸이 이리저리 비틀리고 뒹굴며 발광했다. 하지만 아무리 몸을 비틀어도, 그 어떤 지식을 활용해도 지금의 고통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거짓된 신과 인간의 몸을 감쌌던 붉은 기운이 사라졌다. 인간의 몸을 꿰뚫었던 거대한 칼날도 사라졌다.
여신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가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제정신을 되찾았지만, 그런 것을 신경쓸만한 정신 따윈 있지도 않았다.
본질이 베여나간 고통을 느끼며 비명과 절규를 내지르기도 바빴으므로.
뒤틀린 존재는 본능적으로 도망을 택했다. 이성적 사고 없이 오로지 본능만으로 행동한 것은 세상에 처음 탄생한 이후로 무한한 시간 만이었다.
근처의 공간을 열어젖히며 허겁지겁 그 안으로 들어가는 드래곤을 향해,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힘겹게 중얼거렸다.
“이걸로…… 1대1이다…… 이, 빌어처먹을 도마뱀 새끼야…….”
그 주위를 따스한 신성력이 감싸안았다. 태양과 달이 호위하듯 달라붙었다. 복부에는 뒤편의 풍경을 볼 수 있을만큼 넓은 구멍이 뚫려 있었으나, 피는 한 방울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더 견디지 못하고 기절해버린 인간을 울먹이는 미소로 쳐다보던 여신이, 그 이마에 작게 입을 맞추고 손을 놓았다.
이내, 지지대를 잃어버린 몸이 아래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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