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43)
r 243 –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 1
“그래서, 약간이나마 남아있는 위엄이라도 유지해보려고 절 최대한 멋지게 맞이할 준비를 하고 계셨다?”
끄덕끄덕끄덕. 자신을 이클립스라고 소개한 여신이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자기 혼자서 중얼거리던 것을 내가 엿들은 모양새였지만.
얼굴은 척 보기에도 알아볼 수 있을만큼 시뻘갰다. 뺨은 물론이고 귀까지 새빨개져선, 과장 좀 보태면 토마토를 덕지덕지 발라놓은 것 같았다.
“그, 취지는 알겠습니다만.”
나는 의자에 걸터앉아 왼손으로 턱을 괸 채, 오른손 검지로 테이블을 톡톡 두들겼다. 대리석이라 그런지 소리 하나는 끝장나게 잘 울려퍼졌다.
톡톡거리는 박자에 맞춰 여신의 몸도 같이 움찔거렸다. 얼굴은 터질 듯이 빨간데다 전신을 베베 꼬고, 내 눈치까지 살펴대고 있으니 누가 보더라도 부끄러워하는 모양새였다.
“지금 와서 위엄을 찾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
“아니, 그렇잖아요. 그 도마뱀 새끼한테 관광…… 씁, 이런 표현을 써도 되려나 모르겠네. 아무튼 영혼까지 털리셨고, 있는 세계도 다 잡아먹히셨고, 이래저래 뭐 사건도 많았고.”
“…….”
“이제 와서 분위기 있는 척, 위엄 있는 척 하면서 무게 잡으셔봐야 저한테 조금도 감명 안 깊을거라는 생각을 정말 한 번도 안해보신 겁니까?”
내 말은 정론이었다. 속사정이야 어떤지 모르겠는데,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 본다면 이클립스는 입이 열 개가 아니라 백 개라도 나한테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지금 와서 경외감을 느끼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래서인지 여신은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이 여자가 수습 못한 일이 몇 갠데.’
그나마 복부에 뚫렸던 구멍이라도 메꿔줬기에 망정이지. 나는 원래대로 돌아온 배를 슬쩍 건드렸다.
이것도 자기 힘으로는 복구 못해준다고 했으면 바닥 밑에도 바닥이 있다는 걸 여신을 향한 내 신뢰도로 몸소 보여줄 뻔 했다.
왜 싸움 끝난 직후에 바로 안 메꿔줬냐고 물어보니, 광휘 만들어주느라 조금 남아있던 힘마저 다 써버렸다나. 정말 끝까지 오만군데서 다 허접인 여신이었다.
“죄송합니다, 당신…….”
여신은 잔뜩 움츠러든 목소리로 사과를 건넸다.
“사과는 됐습니다. 그쪽이 괜한 짓 한 건데요. 부끄러움도 그쪽 몫이고. 제가 그걸로 사과를 들어야 할 이유는 없죠.”
내 말에 색이 조금 돌아오는가 싶던 여신의 얼굴이 다시 새빨개졌다.
“왜 그런 자세로 절 환영하려 했는지도 신경 안 쓰겠습니다. 여신님이 자기 몸을 완벽하다고 여기셔서 노출에 거리낌이 없으시다는데 제가 뭘 어떡하겠습니까.”
이 세계 여자들의 옷차림과 상식이 그렇게 된 이유부터가 눈앞의 이클립스였다. 자신의 몸이 완벽하다고 여기는지라 노출에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자기 몸을 본따서 인간을 만들고 자기랑 똑같은 상식을 집어넣었다고 하니 당연히 저런 세상이 될 수밖에.
여자들의 몸매가 하나같이 엄청난 것은 이클립스를 본따 만들어졌기 때문이고, 옷차림이 야하기 짝이 없는 건 몸매에 꿇릴 게 없으면 드러내야 한다는 상식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그 시발점이 내 눈앞에 있는 여신이었다.
‘완벽한 건 맞아서 뭐라 할 말이 없긴 하네.’
솔직히 자부심을 가질만 했다. 여신의 몸은 ‘완벽’이라는 두 글자 이외에 다른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저기서 아주 살짝이라도 더 말랐다면, 아주 살짝이라도 더 살집이 있었다면, 모든 신체 부위가 약간이라도 더 나갔거나 덜 나갔더라면 완벽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는 못했을 거다.
하지만 그 어려운 걸 여신은 해냈다. 그러니 스스로의 몸에 지닌 자부심만큼은 나조차도 별로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제가 묻고싶은 게 뭔지는 알고 계시죠?”
“……네, 당신.”
“그러면 대답부터 듣겠습니다. 저를 왜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부르셨는지. 경력직이라서 더 쓸모 있었다 같은 황당한 대답 내놓으면 한 대 때릴 겁니다.”
“……화를 내지는 않으시는 건가요?”
이클립스는 손을 허벅지 사이에서 꼼지락거리며 눈을 빼꼼 치켜뜬 얼굴로 물어왔다.
“지금 당장은 안 냅니다. 이유를 제대로 못 들었잖아요. 만약 제가 듣기에 도저히 납득 못하겠는 이유다 싶으면 그때부터 내도 늦진 않겠죠.”
누가 알겠는가. 나를 여기에 4번씩이나 불러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을지.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여신이랑 한바탕 하는 거고.
“예. 알겠어요.”
이클립스가 결연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선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행동과 세계를 먹는 자의 탄생 경위, 그리고 알아차렸을 땐 이미 너무 늦어있었다는 사실부터였다.
그 과정에서 세계를 좀먹던 뒤틀린 존재들이 생겨났고, 뒤틀린 존재를 처치하기 위해 다른 차원에서 사고로 죽어버린 영혼들을 끌고와 불사를 부여했다는 사실도.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납득이 갔다. 내가 제 명을 못 살고 사고로 픽 죽어버렸다면, 결국 어찌됐든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한테 두 번째 기회를 준 셈이니까.
죽은 다음에 다른 세계에서 환생한다는 건 ‘이세계 트럭’ 같은 클리세로 대표될만큼 많이 써먹히는 클리셰이기도 하고. 그러니 전혀 이상할 건 아니었다.
“그 다음은요? 브닼 1은 그렇다 쳐도,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된 겁니까?”
“당신께서는 불사의 사명을 받아들이고 여정을 지속한 끝에 스스로의 몸을 불태워 세계를 지켜내셨어요. 하지만, 수많은 죽음을 겪었기에 영혼이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었죠.”
그 도마뱀이 말해준 사실이었다. 나는 계속하라는 눈짓을 했다.
“저는 당신의 영혼을 새로운 육신으로 옮기고, 새 육신과 함께 원래 거주하시던 차원으로 돌려보내드리려 했으나…… 영혼의 상태가 너무 심각한 나머지, 차원 간 이동을 버틸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심각했길래요?”
“순간이동을 사용해 육신을 옮기더라도 그 충격으로 영혼이 부서져버릴 수 있을만큼요.”
“…….”
순간이동이라면 교황들이나 미네르바, 닉스가 쓰는 그거 아닌가. 그걸로 몸을 옮기려는데 영혼이 부서질 수 있을 정도라면 정말 상태가 어지간히도 심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저는 계획을 포기하고, 육신이 놓인 근처를 봉인했습니다. 잠들어 계시면서 스스로 영혼을 치료할 수 있게끔요. 영혼이 차원 간 이동을 버틸 수 있을만큼 치료되면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드릴 예정이었죠.”
“여신님이 직접 치료해줄 수는 없었던 겁니까? 세계를 창조하시는 분이 인간의 영혼 하나를 못 고친다는 게 말이 안 되는데요.”
“능력의 종류가 다르니까요. 당신이 계셨던 세계에서도, 수백톤의 강철 덩어리를 하늘에 띄우고 수백 미터의 마천루를 쌓아올리면서 비를 피할 때는 여전히 우산을 사용하지 않습니까. 저의 능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자로 잰 듯이 비교할 수는 없어요.”
“…….”
납득이 안 갈 것 같으면서도 납득이 가는 기묘한 설명이었다.
“그러면 제가 브닼 2의 시간대에서 깨어났던 건 어떻게 된 거죠?”
“당신의 본능 때문입니다.”
“본능이요?”
“예.”
여신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망가질대로 망가졌던 영혼은 봉인 속에서 안식을 취하시는 동안 어느정도 수복되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본능적으로 봉인을 박차고 일어났지요.”
“여신님이 직접 거신 봉인을 부쉈단 말입니까? 제가요?”
“밖에서 들어올 수는 없지만 안에서 나가기는 쉽도록 만들었으니까요. 만약 안에서도 쉽게 나갈 수 없었다면 제가 당신을 가둬버린 꼴이었겠죠. 그런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어쩐지 브닼 2의 시작 장소가 웬 덩그러니 놓여진 집이더라니. 그게 여신이 걸어둔 봉인이었나.
“깨어난 당신은 그것의 힘이 강해짐으로 인하여 또다시 창궐하기 시작한 뒤틀린 존재들을 학살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을 흡수해 자신의 영혼에 덧대는 방식으로 치료를 계속했죠.”
브닼 2의 스토리가 저런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긴, 원래 이야기를 그대로 낼 수는 없으니 게임으로 만들 때 적당한 각색이 필요하긴 했을 것이다. 당장 브닼 4만 해도 세계를 먹는 자의 포지션이 완전히 다르고 말이다.
“균열 때문에 조각난 세계를 이어붙인 다음, 영혼이 충분히 덧대어졌다고 판단한 당신은 봉인되어 있던 장소로 돌아가 다시금 깊은 잠에 빠지셨습니다.”
“그때 돌려보내주셨을 수도 있지 않나요?”
“당신께서 영혼을 직접 치료하시는 와중에 제가 간섭했다간 오히려 상황을 더 꼬아버렸을 가능성이 높았어요. 무엇보다…….”
이클립스가 말끝을 흐렸다.
“그때는 세계를 빼앗기는 속도가 본격적으로 빨라지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상황이었다면 가능하였겠으나, 그것에게 전력으로 대항하면서 인간의 영혼을 건드리는 민감한 작업을 하긴 쉽지 않았죠.”
“결국 능력이 안 되셨다는 거네요.”
“……예.”
여신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긍정했다.
‘그러면 애초에 4번씩이나 불려왔던 것도 아닌 거잖아?’
브닼 1의 엔딩을 봤는데 영혼이 너무 망가져서 못 돌아갔다가, 잠 좀 자고 깨어나서 영혼을 회복하는 겸사겸사 브닼 2의 엔딩까지 본 셈이다.
브닼 2의 엔딩을 본 이후에도 영혼을 완전히 치료하느라 또 못 돌아갔으니, 자연스레 브닼 3의 세계에서 굴렀던 것 역시 3번째로 불려온 게 아닌 셈이 된다.
그냥 집에 못 돌아가고 있던 거지.
‘……그러고보니, 닉스도 내가 여러번 불려왔다는 말은 안 했어.’
단지 브닼 3의 주인공이 나라는 말을 했을 뿐이다. 마지막에는 브닼 1과 2의 주인공이 나라는 암시를 넌지시 던져줬을 뿐이고 말이다.
모두 내 지레짐작에 불과했다.
“아주 많은 시간 끝에, 당신의 영혼은 완벽히 치료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을 미처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드리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졌죠.”
내가 충격을 받아 조용해진 사이, 여신이 말을 이었다.
“……불사 지네겠네요.”
“그렇습니다. 불사 지네가 봉인을 부수고 당신의 몸을 잠식하여, 영혼마저 그 세계에 붙들어놓은 것입니다.”
“분명 만들 때 밖에서는 쉽게 부술 수 없도록 만들었다지 않으셨습니까?”
“제 힘을 절반 넘게 빼앗겼으니까요. 그 탓에 봉인도 덩달아 약해져버린 거죠. 당신께서 모조리 닫아버리셨던 균열이 다시 생겨나기 시작한 이유도 그래서에요.”
아련함을 담은 황금색과 은색의 오드아이가 날 향했다.
“하지만 당신은 수없이 많은 뒤틀린 존재를 흡수하셨기에 영혼의 격이 굉장히 높아진 상태셨고, 불사 지네로 인한 영혼의 침식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브닼 3의 주인공이 몸을 뺏기고도 의식만큼은 멀쩡했던 이유가 따로 있었다는 사실에 속으로 놀랐다. 그냥 ‘게임의 주인공이라서’ 정도인 줄 알았건만.
“잠깐. 그러면 여신님이 진혼을 사용해서 그 도마뱀 새끼를 죽일 수도 있지 않았나요?”
“저는 본질이나 영혼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으니까요. 그러니 본질에 닿는 개념인 진혼을 사용할 수도 없죠. 물고기가 다리를 움직인다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이 지느러미를 움직인다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듯이,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면 반대로 진혼에 본질이 반쯤 잘려나갔던 세계를 먹는 자는 따라서 사용할 수도 있다는 의미 아닌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당신께서는 마지막 불사 지네까지 처리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몸에 진혼을 사용하셨고, 저는 부서지지 않고 남은 일부나마 거두어들여 간신히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내드릴 수 있었죠. 그 과정에서 이 세상에 대한 기억이 모두 마음 깊은 곳에 가라앉아버렸고요.”
“뭔가 이상한데요. 그놈은 여신님이 저를 망가뜨렸다고, 했…….”
까지 말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뭐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 것 같아서였다. 이클립스도 다음에 나올 말을 짐작했는지 살짝 분노한 표정을 했다.
“저급한 말장난입니다. 당신이 처음 불사의 사명을 부여받고서 망가지셨던 것 자체는 사실이니까요. 두 번째와 세 번째에서는 아니지만요.”
이른바 거짓말은 안 했다는 화법이다. 끝까지 교묘한 놈이었다.
“죄송해요, 당신. 제가 무능한 탓에…… 제가 힘이 없는 탓에 당신을 그토록 고생시켰어요. 정말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사과를 끝낸 이클립스는 할 말은 끝냈다는 듯 내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고, 나는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다. 창 밖으로 서늘한 밤바람이 불어오며 머리를 식혀주었다.
여태까지 생각했던 것처럼 이클립스가 나를 4번이나 장기말로 써먹었던 건 절대 아니었다.
실질적으로는 처음 1번과 지금 1번, 총 2번밖에 부르지 않았다. 내가 이 세계에 있는 동안에도 어떻게든 날 원래 세계로 돌려주려 노력했고.
그게 죄다 능력이 안 되는 바람에 실패해서 그렇지.
‘……남은 건 브닼 4인가.’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1부터 3까지의 시계열이 이어지는 이유를 속으로 납득하고, 다음 의문으로 눈을 돌렸다. 나를 다시 불러낸 이유에 대한 의문으로.
그것도 브닼 5편의 CBT라는 아주 성대한 낚시질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생각 정리하기 전에 하나만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예, 당신. 무엇인가요?”
“그 빌어먹을 파란색 증기기관차는 대체 뭐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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