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41)
r 241 – 추락
연신 떨려대는 하늘에, 카이킬리아는 손가락 마디가 새하얗게 되도록 성검을 쥐었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늘이 저렇게, 마치 누군가 잡고 흔들기라도 하듯 움직일 수 있는 존재였나? 그런 일이 정말로 가능했던 것인가?
하지만 혼란에 빠졌든 말든 자신은 아이테르눔 제국의 황제였고, 할 일을 해야 했다. 카이킬리아는 바로 옆에서 똑같이 지팡이를 꽉 움켜쥔 미네르바를 향해 질문했다.
“미네르바. 전언은 모두 전달하였느냐?”
“……그렇단다. 아이가 말한 대로 기사단 전원이 전투 태세를 갖추었고, 마법사들도 준비시켜놓았으니. 허나…….”
미네르바가 말꼬리를 흐렸다. 말을 미처 끝맺지 못했음에도, 저 뒤에 이어질 내용이 무엇일지 추측하기란 제법 쉬운 일이었다.
“모아봤자 쓸모가 없다는 말이더냐.”
끄덕, 미네르바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지상에서 인간 따위가 아무리 발악을 해봤자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영원의 마법사마저 뾰족한 수를 떠올리지 못하고 있으니까. 저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는커녕, 이런 상황이 왜 벌어졌는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기사단에게 전투 태세를 갖추라 이르고 마법사를 끌어모으긴 하였으나, 하늘이 저렇게 울리고 흔들리며 온갖 굉음을 내뱉어대는 상황에 무슨 쓸모를 보이겠는가.
“너는 저것이 어떻게 끝맺으리라 보느냐, 미네르바.”
“나 역시 알지 못하겠구나, 아이야.”
제국 권력의 정점이 무력함으로 가득 찬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굉음은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며 혼란이 점차 가중되는 순간이었다.
“저길 보아라, 미네르바!”
카이킬리아가 다급히 지평선 근처를 가리켰다. 은백색 동공이 손가락을 따라갔다.
태양이 휘청이고 있었다.
둥그런 구체 주변으로 퍼져나가던 빛무리가 파르르 떨리다가 잠시 깜빡이기도 하고, 희미해지기까지 하는 등 척 보기에도 상태가 심각한 모습이었다.
“……혼란이 잦아들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하겠구나.”
그 사실을 직감한 카이킬리아는 입술을 짓씹었다.
하늘이 진동하고 태양이 휘청인다는 사상 초유의 혼돈을 지나 제국이 다시 안정을 되찾으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지 모른다.
사람들은 불안해할 테고, 유언비어가 퍼질 테고, 혼란이 찾아오겠지. 그 틈을 타 이득을 취하려는 극악무도한 집단까지 날뛸 것이다.
혼란을 조금이라도 덜 겪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아이야?”
미네르바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그러느냐? 또 무엇이ㅡ”
아직도 놀랄 일이 남았다는 사실에, 카이킬리아는 대비책을 생각하다 말고 짜증스레 고개를 들었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분명 낮이어야 할 하늘에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태양과 달이 한 하늘에 뜨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저 아래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가 경악할 정도였으니, 나머지의 반응은 뻔했다.
하지만 놀랄 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태양과 달의 물리적인 거리가 점차 좁혀지더니, 그 틈에서 어마어마한 광휘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지평선 근처 어딘가의 모습이라 황궁과는 한참 떨어져 있건만,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의 몸 뒤로 그림자가 질 정도였다.
“아이야, 성검이…….”
“……저 광휘에 공명하고 있는 것이다.”
성검의 칼날이 황금색 빛을 밝혔다. 이걸로 저 상황이 신성력과 연관되었다는 사실은 확실해졌다.
그러고보니 어느 순간 하늘의 떨림이 멎어 있었다. 너무 놀랄 일 투성이였던지라 언제부터 이랬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놀랄 틈은 없었다.
찬란한 광휘를 펼치고 있는 물체가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그대로 지평선 아래까지 추락해 사라지는 광휘를 보고, 카이킬리아가 멍하니 읊조렸다.
“……미네르바.”
“알고 있단다. 저 광휘가 떨어진 위치로 이동하면 되는 것이지?”
“그렇다. 최대한 빨리 움직일 수 있도록 하여라.”
“자비로운 태양이시여…… 자애로운 달이시여…… 당신께서 펼치신 기적, 이 어린 양의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였나이다…….”
플로레타와 루나, 스텔라와 셀레네는 무릎을 꿇은 채로 하늘에서 펼쳐지고 있는 기적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맞잡아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하늘이 진동했던 사건이나 태양이 휘청였던 사건으로 경악에 찼던 감정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그야 당연히, 네 명이 무릎꿇고 있는 언덕 위에 태양과 달이 함께 떠올라 있었으니까.
태양과 달이 한 하늘에 떠오른 광경을 바로 밑에서 목도하고 있는데, 여태껏 펼쳐왔던 신앙이 보답받고 있는데 그따위 사건에 신경을 쓸 겨를이 있을 리 없었다.
철두철미하고 싸늘한 성격의 셀레네마저 눈물을 흘리고, 스텔라는 아예 펑펑 울었다. 그나마 간신히 눈물을 참아낸 플로레타와 루나의 눈망울에도 촉촉한 기색이 가득했다.
이러한 기적이 여기 모인 4인에게만 국한될 리 없었다. 온 성국이 목도하였을 것이고, 모든 신도가 태양과 달을 칭송하고 있을 것이다.
“광휘가……!”
기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태양과 달의 사이에서 찬란한 광휘가 퍼져나오더니 온 세상을 빛으로 뒤덮었다.
그 순수함은 감히 교황들의 신성력 따위가 곁에 설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저 광휘에 비하면 플로레타와 루나의 신성력은 하수도의 오물이나 마찬가지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태양과 달은 광휘를 감싸듯 내려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갔으나, 빛은 멈추지 않았다. 아래를 향해, 네 명이 있는 장소를 향해 그대로 추락했다.
플로레타와 루나는, 스텔라와 셀레네는 왜 신이 계시를 내렸고 왜 이곳에 있으라 하였는지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신성한 모습을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목도하도록 안배하신 것이리라.
“……어?”
플로레타가 그 신성함과 찬란함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으려 고개를 한계까지 꺾은 찰나였다. 초록색 눈동자에 익숙한 느낌의 칠흑색 실루엣이 잡혔다.
찬란히 빛나는 광휘 속에, 누군가 있었다.
“……왜 그러니, 에반젤리나?”
루나는 조심스레 자기 동생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플로레타가 말 없이 광휘 속을 가리켰다. 자색 눈동자에도 익숙한 느낌의 칠흑색 실루엣이 비쳤다.
둘은 그 정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델타…… 님?”
“그분께서……?”
교황들이 차례로 놀라고, 저 신성한 빛의 정체가 델타라는 사실에 펑펑 울고 있던 스텔라와 셀레네마저 고개를 들었다.
정말이었다. 거리가 상당했지만, 어째서인지 광휘 내부의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아마 이것조차도 신의 안배이겠지.
“델타 님! 델타 님!”
광휘의 정체가 델타였고, 태양과 달마저 그분을 인정해주었다는 사실에 플로레타가 어린아이처럼 방방 뛰며 좋아했다. 루나도 활짝 웃으며 가슴 앞에서 두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그 미소가 의문을 바뀌기까지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원래 인간의 복부 너머로 그 뒤의 풍경이 보였던가? 원래 인간의 복부가 저리도 휑한 모습이던가? 원래 인간의…….
“아, 아아……?”
델타의 복부에 구멍이 뚫려 있다. 그것도 주먹 따위가 아니라, 어지간한 아이 한 명이 그 사이를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구멍이 말이다.
그 사실을 인지한 넷의 몸이 얼어붙었다.
게다가 자세히 보니 떨어지는 자세까지 이상했다. 머리부터 추락하고 있다는 건, 의식을 잃어버렸거나 해서 아무튼 스스로의 동작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제일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루나였다. 패닉에 빠져 그대로 얼어붙어버린 동생을 대신해 광휘 근처로 순간이동을 했다.
빛이 포근하게 몸을 감싸안았으나, 그 포근한 감각을 느끼고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빛무리를 헤치며 그 중심에 놓인 칠흑색 인영으로 다가갔다.
“델…….”
그리고 미처 이름조차 다 말하지 못한 채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가까이서 확인하니 더 심각했다.
이건 단순히 배에 구멍이 뚫렸다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복부가 통째로 뜯겨나간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너덜너덜해진 몸 안쪽의 모습이 그대로 보이고 내장 기관이 통째로 증발한 모습. 상하체가 아직 이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웠다.
루나는 급히 델타의 몸을 감싸안았다. 몸을 감싸던 찬란한 광휘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황금색 빛무리가 걷히자 지독히도 끔찍한 몰골이 훨씬 더 잘 드러났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델타를 감싸안고 지상으로 내려온 루나가 은빛 신성력을 얇게 펼쳤다. 델타의 몸이 신성력 위에 눕혀졌다.
그 모습을 본 스텔라와 셀레네의 얼굴이 핼쓱해졌다. 인간을 고문하는 행동과 아주 깊은 연관을 지닌 둘에게조차 보통으로 여길 상처가 아니어서였다.
둘은 설령 고문을 하더라도, 아주 오랫동안 고통을 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저렇게 복부를 통째로 뜯어내지는 않았다.
복부가 통째로 뜯겨나간 인간은 그냥 죽으니까.
“델타…… 흐으윽…… 우리 델타…….”
플로레타는 온 몸을 벌벌 떨며 델타에게로 다가갔다.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아직, 아직 살아 계신 것입니까……?”
“……예. 아직 숨은 쉬고 계십니다, 에반젤리나. 죽지는 않았습니다.”
델타의 코 아래로 손가락을 가져간 루나가 따뜻한 바람을 느끼고 안도했다. 아직 살아 계시다. 비록 이런 몰골이 되시긴 하였으나, 그 생명을 붙잡고 계시다.
“그, 그렇다면 빨리 치료를…… 대성당으로 데려가야…… 아니, 일단 신성 주문을ㅡ”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순간, 창백하다고까지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광휘가 추락했다고 여겨지는 장소에 방금 막 찾아온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가, 떨리는 표정으로 신성력 위에 눕혀진 델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냐고, 여가 묻고 있지 않느냐.”
“황제시여…….”
“혹, 죽었느냐?”
“흐윽…….”
“그 사내가 죽었느냐고 묻고 있다, 태양의 교황.”
“…….”
“죽었느냐고 묻고 있지 않느냐! 왜 대답을 하지를 않아!”
벽력같이 노호성을 내지른 카이킬리아가 델타에게로 다가갔다. 제일 먼저, 복부에 뚫린 커다란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내장기관은 구멍이 뚫리며 같이 사라졌는지 어디로 갔나 안 보였고, 마치 아가리를 쩍 벌리기라도 한 것처럼 지독하게 커다란 틈이 있어서는 안 될 곳에 뚫려 있었다.
마지막으로, 죽은 듯 평온하게 감겨진 두 눈까지. 그 앞에 선 카이킬리아는 이를 뿌득 갈며 성검의 손잡이를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미네르바가 그런 카이킬리아를 다독였다.
“진정하려무나, 아이야.”
“진정? 지금 진정하라 하였느냐? 지금 여가 진정하게 생겼단 말이냐! 너도 눈이 있다면 보아라, 미네르바! 델타가 저런 상태일진대ㅡ”
“아이는 멀쩡하단다.”
노발대발하던 말이 끊겼다. 카이킬리아의 눈가와 입꼬리가 동시에 씰룩였다. 화를 억지로 참아내는 것 같기도, 분노를 표출할 준비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 무어라, 하였느냐. 저 모습이…… 멀쩡하다고?”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라진 내장 기관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구나. 아이는 죽지 않을 거야. 이 미네르바의 이름으로 맹세하겠단다.”
미네르바가 자신의 이름까지 저울에 올리자, 아무리 카이킬리아라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황금빛 동공이 죽은 듯이 누워있는 사내에게로 향했다.
아랫배부터 명치까지가 통째로 뜯겨나가다시피 한 상처이건만, 이런 모습을 하고서 아주 멀쩡히 살아 있다고?
“……그렇다면, 언제 깨어난다는 말이더냐. 그 말대로 델타가 멀쩡하다면, 진작 의식이 깨어났어도 이상하지 않을ㅡ”
“지금 깨어났는데요?”
이 자리에 모인 여섯 명은 태연하게 떠져 있는 칠흑색의 동공을 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할 말을 잃어버렸다.
언제 정신을 차렸는지, 눈을 뜬 델타가 아주 멀쩡한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섯 명이 사이좋게 입을 다물어버린 동안, 델타는 자기 배를 내려다보곤 혀를 내둘렀다.
“와, 진짜 미친놈이네. 뭐 이리 깔끔하게 뚫어놨어? 이거 나중에 도넛이라도 사먹어야 하나?”
심지어는 그걸로도 모자라 자기 손을 휑하니 뚫려버린 복부에 대고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중상을 입은 사람이라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어찌하여…….”
카이킬리아가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복부의 구멍에 손을 넣었다 뺐다 해보던 델타가 고개를 들었다.
“다 설명하자면 깁니다, 황제 폐하. 여기서 배에 구멍 뚫린 모습으로 주절거릴 내용은 아니에요.”
“알고 있단다, 아이야. 그러니 일단 치료부터ㅡ”
“이거, 신성 주문이나 마법으로는 못 낫습니다.”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델타는 대답을 해주는 대신 벌떡 몸을 일으켰다. 시체나 다름없는 몸뚱아리가 일어서는 모습에 플로레타와 루나가 기겁을 했다.
“저번에 황궁에 왔었던 드래곤 있지 않습니까. 그놈 짓이거든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